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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105화 (105/232)

105화

콰아아앙!!

거친 폭음과 함께 건물 한쪽 벽이 포탄에 직격당한 듯 안쪽으로 솟구친다.

[마력 방패]

우우웅!

퍼버버버버벅!!

급하게 세운 방패에 날아드는 잔해와 눈덩이.

총알처럼 날아드는 것들을 죄다 튕겨 내기 무섭게 순간적으로 땅바닥을 타고 들어와 날 기습하는 무언가.

푸확!

쇄에에에에에엑!!

퍽 하고 먼지구름을 뚫으며 드러난 정체는 중세 시대 기사들이 전장에서 즐겨 쓰던 랜스와 맞먹는 크기의 큼지막한 부리였다.

‘어깨!’

인지와 동시에 투로를 읽고 오른발을 빼며 상체를 젖히자.

후우욱―

콰앙!

한 끗 차이로 회피해 낸 공격이 대각선으로 쭉 날아가 그대로 천장에 틀어박힌다.

그 덕택에.

어떤 놈이 날 습격했는지 똑똑하게 볼 수 있었다.

3m에서 3m 50cm?

대략 그쯤 되는 거구의 괴조였다.

‘타조?’

전체적인 형상은 타조와 비슷했는데, 날개가 상당히 짧고 다리가 긴 것으로 보아 실제로 비행보단 달리는 쪽에 특화된 타입으로 보였다.

그러다 기회가 생기면 먹잇감을 부리로 쪼아… 아니, 부리로 꿰뚫어 사냥하는.

난 거기까지 머릿속에 각인해 두고서 왼손을 휘둘러 대롱거리는 놈의 몸뚱어리를 잘라 냈다.

[베어 내기]

서걱!

쿵!

[「절망의 파도」를 막아 냈습니다.]

[‘공적치’가 상승합니다.]

[현재 나의 공적치 : 1(산술법 확인▼)]

[현재 나의 순위 : ―]

[24시간에 한 번씩 순위가 갱신됩니다.]

[순위는 1위부터 100위까지만 표기됩니다.]

[이레의 종점에서 받게 될 보상을 생각하며 더욱 분발하시길 바랍니다.]

기다란 목이 잘려 괴조를 죽여 없애자 나타나는 홀로그램 화면.

특별히 대단한 내용은 없었다.

단지.

“…잠깐.”

[현재 나의 공적치 : 1(산술법 확인▼)]

[공적치 산술법 : 솔져―1점 / 나이트―10점 / 커맨더―100점]

이걸 제외하고는.

“커맨더? 사령관?”

이게 무얼 대변하는가.

답은 명백하다.

“…3등급.”

이번 이벤트를 통해 지금껏 출현한 적 없었던 ‘3등급 개체’의 행차가 있음을 공지한 것이었다.

3등급, 3등급이라…….

나는 명백한 출진 선언에 동일한 단어를 반복적으로 되뇌었다. 미지의 공포라고 할까. 그 묘한 무게감이 어깨를 짓누르는 듯해서.

다만.

금방 안정을 찾았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

겁먹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난 결코 약하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누구와 견주어도 능히 상좌를 차지할 수 있을 만큼.

헌데.

왜 무서워한단 말인가?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 이제까지 쌓아 올린 탑은 머리를 쳐들고 우러러봐야 할 정도로 드높으며, 칼바람이나 태풍이 밀려와도 굳건히 버틸 정도로 견고하다.

그러니.

“와라.”

오거든 상대가 어떠한 종(種)이든 상관없이 사지육신을 찢어발겨 잡아먹어 주리라.

최악(最惡)의 괴물(怪物)이란 이명을 가진 유일한 ‘프레데터’로서.

씨익―

각오를 다진 순간.

나도 모르게 입가가 비틀리며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마도.

[축하합니다!]

[「3등급 개체」의 육체 이식에 성공했습니다.]

[대상이 보유 중이던 신체 능력 일부가 전이되었습니다.]

불안감이 사라진 자리로 이 같은 미래가 눈앞에 그려져서가 아닐까 싶었다.

* **

쿠우웅!

쿵!

“고오오오오오오!!”

“꼬오오오오!!”

“열, 열다섯, 열……여덟.”

또 몰려온다.

방금 막 열댓 마리를 처리하고 거점으로 돌아가려던 내 발목을 붙잡으며 달려드는 한 무리의 괴물들.

나는 쉴 틈 없이 몸을 움직이며 오른편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우우우웅!!

[오르그의 파괴 본능]

콰아아앙!!

머리로부터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신체를 순환해 손끝으로 모여 발산되는 마력이 목전에 다다랐던 괴물들을 덮치며 푸른빛을 흩뿌린다.

수백, 수천 개의 파편으로 나누어져 전면을 휩쓰는 빛무리가 사그라지자 휑해진 공터를 굴러다니는 근원석과 뭉텅이로 상승하는 공적치가 보인다.

[현재 나의 공적치 : 62(산술법 확인▼)]

이벤트 개최 전후로 몇 분이나 지났다고 벌써 60을 넘어간 수치.

황당하기 그지없으나.

쾅!

“…또인가.”

감상평을 늘어놓긴 아직 이르다.

“키에에에엑!!”

“키에에엑!”

연극은 끝나지 않았고, 배우들은 여전히 무대를 활보하는 중이었으니까.

절망의 파도.

왜 이러한 명칭이 붙었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이해할 것 같았다.

끊임없이 들이닥치는 괴물들이 마치 해안가를 잠식해 오는 격랑(激浪)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탓에.

“괜찮을지 모르겠네.”

자연스레 한세정들에 대한 걱정이 커져만 갔다.

분명 메시지는 경고했다.

‘파악된 인원수에 걸맞은 크기의 파도가 들이닥칩니다.’

라고.

고로.

한세정, 조이령, 곽재우, 신지유, 신지운.

도합 다섯 명이나 되는 인원이 뭉쳐 있는 거점은 그야말로 아수라장(阿修羅場)이 펼쳐지고 있을 공산이 매우 매우 컸다.

‘안전지대’도 있고, 한세정들의 실력도 절대 낮지 않으니 어찌어찌 막아 내고는 있겠지만…….

“그래도 더 늦어지기 전에―”

“고오오오오오!!”

“꼬오오오!!”

[발록의 투기]

후우우욱!!

“그억!”

“고오옥!”

털썩―

털썩―

[오르그의 파괴 본능]

후우웅!

콰아아앙!!

“빨리 가야겠어.”

[현재 나의 공적치 : 81(산술법 확인▼)]

안심할 수 없다.

혹여라도 거점 쪽에 3등급 개체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안전지대’는 물론이고 한세정들의 목숨까지 위험해질 테니.

다른 건 몰라도.

누군가 다치고 죽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한다. 나는 그 일념으로 다시금 전신에 마력을 흘려보내며 폐허가 돼 버린 건물을 빠져나왔다.

[돌진]

조금씩이라도 이동하기 위함이었다.

“쿠와아아아아아!!”

“쿠와아아아!!”

마침.

기회도 생겼다.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

쿵―

쿠구구구구궁―!!

“쿠와아아악!!”

“쿠와악!!”

[오르그의 파괴 본능]

우우우우!

콰아앙!!

[현재 나의 공적치 : 100(산술법 확인▼)]

띵―

[축하합니다!]

[첫 번째 파도를 ‘모두’ 막아 냈습니다.]

[다음 파도가 밀려오기 전까지 공백기가 주어집니다.]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170분 54초]

“음?”

공적치가 100을 가리키자 일시적으로 휴식 시간이 제공된 것이다.

1인의 경우 백 마리까지만 공격해 오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압도적인 속도로 「파도」를 방어해 냈습니다.]

[소요 시간 : 9분 6초]

[뛰어난 성적으로 승리를 거머쥔 당신에게 ‘특별한 보상’을 선물합니다.]

[해당 보상은 ‘10분 이내’로 「파도」를 방어해 낸 생존자에게만 주어집니다.]

[‘특별한 선물’은 일차 단위로 공급됩니다.]

[현재의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보상을 선정 중입니다.]

[…완료!]

[보상으로 ‘자가 수복 장포’를 습득합니다.]

[‘공적치’가 50 상승합니다.]

내가 받은 보상은 공백기만이 아니었다.

《자가 수복 장포》

- 등급 : 비범

- 분류 : 방어구

- 설명 : 우주 곳곳에는 특이하고 특수한 성질을 띤 생물들이 존재합니다. 「오토리페어」도 바로 그중 하나로, 이 곤충에서 채집한 실은 놀랍게도 한번 형태를 고정하고 나면 절반 이상 파괴되지 않는 한 주변의 산소를 통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갑니다.

하여 한때 ‘오토리페어’의 실로 짠 옷감은 같은 무게의 황금보다도 훨씬 비싼 가격을 자랑했다고 전해집니다.

- 옵션 : 상시 자가수복 / 순발력 +6% / 마력 +6%

“아이템……?”

아이템.

무려 ‘비범’ 등급의 아이템이 떡하니 떨어졌다.

그래.

“히든 피스?!”

내 손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히든 피스’였다. 시스템상 기본적으로 누구나 얻을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무나 얻을 수 없는 숨겨진 보물.

그것도.

“장포… 장포라니.”

현재의 내게 제일 요긴한 아이템으로 세팅되는, 단계를 나눈다면 가히 최상급이라 봐도 무방한 히든 피스를 먹었다.

나는 다소 얼떨떨한 표정으로 손에 착 감긴 장포를 들어 올렸다.

부드러운 촉감에 흑회색으로 채색까지 되어 있어 무난하면서도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스르륵―

거적때기 같던 비닐을 벗어 던지고 목 부분의 단추를 채워 깔끔하게 둘러싸는 장포. 따듯한 온기와 함께 신체가 한층 강화되는 고양감이 차오른다.

좋다.

탁―

탁―

가볍게 통통 점프해 보며 늘어난 힘에 적응한 나는 예정에 없었던 성과에 기분 좋게 웃었다.

절망의 파도.

나를 포함해 한세정들에게 위기를 초래할 재난이라 여겼는데.

“…잘만 이용하면.”

이제 보니 이용하기에 따라서는 사신의 대낫이 될 수도, 혹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기반이 될 수도 있는 양면의 동전이었다.

그걸 깨달은 직후.

쿵―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에게 성장이란.

“누나.”

누나에게로 가는 ‘계단’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새로운 목표가 생길 것 같았다.

앞으로 남은 6일.

“…다 먹는다.”

될 수 있다면 여섯 개의 히든 피스를 모두 확보해 보리라.

기왕이면.

한세정들도 전부.

* * *

“키에에에에엑!!”

“크아아아!!”

“그어어어어어어!!”

‘난리가 났군.’

농자재 백화점 부근.

예상대로 괴물들이 빽빽하게 늘어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발 디딜 곳도 없어 촘촘하게 부대끼는 수백 마리의 군단이.

5백? 6백?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아 도저히 몇 마리인지 세어지지도 않았다.

1인에 백 마리.

단순 계산이면 5인이니 5백 마리겠지만…….

“하기야,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지.”

어차피 몇 마리든 다 뚫어야 하는 것.

삑!

[‘고주파 신호기’가 작동되었습니다.]

[‘반대편 신호기’로 당신의 위치 정보가 전달됩니다.]

나는 ‘고주파 신호기’로 내가 왔음을 알리고 마력을 최대로 끌어내며 발을 굴렀다.

[스트랭스]

[가속]

[돌진]

콰직!

슈우우욱!

가속에 가속을 거듭하며 단숨에 도달한 괴물들의 바다 한복판.

어그러졌던 흐름이 서서히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세상에서 주먹을 내질러 본다.

[순간 회귀 : 오르그의 오른팔]

[오르그의 파괴 본능]

후우우우욱―

쿠웅!

쫙 갈라진 근육이 꿈틀거리며 대지를 짓누른다.

손끝에 닿자 격렬하게 요동치는 대지.

수면에 떨어진 돌멩이가 파문을 일으키듯 출렁거린 마력이 원을 그리며 내 곁을 지워 나간다.

콰아아아앙!!

뒤늦게 터져 나오는 폭발음.

“후.”

그 소용돌이 속에서 느긋하게 일어서자.

“키에에엑?!”

“그에엑?”

“으어어어?”

이제야 내가 끼어들었음을 눈치챈 괴물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린다.

족히 천 개에 달하는 눈동자가 일시에 날 주목하자 꽤나 따끔한 압박감이 살갗을 찌르르하게 긁는다.

딱.

[발록의 투기]

[투르바의 포효]

“후우읍, 크아아아아아!!”

쿠우우우우웅!!

사냥하기 좋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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