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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60화 (60/232)

60화

“…그런 일이 있었군.”

노인은 쭉 설명해 나가는, 이 일대에 끔찍한 악명을 떨치던 불곰파의 궤멸 소식을 듣고서 꽤나 경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른 것보다.

고작 하루 만에 그러한 일을 벌이는 결단력과 구상한 시나리오를 거의 완벽하게 수행해 낸 능력에 대해 특히 놀란 기색이었다.

서로의 안녕을 빌며 헤어지고서 채 한 달도 되지 않았기에.

“저것들도 다 그 부산물이겠군.”

“그렇습니다. 해서 찝찝하다 싶으시면 전부 처분하고 새로운 아이템으로 교환해드리겠습니다.”

“아닐세. 물건이 무슨 죄가 있겠나. 결국, 사람이 문제인 것이지. 그냥 두게. 어차피 몇 가지만 빼면 다 팔 것 아닌가.”

“알겠습니다.”

제법 장황했던 이야기를 마치자 한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마땅히 더 꺼내 놓을 만한 화젯거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해 온 일이라고는 오로지 불곰파의 멸망을 위한 준비가 전부였으니까.

더군다나.

음주 운전 차량과의 사고로 팔을 잃은 후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체로 입을 열지 않는 성격으로 바뀐 탓도 있었고.

하여.

나는 나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곽재우는 곽재우대로 각자만의 상념으로 시간을 보내던 와중.

“이제 앞으로는 무얼 할 생각인가?”

무기 더미를 뒤적거리던 노인이 무심결에 질문을 던졌다. 단순한 궁금증의 발로인 것 같았다.

이는.

팅―

팅―

적당한 크기의 활을 꺼내 시위를 튕기는 자세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단지 문제라면.

“…….”

내가 보인 반응이었다.

일시적 묵묵부답.

정 계획이 없다면 보통은 모르겠다든가, 고민 중이라는 식으로라도 대답하기 마련인데… 더는 ‘다음’이란 걸 기약하지 않아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일순간 입을 다물어 버린 게.

“……?”

스윽―

그 느닷없는 침묵이 노인의 감을 자극한 것 같았다.

신이 아니기에 내 마음속을 완벽히 꿰뚫어 보진 못하겠지만, 연륜이라는 이름의 지혜가 가르쳐 준 듯했다.

내 영혼의 중앙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는 걸, 무언가 결여된 부분이 생겼다는 사실을.

팽팽하게 조여 있던 활시위를 풀다 말고 슬그머니 날 쳐다보는 눈빛이 그걸 말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자네.”

대략 10여 초가량 가만히 내 눈을 응시하던 노인이 무척이나 진중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뭘 물어보려 함인가.

왠지 더 듣지 않아도 내용을 알 것 같았다.

필시.

내게 생긴 공백에 대해 묻고 싶은 걸 테니.

“혹시―”

똑똑―

“음…….”

다만.

절묘한 타이밍에 울려 퍼진 노크 소리가 노인의 말을 막았다.

“아윤 씨, 저 한세정이에요. 여기 계시다고 들었는데 들어가도 될까요?”

한세정이었다.

충분히 회복하기까지 사흘이 걸린다기에 하루 이틀 즈음은 더 있어야 깨어나리라 예상했는데, 그간 높였던 신체 능력의 힘으로 그 시기를 앞당긴 모양.

그녀의 등장에 노인은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아, 예. 들어오시죠.”

나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위쪽으로 외쳤다.

곧.

끼이이익―

“아윤― 아, 여기 다 계셨네요.”

“아, 안녕하세요…….”

지하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세정, 그리고 그녀의 뒤로 조이령이 보였다.

여기저기에 붕대를 감고서 내게 손을 흔들다 노인과 곽재우도 함께인 걸 인지하고서 황급히 주변으로 몸을 돌리는 두 여인.

아직은 거동이 불편한지.

웃고는 있으나 약간씩 이마를 찌푸리는 모습에.

“하루 이틀쯤은 더 요양해야 할 것 같았는데, 젊어서 그런가, 회복력이 빠르군. 반갑소. 나는 황철성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서 있지 말고 여기 앉으시구려.”

언제 그랬냐는 듯.

예의 인자한 얼굴로 돌아간 노인이 지하실 한쪽에서 의자 두 개를 가져오며 두 사람을 아래로 이끌었다.

“유신이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희를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이런 세상에 남을 무턱대고 돕는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저도 감사합니다.”

그런 노인에게 한세정과 조이령은 잘 움직이지도 않는 허리를 숙이며 감사부터 표했다.

다행이었다.

한세정이야 그간 나에게 취했던 태도로 보아 본인의 처지를 안다면 노인에게도 합당한 예의를 보이리라 확신했지만, 조이령에 한해서는 적잖게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남성 혐오.

불곰파에 갇혀 살며 쌓이고 쌓인 분노와 증오가 적아를 가리지 않고 노인에게까지 칼을 겨누는 건 아닌지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에 제성 초등학교 탈출 현장에서 처음 보았을 때 나를 기피하는 듯했었으니까.

허나.

단순한 기우였다.

“됐소. 살았으면 된 게지. 더욱이 치료는 우리 손주가 한 일이니 나보다는 우리 손주에게나 고맙다고 얘기해 주시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유신이에게도 세 번은 더 얘기할게요. 어르신.”

끼리끼리 어울린다던 말처럼 한세정만큼이나 조이령도 예의를 아는 사람이었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진심을 다해 고마움을 토로하는 중이었다.

그것도.

“저기.”

“아.”

“그, 세정이에게 들었습니다. 절 구출하는 데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고……. 그때는 제가 너무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어요. 조이령이라고 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아윤입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어 준 모두에게.

“재우 씨는 많이 다치신 곳은 없으신 거죠?”

“예, 저는 괜찮습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단 몇 시간이라도 동행했던 곽재우에는 비교적 친근하게 다가가며.

추측대로 제 감정을 완벽히 컨트롤하는 걸까?

아니면.

그 모진 고통을 당했으나 매우 운이 좋게도 남성 혐오증이 발현되지 않은 걸까. 나로서는 기왕 고를 수 있다면 후자이길 바랐다.

‘그래야 함께하는 동안 어르신도 곽재우도 편할 테니…….’

나는 거기까지 상념을 이어 가다 마침 잘됐다 싶어 바닥에 굴러다니는 창 한 자루를 쥐어 조이령에게 건넸다.

“네? 어, 이건 왜…….”

퍽 의아한 눈동자로 무기를 받아 드는 조이령.

옆에 있던 한세정도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딱.

펄럭!

“…케륵! 켁!”

지하실 벽 근처 커다란 비닐로 가려져 있던 괴물이 드러나기 전까진.

“아?”

“아!”

두 여자는.

놀라는 데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팔다리가 박살 난 채 바닥에 박제되다시피 한 괴물의 존재를 인지하자마자 내가 어째서 창을 쥐여 주었는지 단번에 그 의도를 이해한 표정을 지었다.

이 또한 의외였다.

괴물과는 그다지 연이 없는 조이령이라면 비명을 지르지 않을까 상상했으니까.

아마.

한세정에게 전해 들은 것 같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 언제가 됐든 괴물을 사냥해야 한다는 걸. 물론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상당히 미적지근한 광경이긴 했지만 말이다.

여하튼.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흔히 괴물이라고 부르는 외계 생명체를 사냥하면 ‘고유 능력’이란 걸 얻게 됩니다. 동시에 근원석을 통해 성장시킬 수 있는 ‘개인 정보’라는 시스템도 개방하게 되죠. 저는 지금 그 기회를 드릴 생각입니다.”

나는 계획했던 바를 조이령에게 그대로 읊어 주었다.

계속해서 살아남고 싶다면.

그 창으로 이놈의 심장을 찌르라고.

이제 막 지옥의 소굴에서 빠져나온 여인에게 살생을 시킨다는 게 과연 상식적인 행동인지에 관한 진지한 고찰 따윈 없었다.

다른 때라면 모를까.

지금은 ‘기수 사냥’인지 뭔지 하는 이벤트로 괴물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들이닥치게 된 전시.

이런 상태에서 옳고 그름을 하나하나 따질 정도로 나는 매너 좋은 남자가 아니었다.

되레.

여기까지 준비한 것만으로도 매너는 충분히 지킨 셈. 그러니 이제 남은 건 그녀의 선택뿐이다.

“…….”

“케엑!”

조이령은 끊임없이 생존 의지를 불태우며 꿈틀거리는 괴물과 자기 손에 들린 창을 몇 번이고 번갈아 봤다.

때때로 한세정을 바라보기도 하는 게 다소 갑작스러운 진행에 당황한 듯했다……. 라고 여기던 찰나.

“후.”

스윽―

짧게 한숨을 내쉰, 더 정확하게는 기합을 내뱉은 조이령이 창을 두 손으로 꽉 쥐며 성큼성큼 괴물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

그 순간 떠올랐다.

한세정을 구한 게 조이령이었다는 걸. 어떤 면에서는 한세정보다 더욱 대담한 성격의 소유자가 조이령이었다는 걸.

“흐으읍!”

“케륵!”

후우욱!

콰직!

달랑 공간 이동 능력 하나 믿고 괴물을 상대로 스스로 미끼를 자처하던 여인. 그 여인의 친구 역시 필요하다면 망설이지 않고 실행하는 성격이었다.

“아아!”

맥없이 쓰러지는 괴물.

그 시체 위에서 조이령이 허공을 응시하며 감탄을 반복한다. ‘고유 능력’을 비롯해 여러 가지 정보가 출력되는 중이리라.

과연.

조이령은 어떤 능력을 개화했을까. 나를 비롯해 지하실에 모인 모두의 이목이 한곳으로 모인다.

자연스러운 호기심이었다.

“악의…….”

그 중심에서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조이령.

헌데.

“…징벌자.”

‘고유 능력’의 명칭이 굉장히 강렬하다.

악의 징벌자.

이름에서부터 한 가지가 명확하게 보였다.

조이령이 불곰파를 미친 듯이 혐오했다는 것. 그러지 않고서야 삶의 흔적이나 현재 처한 상황을 토대로 부여된다는 ‘고유 능력’이 저렇게 나올 리가 없었다.

대놓고 악인을 타겟팅하는 타입이었으니까.

“…응?”

한참 넋을 놓고 허공에 시선을 고정하다 눈썹을 추어올리며 한세정을 돌아본 조이령이 낯익은 단어 하나를 불쑥 꺼냈다.

다름 아닌.

“튜, 토리얼?”

‘튜토리얼’이었다.

그래.

그게 있었지.

나는 오랜만에 듣는 문자에 크루톤과의 혈전을 회상하며 조이령에게 ‘튜토리얼’이 어떤 형식으로 치러지는지 물어보았다.

웬만해서는 거기까지 길을 터 줄 작정이었다.

아직 환자였으니까.

더군다나.

“…저도, 튜토리얼이란 게 나왔습니다.”

공교롭게도 곽재우 또한 비슷하게 열렸으니 한꺼번에 처리하기도 좋았기에.

“어떤 형식인지 내용을 알려 주시면 두 사람 다 도와 드리겠습니다.”

“저는.”

조이령과 곽재우는 내가 먼저 나서서 도와준다고 선언하자 얼굴을 활짝 폈다.

컨디션도 불완전한 데다가 괴물과의 전투 경험이 전무한 탓에 제아무리 ‘튜토리얼’이라도 홀로 감당하기엔 버거웠을 테니까.

“가장 가까이에 있는 괴물 다섯이 무작위로 설정되어 끌려온다고 합니다.”

“저는 페르니스라는 괴물 네 마리가 찾아온다고 하는데, 괜찮으신가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다만 이곳에서 전투를 벌일 수는 없으니 적당한 장소로 이동을 해야겠습니다.”

미션 자체도 매우 간단한 터라 나는 노인과 유신에게 최대한 피해 가지 않는 선에서 클리어할 요량으로 지하실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랬는데.

“이쪽―”

막 문을 넘어 바깥으로 나온 직후.

내 발걸음은 강제적으로 멈춰졌다.

귓가로.

두두두두두두!!

“……?”

선명한 굉음에 가까운 발 구르는 소음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뭐지?

난데없는 이상 현상에 순간적으로 빠른 판단이 서지 않는 사이 저 멀리 골목길 어귀에서 스멀스멀 붉은 빛무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광채였다.

“…아우우우우우!!”

“…아우우우우!!”

“…….”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족히 수십 마리는 가볍게 넘는 규모의 괴물들이 한꺼번에 발하는 살기 가득한 붉은 동공의 광채가 이곳을 향해 파도처럼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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