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 * *
2등급 개체는 보유한 기술이 두 가지다.
투르바가 그랬고, 프라구스가 그랬듯이.
물론.
‘등급 단위와 보유 기술 개수는 동일하다’라는 공식이 무조건적으로 성립한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높은 확률로 그러하리라 짐작할 따름이지.
세상은 넓고, 외계 생명체 종(種)도 매우 매우 다양한 만큼 어떤 개체는 1등급인데 보유 기술이 네댓 개일 수도 있고, 또 어떤 개체는 상위 등급이면서도 보유 기술이 하나일 수도 있다.
각 종(種)의 괴물들을 등급별로.
거기에 더해서 상대의 기술이 상시 적용되는 패시브 형태인지 자의적 발동에 의한 액티브형인지 일일이 체크하고 공부하지 않는 한 100%이리라 확신은 가당찮은 짓.
‘네 능력은 뭐냐.’
하여.
최소 두 개이되, 재수 없으면 서너 개가 넘을 수도 있음을 주의하며 2등급 아라운다를 주시하던 그때.
촤아아악!
“키에에에에엑!!”
기습적으로 튀어나온 2등급 아라운다가 울부짖으며 하위 개체보다 훨씬 커다란 주둥아리에서 뭔가를 후두두둑 뱉어 냈다.
[마력 방패]
우우우웅!!
카가가가가강!!
‘…창?!’
예의 붉은색으로 도색되다 못해 형상화된 마력으로 인해 시뻘건 기류가 아른거리는 수백 자루의 사창(絲槍)이었다.
재빠르게 방패를 소환해 냈던 나는 흡사 수류탄이 터진 듯 비처럼 쏟아지는 창날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침을 삼켰다.
만약.
전면부에서 방패가 버텨 주지 않았더라면.
카가가가강!
과직!
퍼버벅!
원치않게 고슴도치가 될 뻔했었으니까.
“크읍!”
나는 기어코 마력 방패를 부수고 들어와 살갗을 찌른, 채 5cm가 안 되는 자그마한 창 다발에 신음을 흘리고 뒷걸음질 치며 급히 팔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툭―
투둑―
주르르륵―
상처가 벌어지며 출혈이 생기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창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1등급 아라운다의 실은 타격을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물이 되어 대상을 포박한다. 그렇다 함은 2등급 또한 추가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는 뜻인 터라 무슨 일이 벌어지기 전에 사전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예측과 달리.
족히 십여 초가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중독이 된다든가 소형 창에 어울리는 소형 그물 수십 개가 휘날린다든가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상처 입히는 것 이외에 다른 능력은 없는 건가.’
편의상 2등급 스킬로 명명한 저 기술은 공격 일변도인 듯했다.
하기야.
위력도 위력인 데다가 뭣보다 범위가 이렇게 넓은데, 부차적인 효과까지 있다면 말이 안 되지.
어딘가에는 그런 놈이 있을지도 모른다만.
“여하튼, 네가 아니라면 됐어.”
우우우우웅!!
[오르그의 파괴 본능]
[형태 변화]
[마력 권갑화]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팔에 푸른 갑주를 둘렀다.
“키에에에에엑!!”
“키에에엑!”
투우우웅!!
투우웅!
손끝에서 팔꿈치를 둘러싸는 건틀릿이 완성되는 타이밍에 붉은 실 열댓 개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방위를 노리고 들어왔다.
발사 이후에도 주둥이에서 끊어지지 않은 장사(長絲)인 걸로 보아 1등급 스킬.
본능이든 경험이든 인간이 수중에서 약하다는 걸 아는지 날 포박해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겠다는 의지에.
‘어딜.’
스윽―
나는 오른발로 반원을 그리며 감각에 집중해 붉은 실들이 날아오는 방향을 따라 날파리를 잡는 것처럼 양팔을 쭉 내리그었다.
툭―
투두둑―
‘여섯, 일곱, 여덟.’
쫙 펼쳐진 손아귀로 들어오는 몇 개의 실.
건틀릿 아래로 감춰진 맨살에 짱짱한 장력과 탄력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나는 그것들을.
[스트랭스]
우드득―
우득―
“후아!!”
힘을 주며 그대로 꽉 틀어쥐고 끌어당겼다.
저놈들을 지상으로 불러내도록.
본래라면 그물이 되었어야 할, 하여 날 수중으로 처넣을 덫이 되었어야 할 실들을 되레 내가 역이용하는 것이다.
힘겨루기 하나는.
“흐아아아아!!
푸화하하하학!!
푸화하하학!!
결코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쿵!
쿠궁!!
“키에에엑!!”
“키에엑!”
강제로 육지 공기를 마시게 된 물거미 아라운다들이 괴성을 지른다.
포효보다는 비명에 가까운 음성에 나는 입꼬리를 비틀며 비릿한 미소를 띠고는 최단 거리부터 주먹을 떨어뜨렸다.
[돌진]
후우우우욱―!
콰앙!
“키에에에―”
일자로 쭉 뻗어 낸 권격에 대가리가 짓뭉개진 아라운다 한 마리가 괴로운 신음을 토해 내며 나가떨어진다.
안면이 와그작 찌그러진 게 더 볼 것도 없이 즉사.
“키에에에에엑!!”
“키에에엑!!”
슈슈슈슈슉―
쿵―
쿠구구궁!!
그 처참한 죽음에 아라운다들은 제 동족의 원한을 갚고자 하는지.
칼날처럼 날카로운 여덟 개의 다리를 놀려 찌르고 베는 등 잔뜩 흥분해서 내게 달려들어 왔다.
단지.
“키에에에엑!!”
슈화하학!
칵!
설령 2등급 아라운다일지라도 내 속도를 따라오지 못해 애꿎은 바닥만 때린다는 게 문제였지만.
혹은.
기껏 내 속도를 쫓아와 한 방을 먹이더라도.
“그 정도로는.”
푸헤에에엑!
“키에에에엑!!”
“흠집도 못 내.”
하필이면 마력으로 이루어진 권갑에 닿아 외려 갈가리 찢겨 나갈 뿐.
내 육체에 휘감긴 마력 건틀릿은 방호력을 얻고자 설계한 ‘방어구’가 아니라 태생부터 적을 압살하려 개발된 ‘무기’였기 때문이었다.
양날의 검.
잘못 활용했다가는 스스로 화를 부르는 병기였다.
후우우우욱―
콰아아아!!
“케에엑!”
또 한 마리가 반쯤 찌그러져 땅바닥을 나뒹군다.
어느새 일곱 마리.
눈 깜짝할 새에 스무 마리쯤 되던 숫자에서 3분의 1일이 초주검이 되어 나뒹굴자 상당히 당황해하는 아라운다들의 표정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시나무처럼 흔들리는 여덟 개의 동공.
그 무렵.
“…이령아!!”
피칠갑이 된 손으로 고치를 풀어 헤치던 한세정에게서 반가운 이름이 울려 퍼졌다.
드디어 조이령을 발견한 것 같았다.
체구가 비슷한 군인이 둘 정도 끼어 있던 데다가 고치화되면서 남녀라 할지라도 덩치로는 구분이 잘 되질 않아 시간이 좀 걸렸지만, 어쨌든 이제 곽재우만 찾으면 된다.
슬쩍 뒤쪽을 돌아보니 개봉하지 못한 고치도 다섯 개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활기가 도는 장면에 나는 한층 기세를 올리며 한 걸음 크게 내밀었다.
쿵!
잔잔하나 묵직한 울림이 전장을 흔들자.
“키에에에에엑!!”
이대로 싸워서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2등급 아라운다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다.
그러자.
“키에에에엑!!”
“키에에엑!!”
기수를 따라 일제히 함성을 지르는 아라운다들.
‘뭐지?’
뜬금없는 단체 행동에 이마를 찡그린 내가 언제든 반격하거나 퇴각할 수 있게 마력을 순환시키는 순간.
“키에에에엑!!”
“키에에에엑!”
“……?!”
거짓말처럼 수영장 내부에서 메아리 같은 하울링이 되돌아오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오뉴월 갈대밭에 불길이 번지듯 삽시간에 폭증하는 아우성.
‘아.’
이 순간에 수영장에서 목격한 ‘공간의 통로’가 생각나는 건 어째서일까.
아마.
쿠웅―!
[〈던전 : 파도 속의 고치〉의 ‘던전 전용 스킬 : 지원 요청’이 발동되었습니다.]
[해당 던전과 연결된 행성 ‘패디카(Pedica)’로부터 지원군이 전송됩니다.]
[‘던전 전용 스킬’은 발동 이후 〈차원 : 테라〉의 시간으로 일주일간 봉인됩니다.]
눈앞의 사태와 관련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직감한 것이리라.
“젠장.”
던전 전용 스킬이라니.
설마 저런 어처구니 없는 전용기가 존재할 줄이야. 정말이지 별 지X 맞은 능력이 다 있었다.
그치만.
“키에에에엑!!”
“키에에엑!”
감상 평이나 늘어놓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지구로 넘어온 아라운다들이 기존의 아라운다들과 합세해 거대한 무리를 구축하며 내게 달려드는 중인 데다가.
“키에에엑!!”
“키에엑!”
‘…돌아?’
일부는 좌측으로 항로를 꺾어 날 지나치려 했기에.
숫자도 늘어났겠다.
탈취당한 먹잇감도 되찾을 겸 이참에 무방비한 모습으로 고치를 뒤적거리는 한세정까지 공략하겠다는 의미였다.
‘이런……!’
그 전방위적인 진격에 얼굴을 구긴 나는 찰나 간에 머릿속으로 수많은 고뇌를 거듭했다.
해 왔던 대로 버티자니 한세정이 위험해 보이고, 그녀를 지키고자 물러나자니 오히려 수십 마리의 합공을 받게 될 듯한 처지였으니까.
진퇴양난.
어느 쪽을 골라도 오답이 될 듯한 처지에.
‘어쩔 수 없다.’
그나마 최선의 결단을 내렸다.
한세정에게 조이령을 맡기고 내가 나머지 미개봉 고치 다섯 구를 한꺼번에 옮기는 쪽으로.
가능할는지는 미지수이나.
‘순간 회귀’로 양팔의 압축을 해제하며 크기를 불려 감싸 안는다면 어찌어찌 시도해 봄 직하리라.
후우우욱―
‘좋아.’
결정을 마친 나는 곧바로 자리를 벗어나고자 무릎을 굽혔다.
허나.
막상 걸음을 떼지는 않았다.
“공격해!!”
“다 죽여 버려!!”
콰아앙!
화르륵!
난데없이 친 천둥과 벼락이 이빨을 번뜩이며 아라운다들의 후방을 들이쳤기 때문이었다.
‘착호 부대?’
휘황찬란하게 번쩍거리는 불빛.
그건 다름 아닌 착호 부대 군인들이 아라운다들의 뒤통수를 노리고 뻗어 낸 창칼과 마력의 합작품이었다.
이에.
‘…뭐지?’
물음표부터 떠올랐다.
보물은 여전히 내게 있고, 꾸준히 전해진 폭음에 우리가 멀지 않은 곳에 생존해 있음도 파악했을 터였다.
그러니.
뒤 치기를 하려면 아라운다 진영이 아니라, 놈들과 격렬하게 부딪치는 우리를 노려야 맞을진대.
‘대체 왜……?’
덕분에 한세정들에게 돌진하던 아라운다들이 본대로 급격히 회군하게 되면서 셋의 안전이 확보돼 나로서는 나빠질 게 전혀 없었지만.
도통 의아한 눈빛을 지울 수가 없었다.
딱.
“복수하는 거다!! 저 개자식들을 단 한 마리도 살려 두지 않는다!!”
정 하사의 쩌렁쩌렁한 고함이 귓가를 두들기기 전에는.
“아.”
복수.
그 짤막한 단어 하나에 점점 더 선명해지던 의문 부호가 단숨에 느낌표로 바뀌었다. 부차적인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저들의 심리가 너무나도 깔끔하게 이해가 돼서.
이러한 결과를 노리고 착착 설계한 건 아니었지만.
수영장에서 고치를 전량 거둬 온 행위가 저들에게 ‘동료가 보이지 않는다=동료가 잡아먹혔다.’라는 인식을 심어 준 듯싶었다.
그래서 나를 제쳐 놓고서라도 아라운다들을 멸절시키려 날뛰는 거겠지.
“허.”
예상치 못한 기묘한 장면에 헛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다만.
웃는 것도 잠시였다.
“키에에에에엑!!”
“키에에엑!!”
“키에에엑!”
아직 내 앞에는 열댓 마리가량의 아라운다들이 남아 있었다. 한가로이 웃고 싶다면 저것들부터 정리해야 했다.
개중에는.
“키에에에엑!!”
슈슈슈슈슈슈슛―!
후방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내게 살기를 줄줄 흘려 대며 재차 사창을 분사해 대는 2등급 아라운다도 있었기에.
[마력 방패]
[마력 방패]
우우우웅―!
우우웅―!
카가가가강!!
방심은 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