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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56화 (56/232)

56화

* * *

“누나.”

날이 점점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병실 침상 옆 책상에 어질러진 침을 정리하던 여인을 불렀다.

“응? 윤아, 왜?”

고저 없는 말투에도 밝게 대답하는 여인.

나는 그녀의 시선이 느껴지자 창밖을 채우기 시작하는 별들을 쳐다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나 좀 놔줘.”

놓아 달라고.

너무 힘들다고.

더 이상 잡아 두지 말아 달라고.

날 좀.

죽을 수 있게 가만히 두라고.

“…….”

그 한마디에 여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 게 얼핏 보였다.

여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5분, 10분, 15분.

시곗바늘이 째깍째깍 움직이고,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그러길 30분.

“윤아.”

마침내 굳게 닫혀 있던 여인의 입이 열렸다.

“누나는 자신이 있었다?”

여인은 죽음을 갈망하는 나를 담담한 눈길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네가 사고를 당하고 나서… 아픔을 겪었지만, 누나가 돕는다면 충분히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

나는 대답 없이 묵묵히 여인의 얘기를 들었다.

“바보같이.”

마치 모노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된 듯.

나를 앞에 두고 혼잣말처럼 자조적으로 이야기하는 여인.

“한 달 전에도, 저저번 주에도, 그리고 어제도. 벌써 세 번이나 쓰러졌는데도 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어딨어? 이미 실패해 놓고서.”

“…….”

“아마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을 꼽는다면,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사람을 찾는다면 내가 될 거야.”

그렇게 여인은 한참 동안 자책과 후회를 반복했다.

헌데.

하나 이상한 게 있었다. 분명 비난에 가까운 내용으로 읊조리면서도 입가에는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으니까.

어째서?

“그런데 말이야.”

의문을 느낄 즈음 푹 수그렸던 고개를 든 여인이 활짝 웃으며 내 손을 붙잡고 말했다.

“나도 인정해.”

“……?”

“누나 바보 맞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혹시 이런 말 들어 봤어?”

점점 더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내용에.

“누나.”

“바보는 실패라는 단어 자체를 모르기에 끊임없이 도전한다. 몇 번이고 실패할지라도 언젠가 꿈이 이뤄질 미래를 바라보며 멈추지 않는다.”

중간에 끊으려 했으나 도리어 손을 꽉 쥐며 날 저지한 여인이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나 바보 맞고, 멍청해. 그래서 실패했어도 놓질 않아. 포기하지도 않고, 절망하지도 않아.”

“나는…….”

“그러니까 힘들 거란 거 알고, 아프다는 거 알지만, 어쩌면 널 위해 놓아주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원하는 미래를 마주할 때까지 물고 늘어질 거야.”

“…….”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좋아. 왜냐면 바보는 이기적이라는 단어도 모르거든. 바보가 아는 건 딱 하나뿐이야. 떨어지면 슬프고, 함께하면 행복하다.”

말을 마치고 배시시 웃는 여인.

나는 호선을 그리는 여인의 눈을 마주 보며 깨달았다.

이 여인은.

자신의 말한 대로 내가 아무리 밀어내도 굴하지 않으려 한다는 걸. 그 강렬한 눈빛에 나는 처음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 라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휘이이이이잉―!

툭―

투둑―

불어오는 바람에 떠밀린 무언가가 하늘을 날다 땅에 떨어진다.

새빨간 액체.

‘피’였다.

툭―

투둑―

한 방울, 한 방울.

대지라는 커다란 도화지를 물들이기 위해 빨간색 물감을 떨어뜨리듯, 방울방울 떨어지던 핏물은.

푸확아아악―!

어느 순간 거칠게 쏟아져 나오며 울컥 주변을 집어삼킨다.

털썩―

그 무렵.

누군가 무릎을 굽히며 주저앉았다.

아니.

“커헉.”

쿵!

앉는다 싶은 찰나에 입으로 피를 게워 내며 아예 고꾸라졌다.

“내가, 내가… 왜―”

그는 쓰러지는 내내 눈을 부릅뜬 채로 주절거렸다. 차디찬 바닥에 드러누운 자신의 모습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더불어.

어찌하여 오른쪽 옆구리가 한 움큼 뜯겨 나갔는지도. 계속해서 손가락을 까닥이는 것 역시 그래서였다.

쓰러지며 놓쳐 버린 도끼를 쥐고서 당장에라도 일어나고 싶은 것 같았다.

허나.

그는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저런 상처를 입고도 마음대로 움직이는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애초에.

찌릿―

찌릿―

“이, 런… 씨ㅂ……!”

해제된 광폭화의 후유증이 전신을 옭아맨 상태였다.

그는.

아니, 조창기는 지금 죽어 가는 중이었다.

터벅―

터벅―

나는 그런 놈을 지나쳐 어디론가로 걸어갔다.

“죽일, 거다……. 내가, 널……!”

조창기는 가까스로 눈동자를 쳐들어 날 노려보며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

뜨문뜨문 끊어지는 단어와 문장 때문에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어투에 담긴 살의와 분노만큼은 분명하게 전달하며.

그러거나 말거나.

목적한 자리에 도착한 나는.

스으윽―

텁―

갈라진 아스팔트에 끼어 있던 물체를 주워 들었다. 가져올 때보다 더욱 처참하게 변해 버린 이덕구의 머리였다.

그러고는.

다시금 조창기에게로 돌아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승리를 위해 모험을 해야 할 만큼 매우 급했었던 것과 달리 무척이나 느긋하게.

“혀, 형님…….”

“창기 형님이…….”

“우리… 어떡하지?”

조창기의 패배에 놀란 불곰파 조직원들이 정신적 충격을 받고 일시적으로 행동을 멈춘 덕분이었다.

그 여유를 활용해 조창기에게 되돌아온 나는 천천히 무릎을 굽혀 놈과 시선을 맞춘 채로 이덕구의 머리를 던졌다.

후우욱―

툭―

데구루루루―

탁!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몇 바퀴를 구르던 머리통이 돌부리에 걸려 딱 멈춰 선다.

정확히.

조창기의 코앞이었다. 흔히 쓰는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콧등 바로 앞에서 제동이 걸렸다.

딱 내가 바라던 대로.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를 마주 볼 수 있게끔.

“혀, 형…님, 덕구… 형님……!!”

조창기는 제 눈앞에 이덕구가 나타나자 턱을 파르르 떨며 울부짖었다. 누구보다 비참하고, 무엇보다 추레해진 몰골에 울분을 토해 냈다.

자신이 아는 이덕구라면.

가장 고귀하고 항상 존중받아야 했을 테니까.

퍼벅!

“아, 아아, 아아아!!”

이렇듯.

발에 짓밟혀 부서져서는 안 됐으니까.

“슬퍼?”

나는 산산조각이 난 두개골에 절규하는 조창기에게 물었다.

너에게 제일 소중한 사람이 이런 꼴을 당했을 때. 너의 기분은 어떠한지. 딱히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허나.

개의치 않았다.

굳이 듣지 않아도 공감이 되었으니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 아아…….”

“다행이야. 너도 느껴서.”

나는 말 자체를 잃어버린 듯 구슬피 울기만 하는 조창기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숨이 멎는 최후까지 슬퍼하며 죽도록.

그리 내버려 두고 황폐해진 거리를 거닐며 다음 사냥감을 찾았다. 개새끼들에게 충성을 바쳤던 버러지들. 불곰파라는 집단의 잔재를 이 땅에서 지워 버릴 차례였다.

* * *

“나,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 정말이야!”

“…….”

“조직원이 된 것도 어제고, 부대도 배정 못 받았어! 그냥, 그냥 고유 능력이 괜찮아 보인다고 뽑힌 거야! 진짜라니까!!”

콰직―

필사적으로 자신을 부정하는 한 명.

“추,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시키시는 건―”

우득―

충성스러운 개가 되겠다던 한 명.

“살, 살려…….”

서걱!

그저 삶을 구걸하던 한 명.

어째서인지 체내에 마력이 남아 있질 않았음에도 무지막지한 육체 능력 차이를 앞세워 수십 명에 달하는 조직원들을 하나하나 죽여 없앴다.

중간에 도망치려던 이들도 있었으나 쫓아가서 죽였다.

누구든.

그 누구도 이 전장에서 살아 돌아가지 못하게 죄다 죽였다.

“…….”

시산혈해(屍山血海).

시체가 산이 되고 피가 바다가 된다던 말을 그대로 가져와 한 편의 지옥도를 그려 냈다. 나는 그 중심에 우두커니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덕구와 함께 제성초 본관을 불태울 때처럼 딱히 이렇다 할 감정은 들지 않았다.

음.

오히려 조금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쳤기에,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세, 세정아!! 세정아!”

그러는 사이.

옆에서 조이령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넌지시 돌아보니.

“흐읍, 흠… 괜찮, 아…….”

“세, 세정아……. 어떡해? 어떻게 해야…….”

한세정은 복부에 칼이 두 자루나 꽂힌 채 쓰러져 있었다.

가까스로 즉사는 피한 듯했지만, 저대로 두다가는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치명상이었다. 조이령은 자신도 팔뚝을 포함한 여기저기를 크게 베여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한세정을 꽉 붙들고 울음을 터트렸다.

“…….”

나는 두 여인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슬슬 자살을 택할 시간이었는데, 본 계획대로 행했다가는 한세정도 한세정이지만 조이령까지 목숨이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리되면 애써 구한 의미가 없어진다.

“곽재우.”

“…….”

“이령 씨를 업고 따라와.”

결국.

나는 선택의 기로에서 죽음을 조금 더 뒤로 미뤘다. 노인과 아이에게 저들을 데려갈 때까지만 자살을 연장한 것이다.

순간적으로.

노인과 아이의 위치만 알려 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했으나, 모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고유 능력’으로 갑옷까지 소환할 수 있었기에 그나마 멀쩡한 곽재우라 할지라도 홀로 둘을 책임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 어디로…….”

“치료해 주실 분을 알고 있어. 그리로 간다.”

“아윤… 씨.”

“움직이느라 조금 아플지도 모릅니다. 정신 잃지 마셔야 합니다.”

곧 곽재우가 조이령을 둘러업자 나는 앞장서서 노인과 아이의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거리가 꽤 됐고, 완연한 아침이 된 탓에 중간마다 괴물들과 조우할지도 모르는 상황. 피로가 쌓이고 쌓여 점차 느려지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며 빌딩 사이를 지나 얼마나 달렸을까.

“컹!”

“컹!”

‘이건.’

멀리서 낯익은 하울링이 들렸다.

백구.

이름 모를 노인의 첫 번째 키메라 백구였다. 그 소리를 인지하고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더 익숙한 음성과 함께 일단의 무리가 코너를 돌며 나타났다.

“컹!”

“할아버지! 백구가 자꾸 짖어!”

“이쪽에 뭐가 있다는 게냐?”

“케에에엑!!”

“케륵, 케르륵!”

두 명의 사람과 세 마리의 키메라로 이루어진.

“어? 할아버지! 저 아저씨!”

“응? 아니, 자네.”

바라마지 않던 노인과 손자였다.

운이 좋게도.

바깥 수색을 나왔다가 돌아가는 참에 길이 맞물린 것 같았다.

“오랜― 아니, 인사 나눌 때가 아니군. 유신아, 치료를 좀 해야겠다.”

“네! 그, 형아! 누나들 좀…….”

“유신아. 저분 먼저 봐드리거라. 여긴 위험하니 응급 처치만 해 두고 본격적인 치료는 들어가서 해야겠다.”

“응! 할아버지!”

노인과 아이는 나와 만나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하다 말고 금세 위급 상황임을 파악하고는 한세정의 치료에 들어갔다.

“합!”

우우우웅!

유신이라 불린 아이의 손에서 빛이 흘러나오길 잠시.

창백해졌던 한세정의 얼굴에 조금씩 핏기가 도는 게 보였다.

물론.

겨우 조금 나아졌다 하는 수준일 뿐.

여전히 위험하기는 매한가지였기에 서너 번에 걸쳐 유신이 빛을 뿜어내고 난 뒤 우린 서둘러 노인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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