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키메라의 기억법-66화 (66/232)

66화

무슨 수로 알아냈을까.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맞다.

온갖 신묘하고 기괴한 능력이 판치는 세상이니, 지금 내가 신경 써야 할 사항은 ‘어떻게’보단 ‘그래서’다.

어찌 나올 것인가.

‘…뺏으려고 들려나.’

보물의 정확한 정체까지 파악했다면…….

아마도 그리할 것이다.

무려 ‘안전지대 생성권’과 ‘차원 상점 생성권’. 누구든 눈에 불을 켜게 만들기엔 더할 나위 없는 발화제였다.

하여.

우득―

나는 짜증이 치밀어 오를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저들이 달려들 경우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남몰래 손목을 풀었다.

가능하다면야 괜한 분쟁이 벌어지지 않고 지나가길 희망한다만.

“…….”

전신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날 관찰 중인 정 하사의 눈빛을 보아하니 평화롭게 흘러갈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라고 단정 짓던 차에.

“…죄송합니다. 부대 내에 자그마한 문제가 생겨서 말입니다. 하하.”

순간적으로 발생됐던 정적을 깬 정 하사가 어색한 미소를 보이며 천연덕스럽게 노인과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답잖은 핑계를 대며.

이에.

‘…음?’

전투가 벌어지면 어떤 식으로 상대해야 좋을까 시뮬레이션까지 그리고 있던 나는 일순 미간을 찌푸렸다.

정 하사의 행동이 쉽사리 해석되질 않아서.

혹시.

‘포기, 하려는 건가?’

보물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그럴 확률은 거의 제로일 거라 생각했으나 만약이라는 말도 있었으니.

착호 부대의 지휘관.

가령 정 하사나 그의 상급자가 노인과 같은 부류의 인물이라 남의 것에 욕심부리지 않는 성향이라면 영 불가능한 스토리는 아니다.

말한 대로 확률이 극도로 낮을 따름이지.

여하튼.

‘…일단은 문제없이 지나가는 것 같으니 다행이네.’

쓸데없는 분쟁이 일어나지 않음은 이쪽도 반기는 터라 나는 굳게 쥐었던 주먹을 풀고 날카롭게 세운 손톱을 숨기며 경직되었던 자세를 풀었다.

물론.

긴장은 늦추지 않았다. 인간의 마음이란 갈대와 같아서 언제 또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여기 있네.”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러는 동안 ‘영입 제안서’에 서명을 마친 노인은 정 하사에게 잠시 시간을 내어 달라 얘기한 후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렇게 헤어지게 되는군.”

급작스럽게 찾아온 이별에 사뭇 아쉬운지 나와 한세정들을 차례차례 돌아보며 중얼거리는 노인.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머리를 저었다.

“사람 일이란 게 원래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지. 단지 노인네의 걱정일 뿐이네. 치료라도 제대로 끝냈으면 좋았을 테니 말일세.”

“아닙니다. 어르신과 유신이의 도움으로 많이 호전됐으니 나머지는 제가 채우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자네라면 분명 잘하겠지.”

우리의 인사는 그리 길지 않았다.

본디.

이별의 시간은 짧을수록 좋다 했으니.

“이건 진통제일세. 몸이 불편하다 싶으면 먹어 두게.”

“감사합니다, 어르신.”

“자네도 쉽진 않겠지만 되도록 2~3일 정도는 최대한 전투 같은 과격한 행위는 피하게. 자칫 봉합된 상처가 터질 수도 있으니.”

“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믿겠네. 그리고 자네는 나와 나눴던 대화를 잊지 말게.”

“알겠습니다.”

나를 지나쳐 한세정, 조이령, 곽재우와도 몇 마디씩 주고받은 노인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송별식도 마쳤으니 바로 떠나가려는 태도에 수레에 가득 담긴 짐을 가져가라 말하려 했으나.

휘익―

휘익―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움찔거리는 내게 팔을 휘휘 흔드는 노인. 그는 떠나가는 마지막까지도 선의를 베풀려 하고 있었다.

“이제 가세. 자네도 어서 돌아가고 싶을 테니.”

“알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등을 돌린 정 하사와 노인의 곁을 따라가며 해맑게 인사는 유신이.

그렇게.

건물 밖으로 점점 자취를 감추는 세 사람의 공허한 빈자리를 불어오는 찬 바람이 채워 나간다.

“컹!”

“컹!”

“컹!”

“……?”

우두커니 서서 노인과 유신이의 그림자마저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지켜보던 그때, 별안간 건물로 들어온 백구가 내게 달려왔다.

녀석의 입가엔 큼지막한 쪽지 한 장이 물려 있었다.

“컹!”

툭―

똑똑하게도 침이 묻지 않게 이빨 끝으로만 물고 온 쪽지를 건네주고 다시 떠나가는 백구.

나는 조심스럽게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주워 펼쳐 보았다.

새하얀 하얀 도화지 안에는 공간 낭비라는 표현이 절로 나오게 하는, 한 움큼의 여백 중앙에 정갈한 문체로 딱 두 줄이 적혀 있었다.

[꼭 살아남으시게.]

[나도, 손주도 노력해서 살린 게 자네였네. 그러니 억지로라도 살아남으시게.]

“…….”

살아남으라니.

그것도.

억지로, 라니.

스윽―

단호함이 묻어 나오는 글귀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노인은 내게 왜 이런 문구를 남겼나 그 의미를 묻고 싶어서.

사실.

어렴풋하게는 알 것도 같았다.

‘이제 앞으로는 무얼 할 생각인가?’

‘…….’

‘……?’

침묵으로 일관했던 대답과 그로 인해 무언가 수상한 기운을 감지했던 노인의 모습이 뇌리를 자극하고 있었으니까.

무더기로 쳐들어온 프라구스들 때문에 흐지부지되었으나.

금세 잊어버린 나와 달리 노인은 당시의 감각을 떨쳐 내지 않고 도리어 그 찰나의 조각을 통해 기어코 나의 죽음까지도 들여다본 것 같았다.

방법?

그에 대해서는 명확히 정의할 수 없으나, 생각해 보면 노인은 항상 그랬다.

‘튜토리얼로 떠나려 했을 때도, 기절해 곯아떨어졌다가 깨어났을 때도, 그리고 어제도.’

매번 한발 앞서서 움직이지 않았던가.

때문에 확신할 수 있었다.

노인이 죽음을 각오한 내 속내를 간파해 냈다는 걸, 나아가 그러지 못하게 사전에 방지하고 싶어 쪽지를 보냈다는 걸 말이다.

“…….”

그런 탓에 나는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고작 두 줄밖에 안 되는 문장을 10여 분이 넘도록 읽고 또 읽었다.

머릿속이 칭칭 꼬여 있는 실타래처럼 복잡했다.

단지 글자의 몇 개의 조합일 뿐이기에, 단박에 무시하면 될 텐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이 별거 아닌 듯한 글귀가.

‘나 바보 맞고, 멍청해. 그래서 실패했어도 놓질 않아. 포기하지도 않고, 절망하지도 않아.’

‘나는.’

‘그러니까 힘들 거란 거 알고, 아프다는 거 알지만, 어쩌면 널 위해 놓아주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원하는 미래를 마주할 때까지 물고 늘어질 거야.’

‘…….’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좋아. 왜냐면 바보는 이기적이라는 단어도 모르거든. 바보가 아는 건 딱 하나뿐이야. 떨어지면 슬프고, 함께하면 행복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내가 다시금 삶의 끈을 붙잡게 하던 그날을 오버랩시켜 버렸으니까.

하필이면.

정말로 하필이면.

“미쳐 버리겠네.”

“네?”

“…아닙니다.”

애써 부정하려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에 반문하는 한세정. 나는 눈을 꽉 감았다가 뜨며 대답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충분히 쉰 것 같으니 슬슬 다시 출발하시죠.”

“네? 아, 네…….”

“수레부터 꺼내겠습니다.”

“제가 도와 드릴게요!”

공연히 한세정들을 닦달하며 제동이 걸렸던 이사를 재촉했다.

뭐라도 하기 위해서.

가만히 있다가는 점차 선명해지는 과거에 잠식당해 버릴 것만 같아 한시라도 빨리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싶었다.

벌써부터.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좋아. 왜냐면 바보는 이기적이라는 단어도 모르거든. 바보가 아는 건 딱 하나뿐이야. 떨어지면 슬프고, 함께하면 행복하다.’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좋아. 왜냐면 바보는 이기적이라는 단어도 모르거든. 바보가 아는 건 딱 하나뿐이야―’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좋아. 왜냐면 바보는 이기적이라는 단어도 모르거―’

누나의 목소리가 무한히 반복되어 현실을 벗어나고 있었다.

【 던전 】

코드 네임 ‘괴물 사육사’라고 부르는 능력자 황철성을 영입하고서 호쾌한 발걸음으로 복귀하는 길.

앞으로 함께하게 된 조손을 반갑게 환영해 준 직후 김유걸은 은밀히 정 하사를 불렀다.

이유라면 간단명료했다.

“당연히 그냥 보내 줄 건 아니지?”

보물.

무려 ‘안전지대’를 생성해 내고, ‘차원 상점’을 생성해 내는 희대의 아이템을, 황철성을 찾기 위해 인근을 샅샅이 뒤지다 공기 중에 남은 음성의 흔적으로 단편적인 정보만 겨우 수집한 수준임에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절실함을 불러일으킨 그 물건을 이대로 떠나보낼 수 없었기에.

어떻게 놓친단 말인가.

잘만 찔러 주면 승진을 넘어서 대통령에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1소대 전원 무장 착용 후 대기 중이라는 무전 받았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런 어마어마한 걸 놓칠 수는 없지. 아니, 놓쳐서는 안 되지! 안 그래?”

“목숨을 걸겠습니다.”

김유걸은 결의 가득한 정 하사의 눈빛을 보며 입가를 씰룩였다.

허나.

끝내 웃지는 않았다.

일이 성사되지도 않았는데 샴페인부터 터트리는 머저리는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행복한 감정이 솟구칠 때마다 억누르며 정 하사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고 얘기했다.

“자네나 나나 끈 떨어진 연이다.”

이번 일을 성공시켜야 하는 까닭과 동기를.

“윗대가리가 다 뒈져서 중대장이니 소대장이니 하고 있지만… 알잖냐. 우리 같은 놈들 언제든 갈아 끼우는 부품이란 거.”

“말씀드렸습니다. 목을 걸겠다고.”

“믿는다. 영입에 차질 생길까 봐 일부러 한 타이밍 미뤘을 때부터 이미 난 널 믿고 있었다. 그러니 잘해 보자.”

정 하사는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김유걸의 당부에 한 치의 주저함 없이 답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별, 가슴에 달아드리겠습니다.”

해 보자고.

할 수 있다고.

해낸다고.

척―

김유걸은 그런 정 하사의 손을 힘껏 쥐며 고개를 끄덕인 후 물러나며 품에서 두툼한 주머니를 지급했다.

진녹색의 커다란 주머니 안에는 착호 부대가 그간 피와 땀, 눈물을 흘리며 차곡차곡 모아 온 근원석 수백 개가 들어 있었다.

“총 781개야. 이만하면 협상에 실패는 일은 없을 거다.”

보물과 교환할 거래 대금이었다.

“부디, 1차 계획 안에 마무리되길 바라마.”

“충성!”

“충성.”

정 하사는 감히 무게를 재기 어려운 주머니를 조심스럽게 챙기고는 각진 경계를 끝으로 스리슬쩍 그림자 너머로 스며들었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다 모였나?”

“아, 소대장님 오셨습니까!”

약 마흔 명가량의 병사들이 완전 무장 상태로 도열해 있는 공터였다.

부대 개편 이후.

전투라면 이골이 난 착호 부대 소속 병사 가운데에서도 ‘고유 능력’을 비롯해 특히 교전에 특화된 이들로 가려 뽑은 최정예 소대.

유사시에는 아끼고 아껴야 하는 총화기의 사용까지 허가받은 그들이 정 하사의 부름에 일제히 무기를 쥔다.

이에.

“가자.”

스르르륵―

착!

정 하사는 허리춤에 찬 칼을 검집에서 살짝 뽑았다가 집어넣는 것으로 화답하며 발끝을 돌렸다.

목표는 살아 있는 보물 상자, 코드 네임 ‘황금 고블린’.

“속보!”

“속보!”

우우우우우웅―!

[‘신속 기동’이 적용되었습니다.]

[이동 속도가 30% 증가합니다.]

그 찬란한 영광을 위하여 어둠을 헤치고 신속하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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