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 * *
“진입하겠습니다!”
정 하사의 명령이 떨어지자 망설임 없이 물로 질주하는 1소대 병사들.
착호 부대의 해자 파훼법은 간단했다.
“얼립니다!”
쩌저저저적!!
쩌저저적!
물 한쪽을 아예 얼려 없던 길을 개척하는 것.
부대 내에 빙결계 능력자가 셋이나 포함되어 있기에 시도할 수 있는 진격법이었다.
길이가 길이인지라 해당 병사는 상당량의 마력 소모를 감수해야 하겠지만, 정 하사와 부대원들은 전우를 살리는 데에 초점을 맞추자는 마인드로 길을 열었다.
그 덕택에 빙판길을 타고 30m에 달하는 간극이 서서히 좁혀져 갔다.
‘조금만 버텨라!!’
점점 간격이 줄어들어 근 5m 언저리까지 줄어들었을 즈음.
칼자루를 굳게 움켜쥔 정 하사가 허연 입김이 새어 나오는 걸 무시하며 한 걸음 크게 내디뎠다.
이에.
척!
척!
따로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알아서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은 자세로 손바닥을 모아 발판을 대 주는 병사 둘.
밟고 뛰라는 무언의 연계에 정 하사는 지체 없이 빙판을 박찼다.
탁―
후우욱!!
붕 뜨는 몸.
단숨에 몇 미터를 도약해 창문틀에 올라선 정 하사는 단단히 잠긴 유리창을 부수며 허리춤에서 꺼낸 조명탄을 터트리고 매의 눈으로 내부를 훑었다.
부디.
살아만 있어 달라는 염원을 내비치며.
“어디, 어딨는 거냐…….”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 하사의 안색은 점점 파리해져 갔다.
“유 상병! 최 일병!”
시야에 잡히는 건 오로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넘실거리는 물이 전부였을 뿐.
수영장 어느 곳에서도 부하들의 시신은 고사하고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정해야만 했다.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안 좋은 상상들이 현실이 되었음을.
그러다 보게 되었다.
그어어어어어―
“키에에에에엑!!”
후우우욱―
퍼어억!
때마침.
허공에 자리한 균열을 빠져나오던 거미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출현해 유유히 물살을 가르며 수영하는 괴물을 목도한 정 하사의 눈동자에 불길이 일었다.
저 빌어먹을 놈들에게 아무런 저항 한번 해 보지 못하고 그저 고통만 받다 죽어 갔을 부하들을 떠올리니 치미는 분노로 전신의 피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참을 수 없었다.
아니.
참아선 안 된다.
“전원, 공격 준비.”
정 하사는 시체 한 조각 남기지 않고 떠난 부하들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칼을 들었다.
어쩌면.
사죄였을지도 몰랐다. 자신같이 머저리 같은 지휘관을 만나 유명을 달리한 부하들에게 속죄하기 위해서라도 제물이 필요했다.
“단 한 마리도 남기지 않겠다.”
* * *
“키에에엑!!”
슈수수수수숙―!
카가가강!!
또다시 빗발치는 사창.
[마력 방패]
우우웅―
나는 누적되는 대미지를 버티지 못하고 부서지려 하는 방패를 새로 갈며 아라운다들을 어떻게 끄집어내야 좋을지 고심했다.
최고의 비책은 방금 전처럼 포박 그물을 역이용하는 것인데.
‘두 번은 안 당한다 이건가.’
한 번 된통 당하며 학습이 됐는지.
아라운다들은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을 뿐, 공격을 나서는 건 원거리 포격이 되는 기수 아라운다밖에 없어 벌써 몇 분째 지지부진한 공방전만 거듭되는 중이었다.
흡사.
무엇이든 뚫는 창과 무엇이든 막는 방패의 대결같이.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굴면서도 놈들이 이런저런 태도를 보이는 까닭은 꽤나 단순했다.
쏴아아아아아―
‘10m. 코앞까지 다가왔군.’
물.
지원군의 등장과 함께 급속도로 불어나고 있는 물이 내게 닿기를 노리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육지로 나가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으니 확장되는 영역에 맞춰 싸우겠다는 전략 같았다.
아마.
‘알아봤나.’
눈치챈 듯했다.
고치를 풀어 헤치는 한세정과, 그녀가 그리 행동할 수 있게끔 전투에 휘말리지 않도록 앞을 지켜 주는 나.
바로 도망쳐도 이상할 게 없는 데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는 우리를 보며.
저 미개봉 상태의 고치에 갇힌 누군가를 찾을 때까지는 결코 도주하지 못한다는 것을. 본래 행성에서도 이런 일을 자주 겪었을 테니 그 정도 추론쯤은 쉽게 해냈을 터였다.
‘골치 아프게 됐네.’
탁―
우우웅―!
다시금 1m가 줄어들어 이제는 팔다리를 뻗으면 충분히 닿을 만한 거리까지 침범한 물살에 슬그머니 뒷걸음질 친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발바닥에 마력을 응축시켰다.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를 시전해 곳곳에 바위를 세워 격류의 흐름을 지연시켜 보고자.
시전자 지정 형식이 아닌지라 쓸모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 전장에선 아직 선보인 적 없는 능력이니 아라운다들도 함부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아윤 씨! 찾았어요! 재우 씨예요!!”
그러던 차였다.
한세정에게서 고대하던 목소리가 전해진 건.
“드디어.”
마침내.
조이령에 이어 곽재우까지 발견했다는 소식에 입가에서 안도의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다른 것보다.
이로써 이제 이 비루하고 지루한 전장을 빠져나가도 된다는 사실이 특히 날 더 기분 좋게 했다.
그 활기찬 감정을 담아 소리치니.
“얼굴 확인했으면 나머지는 두고 우선 안전한 장소로 옮기시죠!”
“네!”
한세정이 조이령을 안아 들고서 황급히 던전 바깥으로, 아라운다들이 절대 닿지 못할 곳으로 뛰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후우욱―
쿵―
나도 뒤로 한 발 크게 내디뎠다.
조이령을 내려 두고 온 한세정이 곽재우를 둘러업는 즉시 ‘마력 방패’를 뿌리며 물러날 수 있도록.
곧장 몸을 돌려 내가 곽재우를 챙겨 달아나도 되겠지만, 그랬다가는 둘 다 손에 짐을 챙긴 채로 등을 내주는 최악의 형세라 눈먼 창과 실에 끔찍한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다시 수영장을 왔다 갔다 하는 개고생을 할 마음은 없으니 철저하게 안전 주의적인 퇴로를 밟아 갔다.
그러자.
“키에에엑!!”
“키에에엑!!”
“키에에엑!”
천천히 근접해 오던 아라운다들이 미친 듯이 하울링을 터트려 댔다.
한세정이 조이령을 옮기는 모습에서 뭔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본인들의 추측과 다르게 물이 닿기도 전에 우리가 퇴각할 수 있음을 인지한 것 같았다.
물론.
그래 봐야 달라질 건 없었다. 뭍으로 기어 나오지 않는 한 수중에서는 영원히 날 붙잡지 못할…….
‘잠시만.’
분주해진 아라운다들을 관찰하며 조소를 날리던 찰나.
불현듯 지금의 이 상황을 잘만 이용한다면 아라운다들을 지상으로 끌어낼 수 있으리란 생각이 뇌리에 번뜩였다.
쓸데없는 짓.
혹은 아군을 위기로 몰아넣는 바보 같은 짓이 될 확률도 존재하지만.
‘저놈을 잡는다면.’
2등급 아라운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보상이 딸린 ‘기수’ 아라운다를 사냥할 찬스였다.
무려 ‘차원 상점 생성권’을 드랍하는.
팔아서 근원석으로 교환해도 엄청난 이익을 볼 테고, 비축해 두었다가 추후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거처를 옮길 시에 사용해도 되는 보물을 두고 갈 수는 없기에.
“해 보자.”
나는 눈을 빛내며 막 조이령을 두고 돌아오는 한세정에게 외쳤다.
곽재우를 옮긴 뒤에 돌아와 군인 중에 얼굴이 개봉된 아무나 한 명만 골라 데려가는 척 연기해 달라고.
“여, 연기요?”
“이유는 나중에 설명할 테니.”
“…아, 네! 일단 그렇게 할게요!”
한세정은 급작스러운 부탁에 당황한 기색을 보였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내 계획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사이.
“…키에에에엑!!”
어느덧 5m 안팎까지 차오른 물에 맞춰 서서히 전진해 오는 기수 아라운다.
혹여라도 내가 도망칠까 걱정스러운지 조바심이 가득 담긴 놈의 눈동자가 사방팔방으로 데구루루 굴러다닌다.
이에 나는 속으로 미소를 띠며 한세정을 기다렸고.
“아윤 씨! 맨 끝 군인으로 갈게요!”
기어이 곽재우마저 숨겨 놓고 복귀한 한세정이 이름 모를 군인을 둘러메고 다섯 걸음 정도 뛰었을 무렵.
후욱!
나도 확 회전하며 그녀를 쫓아 발을 뻗다가.
타닥―
콰앙!
바닥을 굴렀다.
당연히.
보여 주기식 슬랩스틱이었다.
뭍이긴 하나 달아나다 쓰러진 먹잇감, 과연 이런 날 두고 너희는 끝까지 영역이 확장되기만을 바랄 것이냐 라고 묻는 그 질문에 대해.
“키에에에에엑!!”
촤아아아악!!
“키에에엑!”
“키에에엑!”
다행스럽게도 놈들이 내린 답은 내가 바라마지 않던 그림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수중 생물의 강점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수중 생물의 약점을 드러내는 한이 있더라도 결단코 나는 놓치지 않으리란 투지를 발산하며 육지로 올라온 것이다.
씨익―
장포 아래 감춰진 미소를 보지 못한 채.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
쿵―
쿠구구구구궁!!
【 기적을 보았다 】
“키에에에엑!!”
콰직!
구슬픈 비명 위로 얹어지는 파육음.
단 10초.
1분도, 10분도, 한 시간도 아닌 고작 10초 만에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린 공간에서 먹잇감, 탈취범, 동족 살해자 등등 살의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을 목전에 두고 하나둘 쓰러지는 괴물들.
“키에에에에엑!!”
이 지옥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건 기수 아라운다가 유일했다.
놈은 처음 경험해 보는 기술임에도 우월한 육체 능력을 바탕으로 갈라지는 대지를 건너고, 치솟는 바윗덩어리를 피하며 어떻게든 내게 접근하려 애썼다.
깨달은 것 같았다.
함정에 걸렸음을, 한번 지옥에 발을 들인 이상 빠져나갈 구석은 없다는 걸.
그렇기에 생존은 됐으니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날 저승의 동반자로 데려가고픈 모양이었다.
참.
[플뤼의 탄성 일격]
[베어 내기]
안타까운 발악이었다.
후우우욱―
서걱!!
“키에에에엑!!”
털썩―
쭉 뻗은 손톱이 기수 아라운다의 다리 세 개가 잘라 낸다.
그로 인해 균형을 잃고 추락하는 몸뚱어리.
하필이면 굴러도 암석이 튀어나오던 위치로 구른 탓에 놈의 뱃가죽이 짓눌리며 주둥아리에서 비명 대신 핏물이 비산한다.
“키에엑, 케엑―”
충격이 큰 듯.
쓰러진 이후에도 한참을 부들거리며 각혈하는 놈.
우우우웅―
나는 그 처량한 광경에도 오른팔에 마력을 모았다.
최후의 최후까지 방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손해 볼 건 없었으니까.
[오르그의 파괴 본능]
후우우욱―
콰아아앙!!
[축하합니다!]
[종족 「아라운다」의 ‘기수’를 사냥했습니다.]
[그에 따라 당신에게 약속된 보상이 주어집니다.]
‘됐다.’
폭발이 한차례 휘몰아치고.
묵직한 파열감과 함께 올라오는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비로소 전투가 마무리됐음을 확인한 나는 그제야 긴장을 풀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보상으로 ‘차원 상점 생성권 ― Lv. 1’를 습득합니다.]
내가 고대했던 보물이 들어 있었다.
다만.
기뻐하기는 일렀다.
[축하합니다!]
또 다른 축하 메시지가 눈앞을 채우고 있었으니까.
[당신이 보유한 「열쇠」의 개수가 세 개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아카식 레코드」에 당신의 새로운 ‘정보’가 기록되었습니다.]
[특수한 조건을 달성한 당신에게 ‘기적의 조각’을 지급합니다.]
[특수 조건 : ‘기수 사냥’ 이벤트 진행 중 「열쇠」 세 개 확보 / 최초 열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