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 * *
“…….”
누군가의 시선이 와 닿는다.
수식어는 ‘강렬한’ 또는 ‘격렬한’.
내 얼굴이 뚫어져라 노려보는 눈빛이 너무나도 날카롭게 피부를 파고들어 왔다.
하지만.
그게 끝이다.
눈빛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누군가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놈… 성십자가 클랜의 마스터인 이 청년에겐 그러한 능력이 존재하질 않았다.
그렇다고 직접 손을 써 볼 수도 없었다.
움찔―
움찔―
안간힘을 다해 꿈틀거리고 있었으나, 아쉽게도 육체 또한 뇌의 의사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했다.
“커헉!”
후두둑―
놈의 상태가 매우 위중했으니까.
입가에서는 쉴 새 없이 핏물이 흘러내렸고, 안색은 시체처럼 창백했으며, 등허리는 굽은 채로 굳어 있었다.
산송장.
당장 목숨이 끊어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수준이었다.
왜?
배때기를 꿰뚫은 팔 때문에.
더 정확하게 서술하자면… ‘프레데터’의 ‘잘린 왼팔’이 살가죽을 찢고 척추마저 부숴 버려 전신에 마비가 온 탓이었다.
초인이었기에 망정이지.
일반인이었다면 즉사였을 부상으로 인하여 부르르 떠는 게 그가 보여 줄 수 있는 최선의 행위였다.
스으으으윽―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큽.”
이번엔 내 입에서 신음이 튀어나왔다.
5분지 1밖에 남지 않은 팔뚝의 단면이 불로 지진 것처럼 뜨거웠다.
불곰파에서 당한 고문과 ‘프레데터’로서 제2의 인생을 살며 괴물의 신체를 이식할 때마다 겪어야 했던 통증으로 고통을 참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었지만…….
팔 하나가 절단되는 중상만큼은 나로서도 감당키 버거웠다.
더군다나.
카가각―
카각―
“젠, 장…….”
절로 욕설이 튀어나오게 만드는, 왼쪽 가슴과 옆구리 사이 그 어딘가에 박혀 갈비뼈에 닿은 칼날도 통각을 증폭시키는 데 일조하는 중이었다.
정말이지 아슬아슬했다.
“겨우 살았나.”
딱 그랬다.
한 뼘만 더 깊게 들어왔어도 갈비뼈를 자르고 심장을 짓이겼을 테니까.
이걸 재수가 좋았다고 해야 하나.
물론.
마냥 운으로만 이뤄 낸 건 아니지.
‘마력 방패’로 한 번, ‘스랄레오의 골갑’으로 한 번, 거기에 90에 육박하는 ‘내구’로 한 번. 도합 세 겹의 방어막은 나의 신뢰를 배신하지 않고 정확하게 백색의 칼날로부터 나를 보호했다.
다시 말해.
철저한 계산으로 일궈 낸 승부였다. 예컨대 육참골단(肉斬骨斷)이랄까. 최후의 순간에 왼팔을 내주고 상대의 치명적인 급소를 취한다.
텁―
“흐읍.”
난 그런 상념을 하며 멀쩡한 오른손으로 칼날을 쥐고 호흡을 홱 들이켰다.
뭘 하는가.
카각―
카각―
검을 뽑고자 함이었다.
“끄으으읍……!!”
마취제는커녕 진통제도 없이 강제로 살을 찢는 자해에 정신이 아찔해졌지만, 어금니를 꽉 깨물고 살며시 빼내는 칼끝.
한계로 치닫는 아픔에 당장에라도 놓아 버리고 싶었으나 끊임없이 빼냈다.
“으으읍!!”
투둑―
툭―
적장을 잡았으나 한결같이 도망자 신분.
이후의 추격전을 고려했을 때 움직임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는 제거해야 했다. 도박수를 감행하며 이끌어 낸 승리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맞물린 치아가 으스러져라 힘을 주며 계속해서 칼날을 밀어냈고.
촤아아악!!
결국 버티지 못한 백색의 이빨이 내 가슴팍에서 떨어져 나갔다.
“큭……!”
나는 골을 울리는 아픔에 정신이 멍해지려는 걸 애써 부여잡으며 장포 끝자락을 길게 뜯어 붕대인 양 왼팔과 가슴께를 감쌌다.
소독은 고사하고 먼지가 진득하게 눌어붙은 천 조각이었으나 오염이니 뭐니 하는 건 의식하지 않았다.
출혈을 막는 게 우선이었다.
그 밖에 병균이 옮거나 하는 건.
뽕―
“크읍, 읍.”
꿀꺽―
[‘하급 체력 회복 물약’을 복용합니다.]
이 포션이 해결해 줄 터이니.
실상 청년을 죽이고 심장을 취하면 하급 포션보다 몇 배는 뛰어난 회복력을 얻겠지만.
‘아직은 안 돼.’
이놈은 아직 죽어선 안 된다.
내 구명줄이 되어 줘야 했으니까. 송주영이 하려던 역할을 이어받는 거다. 시체가 된다 해도 블러핑을 치며 사용할 작정이지만, 살아 있는 게 훨씬 효과가 좋은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뽕―
“뭐, 뭐…….”
“닥치고 마셔.”
그래서 아까운 포션까지 하나 먹였다.
이 귀한 걸 적에게 소모해야 한다니 헛웃음이 나왔지만, 숨을 붙여 둬야 하기에 눈을 질끈 감고 병을 비웠다.
후욱―
퍼석!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 복용시킨 뒤 공병을 던져 버린 나는 이내 놈의 몸뚱어리를 더듬어 갔다.
“무슨― 개 같은 짓을……!”
거친 남성의 우악스러운 손길이 훑고 다니니 놈이 기겁을 했으나 개의치 않고 주머니 안쪽으로 손가락을 쑤셨다.
도주할 때 도주하더라도 물건을 챙기는 게 순서였다.
이 모든 사달의 원인이 된.
투루루룩―
“찾았다.”
[축하합니다!]
[‘기적의 조각’을 습득했습니다.]
[현재 보유 중인 ‘기적의 조각’이 존재합니다.]
[융합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기적의 조각’을.
나는 허리춤에 묶어 둔 휴대용 주머니 안에 십수 개의 모조품과 뒤섞여 있던 ‘기적의 조각’을 꺼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누나와의 재회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는 사실이 웃고 싶지 않아도 웃게 만들었다.
그나마 위급한 상황이었기에 이 정도였지. 거점 내였다면 아마 몇 분이고 미친 듯이 웃어 젖혀 댔을 거다.
눈물 나도록 행복했기에.
이 실질적이고 물질적인 보상이 주어졌기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격통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딸깍―
[융합을 시도합니다.]
[약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현재 단계 : 1단계]
[융합에 필요한 시간 : 3분]
[남은 시간 : 2분 59초]
기쁜 마음으로 ‘예’를 누르자 엄지와 검지로 잡고 있던 ‘기적의 조각’에서 진동이 일더니 가루가 되어 내 허리춤으로 스며들어 간다.
융합의 과정.
이왕이면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으나, 그럴 여유는 없다.
53이 지나면 알아서 통보해 주겠지 하는 심정으로 메시지를 휘휘 저어 없애 버리자 빈 구간을 ‘특수 퀘스트 : 선택’에 대해 관련한 문장들이 채운다.
[축하합니다!]
[〈특수 퀘스트 : 선택〉을 완료했습니다.]
[당신에겐 세 개의 갈림길이 주어졌고, 당신은 그중 가장 어려운 길을 택해 성공하셨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낸 당신에게 합당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으로 모든 신체 능력이 5씩 상승합니다.]
[‘기적의 조각 : 2단계’에 「추가 옵션」이 부여됩니다.]
[〈특수 퀘스트 : 선택〉의 완료로 향후 50일간 동일 퀘스트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길다.
길지만 요약은 쉬웠다.
‘모든 능력치가 5씩 상승이라, 미쳤군.’
퀘스트 클리어에 총합 40이라는 스탯을 얻었다.
아이템에 추가 옵션이 붙는다니.
내가 갖고 있던 1단계만 해도 10%의 추가 능력치와 9%의 체력 및 마력 회복 속도 증가라는 버프를 주었는데…….
여기서 더 얼마나 좋아질는지 감히 예상도 안 간다.
‘3분.’
좋아.
3분만 버텨 보자. ‘기적의 조각’의 성능이 향상되면 더 수월하게 도망할 수 있으리라.
우득―
“크아악!!”
철그럭!
차차 쌓여 가는 희망에 고양감을 느끼며 놈의 양쪽 손목을 골고루 분질러 무장을 해제했다.
어차피 복부에 곧게 박힌 팔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물약을 몇 병이나 들이부은들 사지 마비를 벗어나진 못할 테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
콰직―
콰직―
“끄아아아악!!”
발목도 남김없이 뼈를 부숴 설령 척추가 회복된다 하더라도 당분간은 불구로 병상 신세를 면치 못하게끔 해 줄 무렵.
두두두두두두!!
멀리서 수많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다만.
사방을 옥죄어 오던 전과 달리 음량이 꽤나 작았다.
‘일부만 온 건가.’
아무래도 홀로 뛰쳐나간 수장의 뒤를 쫓아올 수 있는 병력이 먼저 도착한 모양이었다. 나머지는 순서대로 오게 될 테고.
나는 저들이 더 근접해 오기를 기다리다가.
“저깁니다!!”
선두의 목소리가 들릴 때쯤.
척!
가만히 청년의 목덜미를 붙잡고 내밀며 얘기했다.
“더 다가오면 이놈을 죽이겠다.”
그대로 멈춰 서라고.
음성은 별로 크지 않았으나 상관없었다. 태양이 버젓이 떠 있는 시간이므로 제 주인의 상태가 훤히 들여다보일 테니까.
더욱이.
꽈아아악!!
“끄아아아아아악!!”
당사자의 비명도 있었고.
“마, 마스터!!”
“마스터!!”
덕분에 의견이 잘 전달되었는지.
신나게 달려오던 이십여 명의 무리가 기겁하며 우뚝 제자리에 섰다. 하나같이 경악이 담긴 눈동자를 보이며.
거기에 대고 나는 친절하게 한 번 더 설명했다.
“더 다가오면 이놈 죽어. 개짓거리를 하려고만 해도 죽어. 시험해 봐도 좋아. 적어도 나 혼자 가진 않을 테니.”
시체를 마주하기 싫다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좋다고.
몇몇이 내 제안을 거부하고 창칼을 꼬나쥐며 달려들 기세를 보였으나.
“이런 개새―”
후우우욱!
퍽!
콰직!
“끄아아악! 끄아아아악!!”
“……!”
발등 뼈를 박살 내는 것으로 본보기를 보여 주었더니 전장이 금세 숨소리 하나 돌지 않는 고요함으로 물들었다.
사람들은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혹여라도 본인의 잘못으로 받들어 모셔야 할 분이 죽어 버리는 건 아닌지 두려운 듯했다.
됐다.
바라던 분위기가 잡히자 나는 짜 놓은 대사를 읊었다.
“날 잡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이놈을 죽이고 싶지 않으면 그대로 있길 바란다. 그럼 적당히 내려놓고 가 주지.”
대단한 연설이라기보단 협상이었다.
살리고 싶으면 움직이지 마라.
“우리가―”
“믿기 싫으면 믿지 않아도 좋아. 그러나 될 수 있으면 믿는 게 좋을 거다. 이놈을 살리고 싶다면.”
“…….”
질문이나 반문은 일절 받지 않았다.
“그 정도 되는 무리라면 서로 소통할 수단이야 넘치게 많겠지. 송주영, 저놈에게 통신 장비를 넘겨. 혹은 통신병 1인을 붙여. 저놈이 증인이 되어 줄 거다. 이곳 사정은 내가 따로 확인하지.”
협상은 기세라고 배웠다.
글로 배운 탓에 이게 적합한 협상법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창구를 닫아 버렸다.
둘 중 하나만을 고르라 강요하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죽이거나, 의심이 가든 미심쩍든 살릴 기회를 붙잡거나. 물론 저들은 후자를 고를 수밖에 없다.
“…좋아.”
“부마스터!”
“선아야!”
“어쩔 수 없어! 우선 마스터를 살려야지!”
“하지만…….”
“됐어. 의견은 받지 않겠어. 이건 부마스터로서의 권한 행사야. 송주영 조장!”
“예, 옛!”
‘역시.’
상급자.
그것도 본인들이 모시는 주인의 목숨을 걸 깜냥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건 무전기입니다. 가져가서 계속 무전하세요.”
“옛!”
“그리고 정아야.”
“정령 붙일까요?”
“부탁해.”
성십자가 클랜은 저항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였음을 인정하고 내가 정해 둔 배역대로 움직였다.
그 시나리오에 신지유와 같은 ‘정령사’가 끼어 있다는 건 약간 놀랄 포인트였지만.
아무튼.
‘일단 한고비는 넘겼다.’
한숨을 내쉴 만한 반응에 내심 안도하며 서서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점차 멀어져 가는 내 뒤로 무전기를 챙기고서 허둥지둥 따라붙는 송주영과 희끄무레한 기운.
곧.
세상엔 세 명의 인간과 하나의 정령만이 존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