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착호 부대?’
귓가를 파고드는 하나의 단어에 눈썹이 꿈틀거린다.
분명.
어딘가 익숙한 명칭이었는데.
‘…아.’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보니 불현듯 기억이 났다.
‘정지! 더 다가오지 말고 정체부터 밝히십시오!’
‘착호 부대원분들이신가요? 저희는 수혈용 혈액을 구하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어디서 들어 보았나 했더니.
벌써 꽤 오래된, ‘인간성’의 해결책으로 고른 ‘헌혈 카페’에서 접한 이름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더불어 그 회상은.
‘저쪽이다!’
‘잡아라!!’
‘사, 살···ㄹ······.’
아주 자연스럽게 한세정과의 첫 만남 장면으로 이어졌다.
난데없이 공간을 가르며 등장해 살려 달라고 울던 그녀의 모습은 지금 와서 되새겨 봐도 더없이 강렬했다.
그래서인지.
스윽―
나도 모르게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이전 날을 떠올리다 보니 일어난 무의식적인 반응이었는데, 굉장히 신기한 것은 그 순간에 한세정 또한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는 점이었다
마치 생각이 공유되기라도 한 듯.
“……!”
“……!”
우연치고는 무척이나 절묘한 타이밍에 서로를 쳐다보며 당혹스런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그녀와 나.
그사이.
“…자네였군. 오랜만일세.”
방어 대형을 꾸린 키메라들을 좌우로 물리며 몇 걸음 걸어 나온 노인이 자신을 착호 부대의 정성훈 하사라고 밝힌 남자에게 알은체를 했다.
상호 간에 안면이 있음을 알리는 제스처에 퍼뜩 정신을 차리며 전방을 주시하자.
“그동안 무탈하셨습니까? 이리 갑작스레 찾아뵙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네.”
나를 비롯해 한세정들을 은근슬쩍 쫙 훑어본 정 하사가 다시금 노인에게 눈을 고정하며 짤막한 안부 인사와 함께 군인 특유의 절도 섞인 어투와 몸짓으로 용서부터 구했다.
흡사 제 상관이라도 마주한 양.
다소 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깍듯하고 공손하게.
그런 탓인지.
정 하사를 응시하는 노인의 눈빛에 숨길 수 없는 거부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더 정확하게는 의심이라고 할까?
어쩔 수 없었다.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는 것도 문제지만.
현재 바깥은 ‘업데이트’로 인해 한창 괴물들이 날뛰고 있는 시국이라 정 시급한 경우가 아닌 이상 안전한 장소에 머무르는 게 일반적인 판단일진대, 외부를 떠돌아다니는 것으로도 모자라 하필이면 이사하는 사람의 뒤를 밟아 쫓아왔으니.
하여.
“그래서 어쩐 일인가. 자네 얼굴을 보아하니 따로 환자를 데려온 것 같지는 않은데.”
노인은 시답잖은 대화는 거두절미하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애매하게 굴지 말고 털어놓으라 경고하는 것처럼.
이에.
정 하사도 굳이 감출 의도는 없었다고 대답하듯 질문을 듣자마자 솔직하게 방문한 경위에 대해 얘기했다.
“오늘은 어르신께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 오게 되었습니다.”
“부탁?”
“예, 그렇습니다. 어르신을 저희 부대로 영입하고 싶습니다.”
‘영입 제안’이라는 꽤나 당황스러운 이야기를.
설마 이런 내용일지는 몰랐기에 노인은 물론이거니와 모두가 당황한 가운데.
스윽―
말을 꺼낸 정 하사는 가장 윗단에 ‘영입 제안서’라 수기로 작성된 문서 한 장을 건네며 계속해서 얘기를 이어 갔다.
“세상이 무너져 버린 지금, 저희 착호 부대는 위험에 놓인 생존자분들을 구출함과 동시에 외계 생명체들에게 강제 점거당한 사회와 영토를 복원하기 위하여 뛰어난 잠재력을 갖춘 능력자분들을 대거 영입하는 중에 있습니다.”
“…….”
“그렇기에 이미 훌륭한 치료사인 황유신 군과 괴물들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어르신의 합류를 최우선 과제로 둔 상태입니다. 두 분이 합류해 주신다면 위 두 가지 항목의 성공 확률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리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꽤 열심히 준비한 듯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문장의 파도.
일종의 용병 계약을 권유하는 그의 설명에서 단연 압권인 것은 대가에 관한 항목이었다.
“따라서, 만일 어르신과 황유신 군이 본 부대로 와 주신다면 저희는 숙식을 기본으로 매일 일정량의 근원석을 제공하는 등 가능한 모든 방면에서 최선의 대우를 해드릴 예정입니다.”
안전한 거주 공간, 안정적인 식량 공급, 일일 근원석 지급 등등.
종말해 버린 작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들이 급여랍시고 줄줄이 열거되었으니까.
정말로 다 지켜 줄지 의구심이 들 만큼 다양하게.
심지어.
“이외에도… 구출한 생존자 중 교육계에 종사하셨던 분들을 따로 꾸려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 시설을 설립하고 있습니다.”
개중에는 아이와 함께하는 보호자라면 누구라도 혹할 수밖에 없는 ‘교육’에 대한 지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잠깐, 잠깐 멈춰 보게.”
일순간 넋을 잃었던 노인은 이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정 하사의 말을 중간에서 끊어 냈다.
본디.
버섯조차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게 빛날수록 보다 강력한 독을 품고 있다 하지 않던가. 이제껏 살아온 삶의 지혜를 통해 현명함을 갖춘 노인은 결코 달콤한 향기에 속아 독버섯을 집어삼키는 바보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다른 곳이라면 모를까, 상대는 심할 경우 쌀 한 톨에 물 한 모금마저 통제하는 군부대였다.
헌데.
내어 주는 게 이리 많다니,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노인은 더 이상 ‘받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듣지 않기로 결심한 듯.
“내게 무얼 바라는 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반대로.
자신이 ‘내어 주어야 할 것’은 무엇이냐고.
그러자 잠시 헛기침을 하며 숨을 고른 정 하사가 ‘영입 제안서’의 최하단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희가 어르신께 바라는 건 단 하나입니다. 괴물들을 제공해 주시는 것.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씩 죽어 나가는 고귀한 생명을 조금이라도 살릴 수 있게끔 괴물들을 방패로 쓰고자 합니다.”
인간을 대체해 사지로 뛰어들 병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달라는 것.
‘…그래서였나.’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정 하사가 왜 이리도 막대한 대가를 약속했는지, 저들의 목적을 확실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해진 인적 자원의 보호를 노인의 능력에 기대겠다는 뜻이었으니까.
착호 부대가 구해 주는 재료를 기반으로 키메라들을 꾸준히 제작할 수만 있다면 전투 환경에 엄청난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하물며.
2등급 개체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해 안 그래도 힘겨운 생존 전선에 빨간불까지 뜬 지금이라면 더더욱 간절해졌을 터.
‘어찌하시려나.’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나는 노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궁금했다.
느닷없이 나타난 까닭도 알았고, 무엇을 바라는지는 알았다. 이제 남은 건 노인의 결정뿐.
과연 어떤 방향으로 가려 할지.
‘어르신께서 착호 부대 쪽으로 가시게 된다면… 안전지대든 차원 상점이든 생성권은 세정 씨에게 몰아주는 게 좋겠어.’
개인적으로 나는 노인이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예견했다.
이러저러한 건 다 차치하고서라도 유신이의 교육이 결정적인 열쇠가 될 것 같았으니까.
세상이 이렇게 된 마당에 교육 따위가 뭐 얼마나 대단한가 싶겠지만, 그건 성인을 기준으로 두었을 때나 적용되는 말이었다.
미성년자.
특히 유신이와 같이 겨우 초등학생에 불과한 어린아이들에게 배움이란 의외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수업이란 단순히 수학, 과학을 익히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인성’을 확립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었다.
외계 생명체와의 전쟁으로 흔한 풍경이 되어 버린 살육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자칫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막아 주는 최후의 보루.
게다가.
정 하사는 ‘아이들’이라고 했다.
즉.
착호 부대가 기거하는 거주지에는 유신이 또래 친구들이 존재한다는 뜻.
저 나이 때 소년에게 친구란 부모만큼이나 절대적인 존재였기에. 그러한 점들이 하나둘 모여 고민을 가중시키는지.
“…….”
손에 쥔 ‘영입 제안서’를 읽고 또 읽어 내려가는 노인의 얼굴은 상당히 진중했다.
정 하사는 그런 노인에게 차분히 고려할 시간을 주려 살짝 뒤로 물러나 간격을 벌린 후.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우리에게 넌지시 의중을 물었다.
대강이지만 쭉 살펴보며 나나 한세정들 역시 능력자임을 간파한 듯, 노인만큼 절실하진 않더라도 가능하다면 추가 영입을 하고 싶은 눈치였다.
‘고유 능력’의 귀천과 상관없이 노동 인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에.
하여.
스으윽―
“…….”
나는 한세정과 조이령, 곽재우를 살며시 번갈아 보며 정 하사의 제안을 수락할 사람이 있느냐고 무언의 질문을 던졌다.
셋 중 누구라도 원한다면 보내 줄 의향이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으로 결성된 모임이기에 각자의 사정과 신념에 따라 언제 갈라서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다만.
“…….”
“…….”
“…….”
한세정도, 조이령도, 곽재우도.
내 물음에 긍정을 표하는 이는 없었다.
‘…의외네.’
적어도 한 명쯤은 흔들리거나 넘어가리라 예측했는데, 수락은 고사하고 고심의 흔적마저 전무했다.
어째서일까.
셋의 속마음은 모르겠으나, 일단은 고개를 끄덕인 뒤 정 하사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알겠습니다.”
정 하사는 가타부타 대답은커녕 일언반구조차 없이 묵묵히 서 있는 우리의 침묵에 거절당했음을 인지한 듯.
아쉬운 섞인 음성으로 중얼거리고는 노인에게만 집중했다.
그즈음.
“유신아, 너는 어떠냐.”
“거기 가면 진짜 친구들 많아요? 축구도 할 수 있고?”
“그렇다는구나.”
“그럼 갈래요!”
노인이 유신이와 간략하게 대화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무척 짧은 대담이었지만.
그 담화가 적잖은 영향을 끼쳤는지, 노인은 눈을 반짝이며 외치는 유신이의 응답에 한 차례 주억거리고는 정 하사에게 본인의 결론을 전해 주었다.
“제안, 받아들이겠네.”
승낙하겠다고.
“정말이십니까?!”
“그렇네.”
역시나.
노인의 선택은 예견한 대로였다.
아마.
근거 또한 내 짐작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감사합니다, 어르신!”
정 하사는 노인의 승낙에 황금이라도 손에 넣은 양 함박웃음을 지으며 몇 번이고 허리를 숙였다.
내색은 안 했지만, 혹여라도 거절당하면 어쩌나 심히 걱정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일이 마무리되던 무렵이었다.
타다다닷―
“…소대장님!”
막 ‘영입 제안서’에 서명할 펜을 꺼내던 찰나.
누군가 황급히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정 하사를 찾았다.
“이 병장? 여긴 왜…….”
“그게―”
병장 마크를 단 병사는 연신 의아해하는 정 하사에게 재빠른 발걸음으로 다가가선 귓속말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뭐?!”
무엇 때문인지 몹시 놀라는 정 하사.
‘뭐지?’
그 심상치 않은 광경에 모두의 표정에 의문이 감돌고, 나 또한 바깥에 사고라도 터졌나 하는 심정으로 두 군인을 지켜보던 와중에.
슥―
“…….”
정 하사의 눈동자가 데구루루 굴러와 내게서 우뚝 멈췄다.
‘…젠장.’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저들이.
내가 가진 보물의 냄새를 맡았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