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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55화 (55/232)

55화

위에서 아래.

후화하하하학―!!

대각선으로 공간을 찢으며 다가오는 거부(巨斧).

귀신에 씐 듯.

붉은색 아지랑이로 뒤덮인 도끼는 주변의 대기를 거칠게 찢으며 기다란 선을 그린다. 마치 허공에 피를 쫙 흩뿌린 것 같은 기괴하고도 불길한 선을.

‘베인다.’

나는 그것을 앞에 두고 팔을 들어 올리며 직감했다.

아무런 대비책 없이 맞상대했다가는 설령 괴물의 육체일지라도 뼈와 살점이 모조리 갈라지리란 걸.

김성원, 김성태, 이석열, 이덕구.

그 외에 불곰파의 수많은 간부 및 조직원들과 겨뤄 봤으나 이번만큼은 그 격이 달랐다.

놈은.

‘준비’가 돼 있었으니까.

김성원이나 김성태처럼 실력이 떨어지지도, 이석열이나 이덕구처럼 방심하지도 않았다. 무기는 두 손에 꽉 쥐고 있었고, ‘고유 능력’ 또한 제때 활성화시켰다.

즉.

조창기는 내게 있어서 여태껏 마주한 다수의 상대 중 제일 위험한 적. 나 역시 처음부터 필사의 각오로 임해야 했다.

‘전력으로.’

우우우우웅―!!

다짐과 동시에 뜨겁게 끓어오른 마력이 순식간에 오른팔로 모여든다.

그 직후.

[오르그의 파괴 본능]

후우우우욱―!

콰아아아앙!!

푸른 빛을 머금은 주먹과 붉게 물든 도끼가 서로의 에너지를 과시하며 한데 뒤엉켰다. 그 중심에서 수십, 수백 조각으로 나뉘어 사방을 부숴 나가는 마력 파편.

예상대로.

완전한 무장을 갖춘 조창기의 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빠득―

그런 탓에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무겁, 다.’

충돌 이후 전해진 묵직한 무게감에 손끝부터 팔 전체가 순간적으로 마비가 온 듯 저릿거렸기 때문이었다.

제아무리 아이템이 없었다고 한들.

두목인 이덕구의 ‘불곰의 영혼’과 격돌했을 때에도 느끼지 못했던 증세를 고작 일 합 만에?

정말이지 기가 막히는 대미지였다.

허나.

놀랄 시간은 없었다.

“으아아아아아!! 죽인다아아아악!!”

후우우욱―

후욱!

분명.

놈 또한 나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을 텐데, 전혀 아니라는 듯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재차 도끼를 휘둘러 왔으니까.

‘능력을 발동하면 고통 불감 상태가 된다더니.’

나는 조창기의 능력을 떠올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흡사.

분노에 잠식되어 괴물이 되면 찰나지만 진화에 가까운 힘을 얻는 나처럼, 발동 시 이성을 잃는 대신 그 대가로 신체가 강화되고 고통 불감 상태로 변해 끊임없이 공세를 이어 간다는 광폭화.

놈은 그걸 바탕으로 한 마리의 황소처럼 맹렬하게 돌진해 왔다.

슈화하하학!!

콰앙!

아슬아슬하게 피해 낸 도끼에 찍혀 쩍 하고 갈라지는 도로.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큼지막하게 생성된 크레이터 위에서 땅에 틀어박혔던 무기를 뽑아 든 조창기가 숨 쉴 틈 없이 곧바로 도약해 날아오르며 그대로 내려찍기를 시도했다.

후화하하하학―!!

단순한 일격이 아닌지.

도끼날 쪽으로 붉은 아지랑이와 함께 막대한 양의 마력이 한가득 모여드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놈이 ‘기술’을 쓰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저게 ‘분노 조절 장애’와 ‘광폭화’의 가장 큰 차이였다.

똑같이 이성을 잃을지언정.

오로지 육체에 의존해 싸우는 「프레데터」와 달리, 「버서크는 필요하다면 ‘기술’도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으니까.

아마.

‘분노 조절 장애’의 경우는 독립적인 능력이라기보다 기억 포식의 부가적인 효과이기에 그러한 간극이 존재하는 듯했다.

여하튼.

상대가 저리도 저돌적으로 들이대고 있으니.

[플뤼의 탄성 일격]

투웅―

콰직!

후우우욱!

나는 굳이 부딪쳐 주지 않고 좌측으로 크게 몸을 틀었다.

“으어어어어어어!!”

쾅!

쿠구구구구궁―!

예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 주듯, 일반적으로는 크레이터가 생겨야 할 자리에 송곳인 양 뾰족한 암석들이 솟아오른다.

하나라도 치였다간 뼈째로 찢겨 나갈 광경에 물러서길 잘했다고 중얼거린 나는 빠르게 기억을 더듬었다.

불곰파 조직원들에게 전해 들었던 광폭화에 대한 다른 설명은 또 뭐가 있었는지.

나아가.

그래서 저놈과 싸워 이길 방법은 무엇인지. 이 점에 관해서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었기에 결론은 금세 나왔다.

‘놈과의 전투에서 핵심은 시간이다.’

광폭화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모르되, 일단 사용했다면 버티기만 해도 이긴다고.

기본적으로 버서크는 보유한 체력과 마력을 산화시키는 단발성이 매우 강한 능력이기 때문이었다. 주워들은 정보인 터라 확률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버티는 방향으로 목표를 두는 게 좋았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서라도.

피를 마시면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오는 나와 다르게 광폭화는 치명적인 ‘후유증’을 동반한다 했으니까.

‘근데, 그때 노리면 조창기도 그냥 깔 수 있지 않겠냐?’

‘그때?’

‘엉, 그 버서크인지 뭔지 한번 쓰고 나면 몇 분 동안은 빌빌거리잖아. 그때 뒤통수 까는 거지.’

‘아, 그러면 가능은 하겠다. 옆에 양건덕 그 새끼나 다른 놈들만 없으면.’

‘쓰벌.’

다소 급격하고 과격한 체력 및 마력 소모에 의한 무기력증. 유일하다고 볼 수 있는 조창기의 약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니.

‘버틴다. 버티는 건 어렵지도 않으니까.’

확실하게 결정을 내린 나는 곧장 마력을 쏟아 내며 다리를 뻗어 대지를 두들겼다.

우우우웅―!

바위를 솟구치게 해?

그런 스킬은 나도 갖고 있다.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

쿠웅―

쿠구구구구궁!!

직경 15m에 달하는 지반이 역동적으로 춤추기 시작한다.

그 격렬한 진동에.

탓―

“으어억―”

콰직!

쿵―

다시금 쇄도해 오던 조창기가 발을 내딛다 땅바닥을 굴렀다.

아스팔트가 깨지면서 균형을 잃은 탓이었다. 광폭화는 반응 속도 향상에도 영향을 끼쳤을 테지만, 워낙 갑작스러운 흔들기에 하체가 무너지는 걸 막지 못한 듯했다.

물론.

“크아아아아!!”

쓰러지는 동시에 일어나려 노력했으나.

콰앙!

퍼억!

마냥 쉽지는 않았다.

때마침 튀어나온 바위에 옆구리를 제대로 치인 데다가.

빠각!

콰직!

쿠우웅!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는 특성상 한번 걸려 넘어지면 그 뒤로는 끊임없이 치이도록 구성되어 있었으니까……. 라고 막 생각하던 참이었다.

“반중력!”

누군가의 외침이 들리더니.

“……?!”

“크아아아악!!”

우우웅―!

쭈아아악!

느닷없이 마력이 휘몰아치며 허우적거리던 조창기의 육체가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뒤쪽에 멍하니 서 있던 조직원 중 한 명이 빠릿빠릿하게 정신을 차리고서 위기에 몰린 그를 구해 낸 것이었다.

조창기의 전투 스타일은 철저히 개인 플레이에 특화된 형태.

따라서 자연스레 일대일 구도가 될 거라 여겼으나, 그건 내 착각에 불과했다. 협동은 어려울지 몰라도, 버프와 같이 원거리에서 도와주는 행위는 언제든 가능했으니 말이다.

“뭣들 해! 버프 넣고 힐 해드려!!”

“예, 옛!”

“디버퍼들도 앞으로 나와!”

“빨리빨리 움직여!!”

“…젠장.”

하나가 움직이니 연쇄적으로 둘이 움직이고, 셋이 움직이는 톱니바퀴식 참전에 욕이 절로 나왔다.

그러던 차에.

“재우 씨, 싸울 수 있겠어요?”

“말했잖습니까. 목숨 내놓았다고.”

“그래도 죽지는 마세요.”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후, 아무튼 제가 왼쪽으로 갈게요. 시선만 끌어 주세요.”

내 후방에서도 몇 마디 대화가 들리더니.

“흐아!”

쿠웅―!

이내.

전신을 붉은 갑주로 휘감은 곽재우가 오른쪽으로 쭉 돌며 달려 나가는 게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령아, 이번만큼은 물러나 있어.”

“응……. 조심해!”

“걱정 마!”

번쩍―

몇 초 지나지 않아 한세정도 빛무리에 휘감겨 사라진다.

그녀가 다시 나타났을 때에는.

“…켁! 케엑!”

“여, 여기다!”

“씨X, 잡아!”

[‘속박의 저주’에 당했―]

[발동이 취소되었습니다.]

서둘러 날 향해 팔을 뻗던 남자가 갈라진 목덜미를 붙잡고 쓰러지고 있었다.

“…….”

압도적으로 부족한 수.

그러나.

두 사람은, 아니, 한세정이 당부했음에도 슬그머니 칼을 쥐고서 불곰파 조직원들에게 다가가는 조이령까지 셋은 두렵지도 않은지.

저쪽에서 조창기에게 도움을 주자마자 제 목숨을 내놓고 전장에 몸을 들이밀고 있었다.

“…미치겠네.”

참 미력한 결의에 감탄인지 탄식인지 구분할 수 없는 한마디를 툭 흘려보낸 나는 고개를 돌렸다.

저들의 신념은 확고했다.

나를 위해, 나아가 자신들의 복수를 위하여 목숨을 걸겠다는.

그러하다면.

지금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어서 도망치라고, 그냥 물러나라고, 여긴 나 혼자 맡을 테니 비켜서라고 떠들어 댈 게 아니라.

[스트랭스]

[마력 방패]

[오르그의 파괴 본능 : 마력 권갑화]

우득―

우우우웅―!!

“후우.”

[돌진]

쾅!!

싸우러 나가는 게 최선이었다.

싸워서.

“그아아아아아아!!”

저 개자식을 찢어 죽이고 승리하는 게 모두를 위한 최고의 선택이었다.

“흐아아아!!”

콰아아아아앙!!

폭발이 인다.

내 나름대로의 버프를 더해 내지른 권격과 불곰파 조직원들의 버프를 받아 온 조창기의 도끼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서로의 목숨을 노렸다.

그 속에서.

[베어 내기]

촤아아악!

쾅!

나는 있는 수 없는 수 죄다 꺼내 놓았다.

[플뤼의 탄성 일격]

투웅!

슈확―!

“그어어어!!”

우우우우!!

쿠웅―!

조창기 역시 제가 보유한 건 남김없이 토해 냈다.

이 전심전력의 사투는 엄청난 속도전의 양상을 띠었다. 나는 한세정들의 목숨을 지키고자, 놈은 광폭화가 풀리기 전에 마무리 짓고자…….

서로 0을 향해 가는 각자의 시계를 바라보며 사선을 넘나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언제……!’

나는 점점 마음이 급해졌다.

도통.

놈의 광폭화가 풀릴 기미가 보이질 않았으니까.

더 정확하게는.

후유증에 휘말려 빌빌대는 조창기의 표정을 목격하기도 전에 한세정이든 곽재우든 조이령이든 죽어 나갈 것만 같았다.

내게 있어서 최우선 과제는 복수고, 그 복수를 이루는 데 있어서 뭐든 이용할 거라 다짐했지만.

그렇다고 저들의 죽음을 발판 삼고 싶지는 않았다.

모순이다.

허나 내 심정은 그러했다.

‘후, 해 보자.’

하여.

결국 나는 칼을 빼 들었다.

동시에.

콰앙!

한번 몸을 부딪친 후 황급히 뒷걸음질 쳤다.

힘에 부쳐 도망가는 듯.

휘청―

중간에 일부러 다리를 꼬아 휘청거리기도 했다. 누군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고꾸라질 것처럼.

삽시간에 탄탄하던 자세가 무너졌고, 더는 반격도 회피도 불가능한 형태가 되어 버렸다.

굉장히.

먹음직스럽게.

“그아아아아!!”

효과는 뛰어났다.

딱히 노린 건 아니었지만, 놈이 미쳐 있던 상태라 평소라면 의심할 법도 한 행위에도 대놓고 걸려 주었다.

어쩌면.

본능적인 판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보통의 인간은 이런 상황이라면 꼼짝없이 사냥당하고 마니까.

다만.

알다시피 난 보통의 범주에 끼지 않는 타입이었다.

“그어어어어!!”

슈화하하하하학!!

‘지금.’

[순간 회귀 : 플뤼의 왼팔]

콰득―

큰 대자로 왈칵 넘어가려던 순간, 매섭게 달려온 조창기가 도끼로 내리찍던 타이밍에 맞춰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왼팔로 손톱을 바짝 세우며 땅을 찍었다.

그러고는.

슈화하하학!!

타앗―!

도끼에 찢겨 나가기 직전에 왼팔을 지지대 삼고 백 텀블링으로 몸을 뒤집었다.

단 1초만 늦었어도 하반신을 잃을 뻔한 행동이었으나 비정상적인 길이를 자랑하는 괴물의 신체와 40을 돌파한 감각을 믿었고, 결과적으로 훌륭하게 해냈다.

콰아아아앙!!

뒤늦게 대지를 강타하는 도끼.

덕분에.

탁―

공중제비를 돌아 땅에 내려섰을 땐 내가 공격할 턴이 만들어졌다. 후면으로 돌았던 탓에 살짝 거리가 벌어져 있었으나 상관없었다.

대략 2m 간격?

[오르그의 전투 본능]

우우우웅!!

겨우 이 정도는.

[순간 회귀 : 오르그의 오른팔]

콰즉―

콰지직!

“…흐아아아아아!!”

내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콰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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