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 * *
“상황은 좀 어떻다고?”
“남자 쪽이 슬슬 무너지고 있답니다. 애들 말로는 자기 입으로 더 이상 괜찮다는 얘기를 안 한다네요. 클클.”
“그래?”
“예, 이제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좋아. 앞장서라.”
“알겠습니다.”
어둑어둑한 하늘.
아직 해도 떠오르지 않은 새벽녘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불곰파의 두목.
흔히 악마 소굴의 왕이라 불리는 이덕구와 그의 친동생이자 이인자인 이석열로, 두 사람은 침실로 쓰는 교장실에서 나와 등불이 걸린 복도를 거닐어 4층으로 향했다.
정확하게는 4층에 위치한 4학년 3반 교실.
특이하게도 하얀 두건에 하얀 마스크와 하얀 손 장갑 등 온통 백색으로 치장되어 있어 마치 병원에서나 볼 법한 의사의 느낌이 풍기는 남자 둘이 서 있는 장소였다.
“형님들! 오셨습니까!”
“오셨습니까!”
이덕구와 이석열이 당도하자 곧장 허리를 90도 가까이 숙이며 인사를 건넨 두 남자는 자연스레 교실 문을 열었다.
드르륵―
기름칠을 했는지 상당히 부드럽게 열리는 문틈 사이로 내부의 풍경이 보인다.
바닥에서 천장 모서리까지.
어디 하나 빠짐없이 완벽하게 비닐이 깔리고 붙어 있는 공간, 그 중심에 손발이 묶인 채로 의자에 앉아서 어딘가를 바라보며 울먹거리는 여성과.
“오빠… 상민 오빠…….”
“아으… 으…….”
커다란 십자가에 박제되어 전신이 난자당한 상태로 고개를 푹 떨군 채 겨우 신음만 흘리는, 사실상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남자의 형체가.
“좋아, 좋아.”
이덕구는 그 처참한 광경이 무어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음을 흘리며 교실 안으로 들어가 여성에게 다가갔다.
뚜벅뚜벅.
무척 가벼운 걸음걸이로 여성의 곁에 도착한 이덕구가 손짓하자, 복도에서 대기하던 이들이 큼지막한 이동식 테이블 하나를 끌고 들어와 ‘상민’이라고 불린 남성의 옆에 자리를 잡는다.
그러고는.
“시작하겠습니다.”
딱 한마디 말과 함께 테이블 위에 잔뜩 늘어 두었던 다양한 크기의 칼 몇 자루를 들곤 이미 흉터와 상처로 빼곡한 상민이라는 남성의 몸을 긋는다.
아주 조심스럽게.
사각―
사각―
“으으, 으아아아아!!”
세심한 컨트롤이 더해진 칼날이 살결을 베어 내기 무섭게 터져 나오는 비명.
하지만.
서걱!
촤아아아악!!
고통에 가득 찬 절규가 전혀 들리지 않는 듯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되는 칼질.
시뻘건 핏물이 울컥 쏟아져 비닐을 적시고 물들이기 시작하자 여자 쪽에서도 반응이 나온다.
“하지 마… 하지… 제발, 제발 하지 마!!”
촤르륵―
촤륵―
핏물에 적신 것처럼 뻘건 족쇄에 구속된 팔다리를 들썩거리며, 자신의 연인을 더 이상 아프게 하지 말아 달라 울부짖는다.
그러나.
여전히 들어 주는 이 하나 없다.
5분, 10분, 15분…….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오직 입을 여는 건 여자와 남자뿐. 이덕구와 이석열을 포함한 백의의 고문관들도 미소를 머금은 침묵을 유지했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으으, 으으으……!! 으아아아아!!”
벌써 30여 분 가까이 이루어진 고문.
아니.
어느덧 4일 차에 접어든 고문에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 상민이, 마침내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제 아내를 범해 달라 애원하는 순간을.
그것이 이 모든 행위의 목표였으니까.
일부러 새벽에 고문을 가하는 것도 다 그래서였다. 새벽은 사람의 감정이 가장 심하게 요동치는 시기.
자그마한 자극에도 정신이 무너지는 시간이었다.
“그만, 그만…….”
다시 30여 분이 흐를 무렵.
갈기갈기 찢겨 걸레짝이 되어 가던 상민에게서 비명이 아닌 언어가 튀어나왔다. 뇌리를 잠식한 통증으로 발음은 불분명할지언정 명확한 중지 요청에 고문관들이 뒤로 물러나 이덕구를 돌아본다.
“흣.”
그 모습에 이덕구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이다.
드디어.
고대하던 때가 당도했다는 걸.
“마음, 마음대로… 끄으읍, 하아… 마음대로…….”
이를 증명하듯.
한번 뚫린 상민의 입에선 포기를 뜻하는 단어가 마구 튀어나왔다.
다만.
이덕구는 성급하게 굴지 않고 차분히 기다렸다. 단순히 ‘해도 좋다’와 납작 엎드려 청하는 ‘해 주세요’는 그야말로 천지 차이.
평범한 포기를 넘어 완전히 절망하길 바라는 만큼 끈질기게 인내했다.
기어이.
“저 사람, 저 여자를 부디…….”
성민이 목숨을 구걸하며 아내를…….
쾅!
“형님!!”
“…….”
이덕구의 눈에 깃든 흥분이 최고조에 달하던 찰나.
누군가 완연한 상승 곡선을 그리던 감정선을 한순간에 박살 내며 굳게 닫힌 교실 문을 열어젖히고 난입했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대형 사고에 모두가 당황한 얼굴로 시선을 돌린다.
‘교육’ 또는 ‘조련’이라 명명한 이 작업은 결코 방해받아서는 안 되는 신성한 과정. 이에 대해서는 불곰파의 조직원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터인데.
대체.
어느 머저리가 겁도 없이 이런 개짓거리를 자행한 것인지 그 낯짝이 궁금했다. 허나 결과적으로 그 누구도, 심지어 이덕구조차도 분노를 토해 내지는 못했다.
어찌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호흡을 헐떡이며 보고하는 부하에게서.
“허억, 헉……. 덕구 형님, 수색조가 전원 사망했습니다!”
“…뭐?”
“식량 및, 흐읍… 물자 탐사를 나갔던 수색 1팀부터 10팀까지, 팀장을 비롯한 팀장 68명과 노예 200여 명이 단 한 명도 복귀하지 않아 기태 형님께서 애들을 내보냈는데, 확인하는 족족 수색지 혹은 수색지 인근에서 전부 시체로 발견되는 중이라고…….”
당최 믿기 어려운 얘기가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그게, 그게 무슨 개소리야!”
* * *
차악―
달빛에 의지해 도심을 거닐던 나는 별안간 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뒤따라오던 한세정을 제지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옆으로 돌아!”
“탱커 버텨!”
“이제 다섯 마리 남았다! 후딱 정리해 보자!”
“엣!”
족히 10여 명의 목소리가 들린 탓이었다.
어떤 자들일까.
스윽―
슥―
정체를 파악하고자 곧장 은밀 기동 수신호를 보내며 3분여를 조심스럽게 나아가자.
쿠우웅!
쿵!
“그웨에에!!”
“그웨에엑에엑!”
이내 치열한 격전 소음과 함께 10여 명의 인간과 대여섯 마리의 괴물이 한데 뒤엉킨 전장이 보였다.
형세는 인간에게 매우 유리했다.
괴물과의 전투가 굉장히 익숙한 듯 명확한 포지션 분담을 통한 체계적인 전술 구사로 상대를 거의 갖고 노는 중. 길어 봐야 5분 안에 상황이 정리될 분위기에 우린 더욱 은밀히 기동하여 사람들의 이마를 살폈다.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오로지 딱 하나, ‘火’자 문신이 존재하는지만…….
“…있다! 있어요!”
휙!
휙!
양방으로 나뉘어 좌측으로 가던 한세정이 먼저 손가락을 말아 쥐어 만든 동그라미를 흔든다.
뒤이어.
[火]
[火]
[火]
나 또한 사람들의 이마에서 ‘火’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나 불곰파였다.
후욱!
이에.
단단하게 말아 쥔 주먹을 높게 들어 올려 사냥을 의미하는 제스처를 취한 나는 알겠다는 답신을 받자마자 전장에 끼어들었다.
가진 바 가장 강력한 일격을 앞세워.
[오르그의 파괴 본능]
우우웅―
콰아앙!!
느닷없이 이루어진 기습.
칭호 ‘선수 필승’의 영향으로 더욱 강해진 마력이 불곰파의 후방을 뒤덮는다.
“음? 뒤에…….”
타격 직전.
회복 계열 능력자인 듯한 맨손의 남자가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보며 기습을 눈치채긴 했지만, 피하기는커녕 방어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쓸려 나가는 후미.
“흐읍!”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
쿠웅―
쿠구구구구궁―!!
나는 잠깐의 틈도 주지 않고 연속으로 기술을 발동시키며 전장을 뒤흔들었다.
기습에 성공했다고 자만하는 일 따윈 없었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한이 있더라도, 불곰파 조직원이라면 단 하나도 살려 보내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양팔을 내질렀다.
후우욱―
쾅!
“커헉!”
살짝 무릎을 굽히며 가한 오른손 훅.
매섭게 들어간 주먹이 누군가의 명치 부근에 박혀 들어간다.
우드득―
살갗을 타고 전해지는 뼈 부러지는 감각이 느껴지던 때.
화아아아악!!
내 어깨로 뾰족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타앗―
쿵!
쩌저저저적―!
재빨리 상체를 틀어 피하자 아슬아슬하게 상체를 빗겨 나가며 땅바닥에 꽂힌 물체가 폭발과 동시에 꽤 넓은 범위를 얼려 버린다.
기습을 당한 데다가 지반이 파도치고 있어 균형 잡기도 어려운 마당에 이런 반격이라니.
아무래도.
꽤나 실력 있는 빙결 계열 능력자가 존재하는 듯했다.
‘잘됐어.’
다행이었다.
왜?
저런 실력자가 죽는다면 제아무리 실력자가 많은 불곰파라 할지라도 적잖은 타격이 될 테니까.
다만.
슈슈슈슈슈슉―
콰직!
콰드드득!
“아, 아아…….”
털썩!
아쉽게도 그 실력자를 사냥하는 영광은 내가 아닌 한세정에게 돌아갔다.
내가 막 찾아내던 타이밍과 겹쳐서 날아든 두 자루의 칼날이 놈의 심장과 복부에 박혀 들어간 탓이었다.
“이런.”
애당초.
“그웨에에에엑!!”
콰직!
한세정이 노리지 않았어도 발이 풀린 괴물에게 잡아먹혔겠지만 말이다.
아마.
빠른 판단을 통해 이미 전황이 기울었으니, 자신이 죽더라도 나를 같이 데려가려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살려…….”
서걱!
툭―
데구루루―
약 5분여에 걸쳐 정리된 전장.
살려 달라 버둥거리던 놈을 끝으로 정리를 마친 나는 감각을 곤두세워 혹여라도 놓친 이가 있나 살폈다.
“…없나.”
딱히 잡히는 건 없었다.
하여.
“확인 사살, 할게요.”
“그러시죠.”
마지막으로 확인 사살을 진행한 후.
주인을 잃어버린 아이템들을 챙겨 피 냄새가 풀풀 풍기는 공간을 벗어났다.
* * *
촤르륵―
“이렇게 보니까 엄청 많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획득한 아이템의 보관 겸 휴식처로 쓰는 건물에 들러 새로이 얻은 무기 세 개를 내려놓고 보니.
한세정의 말대로 벌써 20여 개나 쌓인 아이템이 눈에 들어왔다.
방어구에 비해 싸다고는 하나 근원석으로만 따져도 족히 7~800개 분량에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그래서였을까.
“차원 상점이 근처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물끄러미 아이템 더미를 바라보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한세정. 이렇게나 잔뜩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쓸 수가 없었으니까.
어째서?
“어쩔 수 없습니다. 시간 싸움이니.”
“그렇죠? 으음.”
불곰파를 무너뜨리기 위해 세운 계획의 제일 중요한 요소가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휴식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 정도로 빡빡한 타임 어택.
그렇기에.
단 1분도 허투루 쓸 수가 없어 나 또한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욕심을 털어 내며 말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수색조가 돌아오지 않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원인을 파악하는 중일 겁니다.”
“그럼…….”
“예, 소모된 마력이 회복되면 바로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서 쉬라고.
그러면서.
스으으윽―
탁!
옆에 내려 두었던 가방을 열어 그 속에서 한 가지 물건을 꺼냈다.
네모반듯한 정육면체의 상자.
우리가.
‘차원 상점’에서 구매한 유일한 아이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