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키메라의 기억법-83화 (83/232)

83화

* * *

지이이잉―

지이잉―

나는 두 번의 짤막한 진동을 일으키며 시야 상단부에 맵을 구축하는 신호기를 잠시간 주시하다 더 이상 연락이 없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미리 정한 몇 가지 약속 중 ‘신호기 2회 작동’, 이른바 2급 신호는 괴물에 의해 제법 큰 사고가 일어났다는 뜻이었으니까.

생사에 위협을 느낄 3급이나 최대 변수인 인간의 등장을 알리는 4급 알림만 아니라면 1~2급은 언제든 터져도 된다.

아무런 변고가 발생하지 않는 게 베스트겠지만.

외부를 돌아다니며 늘 안전하기만을 바라는 건 말이 안 되지.

바스락―

바스락―

아무튼.

나는 골반을 타고 흐르는 진동을 느끼며 얼른 상점을 벗어나 입구에 늘어놓았던 쓰레기를 비닐로 감싸 거점을 나왔다.

‘내구’와 ‘저항’이 올라간 덕일까?

겨울의 추위가 조금은 줄어든 기분을 느끼며 시체를 처리하고 던전으로 달려가길 잠시.

“아윤 오빠!”

골갑의 초원이 눈에 아른거릴 즈음 좌측 빌딩에서 한세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익숙한 음성을 이정표 삼아 안쪽으로 들어가니 곽재우와 조이령이 경계심 가득한 눈길로 창밖을 노려보고 있었다.

두 사람과 대강 눈인사를 마치고 몸을 돌리자.

“무슨 일이야.”

“그게― 아.”

뭔가 말을 하려다 작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손을 뻗는 그녀.

한세정의 희고 고운 검지 끝이 닿은 곳은.

툭―

내 장포 속에 감춰진 자그마한 뿔이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건.”

“이렇게 변해 있었나.”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처음 보는, 쇄골에 연결되어 목과 어깨 사이 지점에 자리를 잡은 스랄레오의 골갑(骨甲)이었다.

본디 그들의 갑옷은 이마에 뿌리를 두고 확산, 전개되는 방식이나.

‘중위 프레데터’ 전용 패시브 기술인 ‘신체 최적화’를 거치며 인간이라는 생물에게 맞게 조정된 모양이었다. 어쩌면 이마는 이미 투르바의 뿔이 선점하고 있어 아래로 밀려난 걸지도 모르고.

아마 여기서 ‘순간 회귀’를 발동한다면 스랄레오와 같은 구조로 변할 터.

하여튼 그 기묘한 작품에 일순 시선이 홀렸다가 퍼뜩 의식을 되찾으며 서둘러 현장을 설명하기 시작하는 한세정.

“아아, 멋있어요……. 아, 이럴 때가 아니지.”

그녀의 입에서는 낯익은 단어가 흘러나왔다.

아라운다 던전에서 경험했던.

“던전 전용 기술이라는 게 발동했어요.”

“으음.”

‘던전 전용 기술’이.

과연.

신호기 2회급에 해당하는 사건이었다.

“오빠가 떠나가신 뒤로 두 마리를 더 사냥하던 중에 갑자기 지원 요청이라는 기술을 발동한다고 하더니…….”

“와르르 쏟아져 나왔나 보네.”

“네. 2등급 개체가 다섯, 1등급 개체가 서른 정도였어요.”

도합 서른다섯이라.

양도 양이지만, 질적으로도 한세정들이 감당하기에는 과한 군세였다.

어쩐지.

경계 태세가 왜 이리도 삼엄한가 했더니 이유가 있었다.

“퍼진 방향은?”

“메시지를 보자마자 피해서인지 저희 위치를 몰라 마구잡이로 인근을 공격하고 있어요.”

흐음.

대처가 좋았다.

아라운다 던전을 계기로 학습이 됐다고는 하나 당혹스러운 마음에 실수를 범할 만도 했는데.

하여.

나는 잘했다는 말과 함께 어떻게 대응하는 게 괜찮을지 구상하려 했다만.

“그리고.”

“…그리고?”

한세정과의 대화 말미에 찍힌 건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였다.

“이런 메시지도 나왔어요.”

의아한 표정으로 선 내게 뒷말을 이어 가는 그녀.

그리고.

[축하합니다.]

[총 44회의 ‘던전 전용 기술’이 발동되었습니다.]

[‘이벤트 : ?’의 조건 일부가 충족되었습니다.]

[현재 충족된 조건 : 1. ‘던전 전용 기술’ 44회 발동]

[이벤트 개시 필요 조건 : 2. ? / 3. ?]

[위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순간 ‘이벤트 : ?’가 개시됩니다.]

본론은 여기에 있었다.

“…이벤트?”

“네. 정확히 이렇게 나와 있었어요.”

나는 한세정을 통해 전달받은 메시지에 미간을 찌푸리며 당혹스러운 감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축하한다는 말머리를 붙이고 있었으나, 그 속내는 ‘경고’에 가깝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기수 사냥’을 겪어 본 입장에서, 또 그걸 통해 훌륭한 거점과 제한 없는 상점을 갖게 되었음을 고려해 볼 때 저 이벤트 역시 실보다는 득이 클 확률도 있다만, 자꾸만 본능이 꿈틀거렸다.

찌릿―

찌릿―

위험하다고.

난 그 감각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

이 시점에서 뭘 어떡하는 게 현명한 판단인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건대, 이벤트는 막거나 피하지 못한다.

그 말인즉슨.

“대비.”

“네?”

“지금부터라도 대비해야 해.”

이벤트가 개시되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방패를 구비해 둬야 한다. 그 어떤 재앙이 들이닥치더라도 버텨 이겨 낼 수 있게끔.

안전지대? 2레벨이 된 상점?

거기에 매달려선 안 된다. 결코 만능은 아니니.

따라서.

해답은 한 가지뿐이다.

“개개인의 스펙 업.”

근원석을 복용하든 아이템을 구매하든, 갖은 방법으로 한계를 늘려야 한다. 결국, 생존 전선에서 내 목숨을 살려 주는 최후의 보루는 ‘실력’이었으니까.

그런 점에서 성장이 시급한 한세정들은 참 다행이었다.

이벤트가 있다는 사실도 나름 빨리 알게 되었고.

“꾸이이이이익!!”

“꾸이이이익!!”

마침.

근방에 사냥감도 넘쳐나는 데다가.

“다들 모여 봐.”

훌륭한 버스 기사도 함께였으니 말이다.

* * *

스윽―

“없습니다.”

“좋아.”

바깥을 세심하게 살피던 곽재우의 안전 통보에 나는 천천히 다리 근육을 풀어 준 이후.

“간다.”

결의의 눈빛을 보내는 셋을 건물에 두고.

[돌진]

콰앙!

땅을 박차며 골갑의 초원 쪽으로 발을 뻗었다.

후우우우욱―!!

후우욱!!

발끝을 찍을 때마다 갈라지는 바람.

수십 갈래로 찢겨 나가며 아우성치는 대기를 추진력으로 변환시켜 나아가길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금세 풀숲이 나를 반긴다.

그 변화에 맞춰 하나둘 등장하는 스랄레오들.

“꾸이이익!!”

“꾸이이익!!”

나는 그쯤에서부터.

[투르바의 포효]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마력을 터트렸다.

흐으으읍.

“크아아아아아아!!”

후화하하하학!!

목울대를 짓누르던 마력을 한순간에 폭발시키며 토해 내는 괴성.

도저히 인간의 것으로 보기 힘든, 밤하늘을 관통하는 괴물의 하울링은 엄청난 결과를 이룩해 냈다.

“꾸이이이익!!”

“꾸이이익!!”

동족 살해범 수색으로 도심을 떠돌아다니던 서른 다섯.

아니.

쿵쿵쿵쿵쿵쿵―!!

그새 더 늘어나 예순은 족히 될 법한 스랄레오 부대를 죄다 한자리로 집합시키는.

“장관이 따로 없네.”

나는 골갑의 초원 중심부에 우뚝 서서 굶주린 개떼처럼 미친 듯이 돌진해 오는 괴물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사방을 빼곡히 메우며 몰려오는 하얀 물결.

진풍경도 이런 진풍경이 없었다.

거침없이 돌격해 오던 백색의 파도가.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

탁―

쿠구구구구구궁―!!

“꾸이이익!!”

“꾸이익!!”

쿵―

쿠웅―

처참하게 무너지는 장면은.

허나 그도 잠깐이었다.

“꾸이이이익!!”

“꾸이익!”

콰직!

콰지지직―!!

체구가 워낙 장대해.

붕괴된 선두 열이 되레 비틀리는 대지 전체를 채우며 후발 주자들을 위한 발판으로 전락한 탓이었다.

이를테면.

평탄한 아스팔트를 달리다 비포장도로로 차선을 변경한 꼴이라.

“흐읍!”

[돌진]

탓―

둘러싸여 압사당하기 전에 몸을 빼내야 했다.

타이밍 좋게 솟아오른 바위를 밟고 가볍게 굽혔다 펴는 무릎.

쿠웅!

“꾸우이이익!!”

“꾸이이익!!”

쾅!

콰앙!

아슬아슬하게 발밑을 스쳐 지나가며 서로 뒤엉켜 갑옷을 부딪치는 스랄레오들.

[플뤼의 탄성 일격]

투웅!

콰직!

슈화하학!

난 그놈들의 상공을 날아.

탁!

원하던 위치에 착지했다.

“꾸이익?!”

군집해 있는 스랄레오들의 외곽이었다.

많고 많은 지역 중에 여길 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순간 회귀 : 오르그의 오른팔]

[순간 회귀 : 플뤼의 왼팔]

[스트랭스]

우득―

우드드득―

이제부터.

[오르그의 파괴 본능]

[형태 변화]

[마력 권갑화]

우우우우웅!!

“가라.”

탁―

“꾸익?”

“꾸이익?”

꽈아아아아아악―!!

“하아아!”

후후후훅!!

후방으로 던질 것을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꾸이이익!”

“꾸이익!!”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넷.”

덥석―

후우우욱!

여섯 마리만.

아직 ‘두개골 부수기’와 ‘멱따기’를 클리어하지 못한 조이령과 곽재우에게 필요한 머릿수였다.

쿠웅!

쿵!

투포환을 하듯 내던져진 몸뚱어리가 지면을 나뒹굴며 커다란 울림을 일으킨다.

그러기 무섭게 빗발치는 무전.

- 포획 완료! 포획 완료!

- 2차 포획―

- 3차―

- 6차 포획 완료! 포획 끝!

‘끝.’

카운팅 종료를 알리는 마지막 무전에 대답 대신 주먹을 들어 올렸다.

바야흐로.

“통로로 간다.”

학살의 시간이었다.

* * *

“꾸이이익!”

콰직!

털썩―

살갗을 찌르고 들어간 손톱이 심장을 꿰뚫는 것으로 또 하나의 생명이 사그라진다.

후두둑―

손톱을 넘어 팔목까지 젖은 왼손을 대충 털 무렵.

“오빠! 수거 다 했어요!”

“와……. 혼자서 이걸.”

따로 빼 두었던 스랄레오들을 던전으로 끌고 와 퀘스트를 완료하고는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근원석을 가져오는 한세정들.

언뜻 봐도 묵직할 듯한 주머니를 쥐고서 곁으로 다가오는 셋의 얼굴은 감탄과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누구는 괴물 한 마리에도 쩔쩔매던데, 누구는 혼자 부대 단위로 도살하고 다니니.

“대단, 대단하십니다. 형님…….”

안 그래도 날 전폭적으로 믿고 따르는 곽재우는 숫제 숭배라도 할 기세였다.

후욱―

탁―

“다 가져왔으면 복용 시작해. 우선 2등급은 놔두고 1등급으로만. 배분은 1 대 3 대 2.”

근원석을 던져 주고 한세정, 조이령, 곽재우 순으로 배분율을 지정해 준 나는 멈추지 않고 거골(古骨)의 무덤으로 향했다.

필드에 남은 사냥감이 없으니.

뭣도 모르고 두리티오스(Duritos)에서 지구로 건너오는 놈들을 낚아채고자 놈들의 거점 내부에 있을 ‘통로’ 근처로 가 볼 요량이었다.

단지 그게 목적이었는데.

텁―

[축하합니다!]

[〈던전〉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적을 처치하고 ‘거점’을 점령했습니다.]

[보상으로 모든 신체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보상으로 ‘칭호 : 점령하는 자’를 습득합니다.]

[보상으로 ‘점령의 구슬’을 습득합니다.]

“…음?”

《칭호 : 점령하는 자》

- 일시적일지언정 무려 〈던전〉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적을 처치하고 ‘거점’마저 점령한 자에게 부여되는 칭호. 앞으로 〈던전〉 입장 시 내부 한정 적의 수와 등급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거골(古骨)의 무덤 안에는 근원석 외에는 없을 줄 알았던 보상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점령의 구슬 : 스랄레오》

- 등급 : 특별

- 분류 : 소모품

- 설명 : ‘던전’을 정복한 자에게 지급되는 보상. 파괴 시 1회에 한하여 ‘점령의 구슬’을 획득한 ‘던전’과 동일한 규격의 「인스턴스 던전」이 구축된다.

- 옵션 : 〈인스턴스 던전 : 골갑의 초원〉 생성

예상치 못한, 그러나 무척 화려한 선물이.

“미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