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 * *
사람에게는 누구나 하나쯤 ‘정신적 약점’이 존재한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이성이 날아가고 차분하던 감정을 극단적인 수준으로 치닫게 하는 약점이.
그리고.
대체로 그건 ‘가족’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 자식, 형제자매 등.
타인이 가족을 욕하기라도 하면 그 즉시 상대의 신분이 어떻든, 상대의 능력이 어떻든 간에 참지 못하고 일단 들이받고 싶어지니까.
다시는 가족에 대해 한마디도 떠들지 못하게끔.
나도 그랬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남들보다 매우 심했다. 특히 이러한 부분은 ‘누나’와 관계되었을 때 지나칠 정도로 강해졌다.
누나를 사건으로 잃었기 때문이었다.
‘죽여… 버린다!’
그렇기에 이석열이라는 불구대천의 원수를 인지한 직후부터 분노와 살의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치밀한 설계? 철저한 계획?
그딴 건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오로지.
저 개자식을 죽이는 것만이 이 상황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이덕구만큼이나 누나의 정신을 무너뜨리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게 저놈이었으니까. 매일같이 함께 찾아와 누나가 지켜보는 앞에서 동생의 살점을 씹어 먹으며 웃어 젖히던 게 바로 저놈이었으니까!
“…으아아아아아아아!!”
쿠웅―!!
발끝이 꼿꼿하게 선다 싶은 찰나.
살기로 뒤범벅된 포효를 터트리며 교실 바닥을 강하게 밀어낸 나는 그 반동을 화력처럼 이용해 전면으로 쇄도했다.
슈화하아아악!!
빛을 흩뿌리는 주먹을 앞세워.
“이 새끼 봐라?”
그 강렬한 공세에 위험하다는 걸 느꼈을까?
후우욱―
쿵!
왼손에 쥐고 있던 무언가를 아무렇게나 내던진 이석열이 급하게 오른팔을 뻗었다.
그러자.
파앗!
탁!
잠시 마력이 휘몰아치더니 굴러 굴러 구석에 처박히던 단창이 순간적으로 모습을 감췄다가 이석열의 손바닥 안에서 나타난다.
리턴.
이석열이 투창용 단창을 들고 다니는 이유이자, 지정된 물체를 곁으로 불러들이는 놈의 ‘고유 능력’이었다.
그 힘으로 애병을 되찾은 놈은 코앞까지 다다른 내 주먹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쳐 왔다.
콰아아앙!!
주먹과 창 사이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폭발.
어찌나 강렬한지.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사방으로 쏟아져 나오는 수백 개의 마력 파편에 벽이고 천장이고 할 것 없이 죄다 부서져 나간다.
그 처참한 현장 속에서.
[오르그의 파괴 본능]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쿠구구구궁!!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 갔다.
팔 전체를.
우우우우웅―!!
푸르른 마력으로 뒤덮은 채로.
본디.
‘오르그의 파괴 본능’이란 타격 지점에서 마력을 쏟아부어 피격 대상을 문자 그대로 파괴하는 기술이지만.
한 번.
쾅!
두 번.
콰아아앙!
세 번.
콰과과광!!
몇 번을 두들기든.
끊임없이 공세를 이어 가는 내내 주먹에 감싼 마력을 방출하지 않고 되레 더더욱 응축시키며 이석열을 공격했다.
마치.
마력 자체를 무기 삼아.
[오르그의 파괴 본능]
[형태 변화]
[마력 권갑화]
《기술 : 오르그의 파괴 본능》
- 행성 ‘웨이노르(Waynor)’의 지배종인 「오르그」만이 개화 가능한… (중략) 간혹 지성이 뛰어난 오르그는 팔에 모은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고 갑옷이나 방패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이 기술의 본래 주인들처럼.
“으아아아아아!!”
후우우우우욱―!
쿠우우웅!!
* * *
‘이런 미친……! 어디서 이런 새끼가!!’
콰아아앙!!
쩌엉!
어느덧 스무 번째.
또다시 날아드는 푸른 주먹에 이석열은 반사적으로 창을 들어 올리며 연거푸 욕설을 토해 냈다.
도저히 입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매번 부딪칠 때마다 전해져 오는 반발력 때문에 팔 전체가 마비될 것만 같았으니까.
그런 탓에.
마음 같아선 반격이든 회피든 작금의 형세를 바꾸고 팠다.
허나.
심정과 달리 그러질 못했다.
공격을 받아 내며 전투가 시작된 터라 좀처럼 타이밍이 잡히질 않았다.
상대의 권격은 맨손의 강점을 십분 살린 듯 너무 빨랐고, 또 맨손이라는 게 의심될 만큼 너무 강했기에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자신이 누구인가?
대불곰파의 이인자이며 달리 인육 살인마라 불리는 남자였다.
그런데.
“으아아아아아!!”
콰앙!
콰아아아앙!!
‘크으으읍!!’
고작 저 주먹질을 버텨 내는 게 최선이라니.
이게 다.
반란 진압 중에 발견한 노예에게서 제법 괜찮은 ‘고유 능력’을 발견한 게, 그놈의 심장을 뜯어 먹어 해당 능력을 흡수한다면, 꿈에 그리던 ‘두목’의 위치에 한 발 가까워지겠거니 하고 흥분했던 게 실수였다.
앞으로 49시간밖에 남지 않은 진짜 ‘고유 능력 : 인육 포식’의 재사용 대기 시간.
그 쿨타임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는 행복한 상상에 빠져 눈앞의 적을 으레 반란에 가담한 노예겠거니 오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지만 않았어도……!’
최소한.
초전에 창을 던지지 않고 온전한 무장으로 겨뤘더라면 벌써 이 관계를 뒤집었을 텐데…….
‘젠자아아아아앙!!’
콰아아앙!!
자존심이 팍 상한 탓에 순수한 의미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래서는 안 된다.
어디서 굴러들어 왔는지도 모를 녀석에게 더는 밀릴 수 없었다.
결국.
‘에이, 쓰X, 아까운데……!’
이석열의 시선이 자신의 팔목으로 돌아갔다.
설마 이렇게 쓰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으나, 방패로 써먹을 부하 놈들도 없으니 판세를 뒤집기 위해서는 ‘팔찌’를 사용해야 될 것 같았다.
어차피.
‘차원 상점’만 발견한다면 아랫것들을 굴려 언제든 재구매 가능한 물건이니까.
‘트락구스의 껍질, 가동!’
고민은 짧았고, 실행은 신속했다.
[트락구스의 껍질]
우우웅―!
답을 내린 즉시 머릿속으로 명령을 내리자, 팔목에 채워진 팔찌에서 기묘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무척이나 어두운 그 기운은 금세 뭉치며 하나의 형상을 이루어 갔다.
전갈을 연상케 하는 꼬리 세 개와 거북이의 등껍질을 지닌 거대한 괴물, ‘트락구스’의 형체를.
그게 완성되었을 때.
후우우우욱―
쿠웅!
여지없이 푸른 주먹이 날아들었고.
씨익―
이석열의 날카로운 미소를 끝으로 이전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폭발이 일어났다.
[‘사용 효과 : 트락구스의 껍질’이 받은 대미지를 150% 위력으로 되돌립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 * *
털썩―
터덜터덜 밀려나던 다리가 맥없이 풀린다.
일어서려고 부단히 노력해 봐도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몸. 더군다나 단순히 그것뿐만이 아니다.
주르륵―
‘피……?’
팔과 다리.
전신 곳곳에서 시뻘건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대체 왜?
툭―
투두둑―
‘아.’
원인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질적인 소리에 이끌려 들린 고개, 전방을 바라보는 눈동자 너머로 산산이 부서지는 팔찌 하나가 보였으니까.
역시나.
이번에도 아이템이었다.
‘씨, X…….’
그래서였을까?
허탈한 웃음이 튀어나온다.
평범한 무기.
가령 한세정의 ‘괴물 사냥용 철검’만 하더라도 근원석 서른 개를 요구한다. 간부진이라면 높은 충성심을 위해서라도 훨씬 질 좋고 값비싼 무기를 쥐여 줄 테니 여기에 소모되는 비용이 정말 만만치 않을 터.
주야장천 사냥을 나선다 해도 감당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진대.
저놈들은 대관절 어떻게 싸울 때마다 새로운 아이템을 꺼내 드는 것인지 도통 납득할 수가 없었다.
이 또한.
‘한 달, 이것도 한 달의 차이?’
30일이나 뒤늦게 출발한 레이스의 여파인가? 그로 인해 이토록 큰 격차가 생겨 버린 것인가?
‘개, 같네…….’
이제 어쩌면 좋을까.
몸뚱어리는 당최 뇌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후아. 쓰바랄 것. 여기까지 온 이상 곱게는 안 죽일 테니까 기대해라. 산 채로 씹어 먹어 줄 테니까.”
저 악마는 더없이 건재하다.
아직 ‘플뤼의 탄성 일격’이나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와 같은 기술들이 남아 있지만, 이 모양 이 꼴로는 변변찮은 대미지도 주지 못하겠지.
그렇게 되면.
‘…결국.’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특이 사항
[인간성 : 95% / 미약한 분노 조절 장애]
이럴 때를 대비해 일부러 비워 둔 5%의 ‘인간성’을 전투에 활용하는 것.
불곰파에게 복수하는 동안에는 반드시 인간이길, 누나의 동생이길 잊지 않고자 버텼지만…….
아까부터 영혼을 자극하는 ‘프레데터의 본성’을 일깨우지 않는 한.
촤르르륵.
‘……?’
서서히 다가오는 이석열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던 그때, 어둠 속에서 웬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처음엔 잘못 본 줄 알았다.
헌데.
아니었다.
“어디부터 잘라 줄까. 팔? 다리? 어휴, 침 고이네.”
주르륵―
주륵―
집중해서 보는 가운데 입맛을 다시며 걸어오는 이석열의 발아래로 검은 빛깔의 ‘액체’가.
‘…피?’
그래.
바닥에 흩뿌려진 혈액이 느릿느릿하지만 분명하게 한쪽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어딘가 낯익은 장면.
분명 근래 와 본 광경인데 어디서…….
‘…그 남자! 그 남자의 고유 능력이다.’
기억났다.
이곳에 들르기 전에 보았던 거구의 남자, 한 점 미련 없이 불사를 수 있도록 개방시켜 주었던 그의 ‘고유 능력’이 지금의 현상과 비슷하게 주변의 혈액을 끌어모아 무기와 갑옷으로 변했었다.
다만.
그래서 더 의아했다.
‘그 능력이 왜…….’
거구의 남자는 바깥에 있지 않던가?
안타까운 일이나, 그의 실력으로는 전장 한쪽에서 불곰파와 겨루다 씁쓸하게 죽어 나갔을 운명이었다.
그랬는데.
꿈틀―
‘……! 여기, 있었다?!’
복수를 부르짖다 사망하리라 예견했던 거구의 남자가 믿을 수 없게도 이 자리에, 이 공간에 함께하고 있었다.
저기.
머리 잃은 고문관들이 나뒹구는 복도에.
그것도.
들썩―
분명하게 살아 숨 쉬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허나.
이 순간 중요한 건 이해와 납득이 아니었다.
번쩍!
‘……!’
이석열의 등 뒤에서 기습적으로 눈을 뜬 거구의 남자와 한차례 시선을 마주한 나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건.
저 남자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는 역할이라는 걸.
우우우우웅―
탁―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
그 깨달음과 동시에 전력을 다해 발가락을 까딱여 교실 바닥을 건드렸다.
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소음.
쿠우우우웅!!
하지만.
소음과 별개로 위력은 그리 대단치 않았다. 보다 정확하게는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대지가 아니라면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는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않았으니까.
허나.
크게 상관없었다.
애당초 위력은 기대 항목이 아니었다.
그저.
이런 내 동작에 이석열이 지레짐작하며 뒷걸음질 쳐 주길 바랐을 뿐.
“…응? 어우 씨, 뭐야?!”
후욱!
타다닷―
다행히 예측은 훌륭하게 들어맞았다.
놈은.
별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족히 세 걸음이나 물러나 주었다.
멍청한 새끼.
“뭐야, 쓰X, 아무것도 없어? 나 낚인 거야?”
“큭.”
“웃어? 이 쓰X 새끼가 웃어?”
저 머저리 같은 행동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놈은 알까?
“이걸, 바라더라고.”
“뭐? 누가 그…….”
덕분에.
콰직!
제 가슴을 꿰뚫을 발판이 마련됐음을.
“…러, 어언…….”
아마.
평생토록 모를 것이다.
[플뤼의 탄성 일격]
“씨이… ㅂ…….”
투우우웅!
콰앙!
뭉개진 대가리로는 아무것도 묻지 못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