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 * *
‘……?’
잘 떠나가 놓고 느닷없이 찾아와 벽을 두들기며 살려 달라 소리치는 남매를 본 내 머리 위로 퀘스천 마크가 떠올랐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기이한 광경에 사고 회로가 일시적으로 정지된 느낌이랄까?
그러다 어느 시점엔.
‘…함정?’
저 남매의 등장이.
말로는 도움을 구하고 있으나 실상은 나눠 준 몫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날 어떻게 해 보려고 보낸 미끼가 아닌가 하는 의심으로 번졌다.
하여.
“입장 허가.”
[지정한 대상에게 ‘하얀 늑대’ 표식이 새겨집니다.]
일단은 문을 열었다.
궁금했다.
저 남매가 무엇을 꾀하고 여길 오게 된 것인지, 속내가 어떠한지 직접 물어보고자. 예상대로 함정일지라도 개의치 않았다.
개방된 문이야 언제든 폐쇄 가능하기에.
더군다나.
‘안전지대’의 위대함은 방벽에만 있지 않다. 허가되지 않은 대상에게 부여되는 지속적인 데다가 중첩까지 되는 디버프.
그거라면 설사 실수로 폐문하지 못하더라도 위기를 수월하게 극복할 수 있는 터라 과감하게 열어젖혔다.
어떠한 조심이나 언질도 없이.
슈우우욱!
부지불식간에 확.
“어어……?”
“어어……?”
쿵!
그 바람에 방벽에 체중을 싣고 있던 두 사람은 내리치던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균형을 잃은 채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쓰러지며 받은 충격이 꽤 큰지.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끙끙거리는 남매를 향해 한세정들이 다가간다.
물론.
부축 따위의 도움을 주려는 건 아니었다.
스윽―
“그대로 가만히 있으세요. 움직이면 공격합니다.”
스르릉!
스릉―
한세정들이 원하는 건 정체불명의 타인이 함부로 말썽부리지 못하게끔 제지하고자 함이었다.
턱―
도합 세 자루의 창칼이 서슬 퍼런 예기(銳氣)를 드러내며 세 방향에서 겨눠지자 그 살기를 느꼈는지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움찔거리며 서로를 부둥켜안는 남매.
후우우욱―
나는 천천히 무릎을 굽혀 그들에게 시선을 맞췄다.
“본론만 묻겠다. 이곳에 찾아온 목적이 뭔지.”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질문에 목울대를 꿈틀거리는 둘.
그러더니.
꽈아악―
누나 쪽이 무의식적으로 동생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입을 연다.
“우선, 문을 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신지유라고 합니다. 이쪽은 제 동생 신지운이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긴장한 티가 역력함에도 최대한 침착한 척 꾸벅 인사를 한 신지유라는 이름의 소녀.
내가 계속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한 가지를 요청했다.
“저… 혹시 씨앗 하나와 흙을 좀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종류는 아, 아무거나 괜찮아요.”
설명을 하라고 했더니 대뜸 씨앗 요구라.
“…가서 하나만 가져와 줘.”
“제가 갔다 오겠습니다.”
뜬금없는 요구에 잠깐 갸웃거렸으나, 바라는 이유가 있겠지 싶어 곽재우를 시켜 재료를 가져오게 했다.
“여기.”
척―
“…감사합니다.”
부탁을 완수하자마자 두어 걸음 물러서 다시금 대검을 붙잡은 곽재우.
그 살벌하고 딱딱한 동작에 움찔하면서도 원하는 걸 받아 든 소녀는 우리의 눈치를 살피며 바닥에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솔직히.
텃밭이라기보단 그저 흙을 뭉쳐 놓고 씨앗을 안에 넣은 게 다였지만.
‘…뭘 하려는 거지?’
점점 더 산으로 가는 듯한 모션에 정말로 내 시선을 끌기 위한 연막작전인가 싶어질 무렵.
우우우웅―
소녀의 손끝에서 마력이 춤춘다 싶더니.
“…드라이어드, 열매를 맺어 줘.”
작게 속삭이는 주문을 따라 청록색의 빛무리가 허공을 유영하며 흙더미를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마치 봄날의 햇살이 자연을 향해 온기를 나누어 주는 양 스며들어 가는 마력.
그 광합성이 끝난 뒤.
툭―
투둑―
놀랍게도 흙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허나 서서히 격렬하게 들썩대다 중앙이 톡 하고 갈라지며 무언가가 튀어나온다.
연한 초록색의.
‘…싹?’
‘싹’이었다.
몇 초 전만 해도 죽은 것이나 진배없던 씨앗이 흙에 뿌리를 내리고는 푸르른 싹을 틔우고 있었다.
아니다.
“토마토?”
“…나 지금 꿈꾸는 거 아니지?”
“맞는 것 같습니다…….”
남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한세정들이 한순간에 집중력을 잃을 정도로 빠르게 과실을 맺는 중이었다.
최소한 한 달 이상.
길게는 두세 달은 족히 기다려야 열리는 토마토가 고작 1분이 채 안 돼서 성장해 버린 것이다.
“…이게 제 능력 ‘드라이어드’, 나무의 정령이에요. 저희 남매는 이 능력 때문에 어른들의 손에 붙잡혔어요.”
이에 부릅뜬 눈으로 바라보자 어느새 손을 거둔 소녀는 다시금 이야기를 이어 간다.
“보호해 주겠다는 명목이었지만, 그건 정말 명목에 불과했어요. 동생과 같이 먹을 걸 구하던 중에 능력을 들킨 뒤로 우르르 몰려와 강제로 동행하게 된 어른들은 매일같이 식량을 만들게 시켰어요.”
“…….”
“그나마 가을에는 괜찮았어요. 온기도 많고 집집마다 텃밭을 가꾸던 분들이 많으셔서 운이 좋으면 큰 힘 들이지 않고도 많은 양을 수확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힘들어도 참을 수 있었는데……!”
또박또박하게.
그러나 강렬한 분노가 섞인 말투로.
“날씨가 추워지면서 텃밭도, 주변의 나무나 풀도 다 사라지고 난 후부터 어른들의 태도가 달라졌어요. 누구는 저희를 쓸모없는 짐 덩어리 취급했고, 누구는 뒤치다꺼리해 주는 노예처럼 부렸어요. 또 누구는… 저희의 몸을 노렸죠.”
울분(鬱憤)이라고 하던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진득한 감정이 떨리는 목소리를 타고 대기 중에 어지러이 울린다.
동물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응축되었던.
내게도.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뿐만 아니라 한세정들까지 포함해 우리 모두에게 질리도록 익숙한 살의(殺意)가.
“…그래서 도망쳤나?”
왠지 안 좋은 과거가 떠오르는 듯하여 애써 잡념을 털어 내며 묻자 소녀와 동생이 함께 답변을 내놓았다.
“네. 동생이, 기회가 왔다고 얘기해 줬거든요.”
“…기회?”
“아저씨, 아니, 형을 봤거든요!”
날.
“꿈에서요!”
어이없게 만드는 대사를 내뱉으며.
* * *
대략 10여 분 전, 휘광 교회에 다다른 사람들은 리더 조철영의 지휘에 따라 창칼을 앞세워 내부로 진입을 시도했다.
멀리서 볼 땐 평범한 외관.
가까이서 봐도 별달리 위험 요소는 없을 듯한 곳이었으나, 멸망해 버린 세계에서 24시간 내내 괴물들과 뒹굴며 두 달여를 생존한 사람들에게 이런 미개척지를 함부로 들어간다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
아무리 나사 빠진 머저리라도 제 목숨이 아까운 줄 안다면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공간에 들어설 시에는 방어 태세를 갖추는 게 기본이었다.
“1조 진입, 2조는 백업, 3조는 주변 경계.”
하기에 조철영은 늘상 하던 대로 무리를 세 개 조로 나누어 지시를 내렸다.
30대 초반.
일행 중에는 그 이상으로 나이 많은 이도 있었지만.
“1조 진입합니다.”
“2조 붙자!”
“3조는 날 따라와!”
어느 하나 조철영의 지휘를 무시하는 이가 없었다.
근육질에 건장한 체격을 지닌 남성이라는 점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종말 이전에 검도관을 운영한 사범이었다던 직업적 특성이 사람들에게 무한한 믿음을 가져다준 덕분이었다.
단순히 겉보기에만 좋은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니라.
실제로 앞장서서 적의 목을 베는 뛰어난 전투력으로 벌써 여러 차례 목숨을 건져 주며 쌓인 지대한 신뢰감을 바탕으로 한.
그렇기에 이 집단 안에서 조철영의 위치는 절대적이었다.
딱 둘.
스으윽―
“흐으음. 여긴 안전해 보이네, 그치?”
“…….”
“왜 말이 없어.”
“…맞아요.”
“맞아? 뭐가 맞아.”
“아, 안전해 보여요…….”
“그렇지? 하여간 지유 너는 수줍음이 너무 많아서 탈이야. 오빠랑 같이 산 지도 한 달이 다 됐는데 아직도 이렇게 부끄러워해서 되겠어?”
“죄송해요…….”
“에이, 뭘 또 죄송하기까지야. 농담이잖아, 농담. 하핫!”
오늘도 어김없이 추행을 당해야 하는 소녀 신지유와 그런 누나를 지켜보며 이를 악물고 있는 소년 신지운 남매를 제외하고서.
두 사람에게 조철영이란 악마 내지는 개새끼에 불과했다.
한 달 전쯤.
안전을 명목으로 강제 동행을 하게 된 이후 은근슬쩍 몸을 더듬어 오기 시작해, 겨울이 되자 ‘이제는 효용 가치가 없으나, 계속해서 보호해 주지 않느냐’라는 구실을 내세워 스트레스 해소용 폭행과 폭언을 넘어 호시탐탐 육체관계를 노리는 데다가.
떠나려 해도 언젠가는 반드시 써먹을 수 있는 효과적인 식량 공급원을 놓치지 않으려 본인이 직접 옆에 달라붙어 구속해 놓고서 화장실까지 따라와 도망치지 못하게끔 감시하고 있으니 호감이 생길 리가 없었다.
그저 혐오하고 증오할 뿐.
“안전합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좋아,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갈 거니까 다들 짐 푸세요.”
“예!”
“들어가자, 얘들아. 지운이는 거기 짐 좀 가져오고.”
매일 그런 기분 속에서 사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보다 더욱 추잡스럽게 목덜미를 더듬으며 내리는 조철영의 통솔하에 교회에 자리를 잡아 가는 무리.
첫째로 외부에서 안쪽이 보이지 않게, 더불어 소음을 약간이라도 차단하기 위하여 1층 창문을 나무와 천으로 봉쇄한 뒤, 마침 오는 길에 본 침구 판매장에서 가져온 매트를 바닥에 쫙 깔아 침상을 만든다.
이후엔 자잘한 쓰레기 처리나 무기 손질 등.
폐허였던 건물을 살 만한 곳으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을 이어 간다.
그 중심에는.
“야, 이 덜떨어진 새끼야! 빨리빨리 안 치워?”
“하 씨ㅂ……. 내가 여기 쓰레기 버리라고 하지 앟았냐?”
“으으, 다리 아파. 지운아, 이모 다리 좀 주물러 줄래?”
“이 새끼는 또 어디 갔어? 신지운! 뒈지고 싶지 않으면 빨리 튀어와!”
신지운이 있었다.
‘고유 능력’조차 개방하지 못한 일반인.
사회가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겨울이 지나 고등학생이 될 미래를 상상하며 즐거워했을 중학교 3학년의 어린아이는 ‘인간성’이 망가진, 인간의 탈을 쓴 괴물들에게 시종일관 불려 다니며 잡일을 맡아야 했다.
단 1초의 휴식도 없다.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몰아치는 업무는 육체적으로 미완성된 신지운에겐 상당히 가혹한 수준이었으나.
본디 노예에게 일을 시키며 수고했다 아껴 주는 주인은 없는 법이었다.
“자, 됐다. 지유야!”
그렇게 신지운이 한겨울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동안, 신지유는 입구 옆쪽에 마련된 텃밭···이라기보단 대충 흙을 뿌려 둔 곳에서 조철영의 명령 아래 마력을 끌어모았다.
원래 목표였던 농자재 백화점을 의문의 남자가 차지하고 있는 탓에 일부만 받아 왔음에도 무척 많은 양.
다 자란다면 며칠은 놀고먹을 수 있는 분량이라 조철영이나 포함한 이들이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가운데, 신지유는 가진 마력을 투여해 유일한 친구이며 가족이 된 나무의 정령 ‘드라이어드’를 소환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