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나는 당혹스러운 기색으로 전면으로 바라보았다.
당최.
이해가 되질 않았다.
조이령과 곽재우가 ‘튜토리얼’을 명목으로 처리해야 할 괴물은 고작 아홉 마리에 불과했으니까.
그런데 왜.
내 눈에는 쉰 마리 이상의 군대가 보이는 것인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심정은 나 혼자만 느끼는 게 아닌 듯.
“어디로 가면……!! 괴물들이!”
“네? 재우 씨, 뭐라… 아?”
뒤따라 나오던 곽재우와 조이령도 전방의 군세를 확인하자마자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허면.
대체 원인이 뭘까.
혹시 두 사람이 임무 내용을 잘못 숙지한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무의식적으로 이유를 찾던 나는 가장 먼저 두 사람의 실수에 초점을 맞추다 이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오차 범위가 적다면 모를까.
한두 마리도 아니고 거의 대여섯 배가량 차이가 나는 상황. 이런 경우는 작정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한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아무런 동기도 없이 아군을 상대로 곧장 들통날 문제를 일으킨다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고.
‘…모르겠다.’
하여 조금 더 합당한 진상 규명에 들어갔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도통 정답 같은 근거는 떠오르질 않았다.
그러던 차에.
‘일단은 어르신의 키메라들을 모아서 방어 체제부터― 음?’
“…아우우우우우우!!”
내 시야에 굉장히 특이한 괴물 하나가 들어왔다.
우두머리인 듯.
최선두에 자리를 잡고서 끊임없이 포효를 터트리는 집채만 한 늑대가. 내가 녀석을 특이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무척이나 단순했다.
펄럭!
펄럭!
‘…깃발?!’
놈의 대가리 위로 커다란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으니까.
[종족 「프라구스」의 ‘기수’를 발견했습니다.]
“……!!”
참 놀랍게도.
세상으로부터 꼭꼭 숨어야 할 기수가 저기 당당하게 서 있었다.
“아.”
나는 그 거침없는 풍채를 목격하고 나서야 작금의 사태가 왜 일어난 것인지 명확한 해답을 얻게 되었다.
문제는 곽재우가 받은 임무.
제일 가까이에 있는 괴물 다섯을 무작위로 선정한다던 그 미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공교롭게도 ‘기수’가 선택되었고, 그로 인해 해당 기수를 보호할 목적으로 주변에 합류 중인 동족 전체를 죄다 끌어모은 게 분명했다.
때마침.
내 쪽에서도, 노인 쪽에서도 괴물들을 떼거리로 사냥하면서 일순간에 인근이 텅 비어 있을 테니…….
시나리오가 완성될 확률은 낮아도 마냥 어처구니없는 얘기는 아니었으리라.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계기로 ‘기수 사냥’ 이벤트를 맞이하게 됐음에 황당함을 토로하며 조이령에게 노인을 비롯해 모두를 불러와 달라 외쳤다.
적군의 규모가 커도 너무 큰 상황.
‘튜토리얼’ 상대로 지정된 다섯 마리야 목표인 곽재우를 노리겠지만, 그 외에 나머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탄이었다.
그러다 보니.
만약 어그로가 튀기라도 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방에서 자고 있을 유신이나 혹은 다른 이에게 애꿎은 피해라도 생기면 큰일이기에 사전에 방지하려면 한곳에 모여 있어야 했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어디든 멀리 이동해 전장 자체를 옮기고 싶지만.
늑대를 닮은 육체를 자랑하듯 이동 속도가 워낙 빠른 탓에 병자들을 데리고 거리를 벌리기는 힘들었다.
그나마 이 와중에 한 가지 다행이라면.
“곽재우.”
“예? 아, 예.”
“정신 차리고, 저 중에 튜토리얼 상대로 지정된 놈이 누구인지 구분할 수 있어?”
“그게… 특수 상황이라는 메시지가 나타나더니 내용이 ‘프라구스’ 다섯 마리 사냥으로 바뀌었습니다.”
“다행이네.”
곽재우의 ‘튜토리얼’이 적절한 방식으로 변경되었다는 점이었다.
쉰 마리를 훌쩍 넘겨 버린 무리 속에서 미션 수행에 필요한 ‘지정 대상’을 어떻게 골라내야 하나 걱정이었는데 그게 말끔히 해결된 셈.
이에.
“좋아. 그럼 여기서 어르신과 함께 버텨. 다섯 마리는 내가 알아서 남겨 둘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 전에 먼저 어르신께 무슨 상황인지부터 설명해드리고.”
“예.”
탓!
나는 곽재우에게 짤막한 지시를 내리곤 지체 없이 프라구스들이 이룩한 물결 안으로 뛰어들었다.
더 근접하게 뒀다가는 대규모 전투의 특성상 사람도 사람이거니와 여기 거주 공간에도 악영향을 끼칠 테니 그 전에 저지선을 구축할 계획이었다.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
후우우욱―
쿵!
쿠구구구구구궁!!
디딤 발을 통해 쫙 퍼져 나가며 새로운 파도를 형성해 내는 마력.
전후좌우.
전방위를 집어삼키는 거센 흐름은 미친 듯이 질주 중인 프라구스들을 향해 이빨을 벌렸다.
그러나.
효과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아우우우우!!”
“……?”
타앗!
기수의 역할을 맡으면 감각도 높아지는 건지.
반대로.
원래 능력이 뛰어나기에 기수를 맡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뭐가 됐든 최선두에 선 기수가 기술이 발동되는 순간을 캐치하여 해당 공간을 ‘뛰어넘도록’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아우우우!”
“아우우!”
후욱―
후우욱―
그 지시에 따라 하나둘 땅을 박차고 저마다 백색 갈기를 자랑하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프라구스들.
“…무슨!”
처음이었다.
이런 식으로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가 파훼당한 건.
물론.
콰직!
콰드득!
“끼이잉!”
“키잉―”
개중에는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결국 깨진 대지의 틈바구니에 끼여 짓눌리거나, 중간마다 솟아오른 바위에 치여 나가떨어지는 놈들도 꽤 존재했다.
허나.
이미 절반이 넘는 물량이 내 저지선을 가벼이 벗어났다는 사실에 나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그도 잠시였다.
“너희가 앞을 막거라! 백구는 나와 유신이를 지키고!”
“컹!”
“다른 분들은 각기 좌우로 서게!”
“네! 어르신!”
뒤에서 들려온 노인과 한세정들의 외침.
뒤늦게 나서서 방진을 구성하고 전투를 개시한 그들을 위해서라도 넋 놓고 있어선 안 됐으니까.
[돌진]
“후.”
콰아앙!
나는 다른 건 다 제쳐 놓고 기수의 뒤를 쫓아 발을 굴렀다.
본능이 소리치고 있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것 중에 첫 번째는 단연 기수의 처치라고. 기수가 활개 치고 다니면 전황에 매우 좋지 않을 거라고.
그렇기에.
일말의 망설임 없이 가속을 거듭하며 기수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우우우웅―!
[플뤼의 탄성 일격]
투웅―
서걱!
‘제대로 걸렸다.’
재빠르게 내지른 왼팔의 손톱이 대기를 가르고 나아가 맹렬하게 질주하던 기수 프라구스의 허벅지를 정확히 긁었다.
십여 마리의 일반 프라구스들이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으나.
견제를 하는 거라면 몰라도,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걸로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나 마찬가지였다.
촤아아악―!!
단단한 근육이 갈라지며 벌어진 상처 속에서 치솟는 핏물.
지구의 늑대처럼 시뻘건 선혈은 한쪽 다리의 새하얀 털을 붉게 물들이며 일순간에 놈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쾅!
그 바람에 땅바닥을 서너 바퀴나 구르며 반쯤 부서진 건물 외벽에 부딪히는 기수 프라구스.
“크르르르르…….”
털썩!
“아우우우우!!”
대미지가 꽤 컸는지.
곧바로 일어나려다 그대로 주저앉아 하울링을 터트리는 놈. 그 처절한 울부짖음에 맹목적으로 뒤꽁무니를 쫓던 일반 프라구스들이 일제히 몸을 돌린다.
그러고는.
후욱―
훅―
“아우우우우우우!!”
“아우우우우!!”
투두두두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조리 내게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기수 프라구스의 포효 속에는 자신의 복수를 바라는 절규가 담겨 있었던 것 같았다.
뭐.
나로서는 잘된 일이었다. 그 결정 덕분에 온 전장을 커버해야 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게 됐으니까.
그저.
우우우웅!!
다가오는 놈들을 지워 버리기만 하면 되는 간편한 싸움판이 되었다.
[오르그의 파괴 본능]
후우욱―
콰아아아앙!!
마력을 잔뜩 머금은 푸른 주먹이 전방을 내리찍은 순간 일어난 폭발에 휘말려 찢겨 나가는 프라구스들.
간신히 살아남은 몇몇이 빛으로 점철된 발톱을 들이민다.
사아아아악―!
사아악!
제법 간격이 떨어져 있음에도 차디찬 냉기가 확 느껴졌다.
‘얼음 속성. 맞으면 얼기라도 하는 건가.’
본 적 없는 기술에 나는 방어나 반격보단 회피하기로 마음먹었다.
속성 공격.
그쪽으로는 저항력이 다소 부족했으니까.
‘마력 방패’나 ‘오르그의 파괴 본능 : 마력 권갑화’ 등으로 대응한다면 무리야 없겠지만, 혹시라도 그걸 뚫고 들어와 동상(凍傷) 따위의 괴상한 흔적을 남길 수도 있는 만큼 섣불리 맞부딪치지 않고 물러났다.
그렇게.
충분히 멀어졌다 싶은 찰나.
“아우우우우우!!”
“아우우우!”
쾅!
프라구스들의 발길질이 내가 막 떠난 자리를 두들겼고.
쩌저저저저적!
쩌저쩌적!
나는 순간적으로 약 십여 미터에 달하는 지반이 쫘르륵 얼어붙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휘유.’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대단한 광경이었다.
만일.
저걸 직접 가격당했다면 어땠을까.
‘피하길 잘했어.’
확신할 수 있었다.
예측한 대로.
별 괴이한 증세에 시달렸으리라고.
“아우우우우!!”
그리 생각하던 직후.
휘우우우욱!
투우웅!
‘……?’
어디선가 총탄을 쏘아 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더 정확하게는.
중세 시대에 함포나 대포를 격발한 것 같은 소음에 반사적으로 시선이 돌아간다. 목적지는 기수 프라구스가 있는 방향.
감각에 의지해 그곳을 바라본 나는 곧 커다란 구체를 마주하게 되었다.
휘유우우우웅!!
냉기가 극도로 집약되었다는 걸 단박에 깨닫게 해 주는 농구공만 한 크기의 백색 포탄이 날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 피해야―’
[플뤼의 탄성 일격]
촤아악!
콰직!
타앗!
그걸 인지한 동시에 판단했고, 판단한 즉시 행동했다.
어딘지도 모를 위치에 틀어박힌 왼손을 타고 비행하는 내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는 구체가 저 멀리 있던 건물과 부딪치며 굉음을 발생시켰다.
콰아앙!!
물론.
쩌저저저저적!
일대를 뒤덮은 지독한 한기를 동반하고서 말이다.
나는 상가 하나가 통째로 얼어 버린 현장을 응시하며 말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저런 끔찍한 풍경은 기존보다 한 단계 진화한 개체.
즉.
‘2등급’ 괴물만이 가능한 연출이었으니까.
“…기수라는 게, 그걸 말하는 거였나.”
어쩐지.
그래서였다.
내가 발현한 기술을 손쉽게 비껴간 것도, 본능이 계속해서 기수부터 처리하라 일렀던 것도 다 놈이 2등급 개체임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아우우우우우우!!”
후우웅!
투웅!
깨달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이 백색 구체가 또다시 날아온다.
한 발, 두 발, 세 발.
“아우우우우!”
투우우웅!!
보통.
기술 한 번 사용하는 데 모든 마력을 투자하는 1등급과 달리 놈의 입에서는 연달아 포탄이 쏟아져 나왔다.
정말이지.
곽재우가 아주 제대로 된 괴물을 낚아 온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