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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86화 (86/232)

86화

* * *

“꾸이이이이익!!”

“꾸이이익!!”

“좌측 적 출현, 작전은 ‘옆구리 기습’이야.”

스랄레오 무리의 등장과 함께 내려지는 명령.

“바로 갑니다.”

[천강홍의장군]

[혈액량 충족]

[부가 효과 : 철벽]

촤르르르륵!!

쿵!

한세정의 육성이 바람에 채 흩어지기도 전에 화답한 곽재우가 일대를 물들이던 혈액을 빨아들여 흑골갑 위로 붉은 무장을 더하며 뛰쳐나간다.

눈앞에 놓인 적의 숫자가 열 마리를 넘어섰지만, 그의 눈빛과 행동엔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타앗!

탓!

발끝으로 지면을 밀어내며 연달아 도약한 곽재우는 스랄레오들이 목전에 다다를 때까지 거리를 좁혀 갔다.

50m, 40m, 30m.

그러다 마주 돌진해 오는 놈들과의 거리가 10m 안으로 줄어들어 서로의 숨소리가 닿을 정도로 근접했을 때.

탁!

“흐읍!”

후우우우욱!

일직선으로 내달리던 곽재우가 돌연 제동을 걸며 2m에 달하는 대검을 역수로 잡아 대지를 강하게 내려찍는다.

콰앙!

그 검로를 따라 휘몰아치는 기류.

선혈만큼이나 시뻘건 아지랑이가 지하 깊숙하게 스며들어 간 순간.

“쿠이이이익!!”

“꾸이익!!”

대기를 찢어발기며 밀고 들어온 스랄레오들의 우람한 골각(骨角)이 마침내 곽재우와 충돌했다.

콰앙!

쾅!

콰아아앙!!

연쇄 폭발이라도 일어난 듯 사정없이 울려 퍼지는 굉음.

허나.

그 강렬한 충격파가 공간을 진동시키고 있음에도 누구 한 명 곽재우의 이름을 부르짖는 이가 없다.

다들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휘우우우우욱―

한바탕 솟구쳐 올라가다가 바람에 무너지는 먼지구름 너머의 곽재우는.

카각―

카가각―

“꾸이이익?”

“꾸익?”

“…후.”

[철혈의 술―2단계]

[대군방벽]

제 몸에 두르고 있는 무장과 똑 닮은 빛으로 도배된 새빨간 방벽을 앞세워 언제나처럼 연이은 공격에도 상처 하나 없이 무사히 막아 내리라고.

그렇기에.

“후……. 오늘도 잘해 보자, 조이령.”

꾸우우욱―

타앗!

조이령도 곽재우의 안위가 어떠하다는 보고를 기다리지 않고 폭음이 들린 즉시 창을 꽉 틀어쥐고 스랄레오들의 옆구리를 향해 쇄도했다.

그녀는 전신을 철갑으로 두르고 있음에도 상당한 속도로 전장을 가로질렀다.

속력만이 아니다.

“하아압!!”

기습의 묘를 살리려 지근거리에 당도해서야 기합성을 토해 내며 내지른 창날.

[악의 징벌자]

[칼론드 기사단 기본 창술]

휘우우우웅!!

마력을 양껏 머금은 태세로 쭉 뻗어 낸 창끝이 스랄레오의 살갗을 너무나도 가뿐하게 꿰뚫고 지나갔으니까.

콰직!

“꾸이이익!!”

비명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한번 쏘아 낸 창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멈출 줄 모르고 스랄레오들을 유린했다.

두 손으로 강하게 붙들고 내려찍어 죽음을 선사한 후.

텁―

촤아아악!!

시체를 군홧발보다 더한 강철 장화로 무참히 짓밟으며 무기를 회수해 연격을 가해 삽시간에 세 마리를 짓뭉갠다.

물론.

“꾸이이익!”

“꾸이익!”

스랄레오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당연하게도 반격을 하려 땅을 박찼다.

단지.

후욱―

훅―

효과가 없었다.

골갑의 기병이라 불리는 스랄레오들이 힘을 발휘하려면 기동력이 필수인데,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두 사람이 틈을 내어 줄 리가 있나.

“하압!”

“하!”

추진력을 얻고자 조금이라도 물러날 낌새만 보이면 어느새 뛰어와 창칼을 휘두르니 전열을 가다듬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일방적이고도 압도적인 승부.

십여 마리에 달하는 스랄레오들이 썰려 나가는 데 걸린 시간은 기껏해야 10여 분 남짓. 거의 분당 한 마리를 사냥한 셈이었다.

콰직!

“끝, 났습니다.”

“후아! 수고했어!”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어디야?”

번쩍!

탓―

“끝났으면 저리로 가자. 이번엔 2등급 개체 둘도 포함돼 있어. 작전은…….”

그 완벽한 승리를 거머쥔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확인 사살을 거치고는 힘든 기색도 없이 당당한 걸음걸이로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 나선다.

인스턴스 던전을 개방한 시점으로부터 어언 5일 차.

우려했던 기온에도 훌륭히 적응하며 두 번째 던전을 돌파 중인 한세정들의 무력은 시간의 흐름에 비례해 성큼성큼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었다.

* * *

“오늘은 이쪽으로 가 볼까.”

한세정, 조이령, 곽재우 세 사람이 합심해서 던전을 공략하는 동안 나는 거점 밖으로 걸음을 내디디고 있었다.

설사 2등급 개체와 맞닥뜨린다 하더라도 ‘퇴장’ 주문으로 위기를 대처할 수 있는 터라.

그쪽은 말한 대로 온전히 한세정에게 지휘를 일임하고서 이전 날 중단했던 인근 수색을 재차 진행하는 중이었다.

한동안 사냥에 몰두하느라 소홀해졌던 경계도 강화할 겸.

내일이면 이제 ‘점령의 구슬’도 세 개째를 사용하게 되니, 사냥감이 마르기 전에 새 사냥터를 마련해 놓으려는 의도였다.

“여기까지는 아직 사람의 흔적은 없고.”

성급하지 않게.

과거에 우리만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해 두었던 표식을 토대로 감각을 곤두세우며 철저하게 밟아 나가는 수색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중간마다 맞닥뜨리는 괴물들을 적당히 피해 가며 조용하고 은밀하게 작업을 이어 가길 30여 분.

“크라라라라라!!”

“크라라라라라!!”

“…울음소리가 똑같다.”

나는 어느 지점부터 동일한 하울링만이 들려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

근방에 무리를 지어 활보 중인 괴물들이 있거나.

“던전.”

그놈들의 영역인 던전이 구축되어 있거나.

혹은.

둘 다이거나.

뭐가 됐든 충분히 가 볼 만했기에 청력에 집중해 경로를 틀고 이동하길 몇 분이 지날 즈음.

“크라라라라라!!”

“@#(@#*@!!”

“크라라라!!”

“……? 지금.”

두어 개의 코너만 더 돌면 현장에 도착하려던 직전.

귓가로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괴물들의 고함 틈새에 파묻혀 온전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내 예민해진 청각은 확실하게 구분해 냈다.

그것이.

“…사람?”

인간으로부터 비롯된 언어라는 걸.

착각? 그럴 리 없다. 어느덧 ‘감각’ 수치도 50을 넘어선 상태. 구분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런.’

탓―

타닷―

더더욱 발놀림이 빨라졌다.

거주지에서 고작 30여 분 떨어진 위치.

그나마도 세밀하게 수색해 나가는 중이었기에 지연된 시간이지, 일직선으로 주파한다면 채 15분도 걸리지 않을 간격이었다.

사실상 엎어지면 코 닿을 지경이라.

목적지가 어딘지는 알 수 없으나,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가 우리와 충돌하게 될지도 모르니 사전에 막아 세우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정보를 확보해 두든 해야 했다.

[돌진]

쿠웅!

가속에 가속을 더하며 간극을 줄이길 1분여.

최대한 은밀하게 기동하며 시끌벅적한 장소에 도달하기 무섭게.

“크라라라라라!!”

“크라라라!!”

“선두 흔들린다! 좌우 열, 어서 처리해!”

“으아아아아! 하고 있다고!!”

“얼마 안 남았다! 젖 먹던 힘까지 쏟아부어!!”

도로 한가운데에서 건물 한 채를 등지고 전투를 벌이는 정체불명의 무리와 그들을 잡아먹으려 안달이 난 스무 마리가량의 괴물들이 시야에 잡혔다.

전체적인 그림은 인간 쪽이 우세했다.

일견하기에는 반원으로 둘러싸고 몰아붙이는 괴물들이 유리한 듯싶었지만, 흔들리긴 해도 무너지지 않은 선두를 필두로 양측에서 차근차근히 수를 줄여 나가고 있었으니까.

저대로라면 아마 10분이 되지 않아 마무리될 터.

하여.

“…방어 특화 능력자가 여섯, 근접이 여덟에 원거리가 넷인가. 회복 계열은 따로 없고.”

싸움이 종결되기 전에 저들의 데이터를 추려내는 데에 시선을 고정했고, 다행히 ‘교전’이라는 상황적 특성상 자료 수집은 어렵지 않았다.

물론.

완벽한 수준은 아니었다.

“…해서 총 전투 인원은 열여덟 정도인 것 같은데……. 저들은 뭐지?”

체력을 다 소진한 탓인지.

혹은 애초에 실력이 미흡해 강제로 후방 배치된 건지 전투에 일절 참여하지 않아 분류가 안 되는 인원이 있었기 때문.

그 수는 셋.

남패로 추정되는 이가 둘에 장정 하나로.

‘벌벌 떠는 걸로 봐서 아이들은 후자인 듯한데, 저 남자는… 모르겠군.’

아무리 관찰해 봐도 어느 쪽인지 결론이 나질 않아 일단은 ‘변수 요인’으로 머릿속에 넣어 두고 마무리를 할 때쯤.

“크라라라라!!”

“죽어, 이 새끼야!”

후우우우욱―

콰직!

창과 도끼가 결합된 무기인 할버드가 벼락처럼 선을 그으며 최후까지 날뛰던 괴물의 목덜미를 갈랐다.

반인반수(半人半獸).

웨어 타이거인 티그리스와 비슷하게 인간화된 하마 대가리에 근육이 빽빽한 사람의 육체를 지닌 괴물은 네 개나 되는 팔을 허우적거려 봤지만.

푹!

석!

콰드득!

전방위에서 찔러 오는 공세에 결국 무릎을 꿇었고.

“흐아아아!!”

서걱!

촤아아악!!

기어이 할버드의 참격에 목이 잘려 전쟁의 종료를 알리는 제물이 되었다.

다만.

“추출! 추출부터 하고 쉬어!”

“언제 또 들이닥칠지 몰라! 정리가 먼저야!”

스무 명의 사람들은 막이 내렸음에도 휴식은커녕 곧장 ‘추출 작업’을 이어 나갔고, 나아가 자리를 벗어나려는 기미를 보였다.

그런 탓에.

나는 어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대로 숨어서 저들의 뒤를 따라갈지. 직접 대면해서 행선지를 알아낼지.

무엇이 더 옳고, 더 나은 선택인가.

‘…우선 쫓아가자.’

고심 끝에 미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괜히 나섰다가 없던 분쟁거리가 만들어질 수도 있는 바,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조금 더 지켜본다.

그게 내가 내린 최종 판단이었다.

스윽―

“……?”

“……!”

…라고 되뇌이며 발을 떼려던 찰나.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흑요석을 빼다 박은 듯 광택이 이는 검은 눈동자를 가진.

“누나, 저기―”

변수 요인으로 표기해 두었던 인물 중 하나인 남자아이였다.

그걸 인지한 직후.

‘어떻게……?’

내 얼굴은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창칼을 쥔 이도, 활에 화살을 재던 이도, 저 무리에 포함된 이들 중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내 은신이 기껏해야 중학생 정도 아이에게 꿰뚫렸다는 게 믿기질 않아서.

물론.

더욱 이상한 건 따로 있었다.

“지운아!’

“어, 어어…….”

“얼른.”

동생을 대하는 누나의 태도.

일반적으로 숨어 있는 뭔가를 발견했다면 일행에게 알려야 정상일진대, 그러한 통상적인 대응은 고사하고 되레 동생이 말을 끊으며 억지로 팔을 잡아끌고만 있으니 영 이해가 되질 않았다.

‘…뭐지?’

하지만.

그 점에 대해 깊게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이쪽입니다!”

“여기서 한 5분만 더 가면 나올 겁니다!”

“거의 다 왔다! 도착만 하면 쌀이든 과일이든 잔뜩 먹을 수 있을 테니 다들 힘들더라도 꾹 참고 달려!!”

“가 봅시다!”

미행하기로 결심하고 채 10초도 지나지 않아.

“다 왔다! 다 왔어! 농자재 백화점이 코앞이다!”

저들의 최종 목적지가 나와, 우리의 집이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

부디 그것만은 아니길 바랐거늘.

요행은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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