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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71화 (71/232)

71화

다행이었다.

아라운다의 특성인지, 혹은 단순히 먹잇감을 많이 잡지 못해서인지 어느 쪽이든 간에 운이 좋게도 고치는 전부 제일 깊숙하게 설치된 기둥에 옹기종기 매달려 있었다.

숫자는.

‘여덟, 아홉 개인가……?’

빛이 거의 없는 탓에 확실하진 않으나 대략 열 개 남짓. 곽재우와 조이령에 방금 끌려간 군인들까지 더하면 얼추 들어맞는 수였다.

그 전에 끌려간 사람은 없는 걸까?

예상외로 적은 개수에 혹시 놓친 고치가 있나 다른 기둥을 다시금 살펴보았으나 일단은 체크가 되지 않는다.

‘…하긴.’

의아했지만 납득이 갔다.

식당이라든가 가정집처럼 식량을 구하기에도,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청할 만한 장소로도 마땅치 않아 웬만해서는 누가 찾아올 구석이 없으니 평소에는 배곯으면서 살아온 듯했다.

이에.

허기에 성이 난 놈들이 둘을 먹어 치우기 전에 데리고 나가야겠다고 여긴 나는 허리춤을 더듬어 무전기를 들었다.

“세정 씨.”

한세정을 여기로 부르고자.

저 고치들 중 뭐가 곽재우고 조이령일지 확인이 불가능해 모조리 죄다 끌고 가야 하는 만큼 나 혼자서는 어려우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 네?

“찾은 것 같습니다만, 세정 씨 도움이 필요합니다.”

- 가, 갈게요! 어디 계세요?!

그 연락에 한세정은 ‘고주파 신호기’만 한번 찍어 달라며 당장 달려가리라 소리치고는 무전을 딱 끊었다.

실제로도.

번쩍―

탁!

“…아윤 씨!”

채 3분도 걸리지 않아 허공을 가르며 내 곁에 나타났다. 등장과 동시에 눈을 부라리며 주변을 돌아보는 그녀.

어딘지 알려 주기만 하면 즉시 난입할 분위기에 나는 기둥을 가리키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다른 것보다.

“세정 씨, 마력이 얼마나 남으셨습니까?”

현재 마력 잔량에 관하여.

내가 한세정을 부른 이유, 그녀가 해 줘야 할 역할은 견인이었다. 저 고치들을 한꺼번에 옮길 견인 차량.

허나.

이를 수행하는 데 소모될 마력이 무지막지할 게 뻔한 데다가 최악에는 이러한 작업을 몇 번 더 해야 할 수도 있기에 부족하지는 않은지 사전에 알아야 했다.

“다 옮겨야 한다면… 한 번, 그 이상은 안 돼요.”

대답은 반반이었다.

단발성으로는 가능하되 연속적으로는 불가하다.

음…….

“그럼 반드시 저 안에 두 사람이 포함되어 있기를 바라야겠군요.”

“…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모자란 마력을 채우거나 사용한 부분을 회복시킬 수단이 존재하지 않기에 한 번에 모든 걸 건다.

나는 그리 얘기하며 체내의 에너지를 주먹에 모은 후.

“갑니다.”

[돌진]

쿠웅!

뒷일은 한세정에게 맡긴 채 몸을 던졌다.

붕 떠오르기 무섭게 살갗을 스치는 차고 습한 바람을 뭉개며 기둥을 향해 날아가는 짧은 비행.

[플뤼의 탄성 일격]

휘우우우우욱!

탁―

콰직!

수영장에 들어왔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원하는 지점에 도착하자 적잖은 소음을 일으키며 기둥을 타고 흐르는 진동.

딱히 심하다고 할 수준은 아니었으나.

“키에에엑!!”

“키에에엑!!”

조용하던 실내를 뒤흔들기에는 너끈했던 듯.

그제야 나란 침입자의 존재를 눈치채고 화들짝 놀라 괴성을 지르며 기둥으로 모여드는 아라운다들.

다만.

오랜만에 구한 먹이를 과연 누가 첫 번째로 잡아먹어야 하는가 회의라도 하는가, 아니면 지속적인 투석 활동으로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질 단체로 알아보는 중인가.

막 지구로 이송된 새로운 개체까지도 전부 입구 근처에 몰려 있었던 터라 제아무리 가속을 밟는다 해도 단박에 거리를 좁히기는 힘들었다.

그 속에는.

“키에에에에에엑!!”

[종족 「아라운다」의 ‘기수’를 발견했습니다.]

‘…기수?’

일반 아라운다보다 1.5배는 크고 밝게 빛나는 황금색 팔안(八眼)을 자랑하는 놈.

영역 설치가 끝났음에도 ‘기수’라는 특별한 신분을 가진 개체도 있었으나, 용을 쓴다고 뭐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래 봐야.’

[스트랭스]

우드드득!

‘…늦어.’

난 이미 기둥에 박힌 실을 잡아 뜯고 있었으니까.

콰직!!

왼손으로 몸을 고정한 채 근력이 강화된 오른팔을 뻗어 물 밖으로 끌어내는 아홉 개의 고치.

하나하나가 최소 50kg을 넘어가는 무게이기에 순간적으로 도합 7~800kg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중량이 내 팔 근육을 찢어발길 것처럼 옭아맸지만 개의치 않았다.

“…크으아아아아아아!!”

이를 악물고 내비치는 필사의 각오로 도전할 뿐.

투둑―

툭―

종래에는.

이겨 낼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흔히.

영장류 중 최강의 괴력을 가진 종(種)으로 꼽히는 ‘로랜드 고릴라’도 성공해 낸 800kg대 데드 리프트.

그렇다면 전 차원을 통틀어 ‘최악의 괴물’이라 지칭하는 ‘프레데터’인 나 역시도 900kg대의 중량을 감당치 못할 리가 없었다.

다른 육체도 아닌.

고릴라과 괴물인 ‘오르그’의 육체를 이식한 오른팔과 지금껏 쌓아 올렸던 성장력에 비현실적인 현상을 실제화시키는 마력.

“으아아아아아!!”

난 그 세 가지에 올인했고,

쿠구구궁―

푸화하하하하학!!

기어이 원하는 것을 손에 쥐었다.

“…세정 씨!!”

물보라를 휘날리며 솟구치는 고치들을 공중으로 내던지며 한세정을 불렀다.

그러고는.

기둥을 손바닥으로 밀며 벽으로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이제 탈출할 시간이었다.

[오르그의 파괴 본능]

콰아아앙!!

푸른빛이 휘감긴다 싶은 찰나에 폭음을 동반하며 콘크리트를 허무는 주먹.

직경 5m가 넘는 균열이 생성되자.

쿠구구구구궁!!

쏴아아아아아아!!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구간이라 고이고 고이기만을 반복하며 수압의 증폭으로 이어지던 수영장 최심처의 물줄기가 일순간 급류를 형성하며 외부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풍덩!

난 그 격류에 휘말렸고.

번쩍―!

텁!

“아윤―”

촤아악!

뒤이어 한세정도 한 손으로는 고치를 꽉 틀어쥔 채 아슬아슬하게 내 장포 끝자락을 붙잡으며 함께 격류 속으로 뛰어들었다.

사나운 물길은 우릴 단박에 건물 밖으로 내던지더니 이내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밀어냈다.

‘세정― 씨……!’

난 그 급격한 흐름 안에서 한세정을 향해 팔을 휘저었다.

고치를 확보한 뒤.

어떻게 도망쳐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다 선택한 급류.

물의 무서움을 알기에 가급적이면 수중으로는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으나, 도무지 이 루트 외에는 저 무거운 고치들을 운반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불가피하게 입수를 택한 상황.

그러나.

이대로 가다간 우려하던 대로 호흡과 부딪침 등의 난관에 직면할 것이기에 마냥 안전한 위치로 이동되기만을 바랄 수는 없는 바.

‘아윤 씨!!’

하여.

여기까지 시나리오가 잘 이행된다면, 그다음에는 서로 손을 마주 잡아 완벽하게 연결되는 데 온 힘을 다하라 알렸다.

텁!

꽈아아아악!!

‘됐다!’

그래야.

우우우우웅―!

[플뤼의 탄성 일격]

투우웅!!

30m나 되는 해자의 외곽까지 이동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플뤼의 탄성 일격》

- 행성 ‘라티오(Latio)’의 지배종인 「플뤼」…(중략) 소모된 에너지 양에 따라 최대 사거리 및 관통력과 절삭력이 달라진다.

내 모든 마력을 사용해서라도 말이다.

콰직!

‘닿았, 다! 흐아아아아아!!’

최대 마력의 3분의 2 이상을 갈아 넣은 끝에 왼팔이 20m 즈음 떨어진 건물에 틀어박힌 순간.

나는 뒤딸린 무게를 품에 안으며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된 듯이 물살을 가로질렀다.

급류를 등에 엎은 효과일까?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어마어마했다.

중간중간 전기가 끊긴 가로등이나 전봇대, 혹은 아무렇게나 방치된 차량같이 여기저기서 장애물들이 튀어나왔지만.

[마력 방패]

우우웅!!

촤르르륵!

쾅!

무엇도 우리의 전진을 방해하지 못했다.

“키에에에에에엑!!”

“키에에에엑!!”

이는 뒤에서 쫓아오는 아라운다들도 마찬가지였다.

[마력 방패]

[마력 방패]

[마력 방패]

우우우웅!

우웅!

마력을 아끼지 않고 연달아 소환해 낸 방패가 놈들이 추격하며 쏘아 대는 붉은 실만 떨쳐 준다면, 거리로도 속도로도 한 수 위인 우리가 잡힐 일은 없었다.

‘후아아!’

퍼억!

촤아아아악!!

마침내.

수면을 뚫고 지상에 우뚝 설 때까지.

[마력 방패]

후우우욱―

쿵!

‘플뤼의 탄성 일격’을 회수하는 반동으로 솟아오르며 남은 10m가량의 해자를 파훼하고 육지에 도달한 나는 혹여라도 떨어지는 충격에 한세정이나 누가 다치지 않도록 방패를 어깨에 부착하며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허어어업, 하아…….”

신선한 공기가 코끝에 닿음을 인지하자마자 서둘러 들이마시는 산소.

비강을 지나 폐로 넘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정신을 차린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한세정이, 또 아홉 개의 고치가 모두 무사한지 확인하고자.

“켁, 켁― 하아아…….”

우선.

가장 중요한 대상인 한세정은 마력을 과하게 끌어 쓴 것과 한겨울 날씨에 물에 들어갔다 나온 게 합쳐져 얼굴이 창백해지긴 했어도 큰 부상은 없어 보였다.

“세정 씨! 어서!”

그에 안도한 나는 다시 물가로 발을 뻗으며 한세정의 이름을 외쳤다.

뭍으로 나왔어도 완전히 탈출한 건 아니다.

저 중에 조이령과 곽재우가 어딨는지 찾아야 하고, 그러는 동안 먹잇감 탈취로 열불이 난 아라운다들을 막아야 한다.

여차하면.

제 동료들을 잃고 분통이 터진 착호 부대 군인들까지 감당해야 했고.

그러니.

잠시라도 어영부영할 새가 없었다.

“하아, 하… 네!”

한세정도 이 점을 명확히 알고 있기에 거친 숨을 토해 내면서도 고치를 끌어당겨 안면부를 풀어 헤치려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수중에 놓아도 물 한 방울 들어가지 않는 아라운다의 정교한 고치 기술은 어지간히 튼튼하고 질겨 해체하기가 쉽지 않았으나, 그녀는 손톱이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안간힘을 다했다.

친구이고, 동료인 둘을 구하는데 손톱 따위야 별게 아니라는 듯.

“와라.”

꽈아아아악―

그렇기에.

나 또한 전신에 힘을 주며 굳건하게 섰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으며, 결단코 무너지지 않으리.

푸화하학!

“…키에에에에엑!!”

“하아아!!”

[오르그의 파괴 본능]

우우우웅!!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전장으로 일격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앙!!

* * *

“이런 X!”

정 하사는 ‘하와이 수영장’ 안쪽으로 사라지는 병사들을 보며 분노를 터트렸다.

다 잡았다고 생각해 방심한 게 패착이었다. 보물이 눈앞에 다가왔음에 눈이 멀었던 것 같기도 했다.

원인이 무엇이었든.

놓쳤고, 더불어 당했다.

콰앙!

“소대장님! 저쪽에서 폭발음이 들렸습니다!”

부하들을 물속으로 내던지고 도주한 황금 고블린은 기껏해야 50m도 달아나지 못해 바로 위치가 특정됐지만.

“…젠장.”

돌격 명령을 내려야 할 정 하사의 시선은 수영장으로 가 있었다.

보물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피붙이나 다름없어진 부하들보다 대단하지는 않았다. 상관이 들으면 경을 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24시간 부대끼며 작금의 지옥을 버텨 온 정 하사에게는 그랬다.

“…끌려간 병사들부터 구한다.”

하기에.

정 하사는 잠깐이나마 보물을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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