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 * *
다음 날 점심.
과하지 않게 배를 채우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며 오늘 자 인스턴스 던전 입장을 준비하는 일행들.
그리고 그 옆에는.
“지운아, 진짜 할 수 있겠어?”
“후, 할 수 있어.”
애써 긴장감을 풀어 보려는 신지유와 신지운 남매도 있었다. 내 엄포로 인하여 둘도 금일부로 사냥에 투입됐기 때문이었다.
‘우리와 함께하기로 한 이상, 내일부터는 사냥을 나간다. 나이가 어리다고는 하지만, 빼 줄 생각은 없어. 다시는 조철영 같은 놈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힘이 있어야 하니까.’
나이는 방패가 아니다.
작금의 세상은 어리다고 해서, 내지는 늙었다고 해서 우대해 주지 않는다.
오직 힘.
가진 능력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는 법.
그러니.
신지유와 신지운도 낭떠러지 비탈길 같은 전장에 몸을 던져야만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가 많이 도와줄 테니까.”
“네……!”
“지유는 이미 고유 능력을 개방했으니까, 지운이가 능력을 개방하는 동안 옆에서 한계를 좀 시험해 봤으면 하는데, 괜찮을까?”
“한계요?”
“드라이어드, 라고 했지? 그 정령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공격력과 방어력은 어떤지, 뭐 그런 것 좀 확인해 보려고.”
“아! 네, 최선을 다해 볼게요.”
“그래 주면 고맙고. 그럼 가 볼까?”
“네!”
“네!”
한세정이 나서서 잔뜩 경직된 남매를 살살 달래 주며 쫙 벌어진 던전 통로로 발을 내민다.
뒤이어 각자의 세트 장비를 전부 착용한 조이령과 곽재우.
“가자.”
“…응! 누나.”
끝으로 활을 쥐고 등과 허리춤에 화살통을 매단 신지유와 왼손에는 라운드 쉴드, 오른손에는 1m 길이의 칼을 쥔 신지운이 입구를 넘어 전장으로 향한다.
조철영과 개자식들의 무기를 회수해 판매했음에도 근원석이 약간 부족해 갑옷까지 완벽하게 세팅하진 못했지만.
[신지유 : 주무기―정령 / 보조 무기―활(일반) / 추가 기술―하위 정령 마법]
《기술 : 하위 정령 마법》
- 등급 : 사본(寫本)
- 단계 : 1/3
- 설명 : 어느 차원에 이름 모를 기인이 창안한 마법(魔法)의 한 갈래. 습득 시 「정령」과의 교감 능력, 친화력 등이 소폭 성장하며 현재 계약 중인 「정령」과 관련된 지식을 전이받는다.
*특이 사항 : 「정령」과 계약한 상태에서만 습득 가능
[신지운 : 주무기―검(일반) / 보조 무기―방패(일반)―아드유로 용병단 기본 검방술]
《기술 : 아드유로 용병단 기본 검방술》
- 등급 : 사본(寫本)
- 단계 : 1/3
- 설명 : 행성 ‘플루파(Flrupa)’의 대륙 라드아를 떠도는 용병단 ‘아드유로’에 가입한 뜨내기 용병들이 배우는 기본기 중 하나. 공격과 방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 잘 배운 용병들의 생존율은 제법 높다.
이렇듯.
심사숙고해서 각자 자신이 필요한 무기와 기술을 우선적으로 구매한 터라 한세정들의 리드만 잘 따른다면 무리 없이 성장할 수 있을 거라 여겨졌다.
인생이란 게 늘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지라 남은 돈을 탈탈 털어서 산 포션 두 명을 챙겨 줬고.
“뭐가 뜰지만 알아보고 나가면 되겠어.”
[〈인스턴스 던전 : 골갑의 초원〉에 입장합니다.]
[복귀를 원할 경우 ‘퇴장’ 주문을 외워 주십시오.]
[퇴장 시 다음 입장은 ‘퇴장 지점’에서부터 재시작됩니다.]
[‘칭호 : 점령하는 자’가 발동합니다.]
[현재 〈인스턴스 던전 : 골갑의 초원〉에 존재하는 적의 숫자가 표시됩니다.]
신지운의 ‘고유 능력’을 확인하고자 쫓아 들어온 던전.
눈앞에 나타나는 몇 개의 메시지를 휘휘 저어 없애며 한세정과 같이 자리를 옮기는 신지유를 힐끔 바라보다가 조이령, 곽재우 조의 뒤에 붙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응, 수고해 줘, 재우 씨.”
“형, 조심하세요!”
“걱정 마라.”
적당한 장소에 서서 팔짱을 끼고 구경하는 사이 몇 마디 말을 남기고 훌쩍 떠났던 곽재우가 스랄레오 한 마리를 끼고 돌아왔다.
언제나처럼 꾸이이익 하고 울부짖으며 달려오는 스랄레오.
“흡!”
“별거 아니야.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돼. 심호흡하자, 심호흡.”
“쓰읍, 후우우, 쓰읍, 후우우…….”
그 실체를 직면하자 급속도로 굳어 가는 신지운.
조이령은 이전 날의 자신이 오버랩되는 듯 어깨를 토닥이며 힘을 실어 주려 노력했다.
실상 대담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녀는 첫 괴물 사냥에서도, 더욱이 인간을 상대로 한 전투에서도 별다른 긴장 없이 잘해 냈지만 말이다.
여하튼.
“후, 아자, 아자.”
신지운의 자신감을 북돋아 주기에는 충분했는지.
소년은 힘차게 기합을 내지르며 제 무기를 틀어쥐고 당당히 섰다.
서걱!
촤아아아악!!
“꾸이이이이익!!”
쿵!
그때쯤 곽재우에 의해 다리 근육이 끊긴 스랄레오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놈은 온몸에서 핏물이 줄줄 흐르는데도 발악을 멈추지 않고, 되레 근접해 오는 신지운에게 괴성을 질러 댔다.
특성 ‘불굴’.
스랄레오 종족이 갖는 특유의 성질이 발현된 것 같았다. 추출은 2등급부터 가능하다지만, 그 그릇 자체는 혈통 전체에 각인되어 있을 테니까.
좋은 상황이었다.
“꾸이이이이이익!!”
“……!”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숨이 끊어지기 직전임에도 끊임없이 적의와 살기를 쏟아 내 준 덕에 신지운의 정신적인 면이 단단해질 계기가 마련됐기에.
그러니 여기서가 관건이다.
저 기세를 버텨 내며 칼을 찔러 넣을 수 있느냐, 살생의 충격을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느냐.
이 두 가지 관문을 통과해야 앞으로도 꿋꿋이 승리할 수 있다.
물론.
‘잘해 내겠지.’
개인적으로 나는 신지운이 훌륭히 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누나를 지키고 싶으면 이 악물고 강해져야 할 거다.’
‘……!’
소년의 각오를 세워 줄 주문을 외워 두었으니까.
참고로.
‘동생을 지키고 싶다면 죽도록 노력해야 할 거다.’
해당 마법의 주문은 신지유에게도 걸어 두었으니, 소년과 소녀 누구도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콰직!
“꾸이이이이이익!!”
지금처럼.
“아!”
“잘했어. 지운아!”
【 설계된 운명 】
[〈인스턴스 던전 : 골갑의 초원〉에서 퇴장합니다.]
탁.
할 일을 마치고 돌아온 거점.
나는 풀잎이 사라진 딱딱한 바닥을 디디며.
“…허.”
다시금 ‘헛웃음’을 터트렸다.
방금 막 새로 각성한 신지운의 ‘고유 능력’이 너무 당황스러울 정도로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무려.
“…한세정급이 튀어나왔군.”
내심 사기라고 여겼던 ‘단거리 공간 이동’급에 비견될 만했으니까.
‘…라고?’
‘‘미래 예지’라고…….’
‘…….’
《고유 능력 : 미래 예지》
- 설명 : 수많은 기운 중 단연 특이하기로는 제일을 다투는 「신기(神氣)」.
누군가는 위대한 신(神)의 편린이라 부르고, 또 누군가는 잡스러운 망령(亡靈)의 찌꺼기라 칭하는 그 신묘한 힘과 ‘투쟁’이라는 상황적 특성이 합쳐져 각성한 능력. 자신에게 위해를 끼치는 공격이 가해지는 ‘3초’ 후의 「미래」를 엿본다.
“미래 예지라니.”
예지몽(豫知夢)으로 연결된 인연.
시스템은 그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던 걸까. 신지유처럼 정령과 계약하거나 그 비스무리한 걸 얻으리라 예측하고 있었거늘.
다만.
면밀히 따져 보면 무턱대고 반길 능력은 아니다.
마력이라는 전제 조건만 충족하면 원하는 시점에 마음껏 발현할 수 있는 한세정과 달리, 신지운의 미래 예지는 ‘공격’을 받아야만 발동한다.
평상시에는 무의미하다는 뜻.
게다가.
‘어, 어…….’
‘왜 그래, 지운아?’
‘가, 갑자기 신기루 같은 게 보여서…….’
예지 방식도 상당히 난잡했다.
시험 삼아 조이령이 찌르기를 가하자, 그 행위가 환영이 되어 시야를 절반가량 덮어 버린 것.
즉.
전장에서 제대로 써먹으려면 신지운으로서는 동시에 존재하는 ‘3초 후의 환영’과 ‘3초 전의 실체’의 움직임을 따로따로 분리해서 읽고 대응해야 하는 미친 난이도를 뚫어야 했다.
실로 뇌에 과부하 걸리기 딱 좋은 능력이었다.
“결국엔 적응해야겠지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하지 않던가. 온/오프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어떻게든 적응할 수밖에.
끼이이익―
난 그리 중얼거리며 거리로 나와 조철영 무리와 마주쳤던 곳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놈들과 마주하며 미뤄 두었던 새 사냥터 탐색을 다시 수행하고자.
그 언저리에서 하마 인간이 돌아다녔으니, 필시 거기서부터 손을 대 보면 금방 찾지 않을까 싶었다.
굳이 오후에 나온 것도 그래서였다.
제아무리 초인이라고 해도 밤보다는 낮에 더 넓고 멀리 볼 수 있으니까.
‘이쯤이었는데.’
하루밖에 지나지 않아 생생한 기억에 의존하며 거슬러 올라가는 길.
“크라라라라!!”
“크라라!!”
목표 지점에 다다르자 멀리서 하마 인간 특유의 하울링이 연거푸 들려왔다.
조철영 무리와 밤에 마주쳤기에 야행성일 경우도 가정해 두었으나, 가까워질수록 하울링의 음량이 점점 거세지는 게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했다.
쿵!
쿵!
쿵!
“크라라라라!!”
“크라라라!”
실제로도 도착하고 나서 목격한 괴물들은 무척이나 활기찼고.
‘여기도 쫙 다 바뀌었군.’
스윽―
범위와 규모를 편히 체크하려 근처 적당한 높이의 건물 옥상에 오른 나는 난간에 기대 지상을 내려다보며 연신 감탄사를 남발했다.
드넓게 펼쳐진 도심 속에.
쏴아아아아아아―
푸르른 강줄기를 기준으로 한 폭의 그림 같은 울창한 숲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며칠 새 내린 눈이 쌓이고 녹기를 반복하며 청록빛과 새하얀색이 묘하게 어우러진.
그 안에서 하마 인간들은 대체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범위는 대략 300m 되려나.”
눈대중으로 던전의 크기를 가늠해 본 나는 마지막으로 삐죽삐죽 자란 나무에 보라색 열매가 달려 있다는 것까지 머리에 저장한 후 지상으로 내려와 던전으로 향했다.
규모 등은 얼추 봤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부딪쳐 보며 전투 데이터도 쌓고, 또 던전의 핵심인 ‘던전 전용 퀘스트’ 정보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축하합니다!]
[〈던전 : 쌍수 증량의 폭력〉에 입장하셨습니다.]
《던전 : 쌍수 증량의 폭력》
- 이곳은 행성 ‘노타투스(Notatus)’의 지배종 「포타우스」의 영역입니다. 강함을 곧 ‘팔의 개수’로 증명하는 이들은 태어날 적부터 강인한 완력을 자랑하는 생물입니다. 따라서 그 팔에 치이지 않기를 주의하십시오. 바위도 깨부수는 그 완력에 당한다면 방어도 반격도 불가능할 터이니.
└던전 입장 시 ‘던전 전용 퀘스트’가 자동 진행됩니다.
└던전 전용 퀘스트 : 긍지를 무너뜨려라
《던전 전용 퀘스트 : 긍지를 무너뜨려라》
- 이 퀘스트는 오로지 ‘던전 : 쌍수 증량의 폭력’에서만 진행 가능하며, 그야말로 폭력적이라는 표현이 아주 잘 어울리는 「포타우스」 종(種)의 특징을 가져와 설계되었습니다.
저들은 자신의 ‘무기’이자 ‘증명의 도구’인 팔을 광적으로 숭배합니다. 그러니, 그 긍지를 무너뜨려 보십시오. 저들의 긍지를 꺾는다는 건, 반대로 당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최고의 발판이 될 테니까.
└현재 파괴한 팔 : (0/~)
└상위 등급 「포타우스」의 팔 파괴 시 해당 등급의 ‘x1.5’만큼 추가 적용
└단, 소수점은 보상 선정에서 제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