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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79화 (79/232)

79화

* * *

시침이 고작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가 깜깜하게 저문 저녁.

그간 사흘에 걸쳐 하루에 한 구역씩.

북을 기점으로 동을 거쳐 남쪽으로 원형의 선을 그으며 탐문을 지속한 끝에 당장은 우리밖에 없음을 확실하게 인지한 나는 거점 입성 나흘째가 되는 오늘.

“준비는.”

“무기도 있고, 손도 이제 멀쩡하고……. 저는 다 됐어요.”

“저도 언제든지 출발 가능해요.”

“말씀하신 대로 유사시에 거점을 벗어난다 하더라도 상관없도록 가방에 식량과 식수에 구급 약품 등 생필품도 모두 챙겼습니다.”

“좋아. 그럼―”

품에 넣어 두었던 ‘스랄레오 전용 특수 퀘스트 의뢰서’를 꺼내 들었다.

드디어.

찌이이익―

화르륵!

[‘특수 퀘스트 의뢰서 : 스랄레오’를 사용합니다.]

다섯 번째 ‘특수 퀘스트’를 받아 볼 시간이었다.

[특수한 조건을 달성한 당신에게 ‘특수 퀘스트 : 멱따기’를 부여합니다.]

《툭수 퀘스트 : 멱따기》

- 행성 ‘두리티오스(Duritos)’의 지배종 「스랄레오」는 상대가 무엇이든 거침없이 돌격하여 파괴해 버리는 매우 난폭한 생물로 유명합니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는 돌진을 피하기 마련이나 뛰어난 전사는 다가오는 시련에 맞서 싸우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뛰어난 전사로 거듭나고자 한다면 달려오는 「스랄레오」의 공격을 회피하며 목덜미에 상처를 내는 것으로 그것을 증명해 보십시오.

(0/5)

└‘특수 퀘스트 의뢰서’를 통해 부여된 퀘스트입니다.

└주문 ‘지정’을 시전해 원하는 대상(최대 4인)에게 임무를 추가 부여할 수 있습니다.

└현재 퀘스트 진행자 : 아윤

└퀘스트 진행자가 추가될 때마다 달성 과제 또한 최대 수치만큼 증가합니다.

└남은 시간 : 2일 23시간 59분 59초

중앙을 반으로 가르자마자 불길에 휩싸이며 재가 되어 버리는 종이를 비집고 출력된 화면.

예측한 대로.

퀘스트는 양산이 불가능하게끔 다이렉트하게 지급되는 방식이었다. 기왕이면 ‘비밀 엿보기’처럼 습득법 자체를 공개해 주길 기대했건만.

뭐.

어쩔 수 없지.

“지정, 한세정, 조이령, 곽재우.”

[‘특수 퀘스트 : 멱따기’에 대상 ‘한세정’, ‘조이령’, ‘곽재우’가 추가됩니다.]

아쉬운 기색을 떨치고 세 사람을 추가한 후, 우린 지체하지 않고 스랄레오의 던전으로 출발했다.

오랜만에 전투를 치르는 탓인지 가는 동안 은은하게 올라오는 긴장감.

이는 한세정들도 비슷한 듯.

셋의 표정도 살짝 살짝씩 경직되어 있었다.

하여.

긴장을 덜어 줄 의도로 최대한 별것 아니라는 말투로 구상한 전략을 설명해 주었다.

“다들 알겠지만, 놈들의 공격 패턴은 돌진 위주의 단순한 유형일 거다. 따라서 공략법은 간단하다. 하나씩 끌어내서 가까이 왔을 때 좌측 또는 우측으로 이동해 목을 찌른다. 그 후 체력이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두개골을 부수면 될 뿐. 타이밍 잡는 것만 적응한다면 옷깃도 내주지 않고 사냥할 수 있다.”

제아무리 이론과 실전이 다르다지만, 난폭한 성격을 잘 이용하면 무난히 잡아먹는 구조임을 분명히 해 주자.

고개를 끄덕이는 셋의 얼굴에 서서히 자신감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실수해도 좋으니까, 망설이지만 마.”

나는 거기에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얹어 주곤 시범을 보여 줄 겸.

만에 하나라도 있을 사태를 대비해 데이터도 수집하기 위하여 들판에 다다르자 조이령과 곽재우를 적당한 위치에 세워 두고 한세정과 단둘이 던전에 발을 디뎠다.

사락―

양말조차 신지 않아 살갗을 찌르는 풀잎의 촉감이 선명하게 전달되는 동시에 이제는 나름 익숙해진 던전 관련 메시지들이 와다다 밀려와 허공에 드리워진다.

대강 손을 흔들어 글자의 파도를 지워 버리고 진군해 나가자.

“꾸이이이익!!”

“꾸이이익!”

콰드득!

콰득!

얼마 지나지 않아 목표물을 금세 발견할 수 있었다.

어디서 구해 왔는지 모를 커다란 사체 한 구에 대가리를 처박고 살점을 마구 뜯어 먹는 놈들을.

숫자는 대략 다섯.

뒤쪽으로는 지난날 먹구름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새하얀색의 건축물 한 채가 보였는데.

그것의 정체는.

“…뼈?”

다름 아닌 족히 3~4m는 될 ‘거골(巨骨)’이, 흡사 공룡들이 난무하던 쥐라기 시대에나 볼 법한 유해가 얼기설기 뒤엉킨 무덤이었다.

그 경이로운 장면에 절로 휘둥그레지는 동공.

‘…설마, 스랄레오의 상위 등급?’

비현실적인 광경에 입을 벌리던 내 머릿속으로 불현듯 하나의 가정이 스쳐 지나갔다.

3~4m의 뼈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며 그 위에 살이 붙고, 가죽이 덮여 완성된 초거대 스랄레오의 형상이.

영화에서 봤던 티라노사우루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압도적인 체구를 자랑하는 이미지를 구현해 놓고 나니, 그 무지막지한 놈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싶은 의문이 무럭무럭 자라난다.

그냥 달려오기만 해도 덤프트럭은 따위는 가볍게 짓이길.

더군다나.

놈들은 ‘마력’을 이용한 ‘기술’도 사용하지 않던가.

‘…험난하겠어.’

그런 놈들을 상대로 싸워 승리하며 끝까지 살아남아 ‘기적’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이루려면.

“…여기서 유인하자.”

“네.”

아찔한 상상을 이어 가던 나는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현재에 집중했다.

나중 일은 나중에 고민해도 된다.

지금은 사냥감을 찾아냈으니, 이제 작전을 시행할 차례였다. 그 신호에 맞춰 투척이라면 이골이 난 한세정이 가져왔던 성인 남자 머리통만 한 돌덩어리를 멀리 던진다.

후우우욱!

쿵―!

묵직한 무게감을 자랑하며 떨어지는 바위.

“꾸이이익?”

적잖은 진동이 대지를 울리자 이름 모를 괴물의 몸뚱어리를 뜯어 먹던 스랄레오들 중 한 마리가 홱 머리를 쳐든다.

이에.

스윽―

한세정에게 집게손가락을 하나 내밀자.

수신호를 받은 그녀가 재차 돌을 던져 첫 번째 바위가 굴러다니던 부근을 때린다.

쿵!

몰랐다면 모르되.

“꾸이이익!!”

거듭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 진동에 결국 스랄레오 한 마리가 괴성을 지르며 소음의 근원지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매우 매우 쉽게 걸려드는 유인.

난폭하다던 성향을 여지없이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후우욱―

쿵!

후욱!

쿵!

우린 동일한 방법으로 던전 바깥까지 끌어냈다.

전투 중에 발생할 고성 등으로 다른 놈들이 몰리지 않게 하려는 조치였다. 영역 밖으로 나가면 당연하게도 ‘던전 전용 퀘스트’는 취소된다.

허나.

상관없었다.

해당 퀘스트에서 요구하는 건 ‘살아 있는 스랄레오’의 두개골을 부수는 것.

즉.

외부에서 멱따기를 완수한 다음 죽기 전의 스랄레오를 던전으로 데리고 들어가 일을 진행하면 된다는 의미였다.

그와 같은 생각을 하며 슬그머니 전면에 서자.

“꾸이이익! 꾸이이이익!!”

신경이 잔뜩 날카로워져 있던 놈이 내 등장에 더욱 흥분하며 달려온다.

우우우웅!!

‘기술?’

한번 눈이 뒤집힌 놈은 뒤를 염두에 두지 않는 듯 일말의 망설임 없이 기술까지 발휘하며 죽자 살자 달려든다.

덕분에.

간격은 급속도로 줄어들었고.

‘셋, 둘, 하나.’

“지금.”

“흡!”

번쩍―!

빠르게 줄어드는 거리 속에서 차분히 수를 세다, 나보다 반응 속도가 떨어질 한세정들을 유념하며 일부러 넉넉한 간극을 두고 몸을 날리자.

“꾸이이이익!!”

콰아앙!!

역시나 질주 상태에서는 회전이 불가능한 것인지.

놈은 돌진을 멈추지 못하고 상가 한 채를 들이받으며 굉음을 동반해 건물 잔해와 뒤엉켰다.

“꾸이이익!!”

골갑 덕택에 충격은 거의 받지 않은 모양이나.

[베어 내기]

서걱!

촤아아아악!!

미리 세운 작전을 이행하기에는 아무런 무리가 없었고, 그걸로 사냥은 종료였다.

《특수 퀘스트 : 멱따기》

(1/5)

“뀍― 뀌익―!!”

목덜미란 부위는 외계 생명체인 스랄레오라는 종(種)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는 듯, 번개처럼 내뻗은 손톱에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진 놈은 제대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바들바들 떨며 죽어 가는 놈의 두개골을 붙잡고 던전 내로 끌고 들어가 아무것도 씌우지 않은 주먹으로 두개골을 두들겨 봤다.

쾅!

콰드득―

신체 능력치가 워낙 높아서인가.

경도를 테스트하려던 목적이 무색하게 쩍 하고 박살 나는 뼈. 강철과 비교된다더니, 1등급 개체는 그렇게까지 단단하진 않았다.

기껏해야 바위 정도랄까.

혹시 몰라 챙겨 온 망치에 능력자 특유의 근력이 더해지면 조이령이라도 수월하게 깰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콰직!

털썩―

“다섯, 끝.”

일련의 행동을 반복하며 스랄레오 멱을 따고 두개골을 부수길 다섯 번.

내지른 주먹에 대가리가 완전히 짓뭉개지며 죽어 나간 시체 위로 축하와 보상을 알리는 각종 메시지들이 출력됐다.

[축하합니다!]

[〈특수 퀘스트 : 멱따기〉를 완료하셨습니다.]

[당신의 업적에 걸맞은 보상을 지급합니다.]

[보상으로 ‘칭호 : 회피의 귀재’를 습득합니다.]

[보상으로 모든 신체 능력이 3씩 상승합니다.]

[보상으로 ‘골갑 방패’를 습득합니다.]

《칭호 : 회피의 귀재》

- 특별한 업적을 달성한 대상에게 부여되는 칭호. 해당 칭호를 소유한 대상은 물리적인 공격을 넘어 ‘정신적인 공격’을 회피하는 데에도 도움을 받는다.

《골갑 방패》

- 등급 : 일반

- 분류 : 무기

- 설명 : 행성 ‘두리티오스(Duritos)’의 지배종 「스랄레오」의 골갑(骨甲)으로 제작한 라운드 실드.

우드 실드와 아이언 실드의 중간 정도 되는 방호력으로 다소 애매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나, 일반적인 방패와 비교해 상당히 가벼운 특성을 지닌 만큼 휴대성이 뛰어나 애용되는 장비다.

- 옵션 : 착용 시 ‘내구’ 5 상승

우선적으로 클리어된 건 ‘특수 퀘스트’.

보상은 칭호부터 아이템까지 무척 좋은 편이었다.

특히.

“정신 공격 저항?”

뭣보다 칭호의 효과가 대박이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지금껏 수많은 근원석을 복용하고 신체 이식을 거듭해 왔어도 정신 공격에 대항할 수단은 ‘저항’이라는 능력치 5가 전부였으니 말이다.

아.

이젠 8인가.

여하튼 전무하다시피 하던 저항력이 미약하게나마 상승했다는 게 유달리 반갑게 다가왔다.

“오빠! 보상이 뭐예요?”

내가 웃고 있어서인지.

몹시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어보는 한세정.

“가서 설명해 줄게.”

나는 대답 대신 그녀를 데리고 조이령과 곽재우가 숨어 있는 상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도 잔뜩 궁금해하고 있을 테니 한 번에 이야기해 줄 요량이었다.

이윽고.

다시 뭉친 일행.

“골갑 방패, 진짜 가볍네.”

“나는 능력치가 3씩이나 올라가는 게 제일 좋다. 안 그래도 신체적으로 부족해서 걱정이었는데.”

“정신 공격 저항력이라.”

‘특수 퀘스트 : 멱따기’ 클리어 보상을 알게 된 세 사람은 나만큼이나 환호하는 반응을 보여 주었다.

각자 주목하는 포인트는 달랐지만.

퀘스트를 하나만 해결해도 여러 성과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의욕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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