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콰앙!
티그리스 한 마리가 위에서 찍어 누르는 힘을 버티지 못하고 큼지막한 바위를 박살 내며 땅에 처박힌다.
살았나? 죽었나?
모르지만 따로 확인은 하지 않는다.
[6/9]
[7/9]
굳이 내가 가서 살펴보지 않더라도 변화가 생기면 바로바로 적용되는 퀘스트 현황판이 있었으니까.
“좋아, 다음.”
나는 카운팅된 숫자를 재빨리 확인하고서 시선을 바로 하며 새로운 먹잇감을 물색했다.
“캬우우우!!”
“캬우우!!”
신경을 강하게 자극하는 살기가 느껴진다.
좌우로 고개를 돌리니, 티그리스 두 마리가 서로 양쪽으로 나뉘어 솟아올랐던 돌과 나무를 발판 삼아 달려오고 있었다.
지반이 출렁이는 탓에 쓰러지거나 헛디딜 만도 하건만.
원래 자신들의 기술이었음을 증명하듯 휘청거리면서도 끊임없이 발을 놀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온다.
이에.
나도 서둘러 대응해 나갔다.
“어딜.”
[플뤼의 탄성 일격]
투웅―
콰직!
“캬악!”
먼저 좌측에 있던 놈의 가슴팍에 손톱을 박아 넣은 후.
“흐으읍!”
후우우우우웅!!
살점을 단단히 붙잡아 팔이 돌아오는 반동을 이용해 잡아당겼다가 아예 힘을 더해 반대편으로 던져 버렸다.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패스.
그러자.
쿠웅!
“캬우욱!”
“캬우우우!”
어떻게 피할 겨를도 없이 공중에서 부딪친 놈들이 제법 묵직한 소음을 일으키며 한데 뒤엉켜 땅바닥을 나뒹군다.
대미지가 부족해 둘 다 죽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충격이 상당한 듯 쉽사리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
하여.
무시하고 고개를 돌리려 했으나.
“다음… 아, 잡아야겠네.”
금세 생각을 바꾼 나는 오른팔에 마력을 끌어모으며 놈들을 향해 발을 뻗었다.
우우우웅―
타닷!
이러는 이유는 단순했다.
[대지 비틀기 지속 시간 : 14초]
[대지 비틀기 지속 시간 : 13초]
[대지 비틀기 지속 시간 : 12초]
대지가 곧 안정화되기 때문.
‘특수 퀘스트 : 괴물의 균형 감각’은 조건을 충족시킬 때에도 그렇지만, 진행 과정 중에도 땅이 계속해서 춤춰야만 한다.
그런 탓에.
지금 마무리 짓지 않으면 다시 마력을 소모해 기술을 발동시키거나 혹은 티그리스들이 지층을 흔들어 주길 기다려야 하는 만큼 여러모로 귀찮아지기 전에 끝을 봐야 했다.
마침.
남은 것도 두 마리뿐이었고.
[오르그의 파괴 본능]
“후아!”
우우우웅!
콰아아앙!!
이러한 일념하에 벼락처럼 뛰어들어 주먹을 내리꽂자 응축되었던 마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전장 일부를 짓이겨 놓는다.
그 여파가 잠잠해졌을 즈음.
[축하합니다!]
[〈특수 퀘스트 : 괴물의 균형 감각〉을 완료하셨습니다.]
[당신의 업적에 걸맞은 보상을 지급합니다.]
[보상으로 ‘칭호 : 흔들리지 않는 법’을 습득합니다.]
[보상으로 모든 신체 능력이 2씩 상승합니다.]
[보상으로 ‘균형의 추’를 습득합니다.]
[다만, 심상 세계에서는 ‘아이템’의 착용 및 소지가 불가능합니다.]
[습득한 ‘아이템 : 균형의 추’가 현실로 전이됩니다.]
또 하나의 퀘스트가 클리어되었음을 알리는 문장들이 눈앞을 채우고 있었다.
* * *
“캬우우우우!!”
탁―
2m가 훌쩍 넘어가는 큼지막한 체구를 자랑하며 날 덮쳐 오는 티그리스의 공격을 피해 옆으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가 한순간에 도약해 옆구리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쿠우웅!
우드드득―!
두꺼운 오른손이 틀어박히자 가죽 터지는 소리와 뼈 부러지는 소리가 합창하듯 울려 퍼진다.
“…캬우욱! 캭, 캬악…….”
그로 인해 고통이 상당한지.
서너 바퀴나 굴러 나뭇등걸에 부딪힌 티그리스는 좀처럼 일어나질 못했다.
휘이이익―
서걱!
제 목이 잘려 나갈 때까지도.
털썩―
“끝났나?”
대가리가 잘려 나간 티그리스를 마지막으로 천천히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사방엔 늘어진 핏물과 시체 외에 더 이상 살아 있는 게 보이지 않았다.
《 전직 퀘스트 : 등위 상향》
-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키메라 「프레데터」는 자신이 사냥한 개체의 신체 조직을 흡수해 끊임없이 성장한다……. (자세히 보기 ▼)
┗ 등위 상향에 필요한 평범한 파편 : (180/220)
┗ 등위 상향에 필요한 특별한 파편 : (0/1)
보다 정확한 확인을 위해 퀘스트 현황판을 떠올리니.
어느덧 180마리까지 채워진 수치가 보였다.
“180, 180……. 벌써 이렇게 됐나.”
첫날까지만 하더라도 수백 단위의 괴물들을 어떻게 사냥해야 하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실제로 싸우다 지쳐 휴식처를 간절히 찾아야 할 정도로 위급해졌을 때도 있었거늘.
그랬던 내가 고작 하루 만에 이런 성과를 냈다는 게 조금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아마.
‘성장의 땅’이 가진 독특한 시스템 덕분인 것 같았다. 개중에서도 특히 괴물이 각자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점이 가장 크달까.
덕분에 괴물들이 한꺼번에 몰리지 않았으니까.
그 밖에도 ‘특수 퀘스트’를 받을 수 있거나 심장 복용 버프가 적용되는 등 내게 이로운 부분이 꽤 많아 수적 열세나 지형적 불리함을 안고도 생존을 넘어 도살을 가능케 했다.
물론.
광역 이동 제한 기술인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를 배우고 있었다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만 말이다.
“뭐가 됐든, 마지막까지 잘해 보자.”
만족스러운 눈치로 퀘스트 현황판을 닫은 나는 풀어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며 손을 툭툭 털고 일어났다.
오르그.
거기에 ‘특별한 파편’.
긴장을 풀기엔 아직 적이 너무 많았다.
* * *
“그워어어어어어!!”
쿠우웅!!
“흐읍!”
울창한 수림의 한 공터.
빽빽하게 자라 있던 나무들이 억지로 부서지고 뽑힌 그 폐허에서 인간과 괴물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서로 닮은 듯, 다른 듯.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는 두 존재는 마치 힘겨루기라도 하는 양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상대를 밀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
“크으으으읍!!”
투둑―
툭―
콰앙!
어느 순간 이를 악물고 대지를 발로 밀어내기 시작하는 인간.
언뜻 봐서는 사람인지 괴물인지 구분하기 힘든 육체를 자랑하는 그의 발진은 굉장히 놀라운 결과를 이룩해 냈다.
“그워어억!! 그워어어억!!”
거의 3m는 될 법한.
검은 가죽에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푸른 줄무늬로 압도적인 위압감을 선사하던 괴물이, 제 몸의 절반을 겨우 넘기는 인간을 상대로 밀려났기 때문이었다.
쿵―
쿵―
쿵―
“그워어어!!”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안간힘을 쓰며 버텨 보지만, 조금씩 조금씩 뒤로 이동하더니.
결국.
“으아아아!!”
거센 기합과 함께 끌어올린 출력에 괴물의 몸뚱어리가 완전히 넘어갔다.
콰앙!
“확실히, 근력이 엄청나게 상승했어.”
그 기이하고도 황당한 연출의 중심에 서 있던 나는 오르그를 밀어내는 동안에 쌓였던 감상평을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최근.
무지막지한 성장으로 근력 수치가 50에 도달한 터라 티그리스를 잡아 던질 때에도 그렇고, 체급 차이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오르그를 날려 버리는 게 매우 쉽게 느껴졌다.
“이러다 조만간 한 손으로 갖고 놀지도 모르겠네.”
당장은 어렵겠으나.
[「오르그」와의 순수한 근력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된 〈특수 퀘스트〉의 ‘트리거’가 발동되었습니다.]
이것도 있고, 등위 상향도 성공리에 완수한다면야 딱히 못 할 것도 없어 보였다.
물론.
애당초 그런 시답잖은 놀음을 할 일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특수 퀘스트 : 압살》
- 행성 ‘웨이노르(Waynor)’의 지배종 「오르그」는 오직 힘과 파괴로만 자신을 증명하는 종족입니다.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진 않는다. 그러니 더 강력한 힘으로 압살해 버리는 것만이 답일 것입니다. 상대가 대항하기 전, 공격 횟수 5회를 초과하지 않고 찍어 누르십시오.
(0/11)
┗특수 퀘스트를 진행 동안 본인의 공격 횟수가 머리 위로 표시됩니다.
┗남은 시간 : 2일 23시간 59분 59초
“5회 안에 사냥.”
오르그의 ‘특수 퀘스트’는 플뤼와 정반대되는 형식이었다.
다만.
아무래도 공격 횟수는 내가 제어할 수 있는 요건이다 보니 난이도 자체는 더 낮아 보였다.
“그워어어어어어!!”
푸화악!
얼마간 퀘스트 내용을 파악하는 사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던 흙먼지를 헤치며 오르그가 뛰쳐나왔다. 자신이 힘으로 밀렸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듯 잔뜩 분개한 얼굴에 나는 슬쩍 머리 위쪽을 바라봤다.
[공격 횟수 : 2회]
“2회.”
다행히 힘겨루기 이외에는 별다른 액션이 없었던 만큼 일단은 여유로운 횟수.
시작을 알리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라 고개를 주억거리며 활시위에 화살을 걸듯 오른팔을 쭉 뺐다.
우우우웅―
팽팽하게 조여진 근육 사이사이로 일렁거리는 빛.
그 황홀함이 주는 위기를 감지했을까?
“그워어어어어어!!”
쿠구구구궁―!
해머인 양 맞잡고 들어 올린 오르그의 손에서도 빛이 휘몰아쳤다.
서로.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고.
후우우우우욱―
콰아아앙!!
[0/11]
[1/11]
결과는 극명하게 갈렸다.
* * *
“하아, 하아…….”
쾅쾅!
쾅!
요란한 소음을 내며 우그러지는 철문.
곧 박살 날 것처럼 격렬하게 흔들리는 현관을 바라보며 한세정은 빠르게 호흡을 가다듬어 갔다. 언뜻 보기에는 상당히 위급한 듯하나, 당사자인 그녀의 눈동자에는 떨림조차 없었다.
도리어.
“마력은 이제 절반 이상, 나쁘지 않아.”
입가에는 옅지만, 미소까지 맺혔다.
스스로 미끼가 되었을 때에는 분명 두렵기도 했으나, 실제로 버텨 보니 빈집으로 가득한 성풍 아파트 단지가 무척 유용한 전장이었으니까.
적당한 집을 고른 뒤.
문을 닫고 쉬다가 현관이 뚫리면 베란다를 타고 옆집으로, 그러다 한 층의 철문이 전부 무너지면 공간 이동을 사용해 위든 아래든 층 자체를 바꾸는 식으로 이뤄 내는 괴랄한 숨바꼭질은 날개 없는 괴물들에게 그야말로 상극이었다.
단지.
치지지직―
지직―
“아윤 씨, 아윤 씨.”
- …….
여전히 응답 없는 무전기가 걸릴 뿐.
물론.
한세정은 긍정을 잃지 않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언젠가는 대답을 듣게 될 거라고, 평소처럼 금방 돌아올 거라고. ‘아윤’이라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여실히 드러냈다.
그러던 차였다.
쿵―
쿵―
쿵―
어째서인지.
격렬했던 충돌이 점점 사그라들더니.
쿵―
완전히 조용해져 버린다.
“…뭐지?”
이 느닷없는 변화에 슬금슬금 베란다 방향으로 뒷걸음질 치던 한세정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간의 경험에 착안했을 때.
급작스럽게 반전된 분위기가 결코 좋지 않은 사인임을 본능적으로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문득.
잠깐이나마 제풀에 지쳐서 돌아간 건 아닐지 혹시나 하는 기대감도 들었지만.
“키에에에에에에엑!!”
“키에에엑!!”
“키에에에엑!!”
쿠우웅―!
쿠웅!
“……!”
역시 위기는 위기라는 걸 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