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 불청객 】
“됐다! 아윤 씨! 저 다 끝났어요!”
성풍 아파트 단지.
101동 1501호에 머무른 지도 벌써 사흘째.
첫날에 이어 추가로 이틀이 더 지난 오늘, 드디어 한세정의 ‘특수 퀘스트’도 마무리가 되었다.
“와……. 이게 다 뭐야.”
이틀 내내 괴인들의 뼈와 살을 부수며 노력했던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보상이 놀라운 듯 허공을 바라보며 연신 감탄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하는 터라.
나는 한세정이 충분히 즐길 수 있게끔 혼자만의 시간을 내어 주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우우웅―
우웅―
묘하게 피부를 간지럽히는.
우리에게 ‘특수 퀘스트’라는 일용할 양식을 내어 주었던 성풍 아파트 단지의 주인들이 있는 곳으로.
“이 방향이면… 대충 106동, 107동 이쪽인가?”
칭호 효과 덕분에.
마치 내비게이션을 찍은 것처럼 머릿속으로 놈들의 정확한 위치가 떠오르고 있었다.
굉장히 신기하고도 특별한 이 감각은 한세정에게도 전해진 듯 허공을 바라보던 그녀가 갑작스럽게 주변을 돌아본다.
하여.
“괜찮다면 바로 가시죠.”
“네!”
컨디션을 확인해 본 나는 더 싸워도 되겠다는 다부진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서서 가장 가까이에 있던 포타스를 향해 이동했다.
밤낮 구분 없이.
걸리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아주 과감하게.
“그어어어? 그어어어어!”
“으어어어어!”
“다섯, 빠르게 처리하고 가겠습니다.”
“제가 왼쪽으로 갈게요!”
첫날과는 판이해진 행동 양식.
과거에야 괴인들의 숫자가 100을 가뿐히 넘어가는 탓에 숨고 달아나기 바빴지만, 지난 3일간 ‘특수 퀘스트’란 명목으로 때려잡은 숫자가 최소 8~90마리 이상이었다.
그 때문에 이제 단지 내에 생존 중인 괴인은 최대로 잡아도 3~40마리에 불과할 뿐이라.
“후읍.”
탁―
후우우우우웅―
쾅!
촤아아악!
더는 전투로 발생한 소음에 다른 괴인들이 몰려오진 않을까 걱정할 필요 없이 가진 힘을 완연히 드러내며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도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았다.
어그로가 끌려 봐야 고작 서너 마리 달려오는 게 전부였으니까.
“107동 옥상…인 것 같습니다.”
단숨에 괴인 아홉을 처리하고서 도착한 107동.
감각에 집중하며 천천히 옥상으로 올라가니 활짝 열린 철문 너머로 중앙에 곧게 서 있는 존재가 보였다.
사람의 몸을 빼앗아 진화한 건지.
전체적인 형상은 인간의 그것이나 머리에는 모발 대신 1m가 넘는 버섯이 달려 있고, 다리는 나무의 뿌리로 변해 있는 기괴한 형상의 괴물 포타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세정 씨는 여기서 혹시 모를 상황을 경계해 주세요.”
“뒤는 걱정하지 마세요!”
“예.”
스윽―
그 고고한 자태에 장포를 적당히 거두며 손톱을 꺼낸 나는 발끝에 힘을 주며 철문을 넘어 놈에게 달려들었다.
서로의 간격을 좁히는 데 다섯 걸음.
반격을 대비해 언제든 대응할 태세로 긴장하며 바짝 다가갔으나 바로 앞에 다다를 때까지 포타스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부우우우웅―
콰앙!!
후두두둑―
꽉 틀어진 주먹으로 제 머리통을 깨부술 때까지도 말이다.
이거.
“…포자 활동이 전부인 타입인가?”
아무래도 광역 기술을 가진 대가로 본체는 고정된 채 살아가야만 하는 모양이었다.
[‘추출’ 가능한 대상이 확인되었습니다.]
[대상 : 포타스, 1개체]
[‘추출’을 시도하시겠습니까?]
[추출을 시작합니다.]
[대상 「포타스」의 추출이 완료되었습니다.]
[‘1등급 근원석’을 습득합니다.]
설마설마하며 추측에 확신을 얻기 위해 추출을 시도해 보니 순식간에 쪼그라들어 근원석을 토해 내는 포타스.
역시.
“끝난 건가요……?”
“예. 하수인이 지켜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다른 등급은 모르겠지만.”
“아…….”
“두 마리가 더 있는 것 같으니 근원석은 2대 1로 배분하도록 하죠. 우선은 제가 먼저 복용하겠습니다.”
“네. 그건 아윤 씨가 원하는 대로 하세요.”
예측대로 흘러가는 그림에 주억거리며 근원석을 먹어 치웠다.
[‘1등급 근원석’을 복용했습니다.]
[마력이 2 상승합니다.]
* * *
“이제… 뭘 하면 될까요?”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포타스와 눈에 띄는 괴인들까지 모두 정리를 마친 이후.
다시 101동 1501호로 돌아와 간단한 식사와 휴식을 병행하던 차에 물로 입가심하며 배를 채운 한세정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사흘에 걸쳐 제법 성황리에 무대 1막을 마무리한 터라 향후 펼쳐질 2막에 대해 꽤나 궁금한 눈치였다.
해서.
구태여 뜸 들이지 않고 생각해 두고 있던 바를 알려 주었다.
“유인입니다.”
다시 또 ‘유인’이라고.
그러자.
“……?”
잘못 들었나 하는 표정으로 갸웃거리는 한세정.
뭔가.
자신이 예상하던 그럴싸한 계획과는 거리가 먼 대답에 당황스러운 것 같았다. 하여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을 더 해 주었다.
“지금까지 잡은 괴인들을 미끼로 쓸 예정입니다.”
“아아!”
겨우 한 문장을.
그러나 의문점을 해결하기에는 충분했기에 내 말을 완벽하게 알아들은 한세정이 손뼉을 치며 탄성을 내뱉었다.
“얼마나 효과 있을진 모르겠지만, 시체 양이 상당하니 피 냄새를 풍기면 적잖게 미끼를 물 겁니다.”
“오, 좋은 것 같아요. 음……. 그럼 집을 옮길까요?”
“그러는 게 좋겠습니다. 101동과 102동의 늘어진 시체를 옮기기보단 저희가 이사 가는 게 나을 테니.”
“네! 바로 준비할게요!”
새로운 목표가 세워지자 한세정은 지체할 것 없다는 듯. 곧장 식량과 식수가 담긴 가방들을 현관 쪽으로 옮겨 놓기 시작했다.
지난 며칠간 사냥 이외에 시간에 문 열린 집을 돌아다니며 비축량을 늘렸던 만큼 엄청나게 쌓여 가는 음식들.
그것들을 줄로 칭칭 감아 한데 뭉쳐 들어 올리니.
꽈아아아아악―
“으음.”
20이 넘어가는 근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무게감에 짓눌려 팔이 덜덜 떨렸다.
이걸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파트 15층에서부터 갖고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지만 그렇다고 버리고 갈 수도 없어 이 악물고 발을 디뎠다.
“읏, 읏!”
이런 내 뒤를 따라 자기 몫의 짐을 이고 쫓아오는 한세정.
그렇게 두세 번을 더 왕복하며 짐을 모두 옮기고 나서야 완벽하게 이사한 우리는 힘을 쓴 김에 미끼 몰이까지 완수할 요량으로 사방을 뛰어다녔다.
* * *
‘다리는 같은 종(種)으로 가야겠지.’
101동 5층.
미끼를 무는 괴물들이 있나 없나 확인하기 위해 복도에 자리 잡은 나는 두터운 이불로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막으며 막간의 틈을 활용해 추후 이식에 대해 고민했다.
현재.
다음 등위로 올라가기 위해 변형 혹은 추가해야 할 부위는 셋.
다리와 이마, 꼬리.
개중 더 관심이 가는 쪽은 당연하게도 다리였다. 여타 부위와 달리 다리만큼은 반드시 ‘균형’을 이루어야만 한다는 조건이 붙었기 때문이었다.
‘오르그의 팔을 감당하려면 다리가 짧아서는 안 돼. 그렇다고 너무 길어지면 내가 적응하기 힘들어진다. 사람과 비슷하되… 되도록 속도 특성을 가진 육체를 얻고 싶다.’
어렵다.
하체뿐 아니라 전체적인 신체 밸런스를 고려하면서도 딱 맞는 특성을 가진 괴물을 확보할 수 있을는지.
“정 안 되면 뿔이라도 이식하고 싶기는 한데.”
꼬리는.
음…….
사실 잘 모르겠다.
당장 팔다리 놀리기에도 바쁜데 꼬리까지 생기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지는 탓에 상대적으로 관리 부담이 부위는 가능한 늦게 추가하고 싶었다.
‘상황이 급박해지면 닥치는 대로 이식해야겠지…….’
쿠웅―
“크라라라라라!!”
‘……!’
홀로 상념을 정리해 가던 찰나.
지축을 뒤흔들며 귓가를 강하게 때리는 포효에 현실로 돌아온 나는 복도에 몸을 숨긴 채 바깥을 확인했다.
눈동자 속으로 비치는 괴물의 형상.
저 멀리.
미끼를 깔아 둔 곳으로 무려 팔족 보행을 하는 존재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도 혼자.
사냥하기에 제일 좋은 대어였다.
단지.
‘…쯧, 이식용은 아니네.’
한 줌 달빛에 기대어 위아래를 훑어본 결과 단순 추출용 괴물이라는 사실에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말이다.
물론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나는 금세 자세를 바로잡으며 준비해 두었던 의자를 던졌다.
후우욱―
쾅―!
날개 없이 하늘을 날다 주차되어 있던 차량과 부딪치며 요란한 소음을 발생시킨 의자.
그 순간.
“크라라라라…….”
세상이 떠나가라 포효하다 말고 내게로 시선을 돌리는 괴물.
도발이 제대로 먹혀든 것 같았다.
여기에.
후우웅―
콰아아앙!!
다른 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한세정이 한 번 더 의자를 던져 자극해 주니…….
“크라라라라라!!”
완전히 눈이 돌아간 듯.
바닥에 깔린 시체들을 무시하며 달려오는 괴물.
방향은 102동.
한세정이 자리 잡은 곳이다.
‘좋아.’
설계한 대로 흘러가는 흐름에 만족한 나는 괴물이 102동에 다다를 무렵 서둘러 아래로 내려왔다.
플뤼를 사냥했던 작전대로.
이번에도 한세정에게 정신이 팔린 괴물의 뒤통수를 노리기 위해서였다.
‘슬슬 내려올 시간.’
번쩍―
탓―
타이밍을 재 가며 102동에 도착하자.
때마침 공간 이동으로 괴물을 따돌린 한세정이 막 달려온 내게 응원을 남기며 자리를 떠난다.
일부러.
“화이팅!”
크게 소리를 지르며.
진짜 응원하려는 목적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자기 위치를 계속해서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그래야 먹잇감을 놓친 괴물이 분노에 사로잡혀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들 테고.
“크라라라라라!!”
타다다다다―
‘3, 2, 1…….’
“크라라라라라라…….”
나아가.
기습적으로 뻗어 낸 공격이 훨씬 효과적으로 먹혀들어 가기 때문이었다
‘지금!’
‘플뤼의 탄성 일격.’
퉁웅!
후우우우욱!
“크라라라…….”
콰직―!
“크에에에엑!!”
‘나이스.’
기분 좋은 선율과 함께 살점을 찢고 뱃가죽에 틀어박혔던 왼팔을 회수한 나는 기세를 쭉 이어 가고자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는 괴물을 따라가 주먹을 뻗었다.
무척.
새하얀 빛에 휩싸인 주먹을.
‘오르그의 전투 본능.’
우우웅―
마력 양이 대폭 늘어난 데다가 이식용도 아니기에 기술을 아끼지 않았다.
콰아아앙―!!
밤하늘을 밝히는 새하얀 유성처럼 떨어진 주먹이 괴물의 몸뚱어리를 사정없이 짓이기며 지워 버린다.
문자 그대로 직경 50cm가량 되는 육체를 흔적도 없이 소멸시켜 버리는 일격.
더군다나 마력에 의해 소실된 탓에 한동안 피조차 나오지 않는 상처. 더 볼 것도 없이 즉사였다.
“생각보다 더 쉽게 잡았네.”
만에 하나 있을 불상사를 대비해 공격 이후 멀찍이 물러난 나는 추출 시스템을 활용해 괴물이 죽었음을 확인하고서 상당히 깔끔한 사냥에 속으로 박수를 쳤다.
확실히.
한세정을 만난 건 내게 있어서도 행운이었다.
서로 손을 잡은 덕택에 단순히 ‘사냥에 성공했다’는 것에서 그칠 수 있는 문장이 ‘사냥을 시도했는데, 그 과정에서 누구도 다치지 않고 몸 성한 상태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다’라고 종결되었으니까.
물론.
“키에에에에엑!!”
“키에엑!”
“바로바로 오네.”
아직 마침표를 찍기엔 한참 일렀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