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인스턴스 던전이라니.
말도 안 되는 옵션에 아이템 등급이 ‘특별’이라는 게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히든 피스로 이런 걸 준비해 두다니.
“…저, 아윤 오빠? 갑자기 무슨 메시지가…….”
그것도.
“점령의… 구슬?”
“특, 특별 등급?!”
인원 수에 맞춰서.
이거야말로 놀랄 노 자였다.
‘적어도 2~3일은 사냥 걱정할 필요가 없겠어.’
나는 기분 좋은 성과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거골(巨骨)의 무덤을 내버려 두고 몸을 돌렸다.
‘점령의 구슬’로 굳이 사과나무를 쳐다보며 사과가 떨어지길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바.
“돌아가자.”
복귀한다.
새 사냥터도 생겼으니 가서 체력과 컨디션 좀 회복한 뒤 무장을 갖춰서 네 곳이나 되는 인스턴스 던전을 부수면 될 듯했다.
‘기수’를 처치하며 열쇠를 또 하나 얻은 데다가.
[축하합니다.]
[〈던전 전용 퀘스트 : 두개골 부수기〉를 ‘62회’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스랄레오 던전 퀘스트 보상 선물 상자(기본)’를 57개 습득합니다.]
[보상으로 ‘스랄레오 던전 퀘스트 보상 선물 상자(특수)’를 다섯 개 습득합니다.]
이것도 있고 2등급 근원석도 꽤 널렸기에 잘만 거래하면 한세정들의 전신을 아이템으로 도배 가능하리라.
어쩌면 비범 등급 장비를 섞어 줄 수도 있을 테니 다음 사냥 전까지 평균 전력이 서너 배는 증가할 것 같았다.
하여.
내친김에 가는 동안 상점이 업그레이드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이러이러해서 아이템을 맞춰 줄 예정이니 각자 꼭 구매했으면 하는 위시 리스트를 간단하게나마라도 구상해 보도록 일렀다.
본격적으로 쇼핑에 들어가면 다 틀어질지도 모르지만.
카테고리라도 짜 두는 게 무작정 진입하는 것보다는 효율적으로 판가름할 수 있을 테니까.
[‘혹한의 안전지대’에 들어왔습니다.]
우우웅―
고민거리를 안겨 주며 돌아온 거점.
“생각하면서 이것부터 열어 보자.”
가방을 비롯해 짐을 대충 내려놓고 곧장 박스 개봉에 돌입했다.
‘던전 전용 기술 : 지원 요청’이 발동되기 전에 우리가 모아 두었던 것까지 합해서 약 70개에 달하는 양.
개중.
《스랄레오 던전 전용 퀘스트 보상 선물 상자》
- 등급 : 비범
- 분류 : 소모품
- 설명 : 〈던전 : 골갑의 초원〉의 전용 퀘스트를 진행하여 획득 가능한 보상 상자. 그중에서도 파괴한 두개골이 열 개를 넘어갈 때마다 업그레이드된 ‘비범’ 등급의 선물 상자가 주어진다.
- 옵션 : 개봉 시 종족 「스랄레오」 관련 ‘일반~비범’ 등급 아이템 획득 / 극히 낮은 확률로 ‘특별’ 등급 아이템 획득
우리가 열어 볼 건 비범 등급 일곱 개에 일반 등급 열 개가량.
나머지는 대기.
일단 일정 분량을 먼저 까 보고 결과에 따라 전량 개봉할지 혹은 그냥 상자째로 상점에 판매해 버릴지 결정할 생각이었다.
기본 상자 기준 판매가가 1등급 근원석 다섯 개라 그리 적절한 편은 아니다만.
일전에 언박싱을 해 보며 선물 상자에서 좋은 아이템이 나올 확률이 매우 낮다는 걸 체감한지라 차라리 상점에 넘기는 게 이득일지도 몰랐다.
‘운이 좀 따라 줬으면 좋겠는데.’
스르르륵―
부디.
장비가 나와 주기를 바라며 풀어 헤치는 끈.
이윽고 익숙한 빛무리가 일더니.
가루가 되어 휘날리는 상자 아래로 큼지막한 아이템 하나가 나타난다.
툭―
[축하합니다!]
[‘단단한 백골 갑옷 상의’를 습득합니다.]
“…응?”
갑옷이었다.
그것도.
《단단한 백골 갑옷―상의》
- 등급 : 비범
- 분류 : 방어구
- 설명 : 행성 ‘두리티오스(Duritos)’의 지배종 「스랄레오」의 골갑(骨甲)을 재료로 사용해 제작한 갑옷 상의. 오직 2등급 개체의 뼈만 원료로 활용했으며, 추가로 주문 ‘디펜스’를 각인해 가벼우면서도 튼튼한 갑옷이 완성되었다.
- 옵션 : 착용 시 ‘내구’ 17 상승 / 타격류 한정 충격 소폭 완화
비범 등급의.
“허…….”
첫 개시부터 중박 이상 가는 성과에 나는 얼떨떨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2등급 근원석이라도 드랍되면 만족하리라 싶었는데.
“제대로 터졌네.”
한세정, 조이령, 곽재우.
셋 중 누굴 주든 제 역할을 할 아이템의 등장에 ‘선물 상자’ 하면 따라오던 불신감이 조금씩 녹아내린다.
한 번도 아니고.
[‘1등급 근원석 : 스랄레오’를 습득했습니다.]
[‘백골 완갑’을 습득했습니다.]
《백골 완갑》
- 등급 : 일반
- 분류 : 방어구
- 설명 : 행성 ‘두리티오스(Duritos)’의 지배종 「스랄레오」의 골갑(骨甲)을 재료로 사용해 제작한 건틀릿. 가죽에 뼈를 덧댄 것으로 제법 단단하여 위급한 경우엔 무기로써 활용할 수도 있다.
- 옵션 : 착용 시 ‘내구’ 4 상승
두 번이나 획득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장갑은 일반 등급이었으나 범용성도 나쁘지 않고, 뭣보다 상의와 연계하면 벌써 방어구를 두 부위나 구한 셈이었기에 환호성이 절로 나왔다.
다만 하나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색이 너무 밝다는 것?
안정적인 활동을 위하여 주로 날이 저문 이후의 시간대를 무대로 삼는 우리에게 있어 새하얀 갑옷과 장갑이 되레 적들의 눈길을 끌어 안전을 위협하는 불씨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 살짝 걸린달까.
‘쓰게 된다면 검은색 페인트를 구해 봐야겠네.’
아주 심각한 문젯거리는 아닌지라 웃으며 언박싱을 마무리한 나는 한세정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각자 특수 상자 하나와 기본 상자 서너 개씩을 연속으로 뜯고 있던 세 사람은 시시각각으로 표정이 바뀌었는데, 그중 마지막까지 웃은 사람은 곽재우였다.
그의 손에는.
《튼튼한 백골 갑옷―투구》
나와 마찬가지로 비범 등급 방어구가 들려 있었으니까.
해서.
“이건 곽재우가 착용한다.”
나는 백골 갑옷 상의와 장갑을 모두 곽재우에게 밀어 주었다.
별다른 근거는 없었다.
그저.
곽재우가 한 피스를 얻었기에 몰아주려 했을 따름이었다.
“감사합니다.”
내게서 아이템을 받아 간 곽재우는 그 자리에서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장비를 걸쳐 입기 시작했다.
착용감도 볼 겸.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헌데.
“…응?”
막상 갑옷과 장갑에 이어 투구를 착용하다 말고 허공을 응시하는 곽재우.
뭔가 싶은 그때.
“세트, 효과가 있습니다.”
그의 입에서 재미난 대사가 흘러나왔다.
[축하합니다!]
[‘백골제’ 아이템 세 종류를 착용했습니다.]
[세트 효과 「백골의 가호」가 부여됩니다.]
[신체 능력 ‘내구’가 9 상승합니다.]
바로.
‘세트 효과’에 관한 내용이었다.
“…라고 합니다.”
“……?”
이 세계에도.
세트 아이템이란 특전이 존재했다.
* * *
“다녀왔습니다.”
거점으로 복귀하고서 대략 한 시간여쯤 흘렀을까?
본인에게 맞는 장비를 찾고자 상점에 들어갔던 한세정들 중 곽재우가 가장 먼저 밖으로 나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백골 갑주―하의》
《백골 갑주―신발》
[세트 효과(5) ― 백골의 가호 : 내구 20 상승 / 타격류 충격 완화율 12% / 기술 ‘백골 돌파’ 사용 가능]
“괜찮네.”
투구에서부터 신발까지 백골 갑옷으로 통일해 온몸을 백색으로 물들인 곽재우는 누가 보더라도 전사임을 피력하는 차림새였다.
든든하다는 표현이 절로 나오는 모습.
유일한 결점이라면 여전히 유난히 튀는 색인데, 그 부분도 해결책이 있었다.
“페인트는?”
“염료가 있어서 같이 사 왔습니다. 원하는 장비에 뿌리면 5분 이내에 색이 바뀐다고 합니다.”
상점에서 아이템 전용 염료를 팔고 있었으니까.
“바로 시작해.”
“예.”
덕분에 다행이라는 심정으로 곽재우를 보내고 다시 10여 분.
드디어
끼이익―
상점 문이 열리고 두 번째 인물이 얼굴을 드러냈다. 전과는 180도 달라진 복장으로 변모한 한세정이었다.
“오빠! 어때요?”
마치 옷가게에 다녀온 사람처럼 한 바퀴 돌아보며 내 반응을 물어보는 그녀의 옷차림은 전체적으로 검은빛이 도는 깔끔한 무복이었다.
전형적으로 누군가를 암살하고 다닐 법한 야행복 느낌이랄까.
그래서.
“…암살자?”
질문인 듯 혼잣말인 듯 무심코 중얼거렸는데.
“어? 어떻게 아셨어요?”
뜻밖에도 정답이었다.
《흑묘살의 가죽 두건》
《흑묘살의 가죽 상의》
《흑묘살의 가죽 신발》
《흑묘살의 날카로운 송곳니》
[세트 효과(6) ― 흑야의 이빨 : 순발력 +20 / ‘밤’에 활동 시 누적되는 피로 양 감소 / ‘밤’에 전투 시 체력 및 마력 소모량 감소 / 기습 성공 시 피해랑 증가]
정말로 암살자용 장비였다.
한세정이 이런 식으로 아이템을 구성한 까닭은 명확했다.
“한쪽으로 치우치긴 했지만, 주로 밤에 활동한다는 걸 고려했어요. 게다가 제 전투 스타일이 공간 이동을 활용한 속도전이라 신속함 위주로 골라 봤는데… 잘못한 걸까요?”
자기 객관화를 통한 강점 살리기.
고심의 흔적이 엿보이는 그 선택에 나는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무얼 고르든 존중해 주었을 테지만, 기왕이면 각자의 ‘고유 능력’과 연계되는 장비를 구매하길 원했으니까.
“생각보다 더 잘 골랐네.”
“진짜요?! 후으, 다행이다…….”
그런 내 감상평이 마음에 드는지.
싱긋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이마를 쓸어내리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한세정.
그녀는 끝으로 본인이 고른 비범 등급 무기, 투척 후 자동 회수가 되는 비수 두 자루를 선보이며 옆으로 물러났다.
“다음은 저.”
스윽―
한세정이 비켜선 자리로 들어선 조이령.
그녀의 전신은 철제 갑주로 둘러싸여 있었다.
《칼론드 견습 기사용 철제 투구》
《칼론드 견습 기사용 철제 갑옷》
《칼론드 견습 기사용 철제 신발》
[세트 효과(5) ― 칼론드 견습 기사 : 근력 15 상승 / 체력 10 상승 / 순발력 10 상승]
마주한 즉시 여기사를 떠올리게 하는 무장.
조이령이 이런 차림을 한 이유는 부위마다 ‘근력’이나 ‘체력’ 등 스탯을 올려 주는 옵션으로 부족한 신체적 약점을 커버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철제 방어구 특성상 방어력을 상승시키기에도 좋았고.
다만.
중량을 이겨 내야 한다는 게 단점이었는데.
“옵션도 옵션이고, 세트 효과에 아까 근원석을 잔뜩 복용해서 그런지 적응만 하면 크게 불편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이 또한 대책이 있었다.
조이령 또한 한세정만큼이나 고민을 거듭하며 고른 결과물이었다.
그렇기에.
수고했다는 말을 해 주며 고개를 끄덕이던 차였다.
“참.”
척―
“비범 등급 아이템, 저는 장비보다 이게 나을 것 같아서요.”
“……?”
제 장비에 대한 설명을 마친 조이령이 느닷없이 한 권의 책을 건넸다. 인쇄소에서 막 가져온 듯 빳빳한 책자 제목엔.
[칼론드 기사단 기본 창술 교본]
…이라고 적혀 있었다.
《칼론드 기사단 기본 창술 교본》
- 등급 : 비범
- 분류 : 소모품
- 설명 : 이제는 파괴된 어느 차원에 존재했던 왕국 ‘칼론드’의 견습 기사들이 배우는 창술이 적힌 교본이다. 탐독 시 책 안에 기술된 창술을 습득한다.
- 옵션 : 탐독 시 사본(寫本) 등급 기술 ‘칼론드 기사단 기본 창술’ 습득
“……?!”
다름 아닌 ‘기술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