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 뜻밖의 기회 】
다수와 소수가 전쟁을 벌일 때 더 우세한 쪽은 어디인가.
만일.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대다수는 ‘다수’라고 대답할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현대에 들어서야 핵을 비롯한 대량 살상 무기가 생산되며 병력의 우위보다는 무기의 성능이 중요시되는 사회가 만들어졌지만, 본디 전쟁이란 상대보다 더 많은 병력을 꾸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했으니까.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꼭 수적으로 우세하다고 해서 반드시 승리하고, 수적으로 열세하다고 해서 무조건 패배하진 않는다.
역사적으로 명장(名將)이라 불렸던 이들은.
적게는 몇 배에서 많게는 수십 배에 달하는 압도적인 전력 격차에도 전장의 판세를 뒤집으며 기어이 승전을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허면.
도대체 소수에게 어떤 장점이 있기에 그러한 점이 가능했던 걸까. 만약 나에게 이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답변하리라.
“첫째는 기동성, 둘째는 은밀함.”
이라고.
* * *
“출발한다!”
“옛!”
불곰파 서열 9위.
아마추어 복싱 선수로 활동했던 경력을 살려 칼이나 창 같은 대중적인 병기 대신 손에 딱 맞는 너클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박대길의 우렁찬 외침에 부대원들이 간결하고 묵직하게 화답하며 제성 초등학교 후문을 빠져나간다.
목적지는 후문에서 대략 1km 정도 떨어진 상가.
정확하게는 그 건물 제일 아래 단에 위치한 지하 노래방을 향해.
그곳에.
불곰파 소유의 ‘차원 상점’이 존재했다. 무려 최대 입장 인원이 50명에 영업 기간도 일주일이나 되는 최상급 상점이.
“진짜 전쟁이라도 일어나려나?”
“그러게 말이야. 어떤 새끼들인지 진짜 궁금하네.”
“여자 있으려나?”
“아 그러고 보니까, 노예들 다 털렸다더라. 남자도 여자도.”
“그러니까 쓰X. 하필 내 순번에서 막히냐.”
“킬킬, 난 어제 시원하게 즐기고 왔다.”
“하여간 운 좋은 새끼.”
그래서인지.
조직 내에서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길목을 워낙 깔끔하게 정리해 둔 터라 가는 내내 누구 하나 긴장하는 이가 없었다.
안전하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더불어.
자신들의 실력에 자신이 있기에 눈앞의 임무보다는 방금 전까지 있었던 괴물들의 대대적인 습격이라든가 노예들의 탈출 등에 더욱 시선이 가 있었다.
이는.
“형님, 아까 진짜 멋있으셨습니다. 캬, 두 주먹으로 아작 낼 때는 진짜 반해 버렸지 뭡니까!”
“지X은, 푸흐흐흐.”
부대를 이끄는 박대길조차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쩌면 더 심한 축에 속할지도 몰랐다.
대장이라는 작자가 임무 수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부대원들이 떠들든 말든 터치는커녕 일절 놓아 버린 상태였으니까.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통 이해되지 않는 상황.
이게 다.
부두목이라 할 수 있는 이석열의 사망 때문이었다. 더 솔직하게는 그의 죽음으로 생긴 ‘이인자’ 자리의 공백이 문제였다.
“저는 정말이지, 형님 같은 분이 부두목 저리에 가장 합당하다고 봅니다. 안 그렇습니까? 부하들을 위해 매번 최선두에 서서 괴물들을 때려잡는 남자가 대길 형님 말고 또 누가 있습니까?!”
“또 또, 선 넘는다.”
“엥, 선을 넘는다니요. 제 말이 어디 틀렸습니까? 형님 말고 또 누가 있답니까! 안 그러냐, 얘들아?”
“맞습니다! 저도 대길이 형님만 믿고 있습니다!”
“형님! 저는 이 새끼보다 더 믿습니다!”
빈 곳이 생기면 으레 채워지기 마련.
더욱이 그 자리가 두목을 제외한 만인지상의 직책이다 보니 박대길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실력적으로나 인지도로나 부족한 부분이 딱히 없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악어를 찾아다니는 악어새처럼, 이때다 싶어 달려드는 주위의 기회주의자들의 푸시까지 받으니 자꾸만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자신이.
부두목이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흔드는 미래가 그려져서.
“크흠, 흠! 됐다. 지금은 임무에 집중한다.”
그래서인지.
애써 억눌러도 슬금슬금 미소가 튀어나오고, 마치 오랜만에 첫사랑을 마주한 듯 가슴도 심히 두근거렸다.
후우우욱!
“…음?”
그 무렵이었다.
어디선가 갑작스레 구슬 비스무리한 물체가 날아든 게.
툭―
투둑―
데구루루―
탁!
‘이게 뭐지?’
박대길은 사르르 굴러와 발치 언저리에서 멈추는 500원짜리 크기의 하얀 물건을 바라보며 무엇보다 호기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신이 딴 데 팔려 있었던 탓인가.
평소였다면 재빨리 피하거나 쳐 냈을 터인데, 지금은 전시임에도 반응이 느린 걸 넘어 아무런 대응조차 하질 않았다.
[3]
“3?”
구슬 각 면에 적혀 있는 숫자가.
[2]
[1]
[0]
“……?”
하나둘 줄어 ‘0’를 가리킬 때까지도.
나아가.
퍼어엉!!
마침내 0에 도달한 구슬이 빛을 뿌리며 폭발하는 순간마저도 말이다.
푸쉬이이이이이이이익!!
구슬은 폭발 직후 하얀 연기를 미친 듯이 쏟아 냈다.
단 몇 초 만에 장장 30m에 달하는 공간을 전부 채우며 짙고 빠르게 퍼져 나가 박대길을 비롯한 모든 이들의 시야를 차단하는 안개를.
“빠, 빠져나가!!”
그제야 뒤늦게 박대길의 입에서 물러나라는 호통이 터져 나왔으나.
슈화아악!
늦어도 한참 늦은 대처였다.
콰아아앙!!
“끄아아아아악!!”
“커허헉!”
벌써.
살육은 시작된 뒤였으니까.
* * *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
쿠웅―
쿠구구구구구궁!!
힘차게 내디딘 발걸음에 요동치는 대지.
“사, 살려…….”
“으아아아아아!!”
“땅이! 땅, 커헉!”
단순히 갈라지고 뒤집힐 뿐 아니라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거대한 바윗덩어리에 치여 안 그래도 뿌연 연기로 인해 혼란스럽던 전장이 완전히 아수라장으로 변모한다.
그 속에서 나는 오로지 한 사람만을 노렸다.
‘박대길, 어디냐!’
불곰파 간부 박대길을.
이유는 간단했다.
지휘관을 잃은 군대는 무력 집단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
물론.
전장을 뒤덮은 뿌연 안개는 직접 설치한 내게도 장애물로 작용했지만,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에 의지하니 시력이 봉쇄된 상황일지라도 원하는 걸 찾아내는 게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다.
그저.
찌릿!
‘거기냐!’
감각을 가장 강하게 자극하는 상대를 노리면 될 일이었으니까.
[오르그의 파괴 본능]
우우우우웅!!
콰아아아아앙!!
“커헉!”
마력을 머금은 주먹이 누군가를 두들긴 찰나, 거친 폭발음과 함께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후화아악!!
주먹에서 뻗어 나간 풍압에 일순간 탁 트이는 시야.
그 너머로 바닥에 처박혀 피를 토해 내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케헥, 켁…….”
조직원들로부터 형님, 형님 소리를 듣던 박대길.
그가 감전이라도 된 듯 전신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꼴에 간부랍시고 한 방에 즉사하진 않았지만,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대로 죽어 나자빠질 모양새로.
하여.
‘흐읍.’
꾸우우우욱―
타앗!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고유 능력’, ‘기술’, ‘아이템’ 등 각종 신묘한 힘으로 기적이란 게 몹시 흔해진 세상.
다 잡은 물고기라고 안심하다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기회가 생겼을 때 확실하게 끝장낼 요량이었다.
“케흐으윽… 큽…….”
“닥치고, 죽어.”
후우우우우욱!
퍼억!
콰직!
한달음에 날아가 내려친 주먹에 반항 한번 못 해 보고 산산이 부서지는 박대길의 머리.
허나.
그걸로도 모자라.
서걱!
손톱을 세워 가슴을 가르고 심장도 빼냈다.
확인 사살 겸.
회복 버프용 ‘인간의 심장’을 구비해 두려는 목적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행위였다.
[‘아에르의 안개’가 사라집니다.]
사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펄떡펄떡 뛰는 심장을 손에 쥘 즈음.
근원석 80개를 주고 구매했던 ‘아에르의 안개’가 1분의 지속 시간을 끝으로 겨울바람에 밀려 사라지기 시작했다.
“…….”
무슨 일이 있나 싶을 만큼 급격하게 복원되는 현장 가운데에서 말없이 뒤를 돌아봤다. 서서히 돌아가는 눈동자를 통해 난장판이 되어 버린 전장이 눈에 들어왔다.
약 마흔에 달하던 숫자 중 겨우 반절만 살아남은 이들의 넋 나간 얼굴도.
피식―
그 멍청한 표정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비틀렸다.
“스물하나, 스물둘. 누나. 스물두 명이야.”
누나를 위해 바칠 제물이 스물이 넘게 마련되어 있었으니까. 본격적으로 실시하는 불곰파의 처단이라는 점도 피를 끓어 오르게 만들었다.
노예 구출, 시선 끌기.
다 좋지만 역시 최고로 날 흥분케 하는 건 직접적인 피의 복수였다.
* * *
“그, 그래서 저희는 이 사실을 반드시 알려야겠다 싶어서…….”
“…….”
일차적으로 제성초 인근 수색을 나갔다 돌아온 조창기는 벌벌 떨며 자신의 도주극을 열성적으로 미화시키는 부하들의 얘기를 가만히 들었다.
머리가 아팠다.
간부.
그것도 서열 9위나 되던 최상위 간부의 사망 소식만 해도 엄청난 일일진대, 그걸로도 모자라서 마흔에 달하는 부대의 몰살이라니.
더군다나.
“근원석은, 근원석은 어떻게 했나.”
“그게…….”
“이런 병X 같은 새끼들.”
“죄, 죄송합니다!”
막대한 인적 피해도 모자라 포션을 구입하려 재고까지 전부 풀었던 근원석 또한 강탈당했다.
다 합하면 족히 3백여 개에 다다르는 그 많은 양을.
이걸.
이 암울한 사실을 이덕구에게 어떻게 보고한단 말인가. 심지어 단 한 명에게 당해서 이 사달이 벌어졌다는 걸.
“후……. 돌아 버리겠군.”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은 조창기는 옆에 시립하고 있던 양건덕에게 종이와 펜을 가져오도록 지시했다.
그러고는.
“그려라.”
“예?”
“네놈들이 본 그 녀석. 생김새부터 특징까지 전부. 아래에 특이 사항이나 기술 등도 모조리 적어라. 당시에 있었던 상황을 단 하나도 빠짐없이 상세하게.”
“아, 알겠습니다!”
“셋이 따로 적되 약간이라도 이상하거나 어설픈 부분이 있다면 죽여 버릴 테니 명심하도록.”
“옛!”
“시작해.”
전달받은 종이를 몇 장씩 쥐여 주며 도망자들에게 일종의 몽타주를 그리도록 명령했다.
정보.
적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숫자는 몇인지, 무장은 어떠한지, 이쪽을 공격하는 의도는 무엇인지.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래서는 안 돼.”
고작 몇 시간 만에 무척이나 많은 걸 잃었다.
더 이상 당하지 않으려면, 반격에 나서려면 뭐라도 데이터를 확보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선 저 머저리 같은 놈들이라도 살아 돌아와 다행인 건가.”
참 암담한 이야기지만.
제 목숨을 챙기기 위해서였든 뭐든, 무사 귀환해 준 덕분에 적에 대한 정보를 하나쯤은 건지게 됐으니까.
이걸로 역전의 실마리를 잡는다.
조창기는 그리 기약하며 서서히 종이를 채워 나가는 세 남자를 지켜봤다. 단 1분 1초라도 쉬거나 딴청 피울 생각 말고 집중하라는 무언의 경고였다.
그러던 차에.
“창기 형님!”
누군가가 조창기를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
살짝 고개를 돌리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급하게 달려온 남자가 침을 삼키며 외쳤다.
“흔적을, 흔적을 찾았습니다.”
적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그들의 족적이.
“성풍 아파트 단지! 그곳입니다!”
남쪽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