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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48화 (48/232)

48화

* * *

“그 보고, 자신할 수 있나?”

조창기의 물음에 흔적을 찾아온 조직원 최태용은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이 발견으로 자신의 가치가 ‘평범한 조직원’에서 몇 단계는 상승했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이후 보고를 이어 가는 최태용의 목소리는 당당함 그 자체였다.

“확실합니다! 제 능력 ‘흔적 읽기’는 최대 여섯 시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대지를 오간 모든 생명체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계속해.”

“예! 그리하여 정문을 기준으로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정문, 후문, 붕괴된 강당 우측 벽 등 여러 지점에서 아주 특이한 발자국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발자국?”

“그렇습니다. 흡사 고양이나 호랑이와 비슷한 형태로 발가락이 세 개밖에 존재하지 않는 아주 특이한 형태였습니다.”

“음. 그런데 그게 습격자의 것인지 어떻게 확신하지?”

“저도 처음에는 괴물의 것 중 하나라고 여겼습니다만, 그랬다면 여러 지점에 흔적이 동시에 남을 리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괴물들은 정문으로 진입해 운동장 부근에서 모조리 사살되었으니 말입니다!”

어떤가.

최태용은 똑 부러지게 말을 끝내고 조창기의 눈치를 살폈다.

무려 두목 이덕구가 가장 중요시하게 여긴다는 최상위 간부. 그런 남자에게 지지받을 수 있다면, 조직에 들어온 지 고작 일주일도 안 된 자신이 초고속 승진하는 것도 결코 꿈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지 두근거리는 기분으로 가만히 지켜보길 30여 초.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짧은 침묵을 지켰던 조창기의 입에서 마침내 원하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됐다.

최태용은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물론 마음에 품은 감정이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도록 주의했다. 지금은 엄연히 전시였고, 일방적으로 당한 탓에 두목을 비롯한 간부진 전원이 분노를 토해 내는 중이니까.

이럴 때에 멍청하게 진급이 어쩌니 하며 좋아했다가는 기껏 쌓은 성과마저 박탈될 뿐이니 헛짓거리하지 말고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납작 엎드려야 한다.

어차피.

이번 일로 ‘최태용’이라는 사람의 가치는 확실하게 각인되었을 테니.

“건덕아.”

“예, 형님.”

“전 부대 소집해라. 이곳을 지킬 병력을 제외한 전 부대는 지금부터 성풍 아파트 단지로 향한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너.”

“예!”

“추적 2조. 조장 자리를 줄 테니, 조직원 열을 데리고 바로 나가서 한 번 더 확인해라. 정말 성풍 아파트로 간 것이 맞는지.”

“감사합니다!”

이것 봐라.

수그리고 있어도 알아서 직함을 던져 준다.

허리를 곧게 펴고 인사를 남긴 최태용은 곧 밑으로 배정된 조직원들을 이끌고 후문으로 이동했다. 제성초 후문으로 빠져나가 유턴한 습격자들의 흔적을 다시금 읽어 내려가며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러길 얼마 후.

“가자!”

“옛!”

불곰파 간부 조창기를 포함한 조직원 100여 명이 성풍 아파트 단지를 최종 목적지로 두고 진격하기 시작했다.

* * *

《하급 해독 물약》

- 복용 시 ‘하위 등급’ 이하의 독을 해독한다.

[구매가 : 1등급 근원석 50개]

“비싸긴 하지만, 사 두는 게 좋겠지.”

괴물들을 사냥했으니 그것으로 무기든 포션이든 추가 구매하리라 판단 후 기습을 결정하고서 황수현을 통해 알아낸 불곰파 소유 ‘차원 상점’ 인근에서 숨어 있던 나는, 예상과 딱 맞게 움직이는 놈들을 해치우고 부수입으로 획득한 3백여 개의 근원석으로 몇 개의 물약을 구입했다.

물약류는 대부분 근원석 50개를 기본으로 가격대가 형성된 탓에 출혈이 상당했으나 애당초 운 좋게 번 돈.

아낄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불곰파 놈들이 중독이나 정신적인 공격 능력 등을 보유했을 가능성도 있는 만큼 만일을 대비해 둔 뒤.

“백 개. 좋아.”

쇼핑을 마치고 남은 백여 개의 근원석은 죄다 입 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1등급 근원석’을 복용했습니다.]

[순발력이 1 상승합니다.]

[‘1등급 근원석’을 복용했습니다.]

[근력이 2 상승합니다.]

[‘1등급 근원석’을 복용했습니다.]

[체력이 1 상승합니다.]

전투에 필요한 아이템을 구비하는 것도 합당한 선택이나, 결국 기본 스펙을 키우는 일보다 우선될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게다가.

근원석 복용은 그저 육체만을 강화시키는 건 아니다.

[기술 ‘돌진’을 습득합니다.]

[내구가 2 상승합니다.]

[기술 ‘베어 내기’를 습득합니다.]

[순발력과 근력이 각각 2, 1 상승합니다.]

[기술 ‘마력 방패’를 습득합니다.]

[마력이 3 상승합니다.]

확률이 매우 낮지만, ‘고유 능력’만큼이나 중요도가 높은 기술도 습득된다.

이러니.

복용을 등한시하고 아이템에만 매달리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슬슬 바닥을 드러내는 근원석 보따리로 손을 뻗을 즈음이었다.

[‘1등급 근원석’을 복용했습니다.]

[근력이 2 상승합니다.]

막 씹어 삼킨 근원석이 소화되며 근력으로 변환되던 찰나.

[축하합니다!]

[‘신체 능력 : 근력’이 「100」을 돌파했습니다.]

[보상으로 ‘칭호 : 한계 돌파 ― 근력’을 습득합니다.]

[기술 ‘스트렝스’를 습득합니다.]

[근력이 3 상승합니다.]

《칭호 : 한계 돌파 ― 근력》

- 신체 능력 중 ‘근력’이 「100」을 돌파했을 때 부여되는 칭호. 근력과 관련된 신체 능력 및 모든 기술의 위력이 5% 상승한다.

“…칭호?”

언제 이렇게 올라갔는지.

근력이 100을 넘어섰다는 알림과 함께 새로운 칭호와 기술이 나타났다.

해서.

남은 근원석까지 먹어 치우고 ‘개인 정보’를 열어 보니 어마어마한 변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개인 정보]

*기본 사항

- 설명 : 아윤

- 종족 : 키메라 ― 프레데터

- 칭호 : 인류 최초의 키메라(대표 칭호 변경 ▼)

- 고유 능력 : 프레데터의 기억 포식

*신체

- 근력 : 103

- 체력 : 74

- 내구 : 63

- 순발력 : 77

- 마력 : 51

- 감각 : 44

- 저항 : 9

- 제어 : 5

*기술

- 프레데터의 중위 진화론

- 신체 최적화

- 순간 회귀

- 오르그의 파괴 본능

- 플뤼의 탄성 일격

-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

- 투르바의 포효

- 끈질긴 추적

- 돌진

- 베어 내기

- 마력 방패

- 비밀 엿보기

- 스트렝스

*특이 사항

- 인간성 : 100% / -]

“…휘유.”

신체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딱히 부족한 부분이 보이지 않는 화려한 스펙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다른 이들의 ‘개인 정보’를 본 적이 없으니 수치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이전에도 불곰파 간부와 비슷하거나 약 우위에 서 있었는데, 이제는 그 당시보다 훨씬 진화됐으니 자연스레 머릿속에 한 인물이 떠올랐다.

‘이덕구…….’

조창기나 이석열 등.

불곰파 내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들조차 우러러보는 진정한 강자. 그 악마들의 왕이 조금씩 조금씩 뇌리를 자극한다.

현재의 나라면.

이덕구에게 얼마나 다가섰을까.

닿았을까? 아니면 여전히 모자랄까?

혹은.

“넘어, 섰을까?”

궁금하다.

나와 그의 격차가 어떠할지, 과연 이제는 내가 그를 갈가리 찢어 죽일 수 있는지 미치도록 알고 싶었다.

스으윽―

고개를 들어 제성 초등학교가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단순히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들끓는 감정.

“…가 보면 알겠지.”

꽈아아아악―

한층 더 강력해진 주먹을 쥐며 냉정함을 되찾은 나는 말이 나온 김에 곧바로 제성 초등학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마.

지금쯤이면 아까 놓친 몇 놈에 의해 내가 벌인 소동이 전해져 그에 대한 대처 방안을 준비하고 있을 터.

상당히 당황하고 있을 놈들의 낯빛을 기대하며 도심을 걸었다.

그렇게.

금세 가까워지는 간격 너머로.

“……?”

사뭇 ‘을씨년’스러운 제성 초등학교의 풍경이 보였다.

* * *

하나, 둘, 셋, 넷, 다섯.

‘아무리 봐도, 다섯이 전부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단시간 내에 몇 차례나 습격을 가했기에 매우 날카로운 신경으로 경계를 서고 있을 줄 알았다.

헌데.

눈에 보이는 것도 그렇고, 감각에 걸리는 것도 그렇고 정문을 기준으로 서 있는 다섯 명 외에 더 잡히는 존재가 없다.

열다섯, 스물다섯도 아니고 고작 다섯이라니.

‘…함정?’

반사적으로 함정인가 하는 의심부터 들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경계를 저리도 빈약하게 설 리가 없을.

치지지지직―

“…응?”

뭐지?

한창 불곰파의 분위기를 살피고 있던 순간, 허리춤에서 익숙한 전자음이 들렸다.

무전기, 한세정과 나눠 가졌던 무전기였다.

- 아윤 씨.

거기서.

더 이상 들을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던 한세정의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정… 씨?”

느닷없는 부름에 놀라 말을 길게 늘어뜨리며 반문하자 그녀의 목소리가 재차 울려 퍼진다.

엄청난 ‘희소식’을 품고서.

- 아윤 씨 말씀대로예요! 불곰파, 불곰파 놈들이 성풍 아파트 단지로 오고 있어요!

“……!”

이게 어째서 낭보인가.

당연했다.

바꿔 말하면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제성 초등학교 내부는 텅텅 비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즉.

당장 돌격한다면 본진 털기가 가능하단 의미였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움직여 줄 줄이야.”

나는 당차게 본진을 비우고 떠났을 불곰파 놈들을 떠올리며 기쁨에 소리라도 지르고 싶어졌다.

놈들이.

내가 세운 시나리오를 그대로 실현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반응을 바랐기에 구태여 공을 들여 사람들을 구출해 냈던 것인데, 이토록 착착 따라오다니.

물론.

저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공격을 받으면 반격을 하는 게 인지상정.

아마도 공습 직후부터 수색이든 추적이든 관련 ‘고유 능력’과 기술을 소유한 이들을 굴리며 내 흔적을 발견해 냈을 텐데, 그걸 찾아내고도 잠자코 수그리기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특히 불곰파처럼 일대를 무력으로 찍어 누르며 왕처럼 군림하던 놈들이라면 자존심 때문이라도 더더욱.

단지 의아한 건.

“그런데, 그걸 세정 씨가 어떻게 아신 겁니까? 아니, 왜 성풍 아파트로 돌아오신 겁니까?”

이것이다.

떠나갔던 한세정이 어째서 성풍 아파트 단지에 있는가.

혹시.

벌써 정착지를 확보하고서 남겨 둔 아이템을 수거하러 왔다가 우연찮게 경로가 겹쳤던 걸까?

- 그게… 아윤 씨를 돕고 싶어서요.

합리적인 방향으로 답을 내리던 차에 한세정의 한마디가 훅 하고 들어왔다.

- 도저히 이대로는 못 가겠어요. 저도, 이령이도 여태 도움만 받았잖아요. 그런데… 막상 받을 건 다 받아 놓고 그냥 간다는 게 말이 안 돼요.

“저는 괜찮…….”

- 제가 안 괜찮아요. 그래서 도우려고 가던 중에 마주치게 된 거예요.

“…….”

담담하나 분명하게 전해지는 진심에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선뜻 입술이 떨어지질 않았다.

하지만.

딱 한 가지.

- 후, 제가… 제가 한번 붙들고 늘어져 볼게요.

“…예?”

- 저 아시잖아요? 도망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안 밀리는 거. 제가 여기서 최대한 붙잡아 볼 테니… 아윤 씨는 아윤 씨가 그렸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세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본진을 비울 수도 있다. 그때를 노려 공격할 수만 있다면 최상의 결과를 얻어 낼지도 모른다. 그 말처럼요.

“……!”

그것만큼은 명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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