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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80화 (80/232)

80화

* * *

쾅!

“꾸이이이익!”

바람을 뚫고 들려오는 돼지 멱따는 소리.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스랄레오의 목덜미 부근에 창을 깊숙하게 찔러 넣고서 재빨리 물러나는 조이령을 지켜보던 난 전장에서 시선을 거두고 조용히 고심에 잠겼다.

무엇을?

오르그로 시작해 투르바에서 멈춘 ‘프레데터’의 고유 권능, 이종(異種)의 육체를 이식하는 작업에 대해서.

사방에 2등급 개체들이 난무하는 시기였다.

그런 만큼.

“이제 바꿀 때가 됐지.”

슬슬 또 한 번의 변태(變態) 과정을 밟을 때였다.

한세정에 이어 인간이 둘이나 늘어났겠다. ‘인간성’의 관리도 간편해진 지금, 굳이 미룰 까닭이 없었다.

하여.

오랜만에 기술 창을 열었다.

이왕 신체를 이식할 거라면, ‘등위 상향’에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 위주로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기존의 팔과 다리 등은 사선을 넘나들며 완벽하게 동화된 터라 되도록 그쪽은 건드리고 싶지 않았기에.

물론.

훨씬 마음에 드는 육체가 생긴다면 주저하지 않고 교체하겠지만.

《기술 : 프레데터의 중위 진화론》

- 등급 : 특수

- 단계 : -

- 설명 :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키메라 ‘프레데터’는 자신이 사냥한 개체의 신체 조직을 ‘흡수 이식’ 또는 ‘변형 이식’해 끊임없이 성장한다.

다만 발아한 터의 영혼이 인간이길 바라는 제약으로 매 이식마다 ‘인간성’의 일부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현재 등위에서 이식 가능한 신체 : 가죽, 뼈, 내장 기관

└다음 등위까지 필요한 최소 이식 수 : 0/5

└현재 이식에 필요한 인간성 : 15%

└이전 등위에서 이식한 부위 또한 언제든 새로 이식할 수 있습니다.

└이전 등위에서 이식하지 못한 부위 또한 언제든 새로 이식할 수 있습니다.

└단, 이전 등위와 관련된 신체 부위는 ‘다음 등위까지 필요한 최소 이식 수’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개정된 기술을 쭉 살펴보니 변경된 부분이 확 눈에 들어왔다.

본래 10%였던 ‘인간성’ 소모량이 15%로 증가한 대목이나, 팔과 다리처럼 큰 틀을 바꾸는 데 중점을 두던 것에서 이제는 내부 기관에도 손을 댈 수 있게 된 점이나.

“뼈, 뼈라.”

나는 그중에서도 ‘뼈’라는 부위에 눈길이 갔다.

마침.

근처에 질 좋은 뼈를 구할 만한 장소가 있었으니까. 자칭 골갑(骨甲)의 기병이라 불리는 종족 스랄레오가.

“공교롭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원래라면 뼈에 특화된 종(種)을 찾느라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거나 혹은 도중에 아무 괴물이나 잡아 이식을 시도해 버렸을 텐데.

고로.

뼈에 관한 건 이번 기회에 흡수하면 될 듯했다.

“아직 기수도 남아 있으니.”

음.

나는 계획을 정한 후 몸을 일으켰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듯이 떠오른 김에 이행할 작정이었다.

* * *

후우욱!

탓!

사냥 중인 한세정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자 지대를 빙 돌아 전장의 정반대편에 다다른 나는 속도를 줄인 채 감각을 쫙 세우며 우선 거골(巨骨)의 무덤을 향해 나아갔다.

저곳에 ‘기수’나 여타 2등급 스랄레오들이 있을 공산이 제일 크기 때문이었다.

확신하는 건 아니다.

‘있길 바란다만…….’

내 바람일 뿐 없을 확률도 농후했다.

던전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다수의 지원군을 지구로 보다 편하게 불러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이자 장치였지, 인간을 피해 안에 웅크리고 숨어 있으려 구축한 게 아니었으니까.

다만.

파직!

‘……!’

아직까지는 행운의 여신이 내 손을 들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거골의 무덤에 근접할수록 감각이 미친 듯이 날뛰는 걸 보면, 최소 한 마리쯤은 2등급 개체가 있는 듯했으니.

나는 그 육감의 신호에 살짝 미소 지으며 허리춤을 더듬어 뭔가를 꺼냈다.

펄럭!

겨울바람에 나부끼는 그것은 군데군데 헤진 헌 옷이었다.

얼마 전까지 한세정이 쭉 입고 있었던.

“꾸이이이익!!”

“꾸이이익!!”

괴물의 후각을 자극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사람의 살 냄새가 가득 밴 미끼였다.

‘바로 무는군.’

쿵―

쿵―

쿵―

바람을 타고 나부끼는 인간의 향기가 공간을 물들이기 무섭게 뛰쳐나오는 십여 마리의 스랄레오.

먹잇감의 냄새에 잔뜩 광분한 놈들은 단 1초의 제동도 없이 곧장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발을 굴렀다.

그 속에는.

[종족 「스랄레오」의 ‘기수’를 발견했습니다.]

‘나이스.’

마주하길 고대하던 ‘기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없으면 어쩌나.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죽치고 기다려야 하나 내심 불안했는데.

“있어 줘서 고맙다.”

우우우웅―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

쿵!

쿠구구구구구궁!!

짤막한 감사 인사와 함께 내디딘 걸음에 갈라지는 지면.

정확히.

“꾸이이이익!!”

“꾸이이익!!”

스랄레오들이 목전에 다다른 찰나였다.

[돌진]

타앗!

후욱!

놈들과 부딪치기 직전에 대지를 뒤흔들어 놓고 하늘로 날아오르자 아래쪽은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쾅!

쾅!

“꾸이이익!”

“꾸익!”

다중 추돌 사고가 일어난 도로의 풍경을 베껴 온 듯 허망하게 목표를 잃어버린 채 자기들끼리 들이받는가 하면.

퍼석―

“꾸이익!!”

쿠당탕탕!

어떤 놈들은 밟았던 땅이 갑작스럽게 부서지는 바람에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가 바위에 치여 나뒹굴기도 했다.

아수라장(阿修羅場).

공중에서 내려다본 지상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순간 회귀 : 오르그의 오른팔]

우득―

우드득―

내려치기에 딱 좋은.

“흡.”

[오르그의 파괴 본능]

우우우우우!!

콰아아아앙!!

짤막한 기합을 더하며 내지른 일격에 터져 나가는 세계.

푸른빛이 수십, 수백 조각으로 흩어지며 전면을 채우던 괴물들의 사체를 찢어발긴다.

탁―

그 참혹한 도살을 일으키고서 착지한 나는 이어서 왼손을 뻗어 아슬아슬하게 공격권을 벗어나 있던 ‘기수’의 옆구리에 손톱을 박아 넣었다.

[플뤼의 탄성 일격]

투우웅―

콰직!!

고무줄이 튕긴다 싶은 순간 어느새 살갗을 파고드는 칼날.

골갑이 머리에 한정되어 있는 1등급 스랄레오와 다르게 2등급 개체들은 목덜미와 척추 앞부분까지 백색의 갑주로 채워져 있었으나 무의미했다.

닿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전신을 빼곡히 뒤덮었다면 또 모를까.

“안 그래?”

촤아아아악!!

“꾸이이이이익!!”

장난치듯 중얼거리며 손을 잡아 빼자 시끄럽게 울부짖는 기수.

살점과 가죽을 넘어 내장을 도려내는 공격에 당한 놈은 반항할 의지마저 잃어버린 듯 그대로 몸을 파르르 떨다 바닥을 굴렀다.

살아도 산 게 아닌 상태.

“그렇게 잠자코 기다리고 있어.”

더는 드잡이질 하지 않아도 될 지경에 이르렀음을 직감한 나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왼손을 툭툭 털며 놈을 뒤에 두고 몸을 돌렸다.

장포를 휘날리며 반전하자.

“꾸이익! 꾸익!”

“꾸이익!”

“꾸이이이익!”

난리 통에도 목숨을 건진 세 마리가 목청이 찢어져라 괴성을 지르며 날 향해 이마의 뿔을 들이미는 게 보였다.

2등급 하나에 1등급 둘.

[스트랭스]

[오르그의 파괴 본능]

“후.”

후우우욱!

콰아앙!!

짓눌러 주기에 안성맞춤인 구성이었다.

* * *

“아윤 오빠! 지금 저쪽에서… 오빠셨어요?”

일방적인 전투를 마치고 죽은 ‘기수’의 몸뚱어리를 질질 끌며 한세정들에게 가자 사냥을 멈춘 채 잔뜩 경계 중이던 셋이 약간 황당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느닷없는 폭음에 외부인이라도 나타난 건 아닌가 걱정한 모양이었다.

“이것 때문에 잠깐 다녀왔어. 혹시 놓쳤다가 애먼 데 뺏길까 봐.”

“아아.”

나는 미안한 기색으로 상황을 알려 준 뒤 한세정을 따로 불렀다.

“이식, 하시려고요?”

그녀는 내가 무슨 연유로 자신을 불러냈는지 알고 있었다.

아마.

괴물의 시체를 근원석으로 치환하지 않고 가져왔다는 데에서 눈치챈 듯싶었다.

“금방 끝낼 테니 둘을 부탁할게.”

“여긴 제가 잘 맡고 있을게요. 끝나시면 신호기로 연락만 주세요.”

“그래. 믿고 갔다 올게.”

“네!”

그 덕에 순조롭게 얘기를 마친 나는 한세정에게 뒤를 맡기고 거점으로 복귀했다.

아무리 신체 이식이든 기억 포식이든 잠깐이면 끝났다지만, 그래도 안전지대가 근처인데 구태여 위험 요소가 있는 외부에서 누울 이유는 없었다.

[‘혹한의 안전지대’에 들어왔습니다.]

[모든 신체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체력 및 마력 재생 속도가 10% 상승합니다.]

집에 돌아오자 출력되는 반가운 메시지들.

바스락―

바스락―

쿵!

입구 바로 안쪽에 비닐을 깔아 기수의 몸에서 새어 나오는 피가 내부를 적시지 않도록 정리한 나는 장포를 벗고 차분하게 놈의 골갑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프레데터의 중위 진화론]

나지막하게 외우는 주문.

[‘기술 : 프레데터의 중위 진화론’을 발동합니다.]

[당신이 이룩할 진화 과정을 선택해 주십시오.]

[흡수 이식]

[대상 「스랄레오 : 2등급」의 ‘뼈’를 선택하셨습니다.]

[진화를 시작합니다.]

[‘신체 최적화’가 자동 진행됩니다.]

[다가올 고통에 대비하십시오.]

우우우웅―

조금씩 끓어오르는 마력이 체외로 뻗어 나와 기수의 골갑으로 연결되더니 오랜만에 겪는 통증이 이성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우득―

우드득―

“큽―!”

전신 골격을 죄다 교환하기 때문인가.

퍼석―

퍼서석―

스스스스스스슷―

스랄레오의 골갑이 가루처럼 잘게 으깨지며 흡수되는 시점부터 온몸의 살가죽이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귓가로 뼈가 부러지고 맞춰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그렇게.

5분, 10분, 15분을 지나 인고의 시간을 견뎌 내길 한 시간, 체감상 그만큼은 흘렀으리라 생각할 무렵.

우득―

가슴을 중심으로 뻗어 나가다 비로소 머리에서 마지막 뼛조각이 맞춰지는 소리가 들렸을 때.

[축하합니다!]

[「스랄레오 : 2등급」의 ‘뼈’ 이식에 성공했습니다.]

[대상 「스랄레오 : 2등급」이 보유 중이던 신체 능력 일부가 전이되었습니다.]

[「인간성」 15%를 소모합니다.]

“…아!”

간만에 겪는 이식의 종점은 아주 상쾌했다.

무려 2등급 개체를 잡아먹으며 신체 능력이 대폭 상승한 영향이었다.

꽈아아아악―

본능적으로 주먹을 꽉 쥐어 이 안에 담긴 힘을 어디로든 쏟아 내길 원하는 욕망이 꿈틀댈 정도로.

그래서.

[그러나 ‘뼈’에 남아 있는 「스랄레오 : 2등급」의 기억마저 포식하지 않는 한 불완전한 성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온전한 진화를 위해 지금부터 ‘666초’ 내에 「기억 포식」을 성공해 내야 합니다.]

[「기억 포식」에 실패하거나 혹 「기억 포식」 행위 자체를 시도하지 않을 경우 향상된 능력은 4분의 1로 하락합니다.]

[남은 시간 : 666초]

숨도 쉬지 않고 외웠다.

[‘고유 능력 : 프레데터의 기억 포식’이 발동됩니다.]

과녁이 존재하는 세계로 보내 달라고.

다만.

[당신의 영혼이 〈포식의 땅 : 2등급〉으로 이동합니다.]

막상 당도한 세상은 내가 알던 곳과 미묘하게 다른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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