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살, 살려…….”
툭―
뒤틀렸던 대지가 서서히 요동을 멈출 무렵.
겨우겨우 목숨 줄을 붙잡고 있던 누군가의 머리통을 발로 짓눌렀다. 인간의 골격 중 가장 단단하다는 두개골.
그러나.
“제, 바…….”
콰직―
호랑이의 다리를 연상케 하는 두텁고 위압적인 발톱은 약간의 힘만으로도 너무나도 간단히 뼈를 부수며 뇌수를 흩뿌렸다.
나는.
“이제, 네 명 남았네?”
터억―
장난감을 치우듯 머리가 사라진 시체를 걷어차고서 주변을 쓱 돌아보며 남은 인원을 확인했다.
사실.
확인이라기보단 김성태를 비롯한 생존자들에게 알려 주고자 하는 의도가 더 컸다.
이제 너희 차례라고.
“혀, 형님. 어떻게…….”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됐을까.
아까부터 김성태의 곁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남자가 몸을 파르르 떨며 시선을 피한다.
두려움.
남자의 눈동자 속엔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했다. 다른 두 명도 마찬가지였다. 본인도 모르게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며 나와 거리를 벌린다.
오직 단 한 명.
“물었다. 너, 뭐냐고.”
김성태만이 제 위치를 고수하며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을 뿐.
거의 열 명이나 되는 제 부하가 단숨에 몰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오로지 나를 응시하며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그 모습에 왠지 모를 기시감을 느꼈다.
“…아.”
대체 왜 이 구도가 낯익은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내 머릿속으로 문득 하나의 과거가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나 도와 달라던 한세정을 데리고 도망치다 끝내 덜미를 잡혀 김성원과 마주했던 장면이.
그 대면에서.
‘묻잖냐, 너 누구냐고.’
놈이 나를 보고 처음으로 내뱉었던 대사가.
김성원, 김성태.
서로 이름이 비슷해서 그런지 하는 짓도 닮아…….
“…음?”
잠시만.
조금씩 선명해지던 기억을 쓸데없는 잡념으로 치부하고 털어 버리려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가능성에 김성태를 똑바로 쳐다봤다.
이후.
대답 없는 나를 마주 보며 잔뜩 찡그린 얼굴에 김성원의 면상을 덧입혀 보았다.
‘…달라.’
겹쳐지지 않는다.
마치 돌림자 같은 이름에 하는 행동까지 비슷해 순간적으로 둘이 친형제이려나 하고 추측했었다.
허나.
어느 한구석도 닮지 않았다.
아닌 걸까?
궁금한 마음에 직접 물어보았다.
“형제인가? 김성원하고.”
무슨 관계냐고.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부디.
두 사람이 형제이길 바랐으니까.
만일 그런 거라면 가족을 잃은 아픔을, 더 정확하게는 가족이 살해당했을 때에 생기는 지독하고도 처참한 슬픔을 무기 삼아 놈에게 육체적인 복수 이외에 정신적인 복수까지도 해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난.
소망이 이루어졌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
따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김성원’이라는 이름이 나온 직후부터 김성태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으니까.
아아!
원하던 반응이 나오자 진한 희열감이 전신에 휘몰아쳤다. 내가 아는 최악의 고통을 답습하며 무너질 김성태를 상상하니 통쾌하다 못해 달콤한 쾌감에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이 감정을 누나에게도 전해 주고 싶어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목을 어루만졌다.
스으윽―
손끝을 따라 흔들리는 목걸이.
기분 탓일까?
참 신기하게도 항상 차갑고 시리기만 하던 목걸이의 촉감이 평소와 달랐다. 저 하늘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 누나도 만족한다고 답해 주듯 무척이나 따스했다.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더 웃게 해 줄 테니까.”
이에 목걸이를 지그시 누르며 나지막하게 읊조린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봤다.
이제는 입술과 손을 넘어 몸 전체를 부들부들 떨고 있는 김성태.
당장에라도 날 처죽일 기세에 한마디를 툭 던졌다.
“살려 달라고 애원했지. 머리가 박살 나고 심장이 뽑힐 때까지.”
네 동생이.
얼마나 비참하고 비루하게 죽어 갔는지.
“이, 이이 개자식아아아아아!!”
도발은.
성공했다.
* * *
후우욱!
후욱!
순식간에 귓가를 스쳐 지나간 창날 주위로 거세게 밀려나는 바람.
“죽인다! 죽여 버린다!”
분노를 가득 머금은 김성태의 공세는 이제껏 겪어 본 그 어떤 상대보다도 강력하고 빨랐다.
미친 듯이 쏟아 내는 말처럼 죽음의 문턱이 아스라이 보일 만큼.
오르그, 플뤼에 이어 티그리스의 신체까지 이식하며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기에 충분히 해 볼 만도 하다 싶었거늘.
역시.
진짜 간부는 달랐다.
“으아아아아!!”
후우우욱!
콰직!!
콰드드득!!
‘젠장……!’
동생의 죽음으로 이성을 잃고 창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덕분에 겨우겨우 버티고 있지만, 아무래도 단순한 전투로 싸워 이기기는 불가능할 듯싶었다.
하여.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
쿵―
쿠구구구구궁―
발을 굴러 다시 한번 대지를 흔들었다.
김성태의 자세를 무너뜨려 전황을 뒤집어 볼 요량이었다.
다만.
“죽인다!”
그에게는 비틀리는 대지도, 솟아오르는 바위도 별다른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
워낙 신체 능력이 뛰어난 탓인지.
쿠웅―
쿵―
“겨우, 이따위로!”
김성태는 흥분한 상태에서도 간단히 장애물을 피해 내며 되레 훨씬 날카롭게 창을 뻗어 왔다.
[플뤼의 탄성 일격]
촤아아아아악!
콰직―!
“흐읏, 차!”
부우웅―
결국.
흡사 갈고리 와이어를 던져 위치를 전환하듯 뒤쪽으로 왼팔을 던져 벽에 박아 넣은 뒤 본래의 형태로 되돌아오려는 반동을 이용해 몇 동인지 모를 아파트 복도로 후퇴하자.
콰앙!
아슬아슬한 차이를 두고 가슴 쪽을 노렸던 창날이 허무하게 허공을 훑으며 애꿎은 땅바닥을 갈라놓는다.
“으아아아!!”
쉽사리 잡히지 않는 내게 울부짖은 김성태가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살기를 뿜어내며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다.
쿠우웅―
‘고유 능력’의 발현인가?
아니면.
저 무기가 지닌 힘인지 빠른 속도로 쇄도해 오는 그의 창 위로 푸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우우우우웅!
‘이번만큼…….’
찌릿―
‘……! 제기랄.’
반사적으로 ‘오르그의 파괴 본능’을 펼쳐 맞대응하려던 나는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급격하게 증폭되는 기운에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마력을 쏟아붓는다 해도 막지 못할 거라고.
슈우우우욱!
쿠웅―
판단은 정확했다.
촤아악―!
내가 있던 자리에 틀어박힌 창날에서 폭발한 기운이 건물 외벽을 시작으로 복도에 이어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철근 등 존재하는 모든 걸 죄다 갈라 버리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서걱―
촤아악!
“크읍!”
내 허벅지마저도.
쿵―
후두두두둑―
명확한 판단을 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탓에 공격 범위를 제대로 벗어나지 못한 나는 거의 5m 이상 날아와 가죽을 자르고 살점을 파헤친 예기(銳氣)에 복도 벽을 뛰어넘다 말고 날개 꺾인 새처럼 땅바닥을 굴렀다.
고문으로 단련된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며 고통을 참고 황급히 일어나 상처를 살펴보니 쩍 벌어진 오른 다리 허벅지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다행히.
뼈나 신경이 상하진 않아 보였으나, 정상적으로 움직이기엔 불가능한 중상.
“드디어, 잡았다. 쥐새끼……!!”
이런 나를 향해 마침내 마침표를 찍을 시간이 됐다는 듯 중얼거린 김성태가 창을 굳게 쥐며 뚜벅뚜벅 걸어온다.
이에.
힘겹게 자세를 잡은 나는 주먹을 쥐며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다리의 상처로 제대로 된 싸움은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마음은 없었으니까.
‘튜토리얼’ 당시 크루톤과의 격전을 통해 체득했다.
설사 상황이 최악이라 할지라도 기회는 분명 존재한다는 걸.
‘할 수 있다.’
그렇게.
경험을 바탕으로 전의를 불태우며 투쟁을 준비하던 찰나.
치지지직―
- 아윤 씨! 아윤 씨! 지금 그쪽으로!
조용한 가운데 한세정의 무전이 울려 퍼졌다.
“……?”
턱―
너무 뜬금없는 타이밍에 김성태마저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해서 이어지는 무전.
헌데.
내용이 꽤나 심상치 않았다.
- 괴물들이 몰려가고 있어요!! 빨리 피해요!
“…괴물들?”
다름 아닌 괴물‘들’의 출현 소식을 담고 있었으니까.
절묘하게도.
그 무전이 끝나기 무섭게 포효하는 괴물들이 전장에 들이닥쳤다.
투두두두두두두!!
“키에에에에에엑!!”
“키에에엑!”
얼추 보기에도 족히 10여 마리는 훌쩍 넘는 무리가 말이다.
“혀, 형님! 괴물들입니다!!”
“형님!! 괴물들이……!”
대체로 불곰파의 후방에서 등장했는데, 아마도 저들의 뒤를 쫓아온 듯했다.
인원이 인원인지라 제아무리 밤중에 이동했다 하더라도 괴물들의 예민한 감각을 피하기는 무리였을 터.
더군다나.
신선한 피까지 무더기로 흘려 줬으니 이쯤 되면 오히려 괴물들이 안 몰리는 게 더 이상하지.
“상관없다.”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김성태가 멈췄던 걸음을 재차 떼었다.
그는 뒤쪽에 괴물이 나타나든 말든, 그래서 부하들이 죄다 죽든 말든 개의치 않는 모양새였다.
나를 죽이는 것만이 중요할 뿐.
이는.
나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괴물들이 다가오건 말건 김성태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느닷없이.
번쩍―
후우우웅―
콰앙!
공간이 열리며 하늘에서 ‘자동차’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한세정?’
격렬한 충격파를 일으키며 김성태를 덮친 차량을 보자마자 한세정이 한 짓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포타스의 ‘특수 퀘스트’ 이후로 마력이 상당히 늘어난 그녀는 최근 들어 주변 사물을 이동시켜 전투에 활용하는 연습에 매진했는데, 개중 하나가 거리에 즐비하게 널린 차량을 적의 머리 위로 낙하시키는 것이었으니까.
이를 증명하듯.
번쩍―
이동되는 물체의 무게에 비례해 소모되는 마력량이 늘어나 적잖은 부담이 갈 텐데도 재차 열린 공간에서 또 한 대의 차량이 내리꽂혔다.
콰아앙!
“크아아아아악!!”
정신없는 와중에 벌어진 기습은 김성태로서도 완벽하게 대응하기 힘들었던 듯.
차량 두 대의 안쪽에서 비명이 들렸다.
복도라는 좁은 지형적 특성상 차량이 제대로 틀어박히지 않아 죽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다쳤음을 알려 주는 외마디 비명이.
뒤이어.
“아윤 씨!”
멀리서 한세정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녀는 매우 다급한 기색으로 내게 손을 뻗고 있었다.
어서 도망치자는 눈치였다.
다만.
‘…기회!’
나는 한세정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이때가 김성태를 찢어 죽일 기회임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온전히 스스로의 능력만으로 만들어 낸 찬스는 아닐지라도, 어쨌든 상대는 충격에 이어 시야까지 차단된 상황.
‘가야, 한다!’
꾸우욱―
고민은 짧았다.
결정을 내린 즉시 말을 듣지 않는 오른 다리를 대신해 왼발로 대지를 디디며 앞으로 내달렸다.
더해서.
우우우우웅―
우우웅―
열 걸음도 채 되지 않던 서로의 간극을 좁혀 나가는 내내 체내에 남은 마력을 전부 주먹으로 끌어모았다.
기술을 발동하는 데 필요한 최소 마력을 넘겨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더, 더……!’
우우우웅!!
극한으로 응축시키며 마지막 발걸음을 뗀다.
그러고는.
들썩―
들썩―
쿠우웅!
“으아아아아아!!”
막 차량들 사이에서 벗어나 울분을 토해 내는 김성태를 향해 내질렀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증오와 살의, 파괴라는 감정만을 담아.
[오르그의 파괴 본능]
별을 떨어뜨렸다.
후우우우우웅―
콰아아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