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 * *
“으아으으…….”
그래도 꼴에 한 집단의 리더라는 건가.
경황 중에 직격당했음에도 어찌어찌 살아남아 신음을 토해 내는 조철영.
입술이 죄 터지고 턱뼈가 부서져 덜렁거리는 게 제때 치료받지 못한다면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긴 힘들어 보이긴 하다만, 어쨌든 목숨을 건진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놈이 신지유에게 했던 것처럼 턱을 쥐고 눈높이를 맞췄다.
우득!
“아으으으!!”
일부러 우악스럽게 머리를 쳐들자 박살 난 뼛조각이 살을 파고 들어가 신경을 찌르기라도 하는 듯 조철영이 팔을 허우적거리며 몸부림을 친다.
아무래도.
후우우욱!
짜악!
정신을 좀 차리도록 도와줘야 할 것 같았다.
“케엑, 켁…….”
후두둑!
투둑―
툭―
사리 분별을 할 수 있게끔 뺨을 후려치자 그 여파로 뿌리째 뽑혀 쏟아지는 치아.
턱 끝을 더 세워 올려 타액과 섞여 흐르는 핏물을 피하던 그때, 오른편에서 날카로운 고성이 들렸다.
“왜… 왜 그러시는 거예요!!”
30대 여성.
이름은 모르나 얼굴은 안다. 조금 전 조철영이 신지운에게 강간당할 뻔했다며 가리켰던 여자라.
“대체 왜!”
물음표에 느낌표까지 찍어 소리친 그녀는 내가 조철영을 두들겨 팬 게 억울한 듯했다.
이런 걸 보고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하던가.
가만히 여자와 시선을 부딪치던 나는 꽉 쥐고 있던 조철영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며 허공에 팔을 뻗었다.
그 동작에 움찔하는 여자와 사람들을 무시하고 바닥으로 손을 내리자.
촤르르르르륵―
그 신호에 맞춰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무언가.
지상을 환히 비추는 달빛을 머금고 피어난 그것은, 중앙에 거무튀튀한 열매를 품은 녹갈색이 아름다운 그루의 ‘묘목’이었다.
스르르륵―
작지만 단단하게 성장한 어린나무는 놀랍게도 스스로 줄기를 꿈틀거리며 월광(月光)에 휘감겨 도드라진 그 과실을 높게 들어 올리며 아랫단을 꾹 눌렀는데.
삑―
치지지지지직―
“이러면 설명이 됐나?”
- 이러면 설명이 됐나?
하나였던 내 목소리가 둘로 나뉜 것도 그즈음이었다.
내 오른손과.
묘목의 중심부에 매달려 있던 두 개의 ‘무전기’에 의해서. 그 장면을 보여 준 순간 조철영이 두들겨 맞은 당위성을 설명하는 건 끝이었다.
모두가 깨달았기에.
이곳이 악마들의 소굴이었다는 진실이 까발려졌음을.
* * *
“이러면 설명이 됐나?”
- 이러면 설명이 됐나?
‘…대단해.”
신지유는 악마들로부터 제 앞을 가로막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남자의 등을 바라보며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저 남자가 진심으로 대단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스물에 달하는 인원을 홀로 압도하는 기세와 무력으로 흥했던 조철영을 단숨에 때려눕히는 힘.
그런 것도 분명 뛰어난 가점 항목이지만.
다 차치하고서 신지유의 심장을 격동시키는 본질은 난해한 사건을 타개하기 위해 실행한 임기응변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난데없이 밖으로 끌려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저 남자가 이토록 대단한 사람일 줄은 몰랐다.
솔직히.
‘아, 아저씨?!’
‘형……?’
그 당시만 해도 입만 산 허풍쟁이로만 알았다.
당연했다.
도와주겠다 공언한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자신과 동생을 조철영에게 넘겨주려 했으니 말이다.
그랬는데.
‘그 짧은 순간에 계획을 세우고 있었을 줄이야…….’
저 남자는 그저 그런 머저리가 아니었다.
‘가면서 듣기만 해라.’
‘그게 무―’
‘나는 확신이 필요해. 너희를 구해야 할 확신. 그걸 위해 지금부터 무전기를 넘겨줄 거다. 정령을 시켜서 가져가라.’
그는 단지 명확히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누가 옳고 그른지.
‘밤이라 어두운 데다가 특별한 능력이 없으면 보는 것조차 불가능한 정령이라면 운반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대강 10m 정도 떨어져서 따라오게 하다가 조철영이 주절거리는 타이밍에 맞춰서 켜게 해라. 소리만 들리면 되니까.’
나와 동생이 조철영에게 인계되는 동안 설명을 마쳐야 하는 탓에 다소 불친절했으나, 당신의 심정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눈치 하나는 누구보다 빨랐으니까.
지옥의 구렁텅이 속에서 어떻게든 동생을 덜 고통스럽게 만들어 주려 매일같이 조철영을 비롯한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던 경험을 통해.
인생사 새옹지마라던가.
설마 그 노력의 성과가 이렇게 쓰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만, 덕분에 몇 마디에 불과했던 남자의 말에 내포된 의미를 완벽히 파악할 수 있었다.
하여.
‘동의한다면 검지만 까딱여라.’
지체 없이 응답했다.
꿈틀―
당신의 생각에 동의하겠다고.
그러고는 가면을 썼다.
이 또한 쉬웠다.
눈칫밥만큼이나 철저히 단련했던 게 했던 게 연기였다. 이 악물고 독기를 품으면 저들을 속이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다.
계획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동생의 팔뚝에 상처가 생긴 건 영혼이 찢어질 정도로 아팠으나, 꾹 참았다.
참아야만 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기회를 거머쥐어야 하기에, 흔들릴지언정 꿋꿋하게 연기해 냈다.
그 인고 끝에.
‘확인했다.’
‘세상엔.’
‘개새끼가 많아도 너무 많아.’
콰직!
저 남자의 믿음을 이끌어 냈으니까.
나와 동생의 전신을 옭아매던 어둡고 음침한 그림자를 걷어 내 줄 태양을 맞이했기에 쓰리더라도 웃을 수 있었다.
* * *
“잠시 쉬고 있어라.”
끄덕―
대답 없이 주억거리는 신지유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조이령을 불렀다.
그녀에게 신지운의 팔뚝에 생긴 상처를 치료해 주라며 포션과 구급 약품의 사용을 허가하고 가볍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이제부터는.
단죄의 시간이었다.
내가 경찰이나 검찰도 아니고, 타인에게 벌을 줄 권리는 없지만… 그런 거 좀 없어도 된다.
어차피.
“개새끼 열아홉.”
이 자리에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돌진]
쿠우웅!
한 발을 내딛는다.
경쾌하게 뻗은 발이 지면을 박찬 직후 나타나는 누군가의 안면이 선명해질 무렵.
[베어 내기]
후우욱―
서걱!
매섭게 휘둘러진 왼손이 전방을 길게 베어 넘긴다. 삽시간에 가해진 공격에 이렇다 할 대응 한 번 하지 못하고 잘려 나가는 첫 번째 표적.
촤아아아아악!!
뒤늦게 뿜어져 나오는 핏물이 사방을 적시는 사이.
나는 새로운 표적 앞에서 주먹을 뻗고 있었다.
조철영을 따르던 이들이 대응을 시작한 건 열여덟이던 마릿수가 열셋으로 줄어든 다음이었다.
“마, 막아!!”
“공격해!!”
속수무책으로 당한 다섯이 주검이 되어 건물 내부를 나뒹굴고 나서야 무기를 들고 뭉친 이들의 기세는 형편없었다.
평소처럼 전위를 든든하게 맡아 줄 방패 병력이.
“바, 방패!”
“선두 어딨어!!”
“방패 어디 갔어!!”
아무도 나타나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여기.
[오르그의 파괴 본능]
[형태 변화]
[마력 권갑화]
후우우우욱―
쾅!
“……!”
후두두둑―
방금 막 폭발에 휘말려 박살이 난 남자가 여섯 방패 수의 최후 생존자였으니까.
“아, 아아…….”
“석두가, 석두가……!”
“우, 우리 이제 어떡해…….”
상체가 소실된 채로 풀썩 쓰러지는 시체를 목격한 뒤에야 비로소 그 점을 인지한 이들이 허둥지둥 창칼을 세우며 불안한 기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지휘권자인 조철영이라도 멀쩡하다면 모를까.
그마저도 빈쯤 죽어 나자빠져 있으니 전세가 뒤집힐 기미가 안 보였다.
물론.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었다.
우우우우우웅!
[오르그의 파괴 본능]
난 불쌍하다고 해서 괴물을 살려 줄 만큼 인애롭지 않았다.
후우우욱!
콰아아아아아앙!!
“끝.”
한계치까지 압축했던 마력이 폭발해 전방을 휩쓸며 지나가길 10여 초.
감각을 펼쳐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음을 확인한 나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열여덟 명 전원 사망.
남은 건 조철영 하나.
저벅―
저벅―
애피타이저 이후 메인 타깃을 짓뭉개기 위하여 한쪽에 처박아 두었던 조철영에게로 걸어가는 길.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듯 멍하니 누워 있는 놈의 심장을 목표 삼아 왼손의 손톱을 내리찍었다.
허나.
콰직!
“……?!”
시원하게 틀어박힌 손톱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대로 굳어 버려야 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촉감이 내가 아는 일반적인 사람의 그것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래.
‘…인형?’
마치 인형을 찌른 듯한 감촉이었다.
단순히 느낌만이 아니다.
스르륵―
뽑아낸 손톱에 묻어 나오는 것도 없었다.
피, 기름, 살점 등등.
필수적으로 들러붙는 물질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어떻게?
답이야 간단했다.
“젠장.”
고유 능력.
조철영 그놈은 이제까지 본 적 없는 ‘탈출계’ 능력의 소유자였다.
패착이었다.
신지유와 신지운이 조철영의 능력을 몰랐기에, 나름 주의하고 있었음에도 이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딴 사람은 다 살려도 조철영만큼은 반드시 죽였어야 하는데.
“쯧.”
절로 찡그려지는 인상.
[끈질긴 추적]
서둘러 후각에 의존해 놈의 냄새를 찾아봤으나 이것도 ‘탈출계’의 힘인가.
코는 인형을 가리킬 뿐,
다른 어디로도 레이더가 세워지질 않았다.
완벽하게 놓쳐 버렸다.
“미안하다.”
아쉬운 마음으로 그 결과를 전해 주자 신지유는 황급히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에요. 저희를 구해 주신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해요. 애초에 저희가 부탁드린 것도 여기서 탈출하는 것이었고.”
조철영을 붙잡았다면 좋겠지만.
남매에게는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그걸 되찾은 걸로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아이는 좀 어때.”
“아, 그동안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데다가 피까지 흘려서 많이 지친 것 같기는 한데, 포션도 먹이고 했으니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은 것 같아요. 오빠.”
“다행이네. 재우는 가서 무기 다 회수해 오고, 회수 끝나는 대로 돌아가자.”
“예.”
마무리가 조금 찝찝하긴 하다만.
어쨌든 잘 해결됐으니 나도 조철영에 대한 생각을 털어 내며 복귀 준비에 들어갔다.
* * *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모든 게 정리된 후 거점으로 돌아와 가진 식사 자리. 밥숟가락을 놓기 무섭게 한세정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일련의 과정을 속 시원하게 풀어 주길 바라는 그녀의 눈초리에는 조이령과 곽재우의 궁금증도 더해져 있었기에 나는 밥을 먹기 전에 그 의문을 먼저 풀어 줘야 했다.
“…아까 전.”
그다지 긴 이야기도 아니었고.
뭣보다 더 뜸을 들였다간 하도 강렬한 시선에 얼굴이 뚫릴 지경이었으니까.
“…그렇게 된 거다.”
“아!”
“아!”
“아!”
쭉 늘어놓은 스토리 끝에 감탄사를 내뱉는 세 사람.
“어쩐지.”
개중 유난히 한세정의 반응이 뜨겁다.
남매를 내어 주겠다는 수를 썼을 때 제일 크게 실망감을 드러냈던 게 그녀였기에, 과거를 지우려 더 열성적으로 호응하는 듯싶었다.
물론.
너무 띄워 주길 바라지도 않았던 터라.
“어디까지나 운이 좋았을 뿐이야.”
가볍게 정리했다.
실제로도 운이 많이 작용했다.
시간대가 시간대인지라 적들에게 근접하면서도 신지유에게 전략을 전달하는 장면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고, 더불어 놈들이 하도 시끄럽게 떠들어 준 덕택에 내 목소리가 자연스레 묻히게 되었으니.
그러한 점들이 없었더라면 일이 더 복잡하게 꼬였을 거다.
게다가.
마냥 웃을 수만도 없었다. 이번 사건으로 내내 우려하던 사안이 수면 위로 부상했으니까.
‘또 찾아올지 모른다.’
농자재 백화점이라는 지리적 특성이 사람을 끌어들였다.
한 번 그랬으니, 다음에도 또 그러겠지. 금번엔 큰 피해가 나지 않았다만, 늘 같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바.
‘좀 더 강해져야 해.’
꼭 ‘이벤트 : ?’ 대비가 아니더라도 강해질 원인이 늘어났다.
우린 그 점에 주목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