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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35화 (35/232)

35화

처음엔 잘못 들은 줄로만 알았다.

시기가 절묘해도 너무 절묘했으니까.

허나.

치지지직―

- 혹시 마력이 충분하다면, 사냥하기 쉽게 옥상 쪽으로 유인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연이어 들려오는 목소리는 진정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윤이 깨어났음을, 절대 환청 따위가 아님을 분명하게 알려 주고 있었다.

“네, 네! 전부 옥상으로 데려갈게요!”

씨익―

그 사실을 직시한 순간, 한세정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띠며 무전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왜인지.

눈앞에 닥친 상황들이 더 이상 위기처럼 느껴지질 않았다. 잔뜩 끼어 있던 먹구름이 걷힌 자리로 환한 태양 빛과 마주한 기분이랄까.

무어라 꼬집어 얘기하긴 어렵지만.

“다 죽어 봐라.”

꽈아아악―

긍정적인 방향으로 한순간에 분위기가 확 달라진 한세정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칼을 빼 들고는 사방을 두들겨 댔다.

카앙―

캉!

흔히 낙하 방지용으로 설치돼 있던 철봉과 칼날이 부딪치며 시끄럽게 소음이 울려 퍼지자.

“키에에에에엑!!”

“키에에에엑!!”

쾅!

콰앙!

슬슬 하울링을 마친 투르바라는 이름의 괴물들이 다시금 철문에 몸을 부딪쳐 왔다.

자신들의 포효에 화답하듯 몰려오는 동족들 덕분에 한껏 기세가 올랐는지, 전보다 밀어붙이는 힘이 훨씬 강해져 한 번 부딪칠 때마다 현관이 요란하게 들썩거리더니.

콰아앙!!

끝내 버티지 못한 문고리가 처참하게 박살 나며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렸다.

“키에에에에에엑!!”

“키에에엑!”

“키에에에엑!!”

강제로 개방된 통로.

투르바들은 문이 열리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베란다에 서 있던 한세정을 향해 쏟아져 들어온다.

그 거친 기세에.

“끌어들이기 성공, 위에서 보자.”

후우욱―

어그로가 제대로 먹혔음을 확인한 한세정은 미련 없이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키에에엑!!”

“키에엑!”

학습 효과일까.

몇 번이고 당한 똑같은 전개에 몇몇 놈들이 이번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재빠르게 도약하며 손톱을 휘둘러 왔으나.

번쩍!

벌써 빛에 휘감겨 사라진 한세정.

탓―

“읏…차.”

날개도 없이 잘도 공중을 발판 삼아 위층에 도달한 그녀는 이미 한 번 들렀던 탓에 난장판이 되어 있던 공간 속에서 짧은 기함을 내지르며 곧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키에에엑!”

“키에에엑!”

괴물들의 아우성이 메아리가 되어 쉴 새 없이 울려 퍼지고 있는 복도. 온갖 불협화음으로 이루어진 중창을 들으며 계단에 도착한 한세정은 손목만 살짝 틀어 준 후.

카아아아앙!

카아아앙!

“흐으으으읍!!”

이내 난간을 검날로 긁어 대며 죽을힘을 다해 오직 앞만 바라본 채 옥상으로 뛰고 또 뛰었다.

소음을 이용한 2차 도발이었다.

“키에에에에엑!”

“키에엑!”

투두두두!!

이 어그로의 효과는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안 그래도 독이 바짝 올라 있던 실정이라, 투르바들은 노이즈가 발생되자마자 즉시 대가리를 쳐들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주인이 사라진 방에서 빠져나와 한세정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야밤의 추격전을 벌이며 옥상에 도달한 한세정.

철컥!

“하아, 하아…….”

그녀는 도착과 동시에 문을 걸어 잠그고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머리를 이리저리 돌렸다.

아윤을 찾기 위함이었다.

어디에 있을까.

나아가.

데려온 괴물들을 어떻게 처리하려는 건지 궁금증과 기대감으로 몹시도 밝게 눈을 빛내며 시선을 돌리던 한세정은 이내 102동 옥상 난간에 서 있는 누군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

그런데.

“아윤… 씨?”

반가움을 표하려던 한세정이 손을 들다 말고 의아한 표정으로 멈칫거린다.

무척이나 의아한 상황.

왜 저러는 걸까.

이유는 간단했다. 달빛 아래로 드러난 아윤의 모습이… 상당히 ‘이질적’이었기 때문이었다.

* * *

“놀랐나 보네.”

휘이이이잉―

지상으로부터 꽤나 떨어져 있는 장소라 그런가.

유독 더 차갑게 몰아치는 찬바람을 맞으며 한세정을 기다리던 나는, 옥상에 도착한 그녀가 내게 반갑게 인사하다 말고 그대로 굳어 버리는 걸 보며 피식 웃었다.

얼빵해진 그녀의 눈을 보고 있자니 마치 조금 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았으니까.

딱.

‘성장의 땅’을 막 빠져나오던 시점의 나를 말이다.

“나도 많이 놀랐지.”

아직도.

그 당시만 생각하면 어안이 벙벙했다.

[‘특별한 파편’이 소멸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전직 퀘스트 : 등위 상향〉이 완료되었습니다.]

훌륭하게 ‘등위 상향’을 마친 결과로.

[당신의 「격」이 성장합니다.]

[보상으로 당신의 신체가 ‘재구축’됩니다.]

[이 변화에는 ‘괴물이되 인간이길 바라는 당신의 간절하고 고결한 의지’를 최우선적으로 반영합니다.]

‘신체 재구축’이라는 전혀 예상치도 못 했던 보상을 맞이하게 됐으니까.

더 정확하게는.

[‘신체 재구축’을 시작합니다.]

몇 마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실로 돌아온 직후.

곧장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체의 모든 기관이 단 하나도 빠짐없이 일거에 세포 단위로 분해됐기 때문이었다.

어찌 반응할 새도 없었다.

스스스스스스스―

스스스스스―

‘이게 대체…….’

모래처럼 흩어지는 육체를 바라보며 충격을 받아 멍하니 있을 뿐.

그러다.

종래에는 눈동자마저 소실돼 어두워진 세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의식만으로 중얼거리는데, 어느 순간 빛이 트이더니 순식간에 복구된 시야로 차츰차츰 복원되는 육체가 눈에 들어왔다.

이전과는 다른.

오로지 능력 향상을 위해 마구잡이로 갖다 붙였던 혐오스럽고 기괴했던 신체들이, 태생 자체가 이러했던 듯이 1m 70cm를 겨우 넘는 인간 아윤의 신장에 적합하게 재구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크기만 줄어드는 게 아닌.

이른바.

소위 말하는 ‘실전 압축’의 형태로.

‘아아……!’

그 믿기지 않는 기이하고도 신묘한 광경에 나는 떡하니 입을 벌렸다.

그러는 사이.

[신체의 ‘재구성’이 완료되었습니다.]

[불균형적인 신체 파워 밸런스가 안정화됩니다.]

[신체 파워 밸런스 안정화의 여파로 모든 신체 능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중위 프레데터」로서 진화한 당신에게 추가로 몇 가지 보상이 주어집니다.]

[기술 ‘프레데터의 하위 진화론’이 기술 ‘프레데터의 중위 진화론’으로 성장합니다.]

[기술 ‘신체 최적화’를 습득합니다.]

[기술 ‘순간 회귀’를 습득합니다.]

[마력이 8 상승합니다.]

완벽하게 각성이 마무리되고, 종료를 알리는 문장의 파도에 정신을 차린 나는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로 몸을 확인했다.

현재의 난.

옷만 잘 갖춰 입는다면,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인간’다워져 있었다.

온전한 복수를 위해.

괴물이 되었음에도 ‘인간성’이라는 항목을 탄생시키며 어떻게든 지켜 왔던 ‘인간이길 바라는 괴물의 의지’가 문자 그대로 구현된 상태였다.

이러니.

한세정이 안 놀랄 수가 있나.

하여.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고는 싶었으나 사안이 사안인지라.

“저 맞습니다. 설명은 나중에 해드릴 테니 위치부터 바꾸시죠.”

벙쪄 있는 한세정에게 소리를 지른 나는 슬쩍 몸을 풀어 준 후 살짝 물러났다가 보폭을 늘리며 난간을 밟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탓탓탓탁―

후우욱!

일전엔 공간 이동의 도움을 받아야만 건널 수 있었던 101동과 102동 사이의 간격을 가뿐히 지나 한세정의 곁으로 내려섰다.

쿠웅―

“아, 아…….”

발바닥을 타고 묵직한 진동을 일으키며 멈춰 서자 더더욱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들어 나를 가리키는 그녀.

“우선.”

탁―

“아아?”

“가 계시죠.”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 듯한 눈치였으나, 앞서 말했듯이 원활한 진행을 위해 일단은 허리춤을 잡고서 102동으로 던져 버렸다.

후우욱―!

성인 여성 한 명 정도야 10여 미터 날려 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꺄아아아악!!”

콰직―

콰앙!

“키에에에엑!”

“키에에엑!”

한 박자 늦게 비명을 지르는 한세정을 뒤로하고 손을 탁탁 털며 자세를 바로 하자, 타이밍 좋게 옥상 문을 부수며 투르바들이 등장했다.

도합.

마흔 일곱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의 부대가.

그 득실거리는 기세에.

[오르그의 파괴 본능]

우우웅―

“후우.”

콰아아아아앙!!

일말의 고민 없이 선제적으로 오른팔에 마력을 응축시켜 일격을 쳐 냈다.

선수는 필승.

이러한 주인의 명령을 받들어 전방으로 쭉 뻗어 나간 마력이 수십, 수백 조각으로 나뉘며 괴물이고 건물이고 할 것 없이 모조리 소멸시킨다.

먼지구름조차 생성되지 않는 격렬한 폭발의 여파가 전장을 휩쓸길 잠시.

나는 압도적인 무력에 밀쳐져 계단이고 복도고 널브러진 투르바들 속으로 뛰어들어 계속해서 왼손을 휘둘렀다.

[플뤼의 탄성 일격]

투우웅―

콰드드득!!

촤아아악!

평소보다 배는 빠르고 강력하게 쏘아진 왼팔의 손톱이 아무렇게나 엉켜 있던 세 마리의 투르바를 모조리 가르고 지나간다.

막히는 부분, 걸리는 구간 하나 없이 아주 깔끔하게.

“다음.”

훌륭하게 제 역할을 완수하고 돌아온 팔을 살짝 흔들어 적잖게 묻은 핏물을 가볍게 털어 내던 찰나.

“아.”

나는 더 나아가지 않고 후방으로 물러났다.

눈앞에.

[축하합니다!]

[〈특수 퀘스트 : 메아리의 파도〉를 완료하셨습니다.]

[당신의 업적에 걸맞은 보상을 지급합니다.]

[보상으로 ‘칭호 : 일당백’을 습득합니다.]

[보상으로 모든 신체 능력이 3씩 상승합니다.]

[보상으로 ‘고주파 신호기’를 습득합니다.]

《칭호 : 일당백》

- 특별한 업적을 달성한 대상에게 부여되는 칭호. 열 이상 되는 적과 상대할 시 모든 신체 능력이 0.5% 상승하며, 이 효과는 적의 숫자가 10단위로 늘어날 때마다 추가 중첩되어 최대 10%가 증가한다.

심상 세계에서 마무리 짓지 못했던 퀘스트가 비로소 클리어되며 각종 보상이 담긴 문장들이 출력됐기 때문이었다.

“투르바, 결국 이것도 클리어했네.”

설마.

이 퀘스트의 클리어 메시지를 보게 될 줄이야.

우연인지 운명인지는 몰라도 운이 참 좋았다. ‘성장의 땅’과 같은 구조가 아니라면 현실에선 시도조차 하기 힘든 미션이라 자연스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성공이라니.

뭔가 깜짝 선물을 받은 느낌에 나는 작게 미소 지으며 손바닥을 펼쳤다.

검은 털가죽 위로 방금 지급된 아이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고주파 신호기》

- 행성 ‘클라마티오(Clamatio)’의 지배종 「투르바」의 목젖에 특별한 공법을 가미해 제작한 한 쌍의 신호기. 사용 시 10km 범위에 존재하는 다른 쪽 신호기로 위치가 전달된다.

“흐음.”

설명을 쭉 읽어 보니 성능이 꽤 괜찮아 보였다.

무전기나 전화기처럼 대화를 나누는 통신 기능은 없다지만, 위급 시에 아군을 불러오기에는 적절했으니까.

정 필요 없다면.

‘차원 상점’에 팔아 치워도 될 테니.

“어떻게 쓰든 일단은 세정 씨한테 몰아줘야겠네.”

마침.

[잠시 멈췄던 시곗바늘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뿔’에 남아 있는 「투르바」의 기억을 지금부터 ‘666초’ 내에 포식하시기 바랍니다.]

[「기억 포식」에 실패하거나 혹 「기억 포식」 행위 자체를 시도하지 않을 경우 향상된 능력은 4분의 1로 하락합니다.]

[남은 시간 : 329초]

한 가지 잊고 있던 게 떠오른 터라.

능력치 보너스에 아이템도 얻을 겸 스위칭을 하는 게 좋다고 판단한 나는 다시 옥상 난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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