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 * *
“윤아! 누나 들어가도 돼?! 응? 응?”
내가 세 번째 자살 시도를 한 뒤로 여인은 틈이 날 때마다 방문을 두들겼다. 단 1분 1초라도 혼자 두지 않겠다는 듯 항상 내 곁에 다가왔고 또 머물렀다.
집착.
그래.
그녀의 집요함은 거의 집착에 가까웠다.
“누나, 나가.”
“누나, 됐으니까 나가.”
“누나, 제발 시끄러우니까 나가라고!”
그런 탓에 나는 한동안 그녀의 방문을 거절했고 거부했다.
허나.
여인은 내 윽박과 욕설에도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알겠어…….”
화를 내면 수긍한 듯 잠시 꼬리를 내렸다가도.
“윤아! 윤아! 우리 오늘 저녁에 뭐 먹을까?”
“치킨? 너 치킨 좋아하잖아! 반반으로 시킬까?”
“음, 아니면 오랜만에 중식?”
“참! 요새 돈가스집 맛있는 곳 생겼다던데… 거기로 시켜 볼까?”
“어때? 뭐가 좋아?!”
채 몇 분이 지나기도 전에 슬그머니 돌아와서는 재잘재잘 떠들며 갖가지 질문으로 내 인생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윽박이 통하지 않는단 사실을 깨닫고 방법을 바꿔 간곡하게 청원을 해 보거나 극단적으로 문고리를 걸어 잠가 보는 등 나로서도 다른 방식을 취했으나, 무엇을 시도하든 여인은 언제나 쳇바퀴를 돌아 내 옆자리를 차지할 뿐이었다.
포기.
결국 나는 포기해야만 했다. 무슨 짓을 해도 품 안으로 되돌아오는 여인을 막기란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것을 인정한 다음 날부터 여인은 조금씩 변화를 주며 나를 공략했다.
“윤아!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글쎄 말이야, 내 친구 정아 알지? 정아 애기가 나보고 이모라고 그러는 거야! 으으, 진짜 너무 귀엽더라……. 그러니까 너도 얼른 결혼해서 애 낳아! 누나도 진짜 조카 한번 안아 보자!!”
“알겠지? 꼭 결혼해서 누나한테 조카 안겨 주는 거야! 응? 응?”
“약속! 어서어어어어!”
“약속 안 해 줄 거야? 안 해 주면 누나 약속 해 줄 때까지 여기서 같이 잔다?!”
“알겠어. 알겠으니까 나가.”
“헤헤, 잘 자, 윤아~!”
곁에서 떨어지는 조건으로 ‘미래’를 약속받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이나 아기 등 다소 뜬구름 같은 이야기부터.
“이거 누나가 한 건데? 한 입만! 딱 한 입만 먹어 주라아아아아!”
“응? 진짜 안 먹을 거야?!”
“좋아. 이것만 다 먹어 주면 오늘은 누나가 자유 시간 준다! 어때? 끌리지?”
웬만하면 거르기 일쑤였던 식사 따위의 평범한 일상까지.
여인은.
자신의 시간을 버리는 대신 나의 시간을 늘려 갔다.
“그 정도는 바로 해 줄 테니까 이제 좀―”
그 끊임없는 물음표에 나도 모르게 마침표를 찍게 됐을 무렵 깨닫게 되었다.
“헤헤, 그럼 누나 설거지 안 해도 될 정도로 깨끗하게 빈 그릇 기대하면서 나간다? 점심 맛있게 먹어~!!”
“…….”
나의 삶에서 죽음이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 * *
“합!”
후우우우욱―
콰직!
짧은 기합과 함께 붉은 기운으로 넘실거리는 대검이 프라구스의 가슴팍을 내리찍는다.
1m 90cm에 다다르는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게감에 짓눌려 너무나도 손쉽게 갈라지는 가죽과 살갗.
심장마저 단박에 잘려 나간 듯.
칼이 틀어박혔음에도 불구하고 프라구스는 바들바들 몸을 떨다가 축 늘어질 뿐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오히려 외마디 음성은 곽재우에게서 나왔다.
“…아.”
‘튜토리얼’만의 특별한 보상, 육체에 쌓인 피로와 소모된 체력을 단박에 복원시켜 주는 그 신묘한 힘을 체험하고 나면 자연스레 나오는 현상이었다.
흡사.
몇 분 전의 조이령처럼.
“감사, 감사합니다.”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인사를 건네는 곽재우에게 대강 손을 흔들어 주곤 노인과 한세정에게로 향했다.
기수 프라구스의 명령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당장 대규모 전투가 일어났을 뻔했던 터라 무기를 꽉 쥐고 있던 두 사람은 다른 것보다도 2등급 개체의 출현에 꽤나 긴장한 것 같았다.
하나가 나타나면 둘도 나타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곧 온 천지를 뒤덮는 법.
즉.
지속적인 생존을 이어 나가다 보면 지금의 1등급 괴물들처럼 수없이 부딪치게 될 상대라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기술의 가짓수도, 위력도 하위 개체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으니까.
‘싸울 기회를 주는 게 좋았나.’
그 때문에 나는 혼자서 정리하지 말았어야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세정이야 몸이 불편하니 제외하더라도 노인이라면 충분히 전투 경험을 쌓게 해 줄 수 있었기에.
허나.
이미 지나간 기회.
안타깝지만 머릿속에서 털어 버리고는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열쇠를 꺼내 둘에게 각각 하나씩 건네주었다.
“아윤 씨, 이건?”
“이게 뭔가?
“한번 읽어 보시죠.”
느닷없이 열쇠를 쥐여 주는 내게 의문을 표하는 두 사람의 표정이 바뀌기까지는 고작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경악.
“…이게 무슨!”
“…이런 게 있다니!”
정체를 확인한 노인과 한세정은 더없이 놀란 눈으로 나와 아이템, 나아가 서로를 돌아봤다.
나는 그런 둘에게 서로 바꿔 보라는 제스처를 취했고.
뒤이어 합류한 조이령과 곽재우에게도 한 번씩 확인해 보도록 권유했다.
그렇게 도합 네 사람.
아니.
유신이까지 총 다섯 명을 놀라게 하는 덴 1분이면 충분했다.
“다들 보셨을 겁니다. 기수 사냥 이벤트, 그걸 클리어하며 얻은 보상입니다. 기수를 사냥했을 때 ‘차원 상점 생성권’을, 깃발을 파괴했을 때 해당 타입과 관련된 ‘안전지대 생성권’을 받은 것 같습니다.”
멍한 상태로 날 쳐다보는 다섯 사람에게 아이템 획득 경위에 설명해 주자 문장과 단어보다는 짤막한 감탄사로 대답을 대신하는 다섯.
물론.
진짜배기는 그다음이었다.
내가.
“이 열쇠들은 두 분께 드릴 생각입니다.”
선언을 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두 열쇠가 손에 들어오자마자 떠올렸던 생각 그대로.
“아, 아윤 씨! 그게 무슨 소리여요……? 이걸 왜…….”
“그래. 자네 그게 무슨 말인가. 이 귀한 걸 왜 남을 주나! 더군다나 자네가 잡은 괴물인데, 자네가 가져야지.”
마치 시장에 나갔다가 내친김에 사 온 간식을 내어 주듯 얘기하는 공표에 노인과 한세정은 고맙다거나 감사하다는 표현보단 반발부터 내뱉었다.
특히.
“가져가게. 자네한테는 이걸 받은 걸로도 차고도 넘치네.”
노인은 언성을 높이며 거의 화를 내듯 열쇠를 돌려주려 했다. 단순히 보여 주기식 행위는 아니었다.
눈빛 속에.
진정으로 내 선택을 반대한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으니까.
참.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귀한 물건을 주는데도 이리 격하게 거부하다니.
해서.
“…후, 알겠습니다. 일단은 제가 갖고 있도록 하죠.”
나는 ‘곧 자살할 예정입니다.’라고 이유를 설명해 봐야 되레 더 시끄러워질 듯하여 대강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다는 기색을 보여 준 후 어서 가져가라는 두 사람에게서 열쇠를 회수했다.
당연히 선물하기를 포기한 건 아니었다.
바로 받았다면 좋겠지만, 완곡한 표정을 보아하니 이대로는 실랑이를 해 봐야 답이 없다는 걸 직감했기에 적당한 시기에 몰래 두고 가기로 노선을 변경했을 뿐이었다.
작정하고 두고 떠나는 걸 누가 잡을 것인가.
나를 쫓아오기란 백구의 후각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무리였다.
“그보다, 계속 이 자리에 있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시체도 시체지만 피 냄새가 너무 많이 풍겨서.”
약간 과열되었던 분위기를 식힐 겸.
당장 논의되어야 할 것 중 가장 시급한 문제로 주제를 바꾸자 그제야 인상을 푼 노인은 내 얘기에 공감하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나도 그게 걱정이네. 치워 보기는 하겠지만, 집이랑 너무 가까우니.”
겨우 2~30m.
사실상 엎어지면 코가 닿을 정도로 거주지와 근접한 곳에 시체 언덕이 쌓인 탓에 근심으로 가득한 노인의 얼굴에 나는 긴말 없이 이사를 제안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기수 사냥’ 이벤트로 괴물들이 극도로 날뛰는 상황이기는 하나, 그렇다 해도 여기처럼 혈흔과 시체가 난무하는 곳에서 머무르는 건 너무나도 위험하기에 어디로든 터를 옮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어차피 안전지대를 생성할 수 있으니 거주하기에 적당한 공간만 찾으면 되는 터라 이사 자체에 큰 노력을 투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 관점에서 내가 제일 추천하는 곳은.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만. 나도 공감일세. 다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군.”
“혹시 이 근처에 농작물을 팔거나 키우는 집이 있습니까?”
재배 가능한 농작물이 존재하는 장소였다.
보다 정확하게는.
농사까지 한꺼번에 진행할 수 있는 지역.
“농작물?”
“예. 언제까지고 식량을 사 먹을 수만은 없으니, 이 기회에 파종에 쓸 수 있는 씨앗을 찾을 만한 쪽으로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농사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마냥 차원 상점만 믿는 것보단 나을 테니.”
“흠, 맞는 말일세.”
활로는 많을수록 좋다.
21세기의 현대 사회처럼 노동을 통해 번 돈으로 식재료를 구매해 배를 채우는 구조가 아니라 목숨을 걸고 창칼을 내질러야만 하는 사회가 된 이상, 보다 안전한 살길을 확보하자는 게 내 취지였고, 이에 대해 노인은 물론 한세정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여기서 좀 멀긴 하지만 농자재 백화점, 거기라면 씨앗도 비료도 원하는 만큼 구할 수 있을 걸세.”
마침 이 근방 토박이였던 노인이 적합한 장소도 알고 있었다.
농사를 짓기 위해 준비해야 할 씨앗이나 비료부터 괭이 등 모든 게 구비되어 있는 판매처를. 말한 대로 거리가 굉장히 멀긴 하나, 나는 그곳으로 이동하기를 피력했다.
누군가 그랬다.
내가 생각했다면, 남도 생각하는 법. 그러니 되도록이면 무언가를 기획했을 땐 망설이지 말고 이행하라고.
더군다나.
이제 곧 눈이 올 시기, 자칫 폭설이라도 내려 길이 막히기라도 하면 큰일이기에 늑장 부리고 싶지 않았다.
“좋아. 자네 의견대로 하지. 유신아, 너는 어떠냐?”
“나도 좋아!”
“그러냐? 허허, 유신이도 좋으면 됐다. 가자, 이사하자.”
“네!”
“세정 씨는 어쩌시겠습니까? 기왕이면 세 분도 같이 가시죠.”
나는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한 노인과 손자를 뒤로하고 한세정에게도 물었다.
한 사람에게 했지만 사실상 셋 모두에게 던진 질문.
다만.
대답은 다른 쪽에서 튀어나왔다.
“저 여인은 어떤지 몰라도, 자네는 우리와 같이 가야 하네. 아직 치료가 안 끝났으니. 떠난다면 막진 않겠지만 괜찮다면 우리와 함께하게.”
노인이었다.
그는 완쾌되지 않은 한세정이 최소한 치료를 마칠 때까지만이라도 동행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 또한 동감하는지라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그럼, 조금만 더 신세 지겠습니다. 어르신.”
한세정은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함께 가기로 결론을 내렸고, 자연스레 조이령과 곽재우도 그녀의 결정에 따라왔다.
“이동은 내일 저녁노을이 질 즈음 출발하겠습니다. 점심 즈음에 짐을 챙기도록 하시죠.”
“그러세.”
그렇게.
새로운 거주지로의 이사가 시작되었다.
동시에.
그 목표를 마지막으로 눈을 감으리라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