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 * *
탁―
화르륵!
“오늘은 뭘 먹을까요?”
가스버너의 불을 켠 한세정이 질문인 듯 혼잣말인 듯 중얼거리며 주방을 쓱 둘러보다가 뭔가 마음에 드는 걸 찾았는지 기름을 적당히 두른 팬 위로 큼지막한 조각들을 올려놓는다.
그러더니.
겨우겨우 건져서 얼마 되지도 않는 야채를 쓸어 넣고 뚝딱거리더니 이내 즉석 밥까지 끼얹어 금세 요리를 완성해 냈다.
“볶음밥 괜찮죠?”
제법 맛있는 냄새가 풍기는 볶음밥이었다.
종말 시대에 먹기엔 굉장히 호사스러운 음식이었기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숟가락을 들었다.
많진 않지만 김이나 몇 가지 먹을 만한 반찬을 깔아 두고 얼마간 이어진 식사.
꿀꺽―
포만감을 느끼며 물 한 잔으로 입가심한 나는 어느새 후식을 가져오는 한세정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앞으로 3일간, 사냥도 사냥이지만 주변을 돌아다니며 차원 상점을 찾아볼 예정입니다.”
“차원 상점이요?”
뜬금없는 공표에 순간적으로 의뭉스러운 표정을 짓는 한세정.
그러다.
“…아.”
탁―
황급히 귤 따위가 담긴 접시를 던지다시피 내려놓으며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응시한다.
아마도 이해한 모양새였다.
내 말속에 담긴 진의를.
“그럼.”
“맞습니다.”
하여 나는 그녀에게 확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4일 뒤. 출발할 생각입니다.”
약속의 때가 도래했노라고.
앞을 가로막는 건 무엇이든 갈라 버릴 각오로 벼리고 벼린 칼날을 휘두를 때가 되었노라고 분명하게.
“아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세정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따로 얘기한 적도 없고, 재촉한 적도 없었지만… 언제나 이날이 오기만을 기다려 왔던 그녀였으니까.
“차원 상점을 찾지 못한다 해도 그대로 출발할 겁니다. 그러니 오늘부터 짐을 싸도록 하겠습니다.”
“네, 네!”
그런 만큼.
대답을 하는 한세정의 어투에는 어느 때보다도 힘이 실려 있었다.
* * *
스윽―
슥―
끄덕―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가 다시 집게손가락만 펼쳐 보이자, 뒤따라오던 한세정이 알았다는 제스처를 취하곤 칼을 굳게 쥐고 앞으로 달려 나간다.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게 이동한 그녀가 무너지고 파괴된 건물 안으로 사라지길 잠시.
“끼유으으으으으!!”
“끼유으으으!”
쿵―
쿵―
쿵―
곧 해당 건물에서 대략 대여섯 마리쯤 되는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덩치는 2m가량.
전체적인 형상이 원숭이와 닮아 상당히 긴 팔과 세 개의 꼬리가 특징인 개체였다. 특이한 게 있다면 두 개의 송곳니가 뱀파이어처럼 길고 날카롭게 튀어나와 있다는 점이다.
‘등급은…….’
재빠르게 스캔을 마친 나는 마지막으로 상승한 감각을 동원해 등급을 살폈다.
따로 식별 기술을 갖고 있진 않았지만, ‘성장의 땅’에서 한번 경험해 본 덕분인지 길게 지켜보다 보면 어느 정도 구분이 가능해진 상태였다.
다만.
‘이번에도 1등급 사냥용.’
벌써 몇 번이고 확인해 봤음에도 아직까지 현실에선 2등급 이상의 괴물은 본 적이 없었다.
매우 아쉬운 포인트였다.
2등급 괴물의 신체를 이식할 수 있다면 최소 2~3할은 더 강해질 수 있을 테니까.
허나.
이 부분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쓸데없는 감정을 털어 내고 한 발 크게 내디뎌 괴물들의 옆구리를 치고 들어갔다.
[플뤼의 탄성 일격]
투우우웅―
콰직!
‘하나.’
공간을 가르며 날아간 왼팔이 한 놈의 가슴팍을 꿰뚫고 틀어박힌다.
“끼유으으으!!”
“끼유으으!”
느닷없는 기습에 뛰어가다 말고 다급하게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는 놈들.
무척이나 당황스러운지 반격은커녕 쓰러져 죽은 동족을 바라보며 머뭇거리는 찰나.
슈슈슈슉!
콰직!
콰드득!
“끼유으윽!!”
“키육!”
멍청하게 멈춰 선 고정된 과녁판을 향해 예닐곱 개의 칼날이 날아들었다.
끽해 봐야 30cm도 안 되는 작은 칼날, 그러나 매일같이 각종 독성 강한 화학 물질로 덧칠되는 데다가 초인의 힘으로 던져 낸 비수는 괴물들이라 할지라도 버텨 내질 못했다.
그 뒤로는.
후우욱―
쾅!
“다섯.”
“흐읍!”
서걱!
“끝!”
여느 때처럼 일방적인 도살극이 벌어졌다.
사냥은 순식간에 종결되었고, 우린 피 냄새가 퍼지기 전에 추출 작업까지 마무리하고 다시금 도심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어느덧 ‘차원 상점’ 수색에 나선 지도 3일 차가 된 저녁.
나는 식량과 식수가 든 짐 가방을 챙기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찾았으면 좋겠는데.”
꽤나 열심히 수색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차원 상점’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본래.
구경하는 것조차 어려운 곳이라는 건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힘들 줄이야.
그나마 다행이라면 열심히 돌아다닌 덕택에 잦은 교전으로 되레 미끼 작전을 펼칠 때보다 근원석을 많이 확보 중이라는 점이었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것과 더하면 쉰 개가 훌쩍 넘어갈 정도로.
“그러니 좀 찾아야 할 텐데.”
“아윤 씨! 전 준비 끝났어요.”
“예. 출발하죠.”
부디.
오늘은 수확이 있기를 바라며 성풍 아파트를 기준으로 남쪽으로 향했다.
인구 밀집도가 컸던 만큼 대체로 상가가 주를 이루는 지역임을 강조하듯 단지를 빠져나오자마자 각종 가게가 우릴 반긴다.
물론.
멀쩡한 곳이라고는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을씨년스럽네요.”
완연한 겨울이 되어 가는 상황에서 완전히 박살 난 도시를 걷고 있으니 유독 더 흉흉하게 다가오는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얘기하는 한세정.
그런 그녀와 하늘을 꽉 채운 구름으로 달빛마저 흐린 세상을 얼마나 걸었을까.
“아윤 씨……!”
두어 번의 전투를 치르며 수색을 시작한 지 한 시간쯤 됐을 무렵 우측을 위주로 돌아보며 가던 와중에 한세정이 급히 나를 불렀다.
“……?”
“저기!”
괴물이라도 나타났나 싶어 반사적으로 주먹을 틀어쥐며 곁으로 다가가자 어딘가를 가리키는 그녀.
쭉 뻗은 손길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반짝―
반짝―
체감상 약 3~400m 정도 떨어진 장소에서 어둠으로 뒤덮인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빛이 한 지점에 고정된 채로 일렁거리고 있었다.
뭘까.
“사람, 일까요?”
“일단 가 보죠.”
“네.”
인간이든 괴물이든.
사전에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이 가장 좋기에 우선 수색을 중지하고 한세정을 데리고 조심스레 접근하기 시작했다.
반짝!
반짝!
거리가 줄어들수록 점점 더 강렬해지는 빛을 쫓아 한달음에 달려가 보니 용케도 횡액을 피한 높은 빌딩 상층부에서 광휘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마치.
등대 같은 느낌.
“진입하겠습니다.”
“네.”
감각을 넓혀 가며 주변을 훑었으나 딱히 걸리는 존재가 없어 제동 없이 곧장 건물 내부로 들어가 계단을 타고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 목적지에 거의 다다른 순간.
“아.”
“아!”
우린 그대로 굳어 버렸다.
빌딩 7층 한쪽에 사흘 내내 찾아 헤맸던 ‘차원 상점’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원 상점 LV. 1》
[입장 가능 인원 : 3/15]
[입장 가능 조건 : 1등급 근원석 소지]
[폐점까지 남은 시간 : 92시간 14분 35초]
* * *
“와…….”
빛으로 휘감긴 문을 지나 처음으로 입장해 본 ‘차원 상점’은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올 만큼 가히 화려함의 극치였다.
한쪽 벽에는 무기가, 반대편 벽에는 방어구가, 바닥 또한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장신구나 각종 아이템이 늘어서 있는데…….
하나도 구하기 힘든 보물들로 사방이 가득 채워져 있어 보는 즉시 숨이 턱 막혔다.
“…아마도 구매하고 싶은 아이템에 손을 가져다 대면 간단한 설명과 함께 비용이 나타날 겁니다.”
그러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나는 한세정에게 상점의 이용법을 알려 준 후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멘탈을 다잡고서 천천히 방어구가 모여 있는 곳부터 들렀다.
검, 창, 도끼 등.
각양각색의 무기가 눈에 밟히긴 했지만, 냉정하게 따져 봤을 때 역시 내게 제일 시급한 건 방어 관련 아이템이었다.
단지 문제라면.
툭―
《괴물 사냥용 흉갑》
- 여러 괴물의 가죽을 합성해 제작한 흉갑. 철제 방어구에 비해 방호력이 떨어지나 가볍기에 이제 막 사냥을 시작한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착용 시 내구가 6 상승한다.
[구매가 : 1등급 근원석 50개]
“…50개?”
예상대로 성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방어구조차 구매가가 엄청나다는 것.
《풀루스 가죽 상의》
- 행성 ‘루이나(Luina)’의 지배종 「풀루스」의 가죽으로 제작한 상의. 돌진이 특기인 개체답게 웬만한 충격에는 끄떡없을 정도로 질긴 것이 특징이다. 착용 시 내구가 8 상승하며, 충격 흡수율이 10% 증가한다.
[구매가 : 1등급 근원석 65개]
제일 싼 것이 근원석 50개, 그 외에는 평균 6~70개부터 심하게는 100개를 넘어가는 방어구가 수두룩했다.
“…미쳤군.”
이걸 어쩐다.
상의든 투구든 투자한다면 충분히 살 수 있으나 가격이 가격인지라 한참 고민에 잠겨 있는 사이 적당히 구경을 마친 한세정이 곁으로 다가왔다.
“여기, 정말 가격이 엄청나네요…….”
근원석의 대부분을 내게 밀어 준 탓에 후다닥 둘러보고 돌아온 그녀는 흡사 명품 가게에 들른 사람처럼 가격표를 보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나는 한세정에게 동조하듯 주억거리며 턱을 괴었다.
아무래도.
합리적인 소비를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 * *
슬슬 해가 저물어 가는 오후.
“정말, 괜찮겠죠?”
“저도, 세정 씨도 원하는 바를 이루기에 현재로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입니다.”
“후우우우……. 아윤 씨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그래도 잘못되면 어쩌나 걱정되네요.”
마침내 한세정에게 기약한 날.
우린 노을빛으로 붉게 물들어 가는 세상 아래에 서서 매우 진중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간 상상으로나 그려 왔던 계획을 직접 실시해야 하기 때문일까?
날 바라보는 한세정의 눈빛은 걱정과 불안, 두려움 등 온갖 마이너스한 감정으로 점철돼 있었다.
필시.
나 또한 비슷하리라 싶었다.
그렇기에.
“괜찮을 겁니다. 아니,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목숨을 건 만큼 실패란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눈앞의 한세정을 통해 나 스스로에게 얘기했다.
고작 감정 따위에 흔들리지 말라고.
오로지.
누나의 죽음을, 혈육의 고통을 모조리 피로써 갚아 주리라 다짐하던 그날의 맹세만 떠올리라고.
꽈아아아아악―
주먹을 강하게 틀어쥐며 외치고 또 외쳤다.
그러고는.
“…가죠.”
깊은 호흡으로 마음을 갈무리하고서 현관을 열었다.
휘이이이이이잉―!
활짝 열린 문 너머로 차디찬 칼바람이 밀어닥친다.
허나.
살의로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는 탓인지 추위는 그리 느껴지지 않았다. 때문에 차라리 더 추워지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불곰파와 마주치더라도 순간적인 분노에 이성을 잃지 않도록 머리를 차갑게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