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누구인가.
“…….”
조창기는 서광(曙光)을 등지고 선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자연스레 위아래를 훑어보던 조창기는 무엇보다 먼저 ‘특이하다’라는 감정부터 들었다.
어디 짐차 트럭에서 쓸 법한 푸른색 포대기를 망토나 장포처럼 몸에 쫙 두른 데다가, 그나마 유일하게 드러난 얼굴 중 이마엔 아이템을 착용한 건지 툭 하고 작은 뿔이 솟아 있으니.
굳이 가려진 부분을 확인하지 않더라도 평범치 않은 존재라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놈인가.”
그러다 불현듯 한 사람이 떠올랐다.
최태용인지 뭔지 하는 부하가 떠들어 댔던 고양잇과 짐승의 발을 가진 습격자. 조창기는 왠지 저 남자가 그와 동일인물로 보였다.
단순한 추측에 불과했지만.
뿔이 달린 것도 그렇고, 저렇게 전신을 감춘 이유가 그 괴이한 다리를 숨기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작금의 세상에서는 무난한 외형일지라도 경계당하기 일쑤였으니까.
“형님, 여기 계십쇼. 제가 후딱 잡아 오겠습니다.”
홀로 상념을 정리하는 사이 부하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평소 양건덕의 자리를 노리던 이들 중 한 명으로, 흔히 조폭 하면 으레 떠올리는 회칼을 굉장히 잘 다루는 실력자였다.
조직 내 무력 서열은 대략 20위권 안팎.
그는 지금이 자신의 가치를 선보일 좋은 무대라고 판단했는지, 양건덕을 비롯해 여러 간부들이 죽은 이때를 노려 조창기에게 인정받아 권력을 쥐려 욕심이 그득한 눈빛으로 허락을 기다렸다.
이에.
“가 봐.”
“옛!”
조창기는 부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능적으로 양건덕이 나선다 해도 저 남자를 이길 수 없으리라 직감했지만, 딱히 말리지 않았다.
이덕구는 항상 얘기했다.
승리하길 원한다면 돈이든 부모·자식이든 전부 이용하라고. 똑똑하진 못할지언정 영악하게 굴라고.
조창기는 그 이념을.
늘상 의리와 형제 의식을 강조하면서도 결국 몇몇 이들을 제외하고는 조직원 전원을 한낱 장기 말로 여기는 이덕구의 성향을 누구보다 강하게 이어받은 이였다.
알아서 제 목숨을 바쳐 힘을 빼놓겠다는데 구태여 거절할 까닭이 없었다.
혹여라도.
의외의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것이고.
“흐아!!”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쿠웅―
필사의 각오로 뛰어나간 부하가 제 장기인 회칼과 거의 흡사한 단도를 뽑아 들며 장포 남자에게로 달려든다.
10m, 8m, 5m…….
순식간에 줄어드는 간격 속.
“으아아아아!!”
기합을 토해 내며 칼날을 휘두르는 부하.
콰직!
그 직후.
난데없는 파육음이 들렸다.
부하의 칼날은 아직 허공을 가르고 있는데 어디서? 의아한 눈초리로 전면을 응시하던 찰나.
촤아아아악!!
“커헉!”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부하의 몸이 활처럼 휘었다가 펴지며 땅바닥에 떨어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부하의 복부와 등을 한꺼번에 꿰뚫은 각기 다른 길이의 칼날 몇 자루가 역할을 다하고 몸통에서 빠져나가는 것까지도.
‘…칼?’
삽시간에 펼쳐진 장면이었으나 조창기는 자신이 제대로 보았음을 확신했다.
분명.
다섯 개의 칼날이었다.
‘야수화라도 해서 다리를 주 무기로 쓰는가 했더니, 칼이 진짜였나? 아니면 둘 다인가.’
조금 더 정보가 필요하다.
하여.
“너, 너, 거기 너까지. 나가 봐.”
“옛!”
“옛!”
“옛!”
이번에는 제법 실력 있는 부하 셋을 한 번에 내보냈다. 역시나 저 남자에게는 상대가 안 될 수준이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오로지 데이터를 축적하는 데 집중할 뿐.
“좌우로 갈라져! 내가 중앙을 맡는다!”
“하아!”
“죽엇!”
선발된 셋은 각기 사용하는 무기의 특성을 살려 창을 쥔 이가 중앙에 서고 나머지 검을 쥔 둘이 좌우로 돌아 공격하는 일반적이면서도 효과적인 포메이션을 잡았다.
물론.
전투의 결과는 조창기의 예상대로였다.
“죽어라!!”
슈화하하하학!
텁!
“……?!”
무척 간단하게도 매섭게 밀려들어 오던 창을 한 손으로 붙잡은 후.
꽈아아악―
후우욱!
“어, 어어!”
창을 쓰는 부하의 덩치가 꽤나 거구였음에도 불구하고 손쉽게 끌어당기는 동시에 살짝 발을 구르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는.
탁―
서로 부딪칠 듯 말 듯한 간격 속에서 재빨리 창을 놓더니 그대로 부하의 머리통을 틀어쥐고는 자세를 낮추며 대지에 메다꽂은 게 시작이었다.
콰아앙!!
푸화학―!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박살 나 흩뿌려지는 핏물과 두개골.
그 피 웅덩이 위에 거의 닿을 듯 수그렸던 남자는, 양쪽에서 쇄도한 칼날이 애꿎은 허공을 가르던 타이밍에 맞춰 몸을 확 일으켜 좌측으로 도약해 누군가의 옷깃을 붙잡고 복부를 후려쳤다.
콰직!
“커흑―”
일격이었다.
장포가 휘날리는 바람에 주먹이리라 추정되는 무언가로 명치를 두들겨 맞은 부하는 그 즉시 눈을 뒤집어 깐 채로 풀썩 쓰러졌다.
“켁, 케헥…….”
부들부들 몸을 떨며 연신 피를 게워 내는 것으로 보아 갈비뼈를 포함한 체내의 장기가 모조리 부서져 나간 듯했다.
“이, 이이…….”
세 번의 공격에 세 번의 죽음.
이쯤 되니.
호기롭게 나섰던 부하가 슬그머니 뒷걸음질 친다. 제아무리 권력이 대단하다 한들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았으니까.
허나.
후우우우욱!
콰직!
“…아.”
안타깝게도 도망치기는 힘들었다.
남자가 나서기도 전에, 어느새 속박에서 벗어난 한세정이 땅에 굴러다니던 단도를 주워 들어 던졌기 때문이었다.
털썩―
“…….”
조창기는 생명의 불이 꺼져 바스러지는 부하들을 지켜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도합 넷.
그것도 꽤 괜찮은 실력자들을 밀어 넣었음에도 데이터를 확보하기는커녕 되레 전반적인 기세만 꺾여 버렸으니까.
“쓸모없는 놈들.”
나지막하게 혀를 찬 조창기가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 싶어 조직원들을 대거 투입하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리던 그때.
이제는 완전히 서광을 품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조창기.”
작게 읊조리는 이름.
대뜸 자신을 부르는 남자의 음성을 듣고 시선을 마주한 순간.
파직―
“……?!”
조창기는 전류가 튀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살기(殺氣).
짙은 분노와 지독한 살의가 한데 뭉치고 뒤섞여 만들어 내는 살기가 빚어낸 전류가 전신을 강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 격렬한 기세에.
툭―
조창기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겨우 두어 발자국이었지만.
발을 딛고 나서야 이를 인지한 조창기는 그 사실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 이게 무슨…….”
자신이 누구던가.
대불곰파 내에서도 무력으로는 반드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간부 중의 간부였다.
헌데.
고작 기세에 밀렸다고?
“조창기.”
당황스럽다 못해 황당해질 무렵.
다시 한번 이름이 불렸다.
“너, 뭐냐.”
조창기는 그 부름에 답하기보단 도리어 질문을 던졌다.
어처구니가 없어서라도 알고 싶었다.
대체.
뭐 하는 놈인지.
그 짤막한 물음에 여태껏 ‘조창기’란 단어 외엔 침묵을 지키던 남자의 입에서 새로운 문장이 흘러나왔다.
“과거에는 외팔이었던 머저리, 지금은 인간의 탈을 쓴 복수에 미친 괴물(怪物).”
이라고.
“……?”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얘기에 미간을 찌푸리던 조창기는 무의식적으로 남자의 대답을 곱씹다 문득 한 인물을 기억해 냈다.
“잠시만.”
세상이 멸망해 버린 이후.
이덕구의 명령을 따라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납치해 오던 어느 날 마주쳤던 외팔이 청년을. 워낙 많은 이들을 끌고 왔던 탓에 보통은 잊어버리기 일쑤였지만, 그만큼은 하도 인상이 깊어서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이덕구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남매였던 데다가.
특히나 금방 끝날 거라던 예측과 달리 장애를 갖고 있었음에도 무려 10일이나 고문을 버터 냈었으니까.
“살아 있었나? 계집년이 뒈져서 폐기 처분당했다고 들었는데.”
점차 선명해지는 이미지에 조창기는 순수하게 놀라 중얼거렸다.
당시에.
과연 얼마나 더 버텨 낼까 개인적인 궁금증으로 결과를 알아봤으나, 끝내 여자가 죽어 용도가 사라지자 초주검이 된 상태로 버려졌었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죽었으리라 단정 지었거늘.
“살아 돌아왔다.”
남자는 그런 조창기의 커진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살아남았고, 아득바득 발버둥 치며 살아남았다.”
또박또박.
“덕분에, 오늘로써 개새끼들을 마음껏 처죽일 수 있었고.”
이 공간에 자리한 모두가 들을 수 있게끔 한 글자, 한 글자를 또렷하게 내뱉는다.
본인이 그 고문받던 머저리가 맞으며.
“제 욕망에 미쳐 있던 이덕구를 불태울 수 있었다.”
종래에는 이덕구를 태워 죽인 남자라고.
“…뭐?”
그 대사의 끝자락에서 조창기는 반사적으로 반문했다.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누가, 누굴 불태―”
다만.
휘익―
조창기는 반박에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가 무언가를 던졌기 때문이었다.
툭―
데구루루루―
10여 미터를 굴러와 발치 앞에서 딱 멈춘 동그란 물체.
반쯤 그을린 채로 목에서 강제로 뜯어낸 듯 살점이 휘날리는 ‘이덕구의 머리’였다.
“……!”
조창기는 눈을 깜빡였다.
믿기지가 않았으니까.
아니.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
허나.
몇 번을 봐도, 눈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비벼 봐도 반쪽밖에 남지 않은 머리의 주인은 반평생을 보살피며 모셔 온 이덕구였다.
“더, 덕구 형님이라고?”
“씨X, 진짠데?”
“나만 미친 거 아니지?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거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부하들의 경악스런 목소리가 그걸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덕구 형님!”
후욱―
이에 현실을 직시하고서 황망한 눈빛으로 급히 무릎을 굽혀 팔을 뻗는 조창기.
그를 향해 남자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원래는 죄다 불살라 버리려고 했다. 뼛조각 하나까지. 그런데 말이지. 다시 생각해 보니까 그건 너무 호사였어.”
“…….”
“개돼지만도 못한 버러지라면,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다 뜯어 먹히든 밟혀 터지든 해야 맞는 거잖아.”
“…….”
“안 그래?”
조롱이었다.
웃음기 하나 없는, 착 가라앉은 중저음의 음성이었으나 조창기는 명확하게 느꼈다. 망자가 된 이의 영혼마저 가차 없이 짓밟고자 하는 남자의 집념을.
“…버린다.”
참을 수가 없었다.
“죽여.”
조창기는.
탁―
들어 올리던 이덕구의 머리 대신 ‘갈취하는 도끼’라는 명칭이 붙은 자신의 애병을 붙들었다.
자루를 쥐자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과거.
‘창기야.’
‘예, 형님.’
‘받아라.’
‘예?’
‘요즘은 이런 걸 오다 주웠다고 한다지?’
‘그게 무슨…….’
‘선물이라고, 인마. 꽤 비싼 거니까.’
‘푸흡, 알겠습니다.’
그런 탓에.
이성적으로는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그리 행동할 수가 없었다.
하늘 같은 분이었다.
부모는 물론 자신의 인생마저 무너뜨리던 사채업자들로부터 구원받은 이후로 목숨을 바쳐 따르겠다고 맹세했던 우상이었다.
가족보다 더 가족다워진 존재를 조롱하는 자를 앞에 두고 이성을 따지는 건.
“죽여 버린다.”
지나온 삶을 대변하는, 향후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고유 능력’마저 미쳐 버린 조창기에겐 절대로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버서크]
“그아아아아아아!!”
콰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