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털썩―
쿵!
쓰러진다.
무려 불곰파의 이인자가, 실력순으로 따져도 족히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악마가 머리 없는 시신이 되어 넘어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
어쩐지 불편했다.
왜지?
행복할 줄 알았는데, 이석열 정도의 거물을 잡았으니 미치도록 즐거워야 정상일진대 어째서 이리 헛헛할까.
그건 아마도.
승리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거구의 남자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되레 당하는 건 내가 됐을 정도로.
물론.
예정에 없던 갑작스런 전투였기에 아이템이든 이석열 자체에 대해서든 따로 대비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라고 변명을 던질 수는 있다.
“단지, 그렇게 변명해 봐야… 결국, 비참해지는 건 나라서 문제지.”
젠장할.
괜스레 욕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뭉개며 팔다리를 조금씩 움직였다. 여전히 명령을 잘 따라 주지 않는 몸.
허나.
‘으읍……!’
어떻게든 힘을 주며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대략 주먹만 한 크기의 동그스름한 형체.
다름 아닌 ‘인간의 심장’이었다.
혹시라도.
이런 위기에 봉착할 경우를 상정해 챙겨 놓았던 ‘프레데터’ 전용의 비상약. 이뿐만 아니라 괴물의 심장도 구비해 둔 상태였다.
버프 지속 시간이 10분가량밖에 되지 않아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복용 시점을 미루다 정작 필요할 때 꺼내지 못했지만.
으적!
[「인간의 심장」을 섭취했습니다.]
[상처 회복 및 재생 능력이 200% 향상됩니다.]
우우우웅―
‘후, 이제야 좀…….’
여하튼 무기력하던 몸에 활력을 불어넣기에는 충분했다.
나는 빠르게 회복되는 육체를 느끼며 발치에 떨어져 있던 이석열의 단창을 지팡이 삼아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먼저 아까 하려던 일을 마저 하려 했다.
계획대로.
이덕구에게 고통받던 연인을…….
“…음?”
구하려고 했는데, 생각과 달리 내 걸음은 얼마 안 가 멈춰 버렸다.
피로해 보이기는 하나 분명 멀쩡했던 여인이, 이제 연인과 함께 탈출하기만 하면 됐던 그녀가 입에 피를 잔뜩 머금은 채로 죽어 있었으니까.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광경.
설마.
전투의 여파가 여기까지 영향을 끼쳤던 건가?
‘…그건 아니다.’
전장은 교실 앞쪽 쪽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런 만큼.
제아무리 마력 파편이 사방팔방 튀어 나갔어도 정반대편에 자리 잡고 있던 여인이 피해를 입을 리는 만무했다.
즉.
여인의 사인은 아무리 봐도 ‘자살’이란 의미.
해서 더 의문이었다.
구출이 직전인데 어찌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건지.
“…아.”
해답을 알고자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돌아보던 찰나, 나는 어느 한 지점에 시선을 고정했다.
십자가 위.
이석열의 등장으로 여태껏 십자가에 매달려 있어야 했던 남자에게. 끔찍한 고문 이후 치료는커녕 아무렇게나 방치된 탓에 끝내 삶을 이어 가지 못하고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버린 남자에게.
저거였다.
여인이 스스로 생을 포기한 이유. 이 세상의 유일한 희망을 잃은 상실감에 자신의 생마저도 놓아 버린 것이었다.
“하…….”
그 사실을 깨닫자 짙은 한탄이 새어 나왔다.
나와 같은 동류가 늘어났다는 현실이 너무 한탄스럽고 동시에 왠지 살리지 못한 게 내 잘못처럼 다가와서.
이런 비극을 연출한 이덕구에게 또다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정말이지.
역시 곱게 죽여서는 안 될 개자식이었다. 애초에 그럴 마음도 없었지만, 더더욱 확실해졌다.
“죽여 달라고, 제발 죽여 달라고 빌게 하여 줄게. 이 개자식아……!”
으득!
맹세를 내뱉는 내내 악다문 어금니 사이로 지독한 살기를 흘려보낸 나는 장포에 부착해 두었던 통 하나를 빼내 그 안에 가득 든 투명한 액체를 교실 바닥에 죄다 흩뿌리기 시작했다.
이것의 정체는 바로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대용량 손 소독제’였다.
아.
더 정확하게는.
탁―
탁―
화륵!
“다 태워 버려라.”
‘인화성 물질’이라고 해야겠지.
혹은.
나를 대신해 이목을 끌어 줄 새로운 유인책.
후우우우욱―
탁―
타다닥!
화르르르르륵!!
가볍게 던진 라이터가 떨어진 순간 무섭도록 강한 불길이 일어났다.
막 개봉한 한 통을 전부 쏟아부은 덕분인지.
아니면.
고문 시에 튄 피를 바로바로 정리할 수 있게끔 교실 전체에 비닐을 깔아 둔 덕택일 수도 있다. 한번 붙은 화염은 걸리는 건 닥치는 대로 잡아먹으며 순식간에 어둠마저 걷어 낸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자그맣던 불꽃이 거대한 화마가 되는 진화를 잠시 지켜보던 나는 죽어서야 다시금 하나가 된 연인에게 안녕을 빌어 준 후 복도로 나왔다.
여기저기가 갈라지고 패인 복도에는 한 사람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으, 으음, 으…….”
겨우 목숨만 건진 듯 사경을 헤매고 있는 거구의 남자였다. 나는 얼른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그를 등에 업었다.
기력을 다하고 죽었다면 모르되 꺼지지 않은 생명을 이대로 내버려 두고 갈 수는 없었다.
“흐읍!”
꽈아아아아악―!
거의 190cm에 달하는 키.
서로 15cm 이상 체격 차이가 있는 터라 장포를 포대기처럼 이리저리 둘러서 떨어지지 않도록 빡빡하게 고정한 뒤, 타고 올라왔던 중앙 계단 대신 복도 우측 끝자락으로 방향을 틀었다.
길이 없는 꽉 막힌 통로였으나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 점을 이용해 창문을 부수고 뛰어내림으로써 불곰파에게 도망치는 걸 들키지 않으려는 작전이었으니까.
2m 가까이 되는 사람을 업고 뛰는 게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후우, 가자.”
나는 망설이지 않고 창문을 부수며 하늘을 날았다.
굳게 믿었다.
[순간 회귀 : 티그리스의 다리]
콰드득―
콰득!
부피가 커진 양발과 ‘인간의 심장’ 버프를.
후우우우우욱―
쿠우우웅!!
“크으으으읍……!!”
지진이 일듯 진동하는 대지.
그 반동이 고스란히 전해져 다리를 저릿하게 마비시킨다.
10초, 20초, 30초…….
마비가 풀리기까지는 거의 1분여를 가만히 흘려보내야 했다.
그러다 천천히 회복되어 갈 무렵.
“미친! 불이야! 불!!”
“닥치고 일단 소화기부터 가져와!!”
“쓰X! 여기에 소화기가 어딨어!!”
“능력은 뒀다 뭐 해!! 얼음이든 물이든 불 끌 수 있는 새끼 다 튀어나와!!”
드디어 화재를 알아차린 불곰파 조직원들이 부랴부랴 뛰어오며 소리 지르는 게 들려왔다.
이에.
나는 부디 오래도록 불이 꺼지지 않기를 바라며 야음 속으로 발을 디뎠다.
목적지는 제성 초등학교 후문, 식당에 갇혀 있던 여자들을 구출한 한세정과 접선하기로 한 장소였다.
‘흐아!!’
타앗―
탓!
* * *
“…아윤 씨!”
“아.”
얼마나 달렸을까.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르는 기분으로 전력 질주를 하다 보니 앞서서 후문에 도착해 있던 한세정이 날 발견하고서 손을 흔들어 줬다.
그녀의 곁에는.
“어, 어…….”
“누, 누구야?”
“사람이야! 사람!”
족히 서른에서 마흔은 될 법한 여성들이 한가득 모여 있었다.
하나같이 날 두려워하는 기색으로 살폈는데, 한세정의 인사에도 불구하고 불곰파 조직원이나 간부는 아닌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또는.
남자 자체에 갖는 본능적인 거부감일지도 몰랐다.
평상시라면 모를까.
불곰파를 한 번이라도 경험했다면 남성 혐오증이 생기지 않고서는 못 배길 테니. 어느 쪽이든 딱히 이해 못 할 부분은 아니었다.
해서 구태여 말을 섞지 않고 한세정에게 당신이 알아서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네. 그럼 여러분! 절 따라오세요!”
내 의도를 파악한 한세정은 가타부타 질문 없이 여자들을 이끌고 어딘가로 걸어 나간다.
방위는 남쪽, 행선지는 ‘성풍 아파트 단지’였다.
분주히 달려 한달음에 다다른 그곳은 나와 한세정이 떠날 당시와 판이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이번엔 이쪽입니다!”
“아! 거기는 다 수색했어요!!”
“그럼 107동으로 갑니다!”
단둘뿐이었던 스산한 공간을 가열 차게 돌아다니는 군중으로 인해.
아까 전.
불곰파 수색조를 사냥하며 노예에서 해방해 주었던 이들이었다.
분주하게 여기저기를 오가던 그들은 일단의 무리가 나타나자 잠깐 긴장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선두에 나와 한세정이 있음을 발견하고 마치 군부대에 방문한 장성을 맞이하는 병사들처럼 우르르 몰려나와 쭉 늘어서서 우릴 반겨 주었다.
상당히 과한 퍼포먼스였으나 그만큼 고마워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물론.
“지영아!!”
“아, 아빠!!”
“상호 씨!”
“여보!”
무엇보다 원치 않게 갈라졌던 가족이나 연인과의 재회가 주목적이었으리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각자에게 맞는 회포를 푸는 중에 무리 중앙에서 누군가 내게로 다가왔다.
황수현.
떠나려던 우리를 붙잡고 가장 먼저 정보를 알려 주던 그 남자였다.
“말씀하셨던 사항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그간 부족했던 식사로 삐쩍 마른 체구임에도 환한 얼굴의 황수현은 다시 만난 우리에게 몇 번이고 감사를 표하며 내가 부탁했던 사항에 대해 보고하기 시작했다.
그에 요청한 건 딱 하나.
“현재 101동에서 106동까지 수색을 마쳤으며, 발견한 식량과 식수 등은 향후 이동 중에 소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가방으로만 옮겨 담는 중입니다! 알려 주신 대로 양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늘었어도 당분간 식량 탐사를 나가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돌며 겨울나기 물품들을 챙기는 것이었다.
그 까닭은 간단했다.
저들은 여기서 머물 게 아니었으니까. 성풍 아파트 단지를 저들에게 정착지로써 넘겨줄 마음은 1도 없었다.
왜?
여긴 불곰파의 근거지와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내가 저들을 데리고 나온 건 불곰파가 일반인들을 제 발판으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였다.
헌데 이리도 근접한 영역에 거주하다가 재차 잡히기라도 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그러니.
“그만하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더 이상의 수색을 멈춰 주시고 떠날 채비를 부탁합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얼추 준비되었다면 미련 없이 떠나도록 일렀다.
이에 대해 미리 설명해 두었던지라 황수현은 일절 반문하지 않고 사람들을 채비시켰다. 불만을 표하는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불곰파란 재해였고 재앙이었으니까.
“저기, 수현 씨.”
“예?”
나는 그런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가 황수현을 불렀다.
아예 임시 리더가 됐는지.
여기저기를 돌봐 주다 말고 급히 달려오는 황수현. 나는 그에게 업고 있던 거구의 남자를 넘겨주었다.
“죄송하지만, 함께 데려가 주셨으면 합니다. 크게 다친 구석도 없고, 아시다시피 능력도 보유하고 있으니 협력하신다면 앞으로의 일정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아! 그럼 당연하지요. 이분은 걱정 마십시오. 제가 목숨을 걸고 책임지겠습니다.”
다행히 황수현은 내 추가적인 요구를 거절하지 않았다.
되레 더 힘써 주지 못해 미안해할 뿐.
“감사합니다.”
나는 짤막하게 고마움을 표하고 뒤로 물러났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었다.
황수현을 비롯한 사람들과.
그리고.
한세정과도.
“…아윤 씨.”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지금처럼 웃으면서 봤으면 합니다.”
느닷없는 헤어짐 같았지만, 본래 그녀와는 조이령을 구하는 조건으로 동행하던 사이.
한세정은 마지막을 전하는 내게 묘한 표정을 보여 주었다.
미안함, 고마움, 안쓰러움, 슬픔…….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뒤섞인 아주 묘한 표정을.
왠지.
헤어지길 싫어하는 모양새.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나뿐이지만, 그녀는 친구가 있었으니까.
“세정 씨 몫의 아이템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둘 테니, 나중에라도 찾아가셨으면 합니다.”
“…….”
“가는 길에 같이 챙겨드리고 싶었습니다만, 거기까진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아니, 아니에요.”
“훗,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세운 계획은 시간이 제일 중요해서 말이죠.”
“그, 저기…….”
“행복하십시오.”
누나의 그림자가 덧씌워졌던 여인. 그래서 더 담담하고 분명하게 관계를 끊어 냈다.
부디.
앞으로는 이런 일과 엮이지 말고 행복하길 기원하며.
스윽―
짧았던 동행에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