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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75화 (75/232)

75화

* * *

“실패, 했다?”

“죄송합니다.”

“…….”

탁―

탁―

탁―

책상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던 김유걸 중사는 머리를 푹 숙인 채 대답하는 정 하사의 실패 보고에 조용히 손가락으로 종이를 두들겼다.

실패라니.

착호 부대 소속 병사 중 정예만 뽑아 개편한 1소대가 전원 투입된 작전이었다.

그렇기에 마음껏 아름다운 망상을 펼치고 있었는데.

“…뭐가 문제였지?”

대관절.

어떤 연유로 일을 그르치게 된 걸까.

상사의 흔한 질책이 아니라 정말 순수한 호기심을 드러내자, 정 하사는 천천히 어젯밤에 있었던 추격전 과정을 하나하나 풀어놓았다.

황금 고블린이라 명명한 아윤이란 작자를 어렵사리 뒤쫓던 출발점부터 거래를 제안하다 틀어진 장면, 결국 최하책으로 계획해 두었던 교전을 결정하던 당시와 ‘공간 이동’이라는 전례 없는 신출귀몰한 고블린들의 도주 방법과 이후에 휘말린 던전 전투.

그리고.

“무엇보다, 제 예측을 뛰어넘을 만큼 그들은 더 강했습니다.”

압도적인 무력까지.

“강하다?”

“그렇습니다. 저희가 던전이라는 특수한 사태에 휘말렸던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그는 너무 강했습니다. 1소대 절반이 달려들어도 생채기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뭐?”

김유걸은 정 하사의 얘기가 끝나자마자 눈을 부릅뜨며 반문했다.

1소대 대원 절반이 달려들었는데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다니?

이 뭔 말도 안 되는 개소리인가 심히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순간적으로 정 하사 이 자식이 작전 실패에 대한 책임 소재를 줄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건가 의심될 만큼.

허나.

“저희는 그에게 다가서는 것조차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

말을 잇는 정 하사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하고 고통스러웠다.

“고유 능력인지, 기술인지 구분이 되진 않았으나 그가 지면을 발로 밟자 대지가 뒤틀렸습니다. 파도치듯 출렁거리는 지면은 균형을 무너뜨렸고, 억지로 나아간다 해도 곳곳에서 바위가 튀어나와 팔다리를 짓뭉갰습니다.”

한 자, 한 자.

이를 악물고 내뱉는 설명에는 분노와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저 감정.

단 하나의 거짓도 없는 진짜였다.

“그 무지막지한 기술에 조 상병과 석 상병, 유 일병이―”

“그만, 그만 설명해도 좋아. 알아들었으니까.”

그래서.

붉게 충혈되어 눈물마저 글썽거리는 정 하사의 이야기를 강제로 틀어막은 김유걸은 손을 휘휘 저으며 나머지 보고는 다음에 듣기로 하고 가서 쉬도록 명령했다.

더 들어 봐야 안 좋은 내용만 즐비할 터.

복귀 후 곧장 보고하러 오느라 제대로 휴식도 못 취했을 테니, 오늘은 이쯤하고 돌려보내는 게 좋아 보였다.

안 그랬다간.

부들부들―

고작 하룻밤 만에 밑바닥에 처박힌 자존심과 함께 절망의 늪으로 가라앉아 버릴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아니, 됐네. 그 정도로 강한 놈이었다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아쉽기야 하지만, 애초에 우리 목표는 괴물 사육사의 영입이었어. 보물의 획득 방법도 알아냈으니 그 이야긴 추후에 하기로 하지.”

“알겠습니다.”

“그래. 어여 가 봐. 자네를 포함해 1소대 전원은 전부 근무자 명단에서 제외해 둘 테니 치료가 필요한 인원은 의무실부터 보내고.”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럼 가 보겠습니다. 충성.”

“충성.”

김유걸은 맥빠진 얼굴로 경례를 하고 나가는 정 하사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애써 힘을 줘도 축 처진 어깨와 굽은 허리.

서로 알게 된 지도 벌써 몇 년이 되었지만, 늘 당당하던 그가 저 정도로 무기력하게 구는 건 단연 처음이라 김유걸의 낯빛도 검게 물들어 갔다.

“트라우마라도 생기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걱정이 돼서.

이번 일로 정 하사라는 좋은 인재를 잃을까 봐.

그로 인해.

나의 진급 전선에 이상이 생길까 봐.

“부디 무탈했으면 좋겠군.”

김유걸은 문을 닫고 사라진 정 하사를 생각하며 나지막하게 기도했다. 금세 훌훌 털고 일어나 언제나처럼 힘써 주기를.

[진급 계획서 B안]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플랜 B인가.”

아주 잠시 빌어 주고 잊어버렸다.

* * *

“후.”

중대장실에서 나온 정 하사는 막사로 향하는 동안 얼굴에 씌워져 있었던 가면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겨 내기 시작했다.

비통함, 분노, 두려움 등.

내면 깊숙한 곳에서 억지로 끌어올려 완성한 마스크를.

그가.

가장 솔직해져야 할 작전 결과 보고 시간에 이러한 가면을 착용하고 있었던 까닭은 매우 단순했다.

“잘 가고 있는지 모르겠군.”

지금쯤 목적지에 도착했을까 궁금한 황금 고블린.

아니.

아윤이란 남자와 그의 일행을 위해서였다.

‘당신의 부하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최대 30m 내에 있는 건물 곳곳에 숨겨 두었다. 당연히 목숨은 빼앗지 않았으니, 더 이상 우리를 쫓지 말고 부하들을 찾아 복귀하길 바란다. 우린 당신들과의 전투를 원하지 않는다.’

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괴물들에게 끌려가 꼼짝없이 죽었으리라 생각했던 병사들을 구출해 준 것으로도 모자라 그대로 송환시켜 준 인의에 보답.

그래서.

일부러 연기했다.

중간 과정이야 어쨌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부하들을 살려 준 이를 더는 쫓을 수가 없었기에, 적절히 진실과 거짓을 섞어 상관의 추적 의지를 단념시켰다.

그게.

이 부대의 지휘관으로서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대가였다.

뭐.

이로써 ‘임명’과는 멀어졌겠지만.

“상관없다.”

정 하사는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아마.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은 결말을 택하리라. 물론 그렇다고 이 엔딩이 결코 해피 엔딩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자존심을 제대로 구겼다.

상대에게 목숨을 동정받을 정도로.

그러니.

“다음에 다시 만난다면…….”

언젠가 다시 부딪치게 된다면.

그때에는 180도 달라진 능력을 보여 주리라고, 산중 제왕이라는 호랑이마저 사냥하는 대착호 부대의 강력함을 당당히 증명하리라는 각오를 몇 번이고 가슴에 새겼다.

* * *

그그그그그그긍―!!

땅이 울린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거칠게 울어 대는 지반.

그러다.

“들어 올려!”

누군가가 날카로운 고함을 치자.

“반중력장 가동!”

“염동력 전개!”

이에 화답하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지며.

그그그그그긍―!!

쿠웅!!

더더욱 진동이 증폭되더니, 이내 그 중심에서 굉음을 동반하며 나무뿌리처럼 바윗덩어리 하나가 땅속에서 뽑혀 나온다.

가로 길이만 2m에 세로와 높이 역시 각각 1m나 되는 잘 세공된 정사각형의 거대한 물체.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벽돌’이었다.

“우측으로 꺾어!! 닿는다!”

‘안전 제일’이라 적힌 모자를 착용한 중년 남성의 지휘를 받으며 그 거대한 벽돌은 날개도 없이 허공을 비행해 종래에 어딘가로 내려앉는다.

“좋아! 내려놔!”

쿵!

동일한 규격의 벽돌이 수북하게 늘어선, 일반적인 단어로는 ‘성벽’이라고 칭하는 벽의 끝자락이었다.

“각하. 어떠십니까.”

“좋군요. 아주 좋습니다.”

고층 건물 옥상.

매섭게 불어오는 겨울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지상을 굽어보는 남자.

신(新) 한국의 초대 대통령 이회건은 마지막 조각이 채워지며 완성된 성벽에 환한 미소를 보였다.

두 달 전.

외유를 나가던 중에 갑작스레 나타난 괴물들에게 습격을 당하며 겨우 목숨만 건졌던 그날.

지난 수십 년간 힘겹게 쌓아 올렸던 기반과 영광이 한순간에 무너지며 삶의 의지까지 흔들렸던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의 풍경이 참으로 감개무량했다.

“앞으로, 우리는 이 신(神) 한국의 수도 한양에서 모든 걸 다시 시작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인지.

입 밖으로 절로 감성적인 말들이 튀어나온다.

“지금은 겨우 직경 1km도 안 되는 자그마한 영토지만, 반드시 본래의 영토를 회복함과 동시에 반도를 넘어 그 옛날 선조들이 행하셨던 영광을 재현해 낼 것입니다.”

어릴적 ‘광개토태왕전’을 읽으며 꿈꿔 왔던 야망까지도.

그는 지구에 닥친 종말이라는 키워드를 영 나쁘게만은 보지 않았다.

세상이 이리된 덕분에.

항상 가슴 한쪽에 묻어 두었던 욕망을 현실화시킬 합법적인 기회를 손에 넣었기 때문이었다. 반도라는 좁은 땅덩어리 밖으로 나가 세계 곳곳에 깃발을 세울 ‘정벌의 기회’를 말이다.

자신?

당연히 있었다.

“그 무한한 영광을 이룩하는 첫 번째 기수는 제가 될 것입니다.”

“어허, 내가 있는데 감히 누가 감히 첫 번째 기수를 맡을까!”

“두 분은 가서 잠이나 주무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마 저 때문에 나설 일이 없으실 테니.”

“다들 자신만만하시니 한번 기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제게 그 영광을 가져다줄 터인지.”

서로 먼저 나서지 못해 안달인 이들.

신(新) 한국의 중추가 되는 각 기관의 수장들이 죽음이라도 불사할 기세를 내보이고 있었으니까.

안타깝게도.

‘임명’이라는 고유 능력의 영향으로 빚어진 반쪽짜리 충성심이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반쪽짜리건 아니건.

한번 손아귀에 들어온 이상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할 테니.

“저는 여러분만 믿겠습니다.”

본인은 그저 점차 더욱 거대하고 튼튼하며 화려하게 꾸며질 성의 주인이자 나아가 이 나라의 왕(王)으로서 걸리적거리는 건 모조리 짓밟으며 군림하면 된다.

“예! 전하!”

이 순간을 기점으로 변해 버린 호칭처럼.

* * *

“으어어어어어어!!”

“합!”

우우우우웅!!

서걱!!

족히 3m는 될 듯한 거인의 상반신이 금빛 마력을 머금은 대검의 일격에 깔끔하게 잘려 나간다.

쿵!

20대 중후반으로 추정되는 청년은 쓰러져 가는 거인의 시체 앞에서 칼날을 회수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형님! 모두 안전합니다!”

“형님이 뭐야, 형님이. 마스터라고 부르라니까?”

“어휴. 그 호칭 좀 어떻게 안 되겠냐? 오글거려서 손발 없어지겠다.”

“뭐?”

“아아, 시끄러, 시끄러. 경계조랑 교대하러 갈 거니까 비키셔요, 아주머니.”

“…야! 유하늘!”

정답게 다투는 동료들과.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거인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뻔했던 이들이 한데 모여 참 보기 좋은 광경을 그려 내고 있었다.

누군가를 도왔을 때만이 마주할 수 있는 장면에 싱긋 웃은 청년은 다시금 정면으로 시선을 고정하며 팔을 쭉 내밀었다.

다친 이 없이 전투도 잘 마무리됐겠다.

얼른 추출 작업까지 끝내고 돌아가서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그랬는데.

“……!”

‘추출’이라는 두 글자만 내뱉으면 되는 상황임에도 청년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마스터! 추출 작업하고… 마스터?”

‘성십자가 클랜’의 부마스터인 황선아가 일대 정리를 끝내고 다가올 때까지도.

왜 그러는 것일까.

평소의 총기 넘치는 눈빛과 달리 멍한 청년에게 혹시 전투 중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걱정되는 마음에 손을 뻗던 그녀는 무척 놀라고 말았다.

“마스…터?”

청년이 울고 있었던 탓이었다.

어디서 났는지 모를 ‘새하얀 보석’을 쥔 채로.

“선아야. 우리 할 수 있을 것 같아. 모두를 구하는 일.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해 낼 방법. 찾았어.)

‘성십자가 클랜’의 창립 이념을 읊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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