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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24화 (24/232)

24화

* * *

치이이이익―

빨간 노을마저 저물어 가는 오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복도에 앉아 입질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차에 허리춤에서 노이즈가 들렸다.

식량 탐사 중에 찾은 검은 바탕에 푸른 줄무늬가 그려진 커플용 무전기.

그걸 통해 한세정이 꽤나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 아윤 씨! 아윤 씨!

“…무슨 일이십니까?”

어디 문제라도 생긴 건가 반문하니 한층 더 다급해진 말투로 목적을 설명하는 한세정.

그 직후.

“그게, 정말입니까?”

나도 모르게 일어나 버렸다.

무전기 너머로.

- 직접 와서 확인하셔야겠지만, 일단 아윤 씨가 원하던 2m 남짓한 체구에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이족 보행형 괴물이에요!

바라 마지않던 육체의 출현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바로, 바로 가겠습니다.”

- 108동 우측, 놀이터 방향이에요!

어쩌면 이식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발견에 나는 대화가 끝나자마자 즉시 한세정이 말한 장소로 향했다.

걸을 때마다 점점 커지는 심장 박동.

인간 ‘아윤’이 가진 성장에 대한 갈망과 ‘프레데터’ 본연의 진화를 이룩하고자 하는 욕망이 한데 뭉쳐 피를 뜨겁게 달구고 전신을 흥분케 만든다.

그런 감정 상태로.

‘어디냐, 어디냐!’

한달음에 108동 놀이터 부근에 도착한 나는 이글거리는 안광을 빛내며 사방을 훑었다.

좌에서 우로.

개미 한 마리까지 잡아내겠다는 일념하에 샅샅이 파헤치는 시선 사이로 땅에 머리를 처박고 사체 한 구를 게걸스럽게 뜯어 먹는 네댓 마리의 괴물들의 형체가 들어왔다.

“캬우우우우우우!!”

“캬우우우우!!”

이따금씩 대가리를 쳐들고 늑대의 하울링과 비슷한 포효를 해 대는.

허나.

지구의 문자로 표기하자면 ‘웨어 울프(Werewolf)’보다는 ‘웨어 타이거(Weretiger)’로 써야 더 어울릴, 호랑이와 인간을 8대 2의 비율로 섞어 놓은 듯한 외계 생명체들이었다.

‘아.’

그 모습을 목도한 순간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m 20cm에서 30cm쯤 되는 쭉 뻗은 다리 길이. 자그마한 움직임에도 쉼 없이 꿈틀대는 탄탄한 근육과 바위마저 파고들어 가는 발톱까지.

상상으로나마 그렸던 그림과 거의 100% 일치하는 외형이 떡하니 눈앞에 있었기에 박수가 절로 나왔다.

물론.

발가락이 사람과 달리 세 개뿐이라는 점이나 굵기를 비롯해 전체적인 형상을 보아 갈구하던 속도 위주라기보다는 오르그처럼 근력에 치중된 타입 같다는 단점도 여럿 드러났지만.

‘좋아, 먹자.’

일말의 고민 없이 결정했다.

이식을.

플뤼와 마찬가지로, 드러난 결점보다 흡수했을 때의 강점이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한 가지 이유를 추가한다면.

지구를 침공한 외계 생명체 중에 이족 보행형이 별로 없다는 것도 크게 작용했다.

제아무리 나나 한세정의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괴물을 본 게 이번이 처음일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

치이이이익―

“확인 완료, 사냥하겠습니다.”

- 네!

더 지켜보지 않고 한세정에게 어그로를 부탁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TV 한 대가 하늘을 날았다.

후우우우웅―

쾅―!

거친 폭발음을 일으키며 파편을 쏟아 내는 TV.

그 격렬한 반응에 황급히 뒤로 물러선 놈들이 피와 살점이 덕지덕지 묻은 주둥아리를 하늘로 쳐든다.

“캬아악! 캬아아악!!”

“캬악!!”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하던가.

이건 외계에도 공통적으로 통하는 듯, 한창 즐기던 식사 시간을 방해받은 놈들의 충혈된 눈동자에서 살의가 잔뜩 묻어 나왔다.

그런 놈들에게.

깡깡―

난간을 두드려 위치를 알려 주니.

“캬아아아악!!”

너나 할 것 없이 일제히 한세정이 자리 잡은 108동 안으로 달려들어 가기 시작하는 괴물들.

나는 놈들의 뒤를 지켜보며 어떻게 상대해야 좋을까 플랜을 짜 나갔다.

‘탄성 일격으로 하나, 파괴 본능으로 다시 하나를 잡고…….’

빠르게 머리를 굴려 가며 차곡차곡 쌓아 가는 계획.

그러고 있길 잠시.

번쩍―

탁!

“불러 주세요!”

“A 플랜입니다.”

“넵!”

괴물들을 8층 언저리까지 데려간 뒤 홀로 나타난 한세정.

후다닥 전장을 피하는 그녀에게 짧게 대답한 나는 적당한 곳으로 이동해 속으로 천천히 숫자를 세어 나갔다.

‘하나, 둘, 셋…….’

그 수가 아홉을 지나 열에 다다를 무렵.

“캬아아아악!!”

‘후, 가자.’

첫 번째 목표가 등장했고, 동시에 내 왼팔이 공간을 찢었다.

‘플뤼의 탄성 일격.’

촤아아아악!!

콰드득!

“캬우욱… 캭!”

쿠웅―

달려 나오던 힘과 옆구리를 치고 들어오는 힘이 뒤엉켜 비명을 지르며 대각선으로 나가떨어지는 괴물 하나.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

허나.

무시하고 다음 타깃을 향해 오른팔을 휘둘렀다.

‘오르그의 파괴 본능.’

우우우웅―

콰앙!

내질렀다 돌아오는 왼팔의 반동을 이용해 허리를 비틀며 올려 치는 주먹이 섬광을 발하며 두 번째 괴물의 상반신을 통째로 지워 버린다.

“캬…아악!”

이번만큼은 단박에 숨이 끊어졌음을 알 것 같았다.

물론.

여전히 중요 관심사는 아니었다.

“캬아아아악!!”

“캬아악!”

“캬아아아악!!”

둘이나 처리했지만, 아직도 셋이나 남아 있는 상황.

따라서.

지금은 다른 데 눈 돌릴 게 아니라.

“세정 씨!”

한세정을 부를 때였다.

왜?

흘려보내듯이 외쳤던 ‘A 플랜’대로.

타다다다닷―

“2층 복도로 갈게요!”

우우웅―

번쩍!

미리.

정해 놓은 전술적 규칙 중 하나인 A 플랜을 따라 수적 열세를 메꾸기 위해 그녀의 도움을 빌려 지형적 이점을 얻고자 위치를 바꿔야 했으니까.

탁―

“201호!”

검은 그림자 너머로 사라졌던 한세정이 금세 달려와 나를 낚아채고 108동 2층 복도로 공간 이동을 시도한다.

그러고는.

곧장 ‘201호’를 외치며 분주하게 떠나간다.

이즈음.

바람을 타고 전해진 여인의 음성을 듣고 나서야 당했음을 깨달은 괴물들이 뒤늦게 몸을 돌렸다.

“캬아아아악!!”

“캬우우우!”

벌써 두 번이나 농락당해 화가 머리끝까지 솟은 놈들은 이번만큼은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기세로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나는.

그 움직임에 맞춰 살짝 물러나는 척 뒷걸음질 치며 한세정이 말한 201호로 들어갔다.

“캬아아아아악!!”

활짝 열린 현관을 지나치기 무섭게 뒤따라 입성하는 세 번째 타깃.

놈은 알까?

여기가 본인의 무덤이라는 걸.

‘받아라.’

타이밍을 계산하던 나는 놈이 현관문을 넘던 찰나에 앞서서 201호에 들어간 한세정이 준비해 준 겨울 이불을 홱 펼쳐 던졌다.

화아아악―

“캬아악! 캬악!”

느닷없는 장막에 시야를 빼앗긴 타깃이 당황한 몸짓으로 거칠게 발악하며 이불을 찢어발긴다.

본인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전장에서 눈이 가려졌다는 건.

‘심장.’

후우우우우욱―

콰직!

“캬악, 캭…….”

웬만해서는 죽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털썩―

쿵―

힘겹게 이불 막을 벗어나던 괴물의 몸통으로 잘 벼려진 다섯 개의 칼날이 박혀 들어간다. 심장이 갈라지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제 남은 건 둘.

탁―

타닷―

“후아!”

더는 물러서지 않아도 되는 격차였기에 이제는 후퇴가 아니라 전진한다.

때마침 막 201호 언저리에 다다른 네 번째 타깃을 맞이하러 현관에 쓰러져 있는 세 번째 타깃을 발판 삼아 높게 떠오른 나는 위에서 아래로 주먹을 내리찍었다.

후우우우우욱―

시원하게 갈라지는 공기 너머로.

“캬아아악!”

쾅!

새로운 죽음이 한 꺼풀 더해졌다.

* * *

“여기, 여깁니다…….”

“…이런 곳이 있었나?”

“김 사장 가게입니다. 관리는, 아마 호식이가 했었을 겁니다.”

“쯧.”

“일단 들어가시죠. 뭐 해, 새끼들아. 안내 안 해?”

“아, 알겠습니다!”

날이 어둑어둑 저물어 가던 어느 날 저녁.

한 무리의 남자들이 반쯤 무너진 공중화장실 안으로 우르르 몰려들어 갔다.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이들은 뒤따라오는 일행이 방해받지 않도록 청소를 병행하며 길을 뚫었고, 이내 지하로 연결된 통로를 발견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외부와 달리 불빛 한 점 없던 공간.

랜턴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계단을 내려간 남자들은 곧 통로 말미에 덩그러니 놓여 썩어 가고 있던 시체 한 구와 마주하게 되었다.

“…여, 여깄습니다.”

머리는 어디 가고 바스러진 반지 조각만이 남아 있는 사체 앞에서 멈춘 남자들이 무척 정중하게 전방을 가리키자 얼굴을 비롯해 온몸이 흉터로 가득한 사람 하나가 터벅터벅 걸어 나온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게 생긴 30대 초반의 인물은 살점과 장기가 썩어 가며 풍기는 역한 냄새에도 불구하고 전혀 아무렇지 않은 듯 시체 곁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굽혀 무언가를 주워 들었다.

투툭―

모래로 뒤덮여 거친 촉감을 선사하는 반지.

더없이 빛바랜 쇳조각을 손에 쥐자.

‘형! 어때? 죽이지?’

‘이거 사는 데 있던 거 다 꼬라박았다니까?’

‘언제든지 말만 해. 그냥은 못 줘도 빌려는 줄 테니까. 푸흐흐흐.’

운 좋게 찾은 ‘차원 상점’에서 반지를 구매하고 잔뜩 신이 났던, 쪼르르 달려와 자신에게 자랑하던 의제(義弟)의 얼굴과 몸짓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떠올라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피를 섞은 가족만큼이나 중요해서 더욱 처절하게 느껴지는 김성원과의 추억들이 하나둘 스쳐 지나간다.

‘미안하다니까 그러네.’

‘내가 뭐 어쩌겠어? 까라면 까야지.’

‘파투 낸 대신 거나하게 쏠게, 진짜로. 이번에 꿍쳐 둔 것도 좀 있으니 기대할 만하다고! 킬킬.’

‘내일! 늦어도 내일모레 동트기 전에 도착이여, 몸 성히 기다리고 계셔!’

이제는 마지막이 되어 버린 비극적인 결말.

“…….”

그 허무한 인사 끝에서.

후욱―

콰직!

“커헉…….”

털썩―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 의형 김성태의 주먹이 누군가의 복부를 후려쳤다.

“아, 아으… 으…….”

의제의 죽음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도망치기 바빴던 일원 중 한 명이었다.

후우우웅―

콰직!

콰직!

“사, 살…….”

우드득―

단순한 화풀이로 시작되었던 주먹질은 끝내 삶을 구걸하던 남자의 입에서 시뻘건 피가 터져 나오고도 모자라 죽음이라는 두 글자가 선고된 이후에야 멈춰졌다.

물론.

겨우 목숨 하나로 김성태의 분노를 잠재우기는 힘들었다.

“찾아. 어디로 갔는지, 몇 명이나 되는지, 어떤 놈인지. 무조건 찾아서 안내해.”

“예! 형님!”

뚝 떨어진 기온과 맞물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핏물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김성태의 선언에 자리에 모여 있던 모두가 바짝 긴장한 얼굴로 크게 대답한다.

질문에 대한 답을 가져오겠다고.

그로부터 며칠 뒤.

“형님! 찾았답니다! 용태가 흔적을 찾았답니다!”

“시끄럽게 꽥꽥거리지 말고 준비해. 덕구 형님께는 내가 말씀드린다.”

“예!”

“아, 그놈들도 전부 데려와. 길잡이는 그놈들이 한다.”

불곰파의 초창기 간부이자 행동 대장으로 활동하던, 죽은 김성원의 의형 김성태가 자신의 창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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