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던, 전?’
아무런 예고 없이 등장한 단어에 눈길이 쏠리기도 전에 검푸른 파도가 내게 이빨을 들이밀었다.
촤아아아아악!!
‘미친!’
[돌진]
꾸우우욱!
쿠웅―!
그 묵직한 공세가 당도하기 직전에 본능적으로 지면을 박차며 뒷걸음치는 육체.
굽혔던 무릎의 반동으로 단숨에 6~7m를 도약해 물결의 범위를 빠져나간 나는 땅에 착지함과 동시에 전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촤아아아악!!
“아앗!”
“세, 세정아!”
“피하십시오!”
뒤늦게 따라온 내게 신경이 팔려 있던 한세정들이 상체까지 올라오는 무지막지한 수마(水魔)에 당황한 듯 허둥지둥거리는 중이었다.
늘상 가정하고 철저하게 대비하는 괴물 또는 인간의 습격과 달리.
시가지 한복판에서 다량의 물 폭탄에 직격당하리라고는 가히 짐작조차 못 했기에.
그나마.
“부, 붙어요!”
번쩍!
저 멤버 구성원에 도망이라면 이골이 난 한세정이 들어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마.
평범한 이들이었다면,
콰앙!
촤아아아악!
제아무리 초인의 범주에 발을 딛게 된 능력자들이라 할지라도 급류에 짓눌려 생사가 불확실했을 것이다.
물이 무서운 이유는.
호흡을 막아 버리는 원초적인 제약 이외에도, 제어 불능한 상태로 나뒹구는 과정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골절 등의 심각한 부상을 초래하기 때문이니까.
더군다나.
“후. 다행―”
침수를 한 번 피했다고 해서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후확!
푸화학!
“…키에에에에에엑!!”
“…키에에엑!!”
물보라를 일으키며 파도 속에서 십여 마리의 괴물들이 튀어나와 한세정들을 덮치고 있었다.
별을 연상케 하듯 황금빛으로 일렁거리는 여덟 개의 안구를 부라리며.
‘거미?’
마치 거미와 비슷한 외형을 지닌 놈들은 생긴 대로 논다는 옛말을 여지없이 증명하며 괴성과 함께 주둥아리로 새빨간 색의 실 같은 걸 쏘아 댔다.
경황 중에 날아든 기습은 매서운 속도로 세 사람을 노렸고.
“…어딜!”
후우우욱―
서걱!
한세정은 민첩하게 칼을 휘둘러 대응했으나,
퍼억!
퍽!
“크악!”
“꺅!”
“이령아! 재우 씨!”
상대적으로 신체 능력이 뒤떨어지는 곽재우와 조이령은 제대로 인지조차 못 하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단말마의 비명에 한세정이 얼른 칼을 내저었으나 효과는 없었다.
촤르르르륵!
탁―
투우웅!
“…아, 안 돼!”
곽재우와 조이령을 덮친 실이 타격에서 그치지 않고 그물처럼 쫙 펼쳐져 둘을 감싸더니 그대로 고치화시키며 쭈욱 하고 확 잡아당긴 탓이었다.
흡사.
‘플뤼의 탄성 일격’을 보는 듯.
캉!
애꿎은 돌무더기를 두들긴 칼날이 불꽃을 튕겨 낸다.
“이령아!!”
한세정은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충격이 느껴지지도 않는지, 쉬지 않고 발을 굴러 완전히 실에 감겨 버린 두 사람을 쫓았으나 그 또한 만만치 않았다.
“키에에에엑!!”
“키에에엑!!”
촤아아아악!!
촤아아악!
두 개의 고치를 챙긴 거미 형태의 괴물들은 어느새 잠수해 모습을 감췄고, 따라가야 하는 한세정의 앞에는 넘실거리는 파도가 벽을 이루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녀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지옥불에라도 뛰어들 각오였던 터라.
“이령아! 조이령!!”
“…세정 씨! 안 됩니다!”
탁!
나는 가속에 가속을 더하며 달려가 한세정의 팔목을 붙잡고 말려야 했다.
수중 호흡이나 급속 헤엄 같은 ‘고유 능력’ 이나 ‘기술’이 없는 한 물은 인간에게 불가침의 영역.
따라서.
“이령이가, 이령이가!!”
“정신 차리시죠!”
마구잡이로 몸을 부딪칠 게 아니라 침착하게 계획을 세워야 했다.
게다가.
괴물들에게 끌려갔으나 조이령과 곽재우는 살아 있었다. 그걸 아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두 사람은 아직 괜찮습니다.”
“그게 무슨… 어서 구하러―”
“눈앞을 보시죠.”
목전에.
[축하합니다!]
[최초로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보상으로 10,000명 한정 ‘칭호 : 모험가’를 습득합니다.]
《칭호 : 모험가》
- 각종 오지(奧地)와 금지(禁地)를 넘나드는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던전〉 입장 시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속도가 빨라지며, 부적합한 신체상의 문제로 적용되는 ‘상태 이상’의 효력이 5% 감소합니다.
이러저러한 문장 아래로.
[〈던전 : 파도 속의 고치〉에 입장하셨습니다.]
《던전 : 파도 속의 고치》
- 이곳은 행성 ‘패디카(Pedica)’의 지배종 「아라운다」의 영역입니다.
그들은 강과 호수, 바다를 가리지 않고 물속에 웅크린 채 황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를 이용해 먹잇감을 유인한 뒤 체내에서 생산되는 수면 독이 내포된 아주 끈끈한 실을 발사해 먹잇감을 붙잡아 고치로 만들어 저장해 놓기를 즐깁니다.
특수 처리가 된 고치는 먹잇감이 수중에서도 쉽게 죽지 않도록 싱싱함을 유지해 주기 때문이죠.
그러니 만약 당신의 앞에 별빛을 닮은 여덟 개의 보석이 반짝거린다면 얼른 도망치기를 권고합니다. 순간의 호기심은 죽음을 불러올 테니까.
┗던전 입장 시 ‘던전 전용 퀘스트’가 자동 진행됩니다.
┗던전 전용 퀘스트 : 고치 파괴/구출
《던전 전용 퀘스트 : 고치 파괴/구출》
- 이 퀘스트는 오로지 ‘던전 : 파도 속의 고치’에서만 진행 가능하며, 던전 곳곳에서 발견되는 고치를 파괴하거나 구출해 내는 양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는 형식입니다.
파괴는 쉽고 빠르나, 실력에 자신이 있다면 위험을 극복하며 고치를 뭍까지 옮겨 보십시오.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보상도 올라갈 것입니다.
┗현재 파괴한 고치 : (0/~)
┗현재 구출한 고치 : (0/~)
조이령과 곽재우의 생존을 증명하는 글귀가 주르륵 나열돼 있었기에.
이제껏 시스템이 장난을 친 적은 없으니, 방금 막 납치된 둘은 멀쩡하지 않을지언정 살아 숨 쉬고 있을 터.
“무작정 들어가서 좋을 거 없습니다. 계획을 짜죠.”
나는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침착하게 한세정을 다독이며 머리를 굴렸다.
이 시간에도 착호 부대 놈들이 추격해 오고 있는 탓에 집중이 잘 되진 않았지만, 억지로라도 잡념을 털어 내며 우선적으로 지형을 관찰했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던전의 구역인지 알 수 없는 만큼 물길의 시작점부터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래야 조이령과 곽재우의 고치가 박제된 위치를 특정할 테니.
그리고.
‘…아, 저긴가!’
무척 다행스럽게도 해당 목표는 금방 달성할 수 있었다.
시선을 옮기며 물길을 거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 건물에서 딱 멈췄기 때문이었다. 빌딩 숲 한쪽에서 펌프처럼 꾸역꾸역 물을 뱉어 내는.
[하와이 수영장]
‘실내 수영장’을.
기억에 있는 장소였다. 가 본 적은 없지만, 규모가 작긴 해도 인근에 수영장이 생겼다고 어린애들이 엄청나게 좋아한다며 웃던 누나를 통해 알게 된…….
“저긴가 봅니다.”
“아! 저기!”
한세정도 저곳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는지 알은체를 한다.
“물이 저기서 나오는 걸 보면, 고치도 저 안쪽에 있을 겁니다.”
“그럼!”
“진입할 방법을 찾아보죠.”
꽤나 빠르게 목표 지점을 지정한 우리는 지체 않고 전략 구상에 몰두했다.
관건은 딱 하나.
수전(水戰).
구출을 하든 파괴를 하든 뭘 하든 간에 ‘아라운다’라는 괴물들과의 전투는 필수적으로 맞닥뜨리게 될 텐데, 허면 아가미도 물갈퀴도 없는 우리가 무슨 수로 놈들을 상대할 것인가.
“건전지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요…….”
“있어도 웬만한 수준으로는 불가능할 겁니다. 일반 생물도 아니고 괴물들이니까요.”
“하긴…….”
이에 관하여 건전지 투하, 수경 확보 등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었으나 대체로 현실감이 부족했다.
한가로이 자재를 구할 여유도 없었거니와 애당초 먹힐지도 의문이었으니까.
그럼.
뭘 어찌해야 좋은가.
‘방법은 있을 거다. 분명…….’
나는 계속해서 수단을 궁리했다.
필시 존재할 던전 진입로와 공략법을―
“…물을 빼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음?”
그러던 찰나였다.
한세정의 혼잣말이 들려온 건.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네? 물을 빼내면 좋겠다고 말한 거요……? 그건 그냥 물이 없으면 들어가기도 수월할 것 같아서…….”
“…그겁니다!”
찾았다.
나는 주절주절 떠들던 한세정의 이야기를 듣고서 머릿속에 번개가 치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
물 때문에 들어갈 수 없다면, 물을 빼내면 그만이었다.
어떻게?
“부숴 버리면 되지.”
“네?”
“바로 가겠습니다. 다만 거리를 좀 두고 따라오세요.”
“아, 아윤 씨?”
어리둥절해하는 한세정을 두고 훌쩍 발을 뻗은 나는 성큼성큼 수영장 쪽으로 달렸다.
물이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가까이.
그러고는.
우우웅!
[오르그의 파괴 본능]
마력을 팔에 둘러 옆에 있던 상가를 후려쳤다.
후우욱!
콰앙!
푸른 아지랑이가 휘날린다 싶은 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콘크리트벽. 정교함이 일절 없는지라 각양각색의 잔해가 발치를 가득 채운다.
“…부족해.”
[오르그의 파괴 본능]
쾅!
그것들을 대충대충 흘겨본 나는 다시금 주먹을 들어 새로운 건물을 재차 파괴했다.
한 채, 두 채, 세 채.
무려 세 채나 되는 가게가 흉측하게 변해 갈 무렵.
“아윤 씨……? 지금 뭘 하시는…….”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한세정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을 던졌으나, 일일이 대답하기보다는 조용히 마력을 가동했다.
화르륵 순환된 마력은 각기 양팔로 나눠지며.
[순간 회귀]
[오르그의 오른팔]
[플뤼의 왼팔]
우득―
우드드득―
오른팔과 왼팔을 본래의 형태로 되돌려 놓는다.
거기까지 이룩한 난 한세정에게 조금 더 뒤로 물러날 것을 권유한 후.
후우우욱―
툭―
허리를 굽히며 양손으로 뭔가를 움켜쥐고 서서히 들어 올렸다.
그건.
“후.”
툭―
투두둑―
투둑―
직경 2m쯤 되는 콘크리트였다.
더 정확하게는.
“후, 후으으읍! 하앗!!”
꾸우우우우욱!!
후욱!!
‘공성용 투척 거석’이라고 해야겠지.
이게.
콰아아아앙!!
내가 고안한 공략법이었다.
100을 넘어선 근력에 힘입어 바위를 쏘아 내는 것.
그걸로.
“하나 더.”
후우욱―
“하앗!”
콰아아앙!!
수영장을 때리고 또 때려서.
콰직!
콰드드드드드득―
“가라!”
후우우욱!
콰앙!!
건물에 충격을 주어 외부에서 들이치는 압력과 내부에 가득 찬 수압이 서로 엇갈리며 수영장에 균열을 발생시키는 작전이었다.
그로 하여금.
물살에 밀려 고치가 자연히 떨어져 나오거나, 혹은 진입을 요하더라도 지상인 양 원활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툭―
투두두둑―
주르르륵―
결과는.
“하나, 둘, 셋.”
콰아앙!!
촤아아아아아악!!
대성공이었다.
작게는 1m에서 크게는 2m에 달하는 거석을 다섯 개가량 던지자 금이 간 자리에 구멍이 뚫리더니, 금세 거대해져서는 입구와 맞먹을 정도의 수량을 토해 내기 시작한 것이다.
저 안에 뭐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이 축적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더.”
탁!
꽈아아아악!!
나는 다른 건 생각하지 않고 또다시 돌을 골라 주웠다.
선택 가능한 길은.
이런 극단적인 험로(險路)밖에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