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쌍수 증량의 폭력.”
무의식적으로 던전의 이름을 되뇌며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봤다.
좀 더 정확하게는.
“크라라라라라!!”
“크라라라라!!”
“둘, 셋, 넷, 다섯. 적당하네.”
영역의 경계선을 밟자마자 환영식을 벌이려 달려오는 다섯 마리의 포타우스를 쳐다보았다.
등급은 아쉽게도 전원 1등급.
팔이 한 쌍뿐이었다.
“저걸 부수라 이건가.”
나는 양팔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다가오는 포타우스들을 맞이하며 산책하듯 발을 뻗었다.
탁―
타닷―
쭉 내디딘 발끝에 바스락하고 풀잎이 꺾이며 하나둘 새겨지는 족적.
“크라라라라라!!”
빠르게 줄어드는 간격 속 드디어 맞닥뜨린 최선두권의 포타우스가 흡사 해머를 연상케 하는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주먹을 내지른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드는 권격에 나는 피하거나 방어하는 대신.
후우우우욱―
콰앙!
기꺼이 주먹을 맞대 주었다.
콰드드득!!
서로의 살과 살이 부딪치며 울려 퍼진 뼈 부러지는 소리.
당연히 박살 난 쪽은 포타우스였다.
“크아아아아아악!!”
압도적인 근력의 갭을 버티지 못하고 안쪽에서부터 으스러진 수십 개의 뼛조각이 피부를 뚫고 나와 걸레 짝이 되어 버린 팔.
얼마나 흉측하게 찢겨 나갔는지 기세 좋게 뒤따라오던 놈들이 기겁해 몸을 움찔하며 멈칫거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텁―
난 망가진 신체에 피눈물을 흘리는 녀석을 꽉 잡아 놓고서 반대쪽을 강제로 뜯어 냈다.
우득!
촤아아아악!!
어깻죽지가 가죽에서 떨어져 나오며 분수처럼 솟구치는 핏줄기.
인간과 다르게 진청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푸른 선혈이 뜨거운 김을 모락모락 분출하며 바닥의 눈을 녹인다.
쿵!
“크에엑, 켁…….”
그 위로 쓰러지는 포타우스.
불구가 되어 신음하는 녀석은 더 건드리지 않아도 몇 분 내에 죽을 것 같아 무시하고 다른 놈들을 찾아 내리그었다.
서걱!
육체의 내구력이 얼마나 될까 싶어 가한 검격은 새로운 먹잇감의 몸뚱어리를 너무나도 쉽게 잘라 냈다.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기에 썩 괜찮을 줄 알았건만.
‘이만하면 신지운도 충분히 자를 수 있겠어.’
후우우욱―
콰직!
“크아아악!”
찌르기에도 약하고.
툭―
퍼억!
손바닥으로 가슴을 살짝 밀고서 주먹으로 두들겨 보니, 타격기에도 이렇다 할 반탄력이 느껴지질 않는다.
“완전히―”
콰직!
“크엑!!”
“공격력에 집중된 타입인가.”
까다롭게 됐다.
실력 격차가 심하지 않은 이상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공격 일변도형은 자칫 승리하고도 치명상을 입거나 죽음에 이르는 양패구상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에.
특히 신지운처럼 방패술에 미숙한 이라면 더더욱.
하여.
“어찌해야―”
“크라라라라!!”
후우우욱―
후욱―
“좋으려나.”
조금 걱정이 된다만.
방어에 특화된 기술 ‘철혈의 술’을 익힌 곽재우가 있으니 그 사안에 대해서는 알아서들 채워 나가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칠 즈음.
“크라라라라!!”
우우우웅!!
포타우스의 손에 마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어떤 기술을 사용하는지 알아보고자 일부러 회피만을 거듭하며 질질 시간을 끌길 3분여, 마침내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놈이 최후의 한 수를 꺼내 주었다.
1등급 포타우스의 전용 기술은.
“크라라라라!!”
후우우욱!
슈욱!
슈우우욱!
후욱!
일종의 연격(連擊)이었다.
마치 내가 ‘오르그의 파괴 본능’을 형태 변환시켜 권갑으로 바꾼 후 팔에 두르고 지속적으로 쳐 내는 형식이랄까.
다만 차이가 있다면.
후우욱―
후욱―
후우우우우욱!!
화아아아악!
‘여덟 번, 이 지나면 자동으로 풀린다.’
마력이 거덜 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이용할 수 있는 나와 달리 포타우스는 상대가 직격당하든 아니든 상관없이 팔타(八打)가 지나면 기술이 자동으로 해제된다는 점.
그게 약간 미스이기는 하나.
살갗을 스쳐 지나가는 기운을 보았을 때 위력은 괜찮았다. 과거의 나와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을 만큼.
“곽재우의 방어도 뚫을 수 있을지 실험해 봐야겠네.”
스랄레오의 돌진도 거뜬히 막는 편이니 1등급 포타우스와의 공방 대결은 마땅히 이길 테고, 내가 궁금한 건 2등급 개체가 발하는 연타도 버텨 낼 수 있는가였다.
주변의 혈액을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방어력이 향상되는 ‘철혈의 술’의 특성상.
전투가 한창일 상황에서는 무난하게 커버할 거라 여겨지지만, 매번 완벽한 환경일 수는 없는 법이기에 기회가 되면 맨땅인 상태에서부터 검증을 해 봐야겠다.
후우우욱!
콰직!
“추출.”
[‘추출’ 가능한 대상이 확인되었습니다.]
[대상 : 포타우스 5개체]
[추출을 시작합니다.]
원하는 정보를 모두 빼낸 뒤 깔끔하게 처리를 마친 나는 ‘추출 작업’에 의해 말라 비틀어진 시체들을 저 멀리 던져 버리고는 던전 안쪽으로 이동했다.
기왕 온 김에 두 쌍의 팔을 지닌 2등급 포타우스도 만나 보려고.
더불어.
탁―
“열매라.”
이 던전 내부에 자라난 나무에 달린 보라색 열매를 수확하고자. 사실 딴 것보다 이 과일의 정체를 가장 알아내고 싶었다.
왜?
근래 들어 외계 생명체도 식량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알게 되며 그 이후로 이러한 고민을 해 왔기 때문이었다.
‘침략군을 대상으로 고기를 구할 수 있다면, 농작물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골갑의 초원’이나 이곳 ‘쌍수 증량의 폭력’처럼 던전이 생성되며 공간 일부가 외계 생명체들의 고향 행성같이 변해 버린 곳들에 손만 내밀면 채취 가능한 작물들이 널려 있었으니까.
단지 이제까지는 풀과 꽃, 나무 등 평생 채식을 다짐한 비건이라도 입에 가져가기 껄끄러운 것들만 넘쳐났기에 상상에 그쳤다.
허나.
“이러면 말이 다르지.”
열매다, 열매.
어지간하면 먹어도 되는, 머릿속의 이론을 시험해 보기 딱 좋은 재료가 여기 있었다.
그래서.
툭―
과감하게 꼭지를 땄다.
종류에 따라서 꼭지를 자르지 말아야 하는 과일도 있고, 또 꼭지를 완전히 제거해야 하는 과일도 있지만… 그런 건 모르니 넘어가고.
“흐음.”
나는 반들반들한 보라색 열매를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손톱으로 잘라 낸 과육 일부를 팔뚝에 슬그머니 비비려 했다.
팔뚝 안쪽이나 허벅지 안쪽은 여타 신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약한 부위라.
이런 식으로 야생에서 구한 과일을 직접 먹어 보기 전에 먼저 문질러서 자신에게 알레르기 반응이 있진 않은지 살펴볼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굳이 위와 같은 검사를 시행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렌티아 열매]
“…아.”
이처럼.
‘아이템 정보’가 출력되었으니 말이다.
《렌티아 열매》
- 등급 : 일반
- 분류 : 소모품
- 설명 : 행성 ‘노타투스(Notatus)’의 수많은 과일 중 하나. 태양 빛이 가장 강하게 내리쬐는 계절에 꽃이 떨어지고 열매가 자라나며, 신기하게도 자주 복용하면 ‘근력’이 향상되는 효능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힘을 중시하는 「포타우스」 종(種)의 서식처 근처에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 옵션 : 복용 시 8% 확률로 ‘근력’ 1 상승(최대 10회)
“…미친.”
설명을 쭉 읽고 나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이 또한 아이템이라는 점에 한 번, 또 확률성이기는 해도 아무런 대가 없이 능력치를 상승시킬 수 있다는 점에 두 번.
끝으로.
꿀꺽―
“드라이어드.”
내 곁에 이 열매를 무한으로 증식시켜 줄 특급 농부가 함께한다는 점에 연달아 세 번을 놀라서.
그야말로 ‘잭팟(Jackpot)’이었다.
비록 무한 증식이 된다 해도 근력은 10밖에 올리지 못한다지만, 남은 건 팔면 그만 아닌가.
일반 등급에 비교적 가격대가 낮은 소모품이라는 걸 참작하더라도 개당 1등급 근원석 네댓 개는 받을 거다.
많으면 열 개까지 갈 수도 있지.
뭐가 됐든.
무제한적인 자금줄이 생긴단 의미다.
“그런 이용법은 시스템적으로 제한해 두었을지 모르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지.”
되면 좋고, 아니면 먹으면 되니까.
‘소모품’ 딱지가 붙은 이상 먹어서 탈 날 일은 없는 데다가.
아삭―
“음.”
다행히 잘 익은 대추인 양 맛도 몹시 근사해 나는 여러모로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 * *
“크에에엑, 크엑…….”
두 쌍의 팔이 기형적인 방향으로 꺾여 숨을 헐떡이는 2등급 포타우스.
“십육 연타에 마력탄이라.”
나는 그 앞에서 자료를 정리하며 놈의 가슴팍에 손톱을 푹 찔렀다. 나름 상위 개체라고 제법 단단해졌으나 여전히 부드럽게 찢겨 나가는 괴물의 피륙.
“이 정도면―”
서걱!
“크라라라라!!”
후우우욱!”
쾅!
“한세정은 어렵지 않게 사냥하겠어.”
날 어찌해 보려 안간힘을 쓰는 서너 마리의 1등급 포타우스들의 공세를 가볍게 피하며 조서에 마침표를 찍은 나는 더 파헤칠 부분이 없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기습적으로 무릎을 굽혀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탁!
[베어 내기]
후우우욱!!
오른발을 축으로 삼아 회전하며 360도로 베어 넘겼다.
서거거걱!
촤아아아악!!
단숨에 그려 나간 원에 걸려 무참히 잘려 나가는 네 쌍의 발목.
인간형 괴물답게 두 다리로 우뚝 서 있던 놈들이 비명을 지르며 균형을 잃고 무너져 내린다.
그것들을 깔끔히 처리하고는.
“…가자.”
잠시 주위를 응시하다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더 달려드는 놈도 없고.
2등급 근원석 하나에 1등급 아홉 개, 추가로 예정에 없던 렌티아 열매를 세 개나 챙겼으니 탐사는 이만하면 됐다고 여겨 슬슬 집에 돌아가려던 찰나였다.
- 끼요오오오오오!!
“……?”
갓 던전을 벗어나던 내 귓가로 어느 생물의 날카로운 고음이 들렸다.
위치는.
스윽―
‘하늘?’
창공.
새하얀 구름 아래에 땅에서 봐도 그 크기가 엄청나게 클 것으로 짐작되는 새가 날개를 고정한 채로 고고하게 활공 중이었다.
아무래도 새 형상의 괴물인 것 같았다.
인간형에서 벌레형까지 온갖 종류의 괴물들이 난립하고 있는 세상이니 저런 게 있다고 신기한 일은 아니다.
고로 생물적 감상보단.
“조류라……. 이식할 수 있다면 앞으로 시력 문제는 없겠어.”
저것을 이식했을 시의 변화가 어떠할는지가 더 관심이 갔다.
안타깝게도 저 괴물이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을 기색이라 꿈에서 그쳐야겠지만, 여하튼 마음에 드는 녀석을 발견했으니 나중에라도 인근에 둥지가 있을지 수색해 봐야겠단 기약을 하며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
이번에도 출발에 제동이 걸렸다.
어느새 모습을 감춘 새와의 추후 만남을 고대하던 차에.
두두두두두두!
미약했으나 삽시간에 지진이 일듯 거세진 ‘발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전(前).
두두두두―!
후(後).
두두두두―!
좌(左).
두두두두―!
우(右).
두두두두―!
전방위에서 일제히.
‘…뭐지?’
그 기묘한 음파에 내 눈에 의문이 감돌았다.
물론.
멍청하게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감각이 요란하게 경종을 울린 직후부터 한쪽으로 달렸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포위망이 완성되도록 놔둔다는 건 자살 행위에 불과했으니까.
뭘 하려거든.
일단은 그물에서 빠져나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