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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70화 (70/232)

70화

* * *

“2시! 2시 방향입니다!!”

‘젠장, 평범한 놈들은 아닐 거라고, 예상이야 했지만……!’

타닷!

탁!

후우우욱!

정 하사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소모되는 마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추적 능력을 발휘하는 병사의 뒤를 쫓으며 연신 욕을 뱉어 냈다.

야심 차게 마련한 포위망이 너무나도 가볍게 허물어진 데다가.

부대 내에서도 방어력만큼은 최고라 자부하던 방패수 둘이 황금 고블린의 일격을 당해 내지 못했다.

심지어.

“송 병장은! 아직 통신 들어온 거 없어?!!”

“예! 아직입니다!”

“이런 X!”

개중 송 병장은 아예 사경을 헤매고 있으며, 더욱 최악인 건.

“이번엔 1시 방향입니다!!”

“뭐가 이렇게 빨라, 씨X!”

착호 부대 에이스라는 1소대 전원이 전심전력으로 추격하고 있음에도 여태껏 아무 성과가 없다는 점이었다.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는 걸 넘어 황당할 지경이었다.

아무리 보물을 손에 넣을 정도로 실력이 있는 놈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그렇지. 고작 하나를 못 잡는다니!

도저히 욕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더 빨리! 더 빨리 달려라!!”

채찍질.

이러다 놓치겠다 싶어진 정 하사는 깊은 불안감에 병사들을 집요하게 닦달했다. 기필코 가져와야 하니까.

물론.

따지고 보면 꼭 황금 고블린이 아니어도 되긴 한다.

놈의 말로는 ‘기수’를 처치하고 ‘깃발’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드랍된 아이템들이라 했으니, 구태여 힘들게 추격전을 벌이지 말고 직접 이벤트에 참여해 당당히 얻어 내는 루트로 가도 무방하다.

단지.

그러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게 문제지.

‘빨리 구해야 한다……! 다른 놈들이 먼저 바치기라도 하면―’

새로이 건국된 신(新) 한국 산하에는, 착호 부대만큼이나 이회건 대통령의 호감을 사려는 기관들이 널리고 널렸다.

‘임명’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에게로부터 ‘특별한 직책’을 부여받아, 수백 개의 근원석을 복용한 듯한 신체 개조와 해당 직책 전용 특수 기술이란 걸 갖기 위하여.

오직 무력만이 신분을 규정하는 세상에서 밟혀 죽지 않고 되레 밟아 죽이려면 남들이 가지지 못한 걸 가져야 되니까.

하여.

아차 하다 보면 ‘첫 공물’의 기회는 날아가 버릴 터.

‘잡는다!’

그러니.

이제 와서 다른 곳으로 선회할 수는 없었다.

‘임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첫 공물’을 차지하려면 다소 험난하더라도 제일 인접해 있는 보물 상자를 털어야 했다.

1분 1초 차이로 미래의 운명이 달라지는 게 인생이기에.

“멈추지 마라아아아아!”

매순간 병사들을 재촉해 가며 추격전을 이어 나가던 찰나.

“…저, 전방 100m 앞 목표물 발견!!”

“어디냐!! 정확한 위치 보고해!”

실력에 특화된 병사에게서 그토록 염원했던 문장이 울려 퍼졌다.

정 하사는 드디어 잡았다는 소식에 활력이 샘솟는 걸 느끼며 한달음에 선두 열로 달려갔고 이내 목도할 수 있었다.

“어디― …아?”

솨아아아아아―!!

아스팔트 위를 지나는 강물을.

【 고치 탈환 】

“아윤 씨! 저기!”

“예? 아.”

또 하나의 바윗덩어리를 쥐어 가던 차에 들린 한세정의 목소리. 고개를 살짝 들자 그녀가 수영장 입구를 가리키고 있었다.

물의 양이 감소했음을 보라는 의미.

여기저기 틈이 벌어진 탓에 분산되어 그런 것이기도 하다만, 전체적으로 훑어봐도 확실히 흘러나오는 양이 대폭 줄어든 상태였다.

수영장 내부에 괴물들이 영역을 틀었다고 해서 물이 무한대로 공급되진 않는 모양.

‘아니지.’

일전에 공지되었던 ‘업데이트’에 따르면, 설치된 깃발이 열쇠로서 작용해 영역 구축이 완료될 경우 각 행성과 ‘통로’가 연결된다고 했던 바.

고로.

양 자체는 무한대이지만, ‘패디카’에서 지구로 넘어오는 속도보다 수영장에서 외부로 유실되는 속도가 더 빠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뭐.

어느 쪽이든 나로서는 상관없었다. 덕분에 진입할 각이 나왔다는 게 중요할 따름.

“여기서는 갈라지겠습니다.”

“네?”

“저는 안쪽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세정 씨는 바깥에서 물에 딸려 나온 고치가 있는지 좀 확인해 주시죠.”

“같이 들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어차피 둘 다 해야 할 일입니다. 더구나 상황이 어떻게 급변할지 모르니 양쪽에서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아윤 씨가 그렇다면 그렇게 할게요. 아윤 씨 말 믿어서 잘못된 적은 없으니까.”

“그건.”

“그럼 가 볼게요! 몸조심하세요! 저놈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니까요!”

타앗!

유려하게 제 말을 마치고 훌쩍 하류로 내려가는 한세정.

“…….”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나는 이내 잡념을 털어 내며 수영장 입구로 직진하고자 무릎을 굽혔다.

유량이 줄어들었으나 유속은 여전히 빠른 편이라 여차하면 탈출할 각오로 왼손의 손톱을 바짝 세운 후.

“가자.”

짧은 기합을 내지르며.

“전방 100m 앞 목표물 발견!!”

“……?!”

바닥을 박차려던 그때 후방에서 우렁찬 고함이 전해졌다.

착호 부대였다.

이래저래 지연되는 사이에 따라잡힌 건가. 나는 100m쯤 떨어진 곳에서 반짝이는 랜턴 불빛에 미간을 좁혔다.

저들의 출현으로 곽재우와 조이령의 구출 확률이 낮아졌기 때문.

“…잠시만.”

무시하고 진격해야 할지, 뒤편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진행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계산하던 난 불현듯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행동을 멈췄다.

어쩌면.

“잘만 하면…….”

저들로 하여금 두 사람의 구출에 박차를 가하게 될지도 몰랐으니까.

그렇기에.

더 잴 것도 없이 곧바로 물가로 다가가 엉거주춤 ‘연기’에 들어갔다.

쏴아아아아아아―!

마치.

앞에는 물로, 뒤에는 적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척, 그로 인해 허둥지둥대는 척, 그러다 결국엔 물속에 뛰어들어서라도 도망칠까 고민하는 척.

그 정도면 충분했다.

“아, 안 돼! 잡아!!”

“옛!!”

‘됐다.’

저 녹색 물고기를 낚아 내기는.

연기력이 부족해도 괜찮았다. 보물을 빼앗으려 안달이 난 터라 적당히 도망치려는 티만 내 줘도 죽을 힘을 다해 쫓아왔으니까.

나는 그 욕망의 끈을 잡아당기며 일부러 착호 부대에게 거리를 내주었다.

조금 더 달라붙도록.

그러다.

“죽어라!!”

“으아아아앗!!”

육안으로 서로의 표정마저 알아볼 수 있는 간격에 다다랐을 때.

탁―

후우욱!

발끝으로 바닥에 반원을 그리며 몸을 회전시키고는 일말의 머뭇거림 없이 착호 부대 병사들을 향해 전속력으로 쇄도했다.

[돌진]

쿠우웅!

“어, 어? 어어…….”

“오, 온다……!”

그 난데없는 반전은 병사들을 당혹하게 했고.

후우우우웃―

타앗!

“둘.”

텁!

“어어―”

“잡혔―”

나는 그 중심에서 멍하니 눈만 껌뻑거리는 병사 두 명의 가슴팍을 확 틀어쥐었다.

그러곤.

꽈아아아아악!!

“하아!”

후우우우욱!!

후우욱!!

흡사 방금 전의 투석처럼 두 사람을 물로 내던졌다.

푸화하학!

푸확!

“으아아아아!!”

“…살려, 살려 줘!!”

어느새 수영장 건물을 기준으로 직경 3~40m에 달하는 일대를 모조리 삼켜 버린 검푸른 강에 처박혀 허우적거리는 두 병사.

다만.

누구도 그들을 구하러 가지 못했다.

[돌진]

탓―

쿠웅!

“셋.”

쉬우우우욱!

텁!

“이, 이이.”

후화하하학!!

“…이아아아아악!!

둘의 구원 요청을 받아 줘야 할 이들 역시 차디찬 물속으로 날아들고 있었으니까.

삽시간에 여섯.

“이, 이 미X놈이!!”

휴화학!!

일곱 명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반격이 나왔다.

곽재우 정도의 거구에 살집이 덕지덕지 붙은 전형적인 씨름인 상으로, 체형에 잘 어울리게 성인 남자 머리통만 한 철제 가시 공이 달린 철퇴를 들었는데 외견과 달리 상당히 민첩한 병사였다.

‘어깨.’

슈욱!

훤히 읽혔지만.

나는 돌진하던 자세를 풀지 않은 채로 상체만 확 낮춰서 철퇴를 피하며 복부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어딜!!”

병사는 제 체중에 비례하는 맷집을 과신하는 듯 내 공격을 피하지 않고 도리어 허리를 비틀어 허무하게 빗나갔던 철퇴로 되돌렸다.

참을 수만 있다면 카운터 어택을 제대로 먹일 테니 어떻게든 한번 버텨 보겠다는 의도.

시도는 나쁘지 않았다.

[스트랭스]

우드드득―

콰직!

“……!”

결과가 나빴을 뿐.

“일곱.”

터업!

후우우욱!

명치를 직격당해 기역으로 꺾인 병사의 군복 옷깃을 잡아 메다꽂는다.

퍼어어엉!!

촤아아악―!

체급에 비례해 솟구친 파문에 강물이 출렁이던 순간.

찌릿―

“…왔다.”

전신에 전류가 튀며 육감이 신호를 울렸다.

그 짜릿한 감각에 즉각 군인들에게서 관심을 거둔 나는 몸을 홱 돌려 수영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저들과 드잡이질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서 군인의 용도는 그저.

“살, 살려!! 나 수영―”

“으에에엑, 으억!”

촤아아악!!

촤아악!

“키에에에엑!!”

“키에에엑!”

아라운다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미끼.

더 정확하게는.

투우웅―

투웅―

촤르르륵!

촤르륵!

“키에에엑!!”

“키에엑!”

‘어디냐!’

저 물거미 괴물들이 새로운 먹잇감을 고치로 만든 후 어디로 가져가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재료였다.

고치를 분산시켜 저장하지 않는다면 그 근방에 곽재우와 조이령도 있으리라.

‘제발……!’

나는 그 확률에 기대어 하늘을 날았다.

[돌진]

우우웅―

“하아아!”

콰앙!

30m나 되는 해자를 단숨에 건너기란 나에게도 어려운 미션이다.

하지만.

주저함은 없었다.

확신했다.

‘닿는, 다!’

[플뤼의 탄성 일격]

우우우우웅!

투우웅―!

‘돌진’과 ‘플뤼의 탄성 일격’이 연계된다면 30m라 할지라도 건너서 건물 외벽에 매달릴 수 있으리라고.

그 ‘프레데터’로서의 자신감은.

휘우우우우우욱!!

콰직!!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후우.”

촤아아악!

탁!

시원하게 틀어박힌 손톱을 지지대 삼아 아슬아슬하게 벽에 붙은 나는 난간을 밟고 창문을 열었다.

실내 수영장 특유의 높은 층고.

일반 건물의 2~3층 정도에 해당하는 위치에 나 있는 창문을 열자 어둠이 쫙 깔린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풀장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 1층에 해당하는 3m 언저리까지 넘실거리는 물과 그 속에서 아른거리는 황금빛.

허나.

무엇보다도 내 시선을 잡아끄는 건.

그어어어어어어어―

쏴아아아아아―!!

“…저건.”

천장 부근에 쩍 하고 갈라진 공간과 거기서 쏟아지는 폭포수였다.

통로.

저 앞에 다른 행성, 다른 차원으로 이어진 통로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그걸 인지한 직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왜 그랬는지는 원인을 알 수 없었으나, 당연한 듯 일순간 넋을 놓게 됐다.

“…키에에에에엑!!”

푸확!

만일.

통로 속에서 아라운다 한 마리가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놈이 울부짖어 내 고막을 두들기지 않았다면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만큼.

‘정신 차려라, 아윤.’

나는 볼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을 닦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통증으로 일깨우는 집중력.

그 고통을 잊지 않으며 얼른 아래쪽을 응시했다.

슈우우우우욱!!

슈우우욱!

‘…있다!’

수영장 곳곳에 세워진 기둥.

내가 찾는 목표가 몰려 있는 목적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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