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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62화 (62/232)

62화

【 보물 】

“…그게 정말인가?”

틱―

어둠이 내려앉은 방 안.

종말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전등이 밝게 켜져 있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 수기로 작성된 서류를 읽던 김유걸은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부하의 보고를 듣다 말고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전달받은 내용이 매우 당황스러워서.

다짜고짜.

“예. 금일 새벽, 수색 후 복귀한 병사들의 보고에 따르면 제성 초등학교 본관 전체가 불태워져 있었으며, 곳곳이 시체로 가득했다고 합니다.”

이 근방에서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던 ‘불곰파’가 패망했다 알렸으니까.

“허…….”

김유걸은 도통 믿기지 않는단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믿기지가 않았다. 그곳이 어디던가? 온통 악명뿐이긴 하지만, 전투와 전쟁이라면 절대 빠지지 않는 군부대에서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집단이었다.

물론 부대 내에 꼭꼭 숨겨 둔 총화기를 꺼내 든다면야 언제든지 정복하겠지만.

탄약을 비롯한 전쟁 물자는 생산 설비가 붕괴한 실정이라 그 중요한 것들을 함부로 낭비할 수도 없는 노릇. 하여 국민을 수호하는 데 앞장서야 할 군인 신분임에도 놈들의 악행을 알면서도 모른 척 넘어가지 않았던가.

헌데.

그런 불곰파가 하루아침에 모조리 불태워졌다니.

“이덕구나 조창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니, 멀쩡한 시신이 아예 없었다고 합니다. 대다수가 불에 타 식별이 불가능했으며, 그나마 멀쩡한 것들도 찢겼거나 짓뭉개진 탓에 그저 조직원으로 추정만 하고 있습니다.”

“으음…….”

김유걸은 골치가 아파졌다.

최근 가라앉았던 두통이 다시금 발병하는 것 같았다.

콧바람만 불어도 휘청거리는 미약한 무리라면 몰라도, 불곰파처럼 강력한 단체의 붕괴는 단순히 ‘한 개 집단의 소멸’로 끝나지 않았으니까.

당장 떠오르는 문제점만 해도 두 가지나 됐다.

하나는 안정적인 ‘생존자 확보’.

다소 비윤리적이고 반인륜적인… 좀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굉장히 참혹하기까지 한 방식이었으나 여하튼 놈들의 적극적인 규합 방침 덕분에 간간이 식량과 식수 등을 대가로 시야에 닿지 않는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

위기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대통령 이회건이 재건하기로 마음먹은 신(新) 한국의 국민을.

헌데 이제 그 루트가 막혀 버렸다.

무려 대통령의 명령을 이행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과연.

이 사태를 상부에 보고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시체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아 도망친 이들도 상당한 듯합니다.”

“찾을 수는 있고?”

“현재 4소대가 백방으로 수색 중입니다.”

“반드시 찾아. 반드시.”

“예, 알겠습니다.”

김유걸은 벌써부터 훤히 그려지는 불편한 미래를 머릿속에서 털어 내며 보고자인 정성훈 하사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이미 벌어진 일이야 되돌릴 수 없으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제성초에서 빠져나간 인원이라도 회수해 오라고. 그래야만 너도나도 별 탈 없을 거라고.

물론.

지시를 내리는 김유걸 중사나 지시를 하달받은 정 하사나 둘 다 일이 원만하게 진행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불곰파가 사라짐으로써 발생하는 두 번째 사안.

‘방어선의 축소’ 때문이었다.

“젠장, 가뜩이나 병력 충원도 안 되는데 안전지대는 계속 줄어들기만 하는군.”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그나마 불곰파 놈들이 제성초 주변을 처리해 줘서 그쪽은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됐는데 말입니다.”

“후.”

푸념하듯 읊조리는 정 하사의 말처럼.

제 딴에는 성장을 위한 행위였겠지만, 목적이야 어떻든 간에 불곰파에서 주기적으로 괴물 사냥에 나선 덕택에 부대를 기준으로 북서 지역은 마치 넓은 울타리가 둘러진 형국이었다.

그래서 따로 병력을 배치하지 않고도 안전이 보장되었으나, 앞으로는 뻥 뚫려 버린 방어 공백을 메꾸는 데 여러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바. 즉 생존자 규합에 투자할 병력조차 일부를 쪼개야 하는 터라 원활한 수색이 이루어질 리가 만무했다.

아니.

어쩌면 생존자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모든 전력을 북서에 집중해야 할지 몰랐다.

불곰파를 지워 버린 존재.

괴물인지, 사람인지. 혼자인지, 다수인지 죄다 불분명한 그 신원 미상의 힘이 이곳으로 옮겨 올 확률을 배제할 수 없었기에.

그러한 위협을 지척에 두고 다른 데 한눈팔았다가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난 허무하게 뒈지고 싶지 않다. 결혼도 해야 하고 애도 나을 거야. 그러니까 소대장들한테 주의 단단히 시켜.”

“…예. 중대장님.”

정 하사는 김유걸의 말에 바짝 긴장한 얼굴로 주억거렸다.

그렇게.

한바탕 파문을 일으켰던 보고가 마무리되고 잠시 침묵이 감돌던 차에 컵에 담겨 있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김유걸이 의자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감은 채로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건 그렇고, 외부 인사 초빙은 어떻게 돼 가고 있나.”

최근 들어 집중적으로 공들이고 있는 능력자 영입 건에 대해.

다행히 이 부분만큼은 기분 좋은 답변이 돌아왔다.

“아, 안 그래도 오전 중에 보고드리려고 했습니다만, 가까운 장소에서 제법 괜찮은 능력자들을 목격했습니다.”

“그래?”

“노인과 손자로. 우선 손자는 회복 계열 치유사입니다. 나이는 어리나 치료받은 병사의 경과를 살펴본 결과 웬만한 치유사 이상이었습니다……. 허나.”

“……?”

“저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노인 쪽입니다.”

이 역시도.

“치유사보다 중요하다?”

“그렇습니다. 정확한 능력은 파악하지 못했으나, 괴물들을 사육하는 지배 계통이기 때문입니다.”

“…사육사?!”

전혀 예측 못 할 방향으로.

“예. 제가 직접 확인했으며, 어떤 원리인지는 밝혀낼 수 없었으나 무려 셋이나 되는 괴물을 길들인 상태였습니다.”

“허허.”

정 하사의 답변에 김유걸의 입에서 감탄이 절로 튀어나왔다.

괴물 사육이라니.

이건 완전히 혁명이었다. 그게 가능하다면 지금껏 몸을 불사 지르며 싸워야 했던 전투 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으니까.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를 오랑캐로 물리치듯이, 괴물을 괴물로 물리쳐 안타까운 희생을 막을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홀로 온 전장을 커버하긴 어려울지언정.

애꿎은 목숨 하나를 건지면 그 하나가 다른 둘을 살릴 거고, 둘은 다시 넷을, 넷은 또 여덟을 구제하여 종래에는 신(新) 한국의 보존과 발전에 지대한 공을 쌓으리라.

‘결과에 따라 내 입지도 확연히 달라질 테고……. 음!’

계산을 마친 김유걸은 오랜만에 레이더가 바짝 서는 감각을 느꼈다.

잡아야 한다.

어떻게든 그 노인을 합류시켜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 낸다면, 단지 희망 사항에 불과했던 ‘장성 김유걸’도 그저 허황된 망상만은 아닐 거라는 직감이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정 하사.”

“옛!”

“웬만한 조건은 다 수용할 테니 무조건 데려와. 그 부분에 관한 건 전부 일임해 주겠다.”

“충성!”

나쁜 소식을 확 잊게 하여 주는 좋은 소식에 두 사람의 눈빛이 착 맞아떨어졌다.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희미하게 새겨지는 미소에 연결되는 감정선이 언어를 통해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아도 같은 꿈을 꾸고 있음을 명확하게 알려 주고 있었다.

* * *

콰앙!

쩌저저저저저적!

또 한 발의 백색 구체가 폭발하며 도로에 큼지막한 빙산을 세운다.

나는 그 현장을 뒤로하고 매섭게 나아가며 기수 프라구스에게로 쇄도했다.

“아우우우우우!!”

투웅!

투웅!

이런 날 저지하기 위함인지 놈이 연달아 두 발의 백색 구체를 더 토해 냈지만, 내 몸에 닿기는커녕 스치지도 못했다.

‘좌측 어깨, 복부 우측.’

후욱―

후욱―

후우우웅!!

슬슬 보였기 때문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익숙해졌다고 할까? 처음에야 2등급 개체라는 사실과 또 접해 보지 않은 기술에 놀라 움츠렸을 뿐.

일정한 속도감에 단조로운 직선 패턴같이 한계가 명확한 공격법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기력해지기 마련이었다.

특히나.

애당초 ‘등위 상향’ 전에도 2등급 투르바를 때려잡을 정도로 성장해 있었던 나에게는 더더욱.

[돌진]

타앗―

쿵!

휘몰아치는 공세를 비껴 내며 순식간에 좁힌 간격.

“아우우우우!! 아우우우!!”

제 뜻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 당황한 듯 연거푸 짖어 대는 놈.

그 하울링이 채 퍼져 나가기도 전에 목전에 당도한 나는 단숨에 가진 기술을 양껏 퍼부었다.

[순간 회귀 : 오르그의 오른팔]

우득―

우드드득!

[오르그의 파괴 본능]

그걸로.

휘우우우웅!

콰아아앙!

전투는 끝이었다.

[축하합니다!]

[종족 「프라구스」의 ‘기수’를 사냥했습니다.]

[종족 「프라구스」의 ‘깃발’을 파괴했습니다.]

[그에 따라 당신에게 약속된 보상이 주어집니다.]

달빛이 아른거리는 희멀건 먼지구름이 전장을 뒤덮음과 동시에 시야 한편에 몇 줄의 문장이 나타났다.

툭―

툭―

‘과연.’

몸에 잔뜩 묻은 흙먼지를 털어 내며 일어난 나는 상체 윗부분이 깔끔하게 소실된 프라구스의 시체를 발치에 두고 허공으로 시선을 옮겼다.

‘특수 퀘스트’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으로 보이는 이벤트를 클리어했을 때 무엇을 얻게 될 것인지 무의식적인 기대감이 생겼다. 노인에게든 한세정에게든 넘겨주고 가면 웬만한 아이템으로도 비교 못 할 선물이 될 듯해서.

그러한 심정으로 기다리길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곧 입을 떡 벌리게 되었다.

[보상으로 ‘차원 상점 생성권 ― Lv. 1’를 습득합니다.]

[보상으로 ‘혹한의 안전지대 생성권 ― Lv. 1’를 습득합니다.]

“……?!”

말도 안 되는 보상이 내 손아귀에 들어와 있었으니까.

《차원 상점 생성권 ― Lv. 1》

- 소유자가 원하는 장소에 ‘차원 상점(Lv. 1)’을 설치할 수 있는 열쇠. 해당 상점은 제한 인원도, 영업 기간도 존재하지 않는 영구적인 형태이다.

《혹한의 안전지대 생성권 ― Lv. 1》

- 행성 ‘리고르(Rigor)’의 지배종 「프라구스」의 기수가 지니고 있던 깃발을 파괴하고 얻은 열쇠. 소유자가 원하는 장소에 직경 50m 범위의 ‘안전지대’를 설치한다.

해당 영역은 「프라구스」의 영향을 받아 혹한의 성질을 띠고 있어 허락된 아군이 아닌 모든 대상에게 ‘상태 이상 : 둔화’를 부여한다.

“…미친.”

나는 부지불식간에 욕설을 내뱉었다.

‘차원 상점’에 ‘안전지대’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싶어서 공중에 두둥실 떠 있는 홀로그램 화면 속 아이템 설명을 몇 번이고 재차 읽어 내려갔다.

그 정도로 기수 사냥 이벤트의 보상은 가히 역대급이었다.

“…아우우우우!!”

“…아.”

하마터면 아직 일반 프라구스나 조이령의 ‘튜토리얼’의 영향으로 페르니스 네 마리가 추가되었음을 깨끗이 잊어버릴 만큼.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나는 급히 후방으로 몸을 돌렸다.

도무지 충격이 가시질 않지만, 일단은 곽재우와 조이령을 도와주는 게 먼저였다. 이 열쇠에 대한 건 그다음에 생각하리라.

나는 그리 가슴을 진정시키며 괴물들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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