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 * *
‘차원 상점’에는 정말 다양한 물건이 존재한다.
이름 그대로.
전 차원의 물건을 사고팔 수 있기 때문일까?
그 명성을 보여 주듯, 성풍 아파트 단지 남쪽에서 발견한 상점은 ‘LV. 1’이라 적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각양각색의 아이템들로 가득했다.
흔히 ‘아이템’이라고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무기와 방어구, 장신구는 물론.
《하급 체력 회복 물약》
《하급 마력 회복 물약》
《하급 해독 물약》
이른 바 포션이라고 불리는 각종 물약들도 수두룩하게 갖춰져 있었다.
그런 데다가.
‘차원 상점’의 특성상 입장 인원 제한으로 한번 나가면 다시는 들르지 못할지도 모르는 탓에 고작 100여 개도 안 되는 근원석을 사용하는데도 최선의 소비를 위해 몇 시간이고 고민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이건 어떨까요?’
‘저건…….’
‘그건 확인해 보셨어요?’
한세정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내게, 혹은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아이템을 찾고자 발품을 팔았고 나중에는 아예 리스트까지 작성하며 나를 보조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공을 들이던 무렵.
‘이것, 이것이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기나긴 탐색 끝에, ‘특수 및 기타 아이템류’에서 내가 세운 계획에 최적화된 아이템을 하나 손에 넣게 되었다.
그게 바로 이것, ‘일회성 고농축 페로몬’이었다.
《일회성 고농축 페로몬》
- 아주 강력한 페로몬이 압축되어 있는 상자. 개방 시 반경 5km 바깥까지 페로몬이 분비되어 온갖 외계 생명체를 불러들인다. 단, 그 외의 효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구매가 : 근원석 80개]
‘정말, 이걸로 괜찮을까요?’
설명만 보자면 그저 비싸기만 할 뿐, 이걸 어디에 써야 하나 싶은 터라 연신 한세정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었지만… 나는 가진 자원 안에서 이보다 더 좋은 아이템을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유라면 명확했다.
‘불곰파는 쉽게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인정하긴 싫어도.
불곰파의 위세는 분명 강력했으니까.
아무리 내가 ‘성장의 땅’을 통해 다수의 ‘특수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등위를 상향시켜 많은 성장을 거뒀다 한들, 그들이 대규모 능력자 집단이자 실력자 집단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 바.
따라서.
철저하게 단계를 나눠 복수를 설계해야 했고, 그러한 관점에서 이 ‘일회성 고농축 페로몬’은 시나리오의 초반부이자 가장 시급한 ‘조이령 구출 작전’을 담당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효능을 지니고 있었다.
어떻게?
“마력 다 회복됐어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철컥―
푸쉬이이이이익―
[‘일회성 고농축 페로몬’을 사용합니다.]
[압축되어 있던 페로몬이 반경 5km 내에 존재하는 외계 생명체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합니다.]
지금이 본격적으로 그걸 증명할 차례였다.
* * *
제성 초등학교 정문 경비대.
여느 때처럼 횃불과 랜턴에 의지해 경계 업무를 서고 있던 강건두는 막 교대를 위해 일지를 적던 중 의아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글쎄 말이야, 내가 조금 전에 들었는데… 아까 수색 나갔던 사람들이 아무도 안 돌아왔다지 뭐야?”
“…뭐?”
“안 믿기지? 나도 그래서 잘못 들었나 했거든? 근데 아니더라고. 유기태 알지?”
“알지. 그 개새… 크흠, 아무튼, 그놈이 왜.”
“유기태의 명령을 받고 나갔던 놈 중에 일부가 돌아와서는 ‘수색 팀이 전원 시체로 발견됐고, 노예들은 다 도망친 것 같다. 이걸 어떻게 보고하느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라고……. 거참, 진짜 무슨 일이 생기긴 했나 벼.”
“허…….”
수색 팀의 전원 사망이라는.
이제껏 단 한 번도 없었던, 다른 곳도 아닌 불곰파의 역사상 가히 전대미문의 사건이라고 봐도 무방한 얘기에 진한 흥미가 돋았다.
특히.
‘그놈들이 다 죽어?’
두려울 거 하나 없어 보이던 불곰파 조직원들의 떼죽음은 노예로 고통받던 그에게 무척이나 반갑게 다가왔다.
자신으로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에.
이따금씩 외출하는 조직원들을 보며 괴물들한테 습격당해 다 뒈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저주했었는데, 그게 제대로 먹혀들어 간 것 같아 속이 통쾌했다.
또.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씨이X……. 오늘 수색 나갔으면 이 거지 같은 노예 생활도 벗어나는 건데.”
교대자 이유찬의 말처럼.
만약 오늘 자 수색 팀에 속해 있었더라면, 같이 휩쓸려 죽었을지도 모르나 반대로 기회를 잡아 도망쳤을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괴물인지 사람인지는 몰라도, 여기도 한번 와 줬으면 좋겠네.”
“혹시 아나,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지.”
“그랬으면 소원이 없겠어. 소원이.”
“푸흐흐, 아무튼 수고하게. 늦으면 또 매타작당할 테니 먼저 가 보겠네.”
“그려. 오늘도 잘 버텼어.”
이유찬의 탄식에 전적으로 동의를 표하며, 늘상 하던 대로 어제도 살아남았으니 오늘도 살아남아 보자는 노예들만의 인사를 남기고는.
“이 새끼들아! 뒈지고 싶어?! 빨리빨리 안 모여!!”
“옛!”
“옛!”
한껏 짜증을 내고 있는 교대 담당관에게로 달려가려던 찰나였다.
운동장에서 퍼 온 모래로 학교 담벼락에 덧대 세운 성벽을 허겁지겁 내려가던 그 순간.
후욱!
“……?”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온다 싶더니.
콰직!
“커헉!”
곧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
믿을 수 없게도.
빠릿빠릿 움직이는 노예들을 보면서도 인상을 찡그리고 분노를 토해 내던 교대 담당관이 목덜미를 부여잡은 채 쓰러지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일까.
“켁, 케헥…….”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니 목젖 부근에 손가락만 한 칼날이 박힌 상태였다.
더 놀라운 건.
이 기이한 현상이 교대 담당관에게만 일어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후우우욱―
콰직!
콰드드득!
“켁!”
“커헉…….”
교대 담당관을 비롯해 정문에서 노예들을 관리하던 경비대 소속 조직원들이 하나둘 쓰러져 간다.
그 수가 무려 다섯.
총원 여덟 명인 정문 경비대 3팀의 절반을 넘어가는…….
콰직!
푹―
우드득―
“…….”
정정한다.
단 하나도 반항하거나 도망치지 못하고 총원 여덟 명이 눈 깜짝할 새에 모조리 당했다. 경비대에나 배정받을 정도로 수준이 낮은 말단일지라도 조직원은 조직원일진대…….
대체.
누가 이런 일을 벌이는 걸까.
강건두를 포함해 정문 근방에 위치해 있던 이들이 죄다 같은 표정으로 칼날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여인이 서 있었다. 허리에 날카로운 칼을 찬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몰리자 이렇게 외쳤다.
“길어야 3분 안에 괴물들이 들이닥칠 겁니다! 다들!! 후문으로 도망쳐서 어떻게든 빠져나가세요!”
죽기 싫으면 도망치라고.
무슨 소리일까.
그 외침의 진의를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았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여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지막지한 포효가 들이닥쳤으니까.
게다가.
땡땡땡땡땡땡!!!
정문 초소 최상층에 구비된 경종도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가리키는 바는 오직 한 가지.
“키에에에에엑!!”
“그에에에에!!”
“으어어어!!”
“아.”
어느새 자취를 감춘 여인의 조언대로, 저기 눈에 선명히 보이는 것처럼 괴물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 * *
[투르바의 포효]
“크아아아아아아아!!”
쿠웅!
마력을 담은 포효가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괴물들의 하울링과 비교해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 성량에 반응하듯 온갖 곳에서 되돌아오는 괴성.
“키에에에에엑!!”
“그에에에에!!”
“으어어어!!”
몇인지 분간조차 안 되는.
‘고농축 페로몬’에 이끌려 온 괴물들이 한꺼번에 내뱉는 불협화음을 전해 들으며 곧장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신호기를 꾹 눌렀다.
삑!
[‘고주파 신호기’가 작동되었습니다.]
[‘반대편 신호기’로 당신의 위치 정보가 전달됩니다.]
본래는 ‘나의 위치’를 알려 주는 기능으로 사용되는 아이템이나, 이 순간만큼은 따로 작전을 수행 중인 한세정에게 ‘나의 준비’가 끝났음을 알려 주는 용도로써.
그러자.
땡땡땡땡땡땡!!
“오케이.”
얼마 지나지 않아 본인도 임무를 완수했다며 불곰파의 비상 경종으로 대답해 주는 한세정.
이에.
콸콸콸콸―!!
나는 지체 없이 괴물 유혹용으로 비축했던 포획조의 심장과 혈액을 끊임없이 쏟아붓는 동시에.
[투르바의 포효]
“크아아아아아!!”
입으로도 포효를 이어 가며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수백 명의 아이들 대신 수백 마리의 괴물들을 이끌고 불곰파로 달렸다.
그랬다.
나는 지금 저 괴물들로 하여금 불곰파를 뒤흔들 작정이었다.
열 개나 되는 수색 팀과 포획조 한 팀의 전멸, 그들의 갑작스런 실종을 파헤치기 위해 외부로 빠져나간 일부 조직원들.
두 번에 걸쳐 약화된 본진을 직접 쳐서 전력을 줄임과 더불어 혼란을 야기해 조이령을 구출해 내고자.
이게, ‘일회성 고농축 페로몬’을 활용해 구상한 불곰파 멸망 작전의 첫 단추였다.
물론,
마음 같아선 단순히 구출에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밀어붙여 이덕구의 목까지 따 버리고 싶었다.
‘욕심은, 금물.’
허나.
한세정에게도 말했듯, 저들은 강하고 나는 약하다. 그러니 이번엔 오롯이 그 격차를 줄이는 데에만 주력한다.
자칫.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다 되레 모든 걸 놓치고 허기를 참지 못해 아사(餓死)해 버리는 최악의 결과가 도출될 수도 있으니까.
‘참아라, 참는 거다……!’
빠득―
자꾸만 차오르는 욕망을 부단히 억누르며 점점 더 속도를 높였다.
50m, 40m, 30m.
땡땡땡땡땡!!
빠르게 줄어드는 간격 속 슬슬 제성 초등학교 정문이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사람들의 고혈과 여러 능력자들의 기상천외한 능력으로 요새화시킨 지옥의 입구는 질서정연하던 평소와 달리 간간이 들려오는 비명과 아우성으로 굉장히 어수선했다.
“도망쳐!!”
“으아아아!”
작전이 제대로 먹혀들어 가고 있다는 증거일 터.
이에.
‘기대해라, 이덕구!’
쿠웅―!
원하는 흐름대로 전황이 흘러가고 있음에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오는 살의를 마력과 함께 불태우며 새로 습득한 기술을 발동했다.
[순간 회귀 : 오르그의 오른팔]
우득―
우드득―
살이 갈라지고 뼈가 비틀리며 순식간에 거대해지는 주먹.
우우우웅―!!
흡사 거인을 연상케 하는 육체 안으로 전신의 마력을 응축시키자 한계까지 치달은 에너지가 푸른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한 방, 부순다……!’
그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며 일격에 요새의 문을 박살 내려 어깨를 최대한 뒤로 잡아당기고 한 걸음, 한 걸음 더 나아가길 잠시.
번쩍!
어느덧 코앞으로 다가온 정문 꼭대기에 빛이 번쩍였다.
한세정이다.
정해진 규약에 따라 제 역할을 마치고 떠나가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딱히 눈치 볼 것 없이 두들겨도 좋다는 의미.
후우우우우웅―
이내.
“흐으으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
[오르그의 파괴 본능]
콰아아아앙!!
빛을 가득 머금은 유성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