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직후.
마력이 빚어낸 거대한 크레이터 속에서 천천히 일어난 나는 말없이 고개를 내렸다.
정면이 아니다.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본 곳은 복부.
더 정확하게는.
툭―
주르르르륵―
“…….”
시뻘건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옆구리와 배꼽 사이에 틀어박혀 등으로 삐져나온 한 자루의 ‘창’으로.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이템까지 착용한 간부와의 격차는 쉽사리 줄일 수 없었던 걸까? 설마 최후의 순간에도 창을 찔러 넣어 내 몸을 꿰뚫을 줄이야.
전혀 예상치도 못했다.
물론.
“씨…이, X…….”
충격을 받은 건 김성태도 매한가지였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있어서 패배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영역일 테니까.
무엇보다.
많고 많은 대상 중 하필이면 제 동생을 죽인 원수에게 무너졌으니 패배감이 상당할 터였다. 그 증거로 한쪽 어깨가 완전히 날아간 채 무릎 꿇은 김성태의 입에서는 쉼 없이 욕이 난무했다.
한마디,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울컥울컥 선혈을 토해 내면서도 말이다.
자신의 패배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킥.”
더 보기 좋았다.
어쩌면 반대가 되었을 수도 있던 입장.
하물며.
서로가 서로에게 형제의 복수라는 절대적인 목표를 가졌었던 만큼 어느 때보다도 승리가 달콤하게 다가왔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키에에에에!!”
“죽여, 버리…….”
슈화아아악―
콰직!
꼴이 말이 아니라 이 전투의 마침표를 내가 찍지 못했다는 것.
그 점 외에는 모든 게 마음에 드는 하루였다.
털썩―
“…씨!”
* * *
뜨겁다.
마치.
펄펄 끓는 용암에 던져진 것처럼 온몸이 뜨겁다 못해 타오르는 듯하다.
‘물…….’
물이 필요하다.
툭―
투둑―
‘아.’
지독한 갈증에 고통스러워하던 찰나 입가에 차갑고도 시린 물줄기가 닿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막을 횡단하다 오아시스를 마주한 것 같은 기분에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탄성.
혀를 타고 스며들어 오는 냉수에 차츰차츰 열기가 가라앉으며 조금씩 정신이 되돌아왔다.
“으음!”
“아윤 씨! 정신이 좀 들어요?”
“세정, 씨…….”
“네! 저예요!”
그 과정에서 작게 신음하며 슬며시 눈을 뜨자 빈 컵에 물을 따르다 말고 놀라 돌아보는 한세정의 얼굴이 보였다.
“정말, 정말로 다행이에요! 진짜…….”
그녀의 눈가엔 물기가 가득했다.
아무래도.
창에 맞고 쓰러졌다 보니 영영 못 일어나는 건 아닌가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 같았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뭉쳤을지언정 매일 동고동락하며 쌓은 정이 결코 적지 않은 바.
기어코 참았던 눈물을 쏟아 내는 한세정의 모습에 나는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안정을 찾고 나서야 미안하다거나 괜찮다는 말을 건네며 혼절한 이후에 대해 물었다.
“그 사람들은 전부 죽었어요. 괴물들이…….”
돌아온 대답은 어느 정도 예상 범위 안의 내용이었다.
갑작스레, 혹은 당연하게 난입한 괴물들에 의해 쓸려 나간 불곰파와 그 파도를 피해 날 붙잡고 달아나던 한세정의 도주극까지.
다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그녀의 표정은 상당히 침울했다.
“그건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여전히 몸에 박혀 있는 창이 바로 그것이었다.
따로 의학적 지식도 없거니와 키메라 노인의 손자처럼 치유 능력이 있지도 않아 어쩌지 못하고 그대로 둔 모양.
“잘하셨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녀의 선택은 옳았다.
자그마한 과도에 찔려도 과다 출혈로 죽는 게 사람이다.
헌데.
그보다 훨씬 두꺼운 무기인 데다가 심지어 관통이라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창을 무리해서 뽑았다면 진정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을 게 분명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상황이 좋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이대로 뒀다가는 세포가 괴사되고 여러 가지 합병증이 발생할 터. 당장은 괜찮더라도 결국에는 살기 위해 뽑아야 한다.
하지만.
‘살 수, 있을까?’
가만히 창을 응시하던 나는 생(生)보다 사(死)가 더 가까이에 있음을 직감하고서 눈을 질끈 감았다.
한세정이 그러했듯이.
나라고 다를 게 없던 탓에 아무리 계산해 봐도 마땅한 답이 보이질 않았다.
‘그들이라면…….’
그나마 떠오르는 유일한 방법은 키메라 노인과 손자를 찾아가는 것.
죽기 직전에 놓였던 환자를 회복시킨 능력자인 만큼 이 정도 상처쯤은 어렵지 않게 치료해 줄 수 있으리라.
허나.
단지 그뿐이었다.
설사 손자에게 죽은 이를 부활시키는 힘이 있다 한들.
스윽―
“으읍!”
살짝만 움직여도 허리가 끊어지고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듯한 통증으로 거동이 아예 불가능한 상태.
이런 몸으로는 그 먼 거리를 이동할 수가 없었다.
특히나.
“키에에에에엑―!!”
“키에에엑!!”
지금처럼 괴물들의 포효가 지척에서 들리는 형국에는 더더욱.
아마.
한 걸음 떼기 무섭게 뒤를 붙잡혀 괴물들의 이빨에 찢겨 죽을 테지.
‘…이렇게 끝인가?’
온통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미래에 나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제야 고작 간부 하나를 사냥했을 뿐인데.
최종 목표인 이덕구는커녕 불곰파의 본진에 발을 들이지도 못했거늘 벌써 끝이라니 허무하기 그지없어 화가 다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개소리하지 말라 그래.”
“…네?”
부지불식간에 육두문자가 터져 나왔다.
느닷없는 욕설에 당황하며 반문하는 한세정.
“이대로는 못 끝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반드시 살아남는다. 복수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못 죽어. 아니, 안 죽어.”
마치 다짐이라도 하듯.
강하게 힘을 주며 이를 악물고 읊조리고는 처음부터 다시 되돌아보았다. 놓친 게 있을 거라고, 내가 살아나는 방법은 분명 존재할 거라고 확신하며.
그 끈질긴 노력 끝에.
“아, 그거라면…….”
발견해 냈다.
창을 제거하고도 목숨을 건사할 방법을.
* * *
“말씀하세요. 뭐든, 뭐든 들어드린다고 했잖아요.”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비책을 찾은 나는 즉시 한세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녀의 지원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녀는 엄청난 열의를 보였다.
친구를 구하고 싶다는 목표를 이루려면 나의 생존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기에 온 힘을 다해 도와주겠다는 의지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단지.
우리의 대화는 시작부터 그리 매끄럽게 이어지질 못했다.
“두 가지, 제가 원하는 건 두 가지입니다.”
“네.”
내가.
“먼저, 하나는 ‘인간의 심장’입니다.”
“예?”
대뜸 심장을 구해 달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약도 수혈용 혈액도 하다못해 붕대도 아닌 인간의 심장을.
그런 탓에.
한껏 달아오르던 분위기는 단숨에 차게 식어 버렸고, 한세정의 얼굴은 당황과 혼란 등 안 좋은 감정으로 얼룩졌다.
뭔가 잘못 들었다는 눈치.
하여.
“저는, 인간의 심장이 필요합니다.”
재차 얘기했다.
제대로 들은 거라고.
더해서.
“제 능력 때문입니다.”
“능력, 이요?”
“예.”
그녀를 납득시키고자 그간 감추어 두었던 비밀을 오픈했다.
지금의 발언이 훗날 어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번 일을 위해서는 더는 숨길 수 없으란 걸 알았기에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프레데터’가 된 경위부터, 그로 인해 ‘인간의 심장’이 내게 어떤 효능을 가져다주는지까지 단 한 점의 거짓 없이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사실.
파급 효과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한세정이 내 ‘고유 능력’에 대한 진실을 안다고 해서 우리의 관계가 달라질 리는 없었으니까.
“…….”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한세정은 뜻밖에 매우 담담한 기색이었다.
왜일까.
의아해하던 차에 대답이 돌아왔다.
“…밖에 나가서 남은 심장이 있는지 확인해 볼게요.”
믿기 어렵다느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느니 따위가 아니라 이해했고, 실행하겠다는 긍정적인 응답이.
이유는 단순했다.
“솔직히 조금 당황스럽기는 한데, 이런 상황에서 농담이나 하고 계실 분은 아니라는 걸 알거든요.”
나를 믿는다고.
그러고는.
최대한 빨리 다녀오겠다며 부엌에서 심장을 끄집어낼 식칼을 챙긴 뒤 최대한 빨리 구해 오겠다는 말을 남기곤 집을 나선다.
“다행…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았다.
* * *
철컥―
“아윤 씨!”
홀로 남아 대기하길 5분여.
밖에 나갔던 한세정이 헐레벌떡 돌아왔다. 잊지 않고 이중 삼중으로 문을 잠그며 도착한 그녀는 내게 달려와 곧장 손을 쭉 뻗었다.
희고 고운 손바닥 안에.
“아.”
고대하던 심장 하나를 꽉 쥐고서.
“운이, 좋았어요. 읍, 바위 아래에 깔린 시체는, 우읍, 건드리질 않았더, 라구요…….”
의사가 아닌 이상 심장을 적출해 낸다는 게 절대 쉽지 않은 일이라 속이 매스꺼운지 이따금씩 헛구역질하면서도 억지로 웃는 한세정.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심장을 받은 뒤.
“돌아 계시죠.”
“네?”
한세정에게 다음 장면은 보지 않기를 권했다.
딱히 유쾌한 그림은 아니었으니까. 그녀도 이 부분만큼은 깊이 동의하는 듯 손을 씻고 오겠다며 화장실로 향했다.
그사이.
꿀꺽―
나는 소주 한 병을 모조리 삼켰다.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심장을 뜯어 먹을 수 없어 술의 힘을 빌리기 위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설여졌지만.
“먹자, 먹어야 해.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눈 딱 감고 한가득 밀어 넣어.
으적―
베어 물었다.
치아에 의해 심막이 찢겨 나간 자리로 비릿한 핏물이 왈칵 솟구친다. 무척이나 역겨운 감촉에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으나 머릿속으로 오로지 ‘누나’라는 두 글자를 떠올리며 억지로 삼켜 낸다.
그렇게.
목울대를 꿀렁거리며 피와 살점을 모조리 먹어 치우자.
[「인간의 심장」을 섭취했습니다.]
[상처 회복 및 재생 능력이 200% 향상됩니다.]
비로소 바라던 효과가 나타났다.
됐다.
“으읍, 후…….”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눈앞에 출력된 문장을 반갑게 맞이한 나는 이제 나와도 된다며 화장실에 있던 한세정을 불렀다.
슬그머니 문을 여는 그녀.
얼굴이 상당히 창백한 것이 참지 못하고 속을 게워 낸 듯싶었다.
그 점이 미안했지만.
“다음은…….”
아직 할 일이 남아 있기에 애써 무시하며 그녀에게 두 번째 계획을 설명했다.
인간의 심장을 구해 온 것처럼.
“뿔 혹은 꼬리가 있는 괴물의 시체가 필요합니다.”
이번에는 괴물의 시체를 가져와 달라고.
생각을 해 봤다.
하위 단계에서 팔과 다리에 이어 이마나 꼬리를 변형한다면, 중위 단계에서는 어디가 진화될지.
따져 본 결과 남은 곳이라고는 머리와 가슴, 배밖에 없으니 틀림없이 그쪽을 중심으로 변화될 터.
그 점을 발판 삼아.
일단 중위 단계에 올라 복부에 이식이 가능해졌을 때. ‘흡수 이식’을 활용해 구멍 뚫린 부분을 괴물의 살점으로 채운다면 앉은 자리에서 상처를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내가 구상한 설계였다.
성공 확률은 미지수다.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지도 모르니까.
허나.
적어도 누워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고 판단했다.
단지. 뿔이나 꼬리 달린 괴물의 사체를 얻으려면.
“가능, 하시겠습니까?”
한세정이 홀로 괴물을 ‘사냥’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이었을 뿐.
“…사냥.”
이를 알기에.
한세정의 얼굴에 한층 수심이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