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기, 기습이다!”
“피해!”
서너 명이 동시에 쓰러져 땅을 나뒹굴자 급하게 걸음을 멈춘 조직원들이 서둘러 방어 태세를 취한다.
그동안 몇 개의 칼날이 재차 날아들어 둘 정도가 더 피격되었으나, 근력 혹은 육체 능력만으로 던지는 건지 단단히 방벽이 갖춰진 이후에는 더 이상 암습당하는 이가 나오지 않았다.
이에.
“찾아!”
조창기는 회복 계열 능력자들을 내보내는 동시에 탐색 및 추적 계열 능력자들에게 방어 병력을 대동시켜 전방으로 급파했다.
투척 양으로 보아 적은 둘이나 셋에서 많아야 다섯.
그렇다는 건 척후나 경계조일 가능성이 크니 반드시 붙잡아야 했다. 이쪽의 공습이 들켜서 좋을 건 없으니까.
이런 조창기의 의지가 분명히 전달된 듯.
“둘로 갈라져!”
“너흰 우측으로 가! 우리가 좌측으로 간다!”
“옛!”
임무를 부여받은 조직원들이 좌우로 갈라져 마력을 아낌없이 투자하며 칼이 날아온 방향을 들쑤시기 시작한다.
10여 명에 달하는 인원이 한꺼번에 달려들자 흔적을 발견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한 시 방향! 한 시 방향에서 생명체 감지!”
“인원은?!”
“한 명! 한 명입니다!”
“쫓아!”
“엣!”
1분여도 채 걸리지 않아 얻어 낸 성과에 조창기가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
“어, 어?”
“뭐야!”
“그게…….”
“빨리 안내해!”
길 안내를 맡아 앞장서던 남자가 서둘러 가도 모자랄 판에 갑작스레 멈춰 서더니, 이내 ‘한 시 방향’과는 전혀 다른 곳을 가리킨다.
이게 무슨 일인가.
쌩뚱맞은 행동에 모두가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찰나.
“아, 아아…….”
후우우우욱!
콰직!
“영춘아!”
남자가 가리킨 부근에서 튀어나온 칼 한 자루.
워낙 황당한 상황이라 방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틈을 비집고 들어온 비수는 그의 미간에 틀어박혔다.
털썩―
맥없이 주저앉는 남자.
더 볼 것도 없이 즉사였다.
“……!”
이 일련의 사고를 쭉 지켜보던 조창기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적의 실력이 만만치 않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감지되자마자 부지불식간에 자리를 이동하는 것도, 그 와중에 칼을 던져 부하를 맞히는 것도 보통 수준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니까.
허나.
의외로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무력에 자신이 있으니 대불곰파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을 터.
오히려 좋다.
본디 사냥이란 건 적당한 발악이 있어야 더 즐거운 법. 살고 싶어 몸부림쳐야 물어뜯는 맛도 있으니 조창기는 차라리 잘됐다는 표정으로 턱을 까딱였다.
그러자.
“바로 잡아 오겠습니다.”
따로 설명은 없었지만, 찰떡같이 의미를 이해하고서 조창기가 지닌 도끼와 비견될 정도로 큼지막한 대부(大斧)를 등에서 풀어 쥐며 선두로 나서는 양건덕.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하앗!”
거센 기합을 내지르며 어디론 가로 몸을 던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폭음이 들려왔다.
콰아아앙!!
수색대나 척후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알아서 적의 위치를 포착해 싸우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개시된 본격적인 전투에 조창기의 미소는 한껏 더 짙어졌다.
기대가 됐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얼마나 포획해 갈 수 있을진 모르나, 몇 놈이든 생포해 가면 이덕구의 마음도 한결 누그러질 테니까.
이덕구에게 진정으로 충성을 바치는 조창기로서는 그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 * *
순식간에 줄어드는 간격 속.
나는 일말의 주저함 없이 이덕구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오르그의 파괴 본능]
우우우우웅―
급격하게 응축된 마력이 빛을 발하며 오른팔과 함께 떨어져 내린다.
그 순간.
“제발, 제발…….”
“가만히… 흐읍!!”
앳된 여인을 짓누르며 하의로 손을 가져가던 이덕구가 180도로 홱 회전하며 왼 주먹을 쳐올렸다.
꽤나 기습적인 공격이었건만.
더군다나 딴 데 정신이 팔려 있었으나, 자신이 왜 악마 소굴의 왕이라 불리는지 증명하듯 아슬아슬할지언정 날카롭고 빠른 반응 속도였다.
그 결과.
콰아아앙!!
살점을 찢어발기기 위해 쏟아 냈던 공격과 이덕구의 반격이 맞물리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꺄아아악!!”
사방을 찢어발기는 마력 폭풍에 누군가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간다. 이덕구에게 희롱당할 뻔했던 여인.
그녀는 전신이 난자당한 끔찍한 꼴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왜?
이덕구가 이곳저곳으로 비산하는 마력 파편을 막기 위하여 그녀를 고기 방패로 쓴 탓이었다.
“아, 아으…….”
후우욱―
쿠웅!
“후, 씨X. 너 뭐야?”
온몸이 갈라지고 부서지는 통증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여인을 이용 가치가 사라지자마자 가차 없이 던져 버린 이덕구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며 날 향해 걸쭉한 욕설이 더해진 질문을 뱉어 낸다.
당연히.
정말로 궁금해서 하는 물음은 아니다. 그저 재정비할 시간, 상황을 파악할 시간을 벌기 위한 기만일 뿐이었다.
해서.
쿠웅!
나는 구태여 여유를 벌어 줄 생각이 없었기에 곧장 놈에게로 쇄도했다.
[오르그의 파괴 본능]
우우우웅!!
‘괴물의 심장’ 버프가 적용되고 있는 지금.
뇌에서 명령이 떨어진 즉시 평소의 1.5배 속력으로 가속된 마력이 체내를 순환해서 오른팔로 응집된다.
직전을 그리며 떨어지는 빛무리.
“이런 젠장…….”
그 거침없는 돌격에 자신의 얄팍한 수가 파훼됐음을 깨달은 이덕구가 황급히 마력을 일으켜 육체 위로 하나의 형체를 만들어 낸다.
전체적으로 붉은색을 띠는 짐승.
나는 그 아지랑이를 보자마자 무엇인지 정체를 알아차렸다.
종말 이전부터 싸움만 벌어졌다 하면 최전선에서 날뛰던 이덕구의 투쟁 광적인 성향을 본떠 탄생한 ‘고유 능력’.
‘불곰의 영혼’이라는 걸.
실제 마주하는 건 처음이나 주워들었던 정보대로 발현되고 있었기에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부술 수, 있을까?’
반사적으로 의문이 찾아왔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전해 들었던 이덕구의 ‘고유 능력’을 과연 현재의 내 힘으로 맞상대가 가능할는지.
아까 전.
백여 개의 근원석을 먹어 치우고 나서 했던 고민과 같았다.
다만.
여전히 답은 나오질 않았다. 직접 맞부딪쳐 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판가름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니.
[순간 회귀 : 오르그의 오른팔]
[스트렝스]
우득―
우드득―!
‘부딪친다!’
꽈아아아아아악―!!
나는 짧은 고심 끝에 더욱 힘을 주며 주먹을 밀어 넣었다.
오기? 만용?
그럴지도 몰랐다.
허나.
지레짐작으로 겁을 먹고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저놈을 상대로는.
더불어.
한 가지 믿는 구석도 있었다.
이덕구가 겨우 하의만 걸친 반나체 차림이라는 것.
그로 인해 김성원, 김성태, 이석열 등 이제껏 겨뤄 왔던 불곰파의 여타 간부들과 달리, 놈은 당장 무기는커녕 장신구조차 착용하지 않아 ‘한 달의 격차’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아이템의 효과를 전혀 받지 못하는 상태라는 걸 십분 고려해.
“흐읍!”
후우우우욱!!
쿠웅―
끝내 물러서지 않고 격돌했다.
쿠구구구구구궁!!
다시금 미친 듯이 불어닥치는 풍압.
그 중심에서.
“……!”
이덕구의 눈동자가 급격히 커지는 게 똑똑히 보였다.
뒤이어.
쩌적―
쩌저저적―
놈의 팔을 뒤덮고 있던 곰의 형상이 일그러지는 것 역시.
‘아.’
내 예상이 맞았다.
할 수 있었다. 박살 낼 수 있었다. 찢어발길 수 있었다.
나는.
스스로 생각한 것 이상으로 강했다.
“이게 무슨…….”
“닥쳐.”
[돌진]
타앗―
쾅!
“커헉!”
자신의 ‘고유 능력’이 밀렸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하는 이덕구에게로 어깨를 들이민다.
한 번 우위에 섰기 때문일까?
“이런 젠장할!!”
후화하하하학!!
다음부터는 이덕구가 무슨 짓을 해도 그다지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외려.
[마력 방패]
카앙!
“이, 이이…….”
“닥치라니까.”
점점 더 쉬워진다.
막아 내기도.
[플뤼의 탄성 일격]
[베어 내기]
투웅―
촤아아아아악!!
되받아치기에도.
“크아아아악!!”
후드득―
상단부로 떨어지던 공격을 새로 얻은 기술 중 하나인 ‘마력 방패’로 커버하고, ‘플뤼의 탄성 일격’에 ‘베어 내기’를 연결해 기습적으로 갈라 버린 가슴팍.
벌어진 살가죽 틈새로 시뻘건 핏물이 솟구친다.
“으, 으으… 끄으읍……!”
뼈와 근육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의 30cm를 훌쩍 넘는 상처에서 올라오는 고통이 상당한지 본인 피로 붉게 물든 침대 위를 나뒹군 이덕구가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제 가슴을 붙잡으며 어딘가를 더듬는다.
침대와 딱 붙어 있는 책상.
이제 보니 그곳에 ‘하급 체력 회복 물약’을 비롯해 갖가지 포션들이 수두룩하게 놓여 있었다.
무기나 방어구로도 모자라 대체 포션류는 또 어떻게 구비해 둔 건지.
“뭐, 나야 잘됐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광경에 헛웃음을 흘린 나는 허우적거리는 이덕구를 대신해 포션을 가져와 손수 뚜껑을 열어 주었다.
그러고는.
쪼르르륵―
친절히 상처 부위에 대고 약효가 돌게끔 부어 주기 시작했다.
이유야 단순했다.
“살아, 쉽게 죽으면 안 돼.”
이대로 죽어서는 안 되니까.
맹세하지 않았던가.
놈의 주둥아리에서 제발 죽여 달라는 애원을 들을 때까지 나와 누나가 받았던 고통을 되돌려 주겠다고.
“끄읍, 끕…….”
확실히 포션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덕구의 목숨을 부단히도 질기게 연명시켜 주었다.
믿고 가도 될 듯했다.
[베어 내기]
서걱!
“……! 으으으아아아아!!”
왼팔의 힘줄을 자르고.
서걱!
오른팔의 근육을 잘라도.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
쿵―
콰직!
왼 다리의 정강이뼈를 짓밟고, 오른 다리 허벅지를 짓뭉개 버려도.
뽕!
쪼르르르륵―
“아, 아으으으…….”
“일곱 개. 아직 많이 남았어.”
수북이 쌓인 이 포션만 있다면, 몇 번이고 되살릴 수 있을 거라고.
“이제 손가락이야.”
빠각!
그 믿음을 바탕으로 잡아당긴 손가락이 꺾여서는 안 될 각도로 구부러지다 종래에 완전히 접혀 버린다.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소지.
오른손을 마치면 왼손으로 건너가 다시 엄지부터 소지까지.
“으, 으읍! 으……!”
더는 비명 지를 힘조차 없는 걸까?
고작 팔다리와 손가락이 고장 났을 뿐인데, 벌써 이러다니.
쪼르르륵―
쪼르륵―
“정신 차려.”
“끄으읍…….”
나는 소리 없이 꿈틀거리기만 하는 이덕구에게 남은 포션을 모조리 먹이며 중얼거렸다. 그러곤 끊임없이 독촉했다.
일어나라고.
이렇게 주저앉지 말라고.
기어이.
“죽여, 죽여… 줘…….”
바라던 대사가 흘러나올 때까지.
“제, 제발…….”
목 아래로 모든 뼈가 조각나 포션의 효력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살아 있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무렵, 이덕구가 안간힘을 쓰며 간절히 죽여 주기를 부르짖었다.
정말로.
정말로 죽음을 소망하는 눈치였다. 그 비참한 모습에 나는 품속에서 알코올 소독제와 라이터를 꺼내 침대에 던졌다.
인간이 느끼는 제일 큰 고통은 불에 타는 것이라고 했다.
“가는 것마저 편하진 않을 거야.”
따라서.
이덕구의 결말도 ‘화형’으로 끝맺음 되어야 한다. 발끝에서부터 천천히 화마에 사로잡히도록.
이게.
“으, 으으… 끄아아아아!!”
내가 그린 시나리오의 마침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