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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25화 (25/232)

25화

* * *

“음……. 확실히, 이 녀석이 가장 큰 것 같아요. 근육도 제일 단단해 보이고.”

사냥이 끝난 직후.

한세정과 나는 건물 안팎으로 나뒹굴던 괴물들의 시체를 한데 모아 면밀히 비교하는 작업을 가졌다.

기왕에 하는 이식.

비록 종(種)이나 등급은 똑같다고 할지라도, 개중에서 더 뛰어나 보이는 신체를 가져오는 게 그렇지 않은 신체를 흡수하는 것보다 나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미관상으로나 실제 성장 기대치나 모두.

그런 고로.

“이걸로 해야겠습니다.”

내가 선택하게 된 괴물은 대장 노릇을 하던, 한세정을 쫓을 당시 당당하게 최선두로 움직였던 첫 번째 표적이었다.

놈은.

괜히 앞장섰던 게 아니라는 듯 다른 괴물에 비해 한결 두껍고 단단한 하체를 갖고 있었다.

“나머지는 추출하되 저는 이놈 몸에서 나온 것과 더해서 두 개만 가져가겠습니다. 세정 씨께서 세 개를 가져가시죠.”

“제가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그리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추출.”

“…넵.”

콰득―

콰드득―

짤막한 대화를 통해 선택을 마친 우리는 나머지 사체를 모두 근원석으로 바꿔 나누어 가진 뒤.

이식과 ‘기억 포식’을 진행하고자 나는 108동 9층의 빈집으로.

“저는 집에 가 있을 테니 끝나면 무전을 쳐 주세요!”

“예.”

한세정은 사냥도 마쳤으니 휴식 겸 만일을 대비해 새로 이사한 105동 집으로 각자의 위치를 찾아 잠시 헤어졌다.

철컥―

철컥―

쿵―

“드디어.”

이중 삼중으로 문단속을 철저히 하며 바닥에 사체를 내려놓은 나는 장포를 벗고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자리에 앉았다.

과연.

이번에는 얼마나 많은 성장을 이룩하게 될까?

하나도 아니고 무려 두 개나 되는 부위를 교체하는 수술이니만큼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놀라운 변화가 기대되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게다가.

“기술을 뭘 주려나.”

신체 능력 상승도 신체 능력 상승이지만, 무엇보다 기억 포식으로 얻게 될 새로운 기술이 나를 흥분케 만들었다.

이번 전투는 미리 짜 놓은 설계대로 흘러간 터라.

놈들의 기술이 무엇인지 확인을 못 했기에 더더욱 기대감이 올라갔다.

또한.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같은 기술을 연달아 습득하면… 위력이라도 향상되려나?”

지난날 동안.

잘 먹고 잘 자며 건강을 회복한 한세정에게 2회에 걸쳐 피를 공급받아 현재 ‘인간성’을 95%까지 회복한 상황.

매 복용마다 쿨타임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2회차 이후 168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탓에 아쉽게도 100%는 채우지 못했다.

어찌 되었든 곳간도 넉넉하게 채워 뒀으니 ‘기억 포식’ 역시 당연히 두 번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랬을 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고대되었다.

“후, 시작해 보자.”

그 의문을 해결하고자 곧 닥쳐올 고통에 경직되어 가는 몸을 심호흡으로 풀어 주며 사체와 다리를 맞대고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프레데터의 하위 진화론.”

[‘기술 : 프레데터의 하위 진화론’을 발동합니다.]

[진화에 사용될 제물이 존재합니다.]

[흡수 이식]

[대상 「티그리스」의 ‘왼 다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진화를 시작합니다.]

[다가올 고통에 대비하십시오.]

우득―

우드득―

“끄으으읍!”

* * *

[축하합니다!]

[「티그리스」의 ‘오른 다리’ 이식에 성공했습니다.]

[대상 「티그리스」가 보유 중이던 신체 능력 일부가 전이되었습니다.]

“하아, 하……. 드디어 끝났나.”

어차피 맞을 매라면 질질 끌지 말고 단번에 맞아 버려야겠다는 각오로 잠깐의 틈도 주지 않고 두 차례의 수술을 연거푸 진행했다.

그로 인해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통증에 한동안 호흡을 가다듬고 나서야 맑은 정신으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슴, 배를 지나 허리 아래.

더 이상 사람의 것이 아니게 된 위압적인 하체를.

스윽―

탁―

천천히 뻗은 손바닥으로 오르그의 팔처럼 부드러운 털의 촉감이 느껴졌다. 그 감촉을 즐기다 슬며시 발가락을 꿈틀거리니.

툭―

투둑―

“으음…….”

신체 구조가 다른 육체를 처음 이식해 봐서 그런가. 유난히 더 낯설게 다가오는 진화의 감각.

하여.

부지런히 꼼지락거렸다. 아예 일어나서 집 안을 걷고, 또 열심히 뛰어다니기도 했다.

이제 곧.

[남은 시간 : 326초]

[남은 시간 : 349초]

‘포식의 땅’으로 가야 하는 바.

그전에.

단순히 달라진 체형뿐 아니라.

[대상 「티그리스」가 보유 중이던 신체 능력 일부가 전이되었습니다.]

*신체

- 근력 : 28

- 체력 : 15

- 내구 : 19

- 순발력 : 20

- 마력 : 19

- 감각 : 12

*변경 후

- 근력 : 41

- 체력 : 26

- 내구 : 29

- 순발력 : 25

- 마력 : 17

- 감각 : 14

예측대로 폭증한 능력에 대해서도 최대한 적응이 필요했다.

* * *

“캬아아아아아!!”

후우우욱―

후욱―

‘미쳤어.’

3분가량 남았을 무렵 입장한 ‘포식의 땅’.

심상의 세계에서 부활한 티그리스와의 전투가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내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서로 간의 차이가 극심했기 때문이었다.

“캬아아악!!”

후욱―

쾅!

티그리스의 동작 하나하나가 눈에 훤히 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회피든 반격이든 내가 원하는 대로 골라 대응할 정도로 말이다.

흡사.

어린아이와 어른의 싸움.

“이젠, 진짜로 누가 괴물인지 모르겠네.”

후우웅―

서걱!

괴물을 갖고 노는 인간이라니.

스스로도 어처구니없는 광경에 헛웃음을 토한 나는 1여 분을 더 어울려 주다 놈의 머리를 잘랐다.

실전 훈련의 가치도 없는 터라 싸움을 더 이어 갈 이유가 없었다.

[축하합니다!]

[이식된 「티그리스의 왼 다리」에 남아 있던 기억 속에서 ‘특별한 기술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추출 완료!]

[「종족 전용 기술 :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를 습득합니다.]

[마력이 3 상승합니다.]

허무한 종료 휘슬과 함께 스며들어 오는 기억과 기술.

다만.

아직 잡아야 할 티그리스가 하나 남아 있는 터라 일단은 미뤄 두고 재차 ‘포식의 땅’으로 여행을 떠났다.

* * *

시간 내에.

더 정확하게는 입장 후 단 30초 만에 티그리스를 처 죽이고 현실로 돌아온 나는 꽤나 재미난 이야기를 마주하게 되었다.

[축하합니다!]

[이식된 「티그리스의 오른 다리」에 남아 있던 기억 속에서 ‘특별한 기술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추출 완료!]

[「종족 전용 기술 :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를 습득합니다.]

[이미 동일한 기술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기술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가 기술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로 성장합니다.]

[마력이 4 상승합니다.]

《기술 :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

- 행성 ‘바이오스(Bioous)’의 지배종 「티그리스」만이 개화 가능한 기술입니다. 다리에 에너지를 담아 땅을 내리찍는 것으로 대지를 뒤틀어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합니다. 소모한 마력 양에 따라 비트는 범위가 최대 15m까지 증가합니다.

- 원 플러스 옵션 : 비틀린 대지 곳곳이 솟아오르며 충격을 입힌다.

“플러스?”

동일 기술 습득 시 플러스 효과가 붙는다니.

가장 궁금했던 주제에 대해 대답하듯 공개된 시스템에 나는 꽤나 흥미가 돋았다.

특히.

“강화, 강화라…….”

이 강화 시스템을 활용해 안 그래도 강력한 ‘오르그의 파괴 본능’이 더 강해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자연스레 상상이 이어졌다.

그렇게.

똑똑―

“오셨, 와…….”

대성공이라 봐도 무방한 진화를 이룩하고 돌아온 집.

초인종 대신 무전기 호출을 받고 문을 열던 한세정이 인사를 하다 말고 입을 벌리며 아래로 시선을 옮겼다.

플뤼 흡수 당시에도 그랬지만.

인간과 괴물이 뒤섞이는 그림은 여전히 그녀에게 놀라움의 대상인 듯했다.

나는.

그런 한세정을 뒤로하고 곧장 옷장으로 향했다. 육체 변이 과정에서 기존의 옷이 죄다 터져 버린 탓에 겨우 장포로 중요 부위만 가리고 있는 수준이라 얼른 뭐라도 걸치고 싶었다.

“스판에… 이 정도면.”

다행히 이럴 경우를 대비해 사이즈별로 옷을 구해 놓았던 터라 반나체로 돌아다니진 않아도 되었다.

물론.

괴물용이 아니라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콰아아앙―!!

“……?”

시답잖은 소리를 하며 피 묻은 상의도 갈아입으려던 찰나 느닷없이 들려온 거대한 폭발음.

뭐지?

미끼 작전을 시도한 이후로 흔하게 접하던 소음과는 궤를 달리하는 굉음에 본능적으로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한 나는 집어 들었던 상의를 내던지며 황급히 방을 나왔다.

그 타이밍에 맞춰.

“아윤 씨! 저기!”

나를 보지도 않고 어딘가를 가리키는 한세정.

그녀의 손끝을 따라 돌린 시선 너머로.

화륵!

화르르르륵!!

번쩍하며 치솟는 시뻘건 화염이 보였다.

“이게 대체… 설마?”

별안간 벌어진 사태에 당황하다 불현듯 마비 수준에 불과하긴 했어도 독을 다루던 크루톤처럼, 불을 다루는 괴물이 나타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만약 그런 거라면.

“…가 봐야겠습니다.”

“네? 어딜, 저길요?”

“예.”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었다.

당장.

저 현장으로 가야만 했다.

“사냥, 하시려고요?”

“가능하다면요. 우리 목표에… 몇 걸음은 더 가까워질 테니까요.”

정말로 불을 다루는 괴물이라면 반드시 잡아먹어야 했으니까.

우리의 목표, 우리의 전쟁을 위하여.

이 한마디에.

“세정 씨는 옥상으로 올라가서 돌아가는 상황을 알려 주십시오. 저는 정말로 괴물이 맞는지, 숫자는 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무전 할게요!”

“알겠습니다.”

한세정은 마치 거역할 수 없는 왕의 명령을 받은 것인 양,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전기와 골프채 등 자신의 짐을 챙겨 곧장 105동 옥상으로 뛰어간다.

촤아아악―

‘가자.’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나도 장포를 뒤집어쓰며 집을 나섰다.

격렬하게 타올랐던 불길이 사라지고 다시 어둠으로 물든 세상을 조심스럽게 거닐며 현장으로 나아가다 보니 곧 귓가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 자, 한 자.

듣는 즉시 전부 이해할 수 있는.

“다 처리됐습니다!”

“야, 이 개새끼야! 다 같이 뒈지고 싶어?”

“아닙니다!”

“고유 능력 처음 써 봐? 젠장!”

“죄송합니다!”

매우 선명한 인간의 음성이.

‘…사람?’

아무리 적게 잡아도 족히 대여섯 명은 되는 듯한 무리의 등장에 당혹스러워 우뚝 멈춰 선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자세를 낮추며 다시금 전진하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한 국면이기는 하나.

정체불명의 괴물이든 무리든 간에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나타난 이상 어찌하여 이곳에 오게 됐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야 하는 건 똑같았으니까.

‘누구냐…….’

혹시라도 감지에 특출난 능력자가 있을지 몰라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간격을 좁혀 간다.

그러다.

희미한 달빛 아래에서도 서로의 낯짝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무렵.

툭―

눈에 힘을 주며 전방을 살펴보던 나는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일단의 무리 중심에.

‘……!’

아주아주 낯익은 인물이 보인 탓이었다.

그것도.

찢어 죽이리라 약속했던, 피와 살점 하나하나까지 모조리 씹어 먹어 버리겠다고 다짐했던 악마 중 하나가 달빛 아래에서 내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이를 인지한 순간.

‘…김성태에에에에에에!!’

쿠우우우웅―!

가슴 깊숙한 곳에 감춰 두었던 분노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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