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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34화 (34/232)

34화

* * *

“이것까지 클리어했다면 좋았을 텐데.”

폐허가 된 수림 한복판.

뽑힌 채로 나뒹굴던 큼지막한 나무뿌리에 앉아 쉬며 오랜만에 ‘개인 정보’를 열어 본 나는 새로이 추가된 내용을 읽으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개인 정보]

*기본 사항

- 설명 : 아윤

- 종족 : 키메라 ― 프레데터

- 칭호 : 인류 최초의 키메라(대표 칭호 변경 ▼)

- 고유 능력 : 프레데터의 기억 포식

*신체

- 근력 : 53

- 체력 : 42

- 내구 : 40

- 순발력 : 38

- 마력 : 32

- 감각 : 25

*기술

- 프레데터의 하위 진화론

- 오르그의 파괴 본능

- 플뤼의 탄성 일격

-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

- 끈질긴 추적

- 비밀 엿보기

*특이 사항

- 인간성 : 75% / 분노 조절 장애

막 오르그의 팔을 이식받았던 초창기와 비교하면 격변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엄청난 변화를 이룩했으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하던가.

나 또한 그러했다.

저 자리에 추가되지 못한 한 가지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크나큰 기대감으로 ‘인간성’을 5%나 투자했으나 끝끝내 성과를 거둘 수 없었던 ‘투르바의 특수 퀘스트’가 말이다.

50마리씩이나 되는 놈들을 심상 세계에서 멸절시키고도 그리된 이유는 간단했다.

“설마 숫자가 부족할 줄이야.”

《특수 퀘스트 : 메아리의 파도》

- 행성 ‘클라마티오(Clamatio)’의 지배종 「투르바」의 가장 큰 특징은 ‘무리 생활’입니다. 그들은 작게는 몇 킬로미터부터 크게는 수십 킬로미터 밖의 동족까지 불러들일 수 있는 포효를 통해 먹잇감을 사냥하고 위기를 극복합니다.

이러한 점을 이용해 놈들이 동족을 끌어들이게 한 후 학살해 보십시오. 그 시련을 이겨 낸다면 당신에게 더 이상 ‘다수의 적’은 무의미해질 것입니다.

(18/30)

┗특수 퀘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메아리’의 효과가 더욱 증폭됩니다.

┗남은 시간 : 1일 7시간 49분 69초

참 어처구니없게도.

‘성장의 땅’ 진입 직후 살기 위해 서른 마리를 넘게 사냥했던 게 퀘스트 진행을 불가능케 하는 부메랑이 된 탓이었다.

이를 알고 나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당시에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나, 내가 ‘특수 퀘스트’에 대해 조금만 빨리 기억해 냈어도 결과가 달라졌을 거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으니까.

허나.

“쯧.”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이기에 가볍게 혀를 차며 아쉬움을 털어 낸 나는 천천히 몸을 풀어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모든 ‘평범한 파편’이 소멸되었습니다.]

[앞으로 44분 후 ‘특별한 파편’이 소환됩니다.]

[특별한 파편이 소환되기까지 남은 시간 : 43분 59초]

[특별한 파편이 소환되기까지 남은 시간 : 14초]

이 땅에서의 마지막 전투를 치를 시간이었다.

“특별한 파편.”

과연 무엇이 튀어나올까.

최후의 오르그마저 찢어 죽이고 위와 같은 문장을 마주한 뒤, 쉬는 내내 걱정과 호기심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긴장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딱히 두렵지는 않았다.

“이만하면 컨디션도 괜찮고, 마력도 충분해.”

내가 여태껏 쌓아 올린 능력은 결코 부족하지 않았으니까.

꽈아아아악!

굳게 쥔 주먹에서 흘러나오는 강렬한 기운 만큼이나.

【 차원 상점 】

[특별한 파편이 소환되기까지 남은 시간 : 0초]

[때가 도래하였습니다.]

[〈성장의 땅〉에 ‘특별한 파편’이 소환됩니다.]

[전투에 대비하십시오.]

마침내 0에 도달한 시곗바늘.

그와 동시에.

쿠우웅!!

몇 줄의 문장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더니 곧 하늘에서부터 지상으로 이어지는 빛의 기둥이 어마어마한 파동을 일으키며 출현했다.

마치.

환상을 보는 듯한 장면에 멍하니 서 있는 사이.

촤아아아악―!

곧게 솟구쳤던 빛의 기둥이 서서히 갈라지며 그 중심에서 상당히 익숙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마에 달린 뿔이 유독 인상적인 괴물.

“…투르바?”

그건 다름 아닌 ‘투르바’였다.

물론.

3m를 훌쩍 넘겨 버린 체구와 그에 걸맞게 두 배 이상 커져 손바닥만 하게 자란 뿔과 여러 개의 낫을 쥐고 있는 것처럼 더욱 길고 날카로워진 손톱 등.

기존의 개체와는 많은 부분이 달랐다.

그렇기에.

“…2등급.”

보는 즉시 알 수 있었다.

저것이.

나와 같은, 아니, 나보다 한발 앞서 한계에 다다른 틀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육체를 손에 넣은 진화체라는 걸.

“…크에에에에에엑!!”

콰앙!

대지에 발을 딛자마자 거세게 울부짖으며 폭발적인 기운을 내뿜는 2등급 투르바.

단순한 포효가 아닌지.

수림 전체로 퍼져 나가는 소리를 따라 마력의 파동이 일어났고, 그것이 나와 부딪친 찰나.

투웅―

우우우우웅―

“…으음?”

흡사 물결에 휩쓸린 듯한 기분이 들더니 전신에 미약한 무력감이 찾아왔다.

착각인가 싶기도 했으나.

[‘위압의 포효’를 전해 들었습니다.]

[3분간 모든 능력치가 5% 하락합니다.]

역시.

“위압의 포효.”

오해 따윈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나를 흥분케 했다.

“광역 디버프라.”

거리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상당한 범위 내에 영향력을 끼치는 능력이 갖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복수에.

절대적으로 큰 도움이 될 테니까.

“성대를 바꾸면 되려나.”

나는.

언젠가 바깥에서 마주치게 된다면 반드시 잡아먹으리라 다짐을 하며 바닥에 내려 두었던 가죽 더미를 집어 든 뒤.

스륵―

스륵―

한 꺼풀, 한 꺼풀 풀어 헤쳐 그 안에 잠들어 있던 물건을 꺼내 입으로 가져갔다.

으적―

주르륵―

씹는 순간 시뻘건 핏물이 쏟아져 나오는 그것은, 이때를 위하여 일부러 쿨타임까지 계산하며 보관하고 있던 오르그의 심장이었다.

[「괴물의 심장」을 섭취했습니다.]

[마력 순환 속도 및 기술 위력이 150% 향상됩니다.]

“좋아. 준비 끝.”

입술을 타고 흐르는 피를 대강 닦아 낼 즈음 출력되는 문장들을 보며 살짝 고개를 주억거리자.

“크에에에에엑!!”

쿵―

쿵―

쿠웅―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오기 시작하는 2등급 투르바.

앞을 가로막는 건 죄다 부수며 돌진해 오는데, 그 속도가 1등급 개체들을 월등히 압도하는 수준.

딱.

“…확실히, 해 볼 만해.”

예측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움직임이었다.

“크에에에에에엑!!”

쿠우웅―

촤하아아악!!

‘보인다.’

선명하게 보였다.

타닷―

후우욱―

서걱!

반원을 그리며 휘둘러진 팔 동작이.

“크에에에엑!”

촤아악!

촤악!

옆으로 살짝 피한 나를 쫓아 우에서 좌로, 다시 좌에서 우측 상단으로 올려 치는… 녀석이 펼쳐 내는 모든 행위가 하나도 빠짐없이 명확하게 읽혔다.

이는 곧 신체적인 능력 면에서 내가 녀석을 압도하고 있다는 의미.

‘타이밍.’

그걸 반영하듯.

공격 이후 훤히 비어 버린 상체의 틈을 비집고 반격해 들어가는데도 녀석은 아무런 반응을 취하지 못했다.

후우우우욱―

퍼억!

바람을 가르며 뻗어 나간 주먹이 녀석의 복부를 짓이겨 놓는다.

“…크에에엑!!”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지는 녀석을 바로 쫓아가며 다리에 마력을 잔뜩 모았다.

그러고는.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

후우우웅―

콰직!

“크에에에에에에!!”

쓰러진 녀석의 몸통을 짓밟으며 기술을 발동시켰다.

허나.

평상시와 다르게 땅은 뒤집어지지 않았다. 본래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는 땅을 밟아야만 발현되는 조건형 기술이었으니까.

그러나 상관없었다.

애당초.

내가 바란 건. 발바닥에 응집된 마력 그 자체.

콰아아아아앙!!

“케엑, 크에에엑― 케에엑…….”

그로 인해 일반적인 발길질을 아득히 뛰어넘는 일격을 가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복부를 짓밟힌 녀석의 허리가 팍 꺾이길 잠시.

해소되지 못한 충격이 지반으로 전이되며 순간적으로 직경 10m는 될 법한 영역이 일거에 깨져 나간다. 직접 체험하지 않더라도 얼마나 강한 충격이 가해졌는지 고스란히 느껴지는 참혹한 현장.

다만.

‘더.’

나는 멈추지 않고 또다시 주먹을 쥐었다.

아직.

[0/1]

[0/1]

살아 있었으니까.

[오르그의 파괴 본능]

우우우우웅!!

“흐으읍!”

완전한 죽음을 선고하고자 이를 악물고 단시간에 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양의 마력을 밀어 넣으며 일격을 내리꽂는다.

“크에엑, 크에에엑!!”

위기를 감지한 걸까.

촤악!

촤아악!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전신을 휘적거리며 아등바등 반항하는 녀석.

그런 탓에 옆구리가 베였고, 허벅지가 큼지막하게 갈라졌으나…….

후우우우우우우욱!!

파괴를 행하는 손길은 여전히 제 갈 길을 걸어갔다.

어차피.

목이 날아가고 심장이 꿰뚫리지만 않는다면야, 심상 세계에서의 상처 따윈 현실로 돌아가면 금세 잊힐 문제였으니까.

“흐아아아아아!!”

쿠웅―

푸화하하하하학!!

크에에에에에에엑!!

[‘특별한 파편’이 소멸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전직 퀘스트 : 등위 상향〉이 완료되었습니다.]

* * *

“키에에에엑!!”

“키에에엑!”

“키에에에엑!!”

메아리처럼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포효.

그리고.

투두두두두두두―

‘비?’

난데없이 들리는 빗소리.

환청일까?

갑작스레 내리치는 폭우에 한세정은 귀를 의심하며 베란다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 구름이 약간 끼긴 했지만, 비가 내릴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었다.

헌데.

투두두두두두두―!!

점점 더 심해지는 이 빗소리는 대체 뭔지.

이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외부를 바라보던 한세정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 간다.

“……!”

무언가를 발견한 탓이었다.

당연히 정말로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차라리 그런 거였다면 더없이 좋아했을 것이다.

최소한.

“키에에에에엑!!”

“키에에엑!!”

“키에에에에에엑!!”

“…괴물들이.”

어둠을 밝히는 달빛 아래로 드러난 진실이 ‘괴물들로 이루어진 파도’라는 현실보다는 수십, 수백 배 나았을 테니까.

이런 암담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혹은.

불난 집에 부채질이라도 하듯이.

[홀로 「투르바」의 메아리를 발생시켰습니다.]

[축하합니다!]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된 〈특수 퀘스트〉의 ‘트리거’가 발동되었습니다.]

“…특수 퀘스트?”

느닷없이 이 전날 포타스를 사냥하며 경험했었던 ‘특수 퀘스트’가 눈앞에 나타났다.

굉장히 뜬금없는 전개에 한세정은 황당해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윤 씨.”

다름 아닌 아윤이었다.

만일.

그가 이 자리에 함께 있었다면,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특수 퀘스트’를 같이 받았더라면 무척 좋아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강해지는 데 미쳐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꼭…….

치지지지직―

치지직―

- 세정 씨, 어디십니까? 아니, 그보다 무슨 일입니까? 101동으로 투르바들이 엄청나게 몰려가고 있습니다만. 일단 잘됐습니다. 우선 사냥부터 하죠. 못해도 서른 마리 이상, 단 한 마리도 놓치지 않는 쪽으로 가겠습니다.

지금처럼 말이…….

“…음? 아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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