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 * *
‘서둘러야 한다.’
나는 성십자가 클랜 사람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발걸음 속도를 높여 나갔다.
멀어져야 했다.
지금이야 수장이 인질로 잡혔다는 충격에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으나 추격은 금방 재개될 거다. 결과와 관계없이 날 잡아야 하는 건 매한가지인 데다가 조장급 인사와 정령 하나만으로 감시하기에는 불안할 테니.
어쩌면 벌써 발을 뗐을지도 모르지.
그러니,
‘움직여라……!’
자꾸만 퍼지려는 다리에 억지로 생기를 불어넣으며 단 1m라도 전진하고자 도심을 빠르게 거닐었다.
어디로?
‘제발, 제발 나와라…….’
가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지가 있었다.
현재 내게 시급한 두 가지 과제를 한꺼번에 처리해 줄 장소.
그런 곳이 있나?
있다.
바로 ‘던전’이었다.
누군가는 이 대답을 듣고 온전치 않은 꼴로 던전을 찾으러 가는 건 자살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욕할 거다.
맞다.
위험하다. 자칫 호랑이가 무섭다고 피하려다가 늑대 굴로 굴러 들어가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거기밖에 없다.’
내 결정은 확고했다.
애당초.
늑대 굴이라서 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범과 랑은 먹잇감이 있다면 홀로 독차지하려 들지 겸상을 하진 않는다. 먹이 사슬의 최상단에 위치한 포식자가 감히 누구와 밥그릇을 나눌까.
난 그 점을 이용할 작정이었다.
호랑이 같은 성십자가 클랜, 늑대 무리라고 할 법한 괴물들. 그 중간에 끼어 서로 먹잇감을 차지하기 위해 치고받고 싸우는 동안 어부지리로 도망쳐 보겠다는 게 내가 세운 작전의 개요였다.
물론.
그럴듯한 계획과 달리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만.
설혹 실패할 경우를 감안하더라도 일단 던전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잘린 왼팔을 복구해야 하고,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괴물과 부대껴야 했기에.
봉합 수술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천 쪼가리와 포션으로 피가 흐르는 것만 겨우 막아 둔 상태. 더 놔두었다가는 과다 출혈로 쓰러질지도 몰랐다.
동료 하나 없는 외부에서 기절은 죽음을 의미했고.
이러니.
‘어디냐!’
던전이 필요했다.
최소한.
소실된 육체를 회복하고 ‘기억 포식’을 진행할 시간이라고 마련하려면.
“나, 날… 어디로 데려, 가는 거냐……!”
그런 탓에 정신없이 거리를 떠도는데 슬슬 약발이 도는지.
연신 ‘으으’나 ‘끄으’ 따위의 신음만 내뱉던 놈이 주둥아리를 놀리기 시작했다. 행선지가 궁금하다기보다는 얼른 자신을 놓아 달라는 발악이었다.
그래서 뭐라 떠들든 무시하고 갈 길을 가는데.
“날 놓아라!! 나는, 나는!”
한번 입이 뚫려서인가.
놈의 주둥이가 도통 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인류의 구원자이자 신의 대리인!”
내용도 가관이었다.
성십자가라는 거창한 명칭을 달고 히어로를 표방할 때부터 평범치 않은 인물임은 눈치챘다. 실제로 개인의 실력이나 백 단위가 넘는 집단의 수장이라는 포인트로 비추어 볼 때 범상찮은 레벨이었고.
하여.
웬만한 헛소리까지는 그러려니 하고 이해해 줄 수 있겠는데.
“세상의 모든 악, 크으음……. 악을 단절하고… 인류를 재앙으로부터 구원할!”
“…….”
이건 좀 핀트가 어긋났다.
아니.
거의 망상 장애나 다름없을 정도로 아주 대차게 뒤틀렸다. 본인이 인류의 구원자고 신의 대리인이라니.
그야말로 미친놈이었다.
다만.
“기적의 조각, 그건 내것― 아니, 인류의 것이다! 내놓아라! 그것만이 붕괴한 역사를 종말 이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
성십자가 클랜원들이 이런 또라이를 왜 따르고 있는진 알 것 같았다.
결코 정상적인 정신머리고 할 수는 없으나.
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도 인류애를 논하는 걸 보니, 인간을 위한 일꾼임은 명백했으니까.
소위 인류 입장에선 가장 중요한 재목이었다.
그런 데다,
송주영에게 듣기로는 클랜원 중 9할에 달하는 대다수가 일면식도 없는 타인을 적극적으로 구조해 준 것에 감사하고 감화되어 합류했다고 하니.
팥으로 메주를 쑨다며 앞뒤 분간 못 하고 날뛰어도 무조건적으로 지지해 주었으리라.
이놈은 그러면서 더더욱 자기 컨셉에 심취했을 거고.
‘잘못 엮였군.’
음.
잘못 엮여도 진짜 한참 잘못 엮였다.
이런 미치광이와는 자그마한 접점이라도 만들지 말아야 하는 법인데 ‘기적의 조각’은 하필 이딴 놈과 운명이 겹치도록 설계할 게 뭔지.
마석(魔石)의 소유자가 둘만 있는 건 아닐진대.
“끼에에에엑!!”
“크아아아아아!!”
“……!”
막 상가 하나를 건너며 신세 한탄을 하던 와중에 멀지 않은 곳에서 두 종류의 괴성이 동시에 들려왔다.
두 쪽 다 낯선 하울링.
“고로 인류를 위해 당장 날 풀고 기적의 조각을―”
꽈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악!!”
“닥쳐, 죽여 버리기 전에.”
“끄으으윽, 끄윽……!”
옆에서 방해해 대는 청년의 목덜미를 온 힘으로 짓눌러 입을 닥치게 한 후 소리의 근원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욱신거리는 상처를 다독이며 도착한 지점은 웬 한의원.
간판이 반쯤 잘려 상호는 알 수 없는 그 건물 입구에서 족히 3m는 될 법한 크기의 괴물 두 마리가 피 튀기는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끼이에에에엑!!”
“크아아아악!!”
쿠웅!
쿵!
지구를 침공한 외계 생명체.
일명 ‘침략군’들은 동맹이 아니다. 단지 인간 말살, 차원 지배라는 지상 명제가 동일할 따름이지.
즉.
괴물들 간의 전투야 심심치 않게 구경할 수 있는, 그다지 대단한 광경은 아니라는 거였다. 따라서 나는 ‘전투’ 자체보다는 ‘현장’을 살피는데 몰두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두 가지.
이 근방에 던전이 존재할 가능성과 눈앞의 괴물들에게서 잃어버린 왼팔을 대체할 부위가 발견되느냐 마느냐.
그 두 개의 물음 중 더 빨리 대답이 나온 질문은 후자였다.
‘…팔!’
눈으로 보자마자 캐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라고 괴성을 질러 대는 놈에게 쓸 만한 팔이 있다는 걸.
천운이 따라 주었는지.
목표로 잡은 괴물의 전체적인 외형이 인간형을 띠고 있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두 쌍의 박쥐 날개나 짙은 검은 빛깔의 피부색에 3m에 걸맞은 두껍고 두꺼운 체형까지 종합하여 인간의 현상을 본뜬 ‘악마’, 으레 ‘발록’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 딱 부합하는 형상이었다.
물론.
내 눈길을 확 사로잡는 건.
‘다섯 개……!’
인간과, 플뤼와 똑같은 다섯 개의 손가락이었다.
그거면 됐다.
곧바로 무기화해서 투입할 수 있는 구조, 이 부분만 충족되면 더 바랄 게 없었다.
정 뭐하면?
이 위기를 넘긴 후에 교체하면 될 테니.
허면.
앞으로 체크해야 될 사항은 ‘던전의 가능성’뿐인데, 무척 다행스럽게도 그 부분 역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됐―, 아!’
한의원이 포함된 5층짜리 건물 뒤편으로 야트막한 ‘돌산’들이 놓여 있었으니까.
조급했던 탓에 보지 못하고 있었으나.
대체품을 확보해 한결 홀가분해지며 시야가 넓어진 덕택인지 이제는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넉넉잡아 십수 개 이상의 돌산이 시가지 일부를 차지하고 있음이.
‘던전이야.’
도심지 한복판에 자리한 기형의 공간.
던전 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저 발록의 터전인지, 아니면 발록과 전투 중인… 철갑에 가시가 잔뜩 둘러 쳐진 사슴벌레 형태의 괴물의 거주지인지.
혹은 아예 제3자의 영역인지는 짐작할 수 없으나.
난.
오로지 던전이 있음에 환호하며.
“후으으으읍―”
[돌진]
쿠우웅!
젖 먹던 힘까지 끌어 쓴다는 마음으로 호흡을 참고 내달렸다.
거친 행동에 포션의 도움으로 간신히 아물어 가던 가슴과 팔뚝이 다시금 터져 피가 흘러나오는 출혈감이 느껴졌으나 오직 정면만 바라봤다.
“키에에에엑!!”
“크아아아악!!”
그 갑작스러운 난입에 괴물들이 당황해할 즈음.
[투르바의 포효]
“으아아아아아아아!!”
푸화하하하하학!!
나는 참았던 마력을 토해 냈다.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치고 올라와 대기를 밀어내며 순식간에 일대를 진동시키는 음파.
이 느닷없는 소음에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난리가 났다.
2~3m가량 떨어진 위치에서 치열하게 다투던 괴물들은 아연실색해서 무의식적으로 물러섰고, 다수의 괴물들이 포진해 있을 거라 추정되던 돌산 인근은 도리어 함께 포효하며 이쪽으로 뛰었다.
“끼에에에에엑!!”
“끼에에에엑!!”
마지막으로.
“토, 통신! 놈이 이상한 짓거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성십자가 클랜에서 얼떨결에 내 감시 역을 맡고 있던 송주영.
청년의 안위를 살피느라 1분 1초 단위로 통신을 보내던 그는, 내내 걸어가던 내가 기습적으로 질주하며 ‘투르바의 포효’를 터트리자 당혹한 기색으로 무전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슈슛―
슛―
‘왔다.’
예견한 대로.
놈들은 곧장 내 뒤를 쫓아왔는지 채 30초도 흐르기 전에 곳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더불어.
비상사태 시 어떻게 할지 대책을 다 세워 둔 듯.
우우우웅―!
우우웅―!!
[‘역풍의 뇌옥’이 발동합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일시적으로 하락합니다.]
[‘느림의 저주’가 발동됩니다.]
[‘순발력’이 3분간 10% 하락하며, ‘상태 이상 : 둔화’가 적용됩니다.]
[‘중력의 땅’이 발동됩니다.]
온갖 디버프가 날아들었다.
여덟 개? 아홉 개?
메시지가 하도 많이 출력돼서 몇 개인지도 셀 수 없다.
손 잘못 놀렸다가 본인들 마스터 생사에 문제가 생기면 어쩌려고 저러나 싶었으나, 저쪽도 머저리들은 아니었다.
파앗―
텁.
“……?!”
내가 고기 방패로 내세우려던 틈을 역이용해 ‘통나무’와 바꿔 가 버렸으니 말이다.
소환술? 이 경우에는 교체술이라고 해야 하나? 뭐가 됐든 정말 별의별 능력이 다 있었다.
“젠장!”
본래는 조금 더 방패로 갖고 다니다 적당한 타이밍에 산 채로 던져 버려서 성십자가 클랜이 내 쪽에 이목을 집중하지 못하도록 만들 계획이었는데.
그걸 못 써먹게 되다니.
이에 욕설이 나왔으나, 심정은 그리 흔들리지 않았다.
저들이 특별한 수를 썼듯이.
두근!
두근!
두근!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여기도 대단한 한 수가 준비되어 있었기에.
무려.
[「특성 : 불굴」의 발현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불굴’ 상태가 발현됩니다.]
[모든 저항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저항력의 상승으로 당신에게 적용된 온갖 해로운 것들이 일체 파훼됩니다.]
파앙!
2등급 개체를 잡아먹고 나서야 추출해 낼 수 있었던 ‘특성’이라는 최후의 갑옷이.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견고한 갑주를 착용한 나는 날 속박하려던 모든 금제를 깨부수고 하늘 높게 도약했다.
팔.
우우우우우웅―!!
[오르그의 파괴 본능]
“흐아아아아아!!”
나의 새로운 팔을 이식하기 위하여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발록의 언면에 주먹을 꽂았다.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