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이게 대체 뭘까.
“아, 아윤 씨? 지금…….”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한세정이 떨리는 말투로 중얼거린다.
그녀 역시.
이 상황이 나만큼이나 당황스러운 듯했다.
다만.
우리에게 마음을 다잡을 여유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복종 포자’라는 것에 저항한 나와 한세정을 제거한다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어어어어어…….”
“으어어…….”
“흐에에에에…….”
“아윤 씨! 저기 사람들이!”
곳곳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온몸에 피딱지가 앉고 상처가 곯아 터져 흐르는,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볼 법한 ‘좀비’와 같은 모습의 괴인들이.
“뒤로… 아니, 안으로!”
후우욱―
타닷!
“네, 넷!”
나는 목을 옥죄듯 사방에서 몰려오는 살기(殺氣)의 파도에 황급히 한세정을 데리고 102동 안으로 발을 놀렸다.
이 선택이.
매우 위험한 짓임은 알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도 모자랄 판에 더 깊숙이 들어갔다간 자칫 죽음으로 이어질지도 몰랐으니까.
허나.
이거야말로 어쩔 수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상처 입을 걸 각오하고서라도 뚫어야 할까 고민됐지만, 괴물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버린 이들 중 대부분이 외부에서 밀려들어 오는 중인 데다가 적게 잡아도 대충 100여 명이 넘어가는 인원을 상대하기는 아직 무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상대라면 모르지만.
침과 피, 고름이 한데 섞여 흘러나오는 저 괴인들의 입에 물렸다가는 단순히 상처만 입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 탓에.
“어, 어디로…….”
“옥상으로!”
지금으로서는 한발 물러나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는 일념으로 102동 계단을 타고 달렸다.
이제껏 꾸준히 밀어왔던 대로.
전황도 여의찮고, 수적으로도 열세일 때에는 일단 지형적 이점부터 얻기 위함이었다.
2층, 3층, 4층.
주르륵 스쳐 지나가는 숫자들. 다행히 신체 능력의 차이가 꽤 큰지 좀처럼 따라오지 못하는 괴인들.
물론.
적은 밖에만 존재하지 않았다.
“그어어어어어!!”
“으어어어어!”
처음부터 102동 내부에서 어슬렁거리던 괴인들이 되레 가까워지는 우리를 향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이에.
나는 손발을 허우적거리며 다가오는 괴인을 상대로 피나 부스럼이 튀지 않게끔 손바닥을 휘둘렀다.
‘최대한 깔끔하게.’
“그어어어어어!”
후우우웅―
빠악!
쿵―
대자로 펼쳐진 거대한 손바닥이 40대 중년 남성 괴인 하나를 종이 인형처럼 튕겨 내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뜨린다.
못 먹다 감염된 건가?
겉보기엔 분명 성인 남성인데 왠지 어린아이 같은 무게감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근력이 오른 덕분인…….’
“으어어어어.”
후욱―
타악―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해결할 새도 없이 위에서 덮쳐 오던 괴인을 피하고자 한 걸음 물러난 후.
“후우. 읍!”
텁―
“으어어어! 으어어어!”
팔을 벌리며 아등바등하는 몸을 그대로 잡아 옆으로 던져 버렸다.
후우웅―
콰직!
쓰레기 치우듯 널브러진 괴인의 머리통이 복도와 부딪쳐 산산이 부서지자 주변이 삽시간에 피비린내로 가득 찼다.
원체 상태가 안 좋았던 탓에 평소보다 훨씬 역한 냄새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 나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하아, 하……. 잠시…….”
“실례.”
“…꺅!”
“쉿!”
“읍읍!”
슬슬 힘이 빠져 가는 듯한 한세정을 둘러업었다.
이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그녀가 비명을 질렀으나, 나는 입을 강제로 틀어막고 계속해서 계단을 올랐다.
체력이 달려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그녀를 추격자들의 손에서 안전하게 데려가려면 이게 최선이었다.
그렇게.
한달음에 무려 15층을 전부 돌파한 나는 옥상에 도착하자마자 문고리를 붙잡았다.
‘열려…….’
철컥―
끼이이이익!
‘있다!’
혹시 잠겨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따로 잠가 두는 곳은 아니었던 듯 활짝 열리는 철문.
후우욱―
툭―
“아앗……. 놀란, 놀랐잖아요…….”
들어가 문을 닫고서 땅에 내려 주자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돌리는 한세정.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옥상을 돌아봤다.
이제 곧 괴인들이 들이닥칠 터.
숫자가 많아지면 철문이라고 해도 안심할 수 없으니 뭔가로 덧대 놓든, 아니면 다음 계획을 구상해 둬야 했다.
‘옥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텅 비어 있는 옥상.
쌓여 있는 먼지 말고는 휑한 풍경에 문을 더욱 견고하게 막아 보려던 방안이 무너진 나는 혀를 차며 고민을 거듭한다.
“어쩐… 음?”
문득 떠오른 방책에 한세정을 불렀다.
“세정 씨.”
“네?”
“혹시, 공간 이동을 사용하면 저쪽으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까?”
“저기…로요?”
“예.”
혹여 다른 건물로 넘어갈 수는 없냐고.
여기까지 계산하고 옥상을 고집한 건 아니나, 올라와서 보니 우리가 위치한 102동 바로 옆으로 101동이 놓여 있었다.
떨어져 있는 거리는 대략 10여m.
널찍하고 두터운 벽을 포함해도 15m 안팎이니 한세정의 공간 이동으로 넘어갈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런 마음으로 묻고 기다리길 잠시.
“…조금, 조금 멀어요.”
“조금, 입니까?”
한세정의 입에서 나온 답은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못 한다. 안 된다. 너무 멀다…….
이런 절대적 불가능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단지 ‘조금 부족하다’라고 했으니까.
이는 곧.
건물 사이의 간격을 좁히면 가능하다는 소리.
“되는가 보군요.”
“네?”
“지금부터 저 벽을 밟고 뛰겠습니다. 최대한 거리를 줄일 테니 능력 사용이 가능해지면 즉시 이동해 주세요.”
“그게 무슨…….”
“실례.”
후욱―
“……!”
“시간 없으니 바로 가겠습니다.”
마음을 확고히 정한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한세정을 다시 둘러업었다.
뛰어넘어 가기 위하여.
만약 이 방법이 실패한다면 어쩌나, 차라리 문을 기준 삼아 농성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두렵기는 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지형적 이점을 살린다 해도 수성 장비는커녕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내가 100여 명의 괴인과 싸워 이기리란 어불성설.
결단이 필요했다.
“셋 세고 가겠습니다.”
“아윤 씨? 아윤…….”
“하나, 둘, 셋!”
짧은 신호와 함께 발을 뻗었다.
한 발, 한 발.
조였다 풀리는 근육이 뿜어내는 힘으로 나아간 육체는 순식간에 옥상 벽에 도달했고, 나는 망설임 없이 몸을 띄웠다.
탁―
가볍게 도달한 벽.
결심이 흔들릴까 봐 눈앞으로 쫙 펼쳐진 지상을 최대한 보지 않으려 시선을 정면에 고정하고서.
‘…가자!’
쿠웅!
재차 도약해 길이 아닌 길을 밟았다.
부우우웅―!!
펄럭―
망토인 양 휘날리는 장포.
밀려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부수며 비상한 나는 단숨에 4~5m를 돌파했고 계속해서 101동과 가까워졌다.
이제 남은 건 한세정의 공간 이동.
“세정 씨!”
하늘 높이 비상하던 육체가 급격하게 추락하기 시작할 즈음 반사적으로 한세정을 불렀다.
그 직후.
“으으으으… 아아아아!!”
번쩍!
한 여인의 비명과 동시에 빛이 터져 나왔다.
* * *
“이제… 어떻게 하죠?”
101동 옥상 철문 앞.
생각보다도 더 안전하고 수월하게 건너온 우린 뒤늦게 들이닥친 괴인들이 제풀에 지쳐 돌아갈 때까지 숨어 있다가 안전이 확보되자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한 바.
회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무겁고 가라앉아…….
“상황이 생각보다 좋습니다.”
“네?”
있지 않았다.
의외로 당면한 사태가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왜?
“포타스, 그놈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기회요?”
“예. 아마도 이 아파트 단지 내에 살던 사람들 대부분이 좀비처럼 변한 듯한데, 만일 우리가 알고 있는 좀비의 특성대로 사람만 노리는 개체라면… 집마다 남아 있는 식량을 건드리진 않았을 테니 말입니다.”
“……!”
자그마한 확률에 불과하지만.
성풍 아파트 단지가 괴물로 인해 종말 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청정 지역이 됐을 가능성이 생겼으니까.
설혹.
나나 한세정같이 ‘마력’의 존재로 복종 포자에 대한 저항 능력을 갖춘 이들이 찾아왔더라도 괴인들의 숫자가 상당하니 웬만해서는 피해 갔을 터.
“운이 따른다면, 당분간 배곯을 일은 없을 겁니다.”
그저 말뿐인 해피 엔딩일지라도 한세정의 표정이 밝아졌다.
더군다나.
아직 내 이야기는 끝이 아니었다.
“식량만이 아닙니다.”
“……?”
추가로 내뱉을 한마디가 더 있었다.
“식량도 식량이지만, 여긴 사냥터로서도 매우 좋습니다.”
“사냥터…요?”
“예.”
조금 전.
도주극 당시 복도에 던져져 머리가 으깨졌던 괴인. 덧없이 죽어 버린 그놈이 엄청난 것 한 가지를 남겼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포타스」의 ‘뿌리의 기회’를 품은 대상을 사냥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된 〈특수 퀘스트〉의 ‘트리거’가 발동되었습니다.]
〈특수 퀘스트 : 포타스의 번식〉
- 행성 ‘팔라니오(Pallanio)’의 지배종인 「포타스」는 번식을 위해 사방에 포자를 뿌린다. 이때 퍼져 나간 포자는 생명체의 뇌에 자리 잡고 숙주의 생명력을 빨아 먹으며 600시간의 숙성 기간을 거쳐 「포터스」로 진화할 ‘뿌리의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기회는 곧 위기. ‘뿌리의 기회’를 얻은 포자가 발아하기 위해선 반드시 마력을 보유한 개체를 잡아먹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뿌리의 기회’를 얻은 포자를 사냥할 시 ‘특수 퀘스트 : 포타스의 번식’이 발동된다.
(1/30)
- 특수 퀘스트 진행 시 ‘뿌리의 기회’를 얻은 개체 머리 위에 표식이 생긴다.
- 남은 시간 : 2일 23시간 46분 11초
‘특수 퀘스트’라는 것을 말이다.
“…네? 특수 퀘스트요?!”
“그렇습니다.”
‘개인 정보’ 개방 때에나 봤던 정체불명의 ‘아카식 레코드’가 재등장한 것도 놀라운데 여기에 특수 퀘스트라니.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임은 부정하지 못하나 중요한 건, 이 흔치 않은 경우에 당첨됐다는 것이었다.
“그런 게 있었구나…….”
훨씬 일찍 ‘고유 능력’을 개방한 한세정조차 모르는 복권 같은 일에.
하여.
“그러니 우린 식량 확보에도 주력하되 사냥 역시 이어 가야 합니다.”
“저희 둘이서… 할 수 있을까요?”
“해야죠. 아니, 해야만 합니다. 저도, 세정 씨도 목표가 있으니까요.”
“…목표.”
“또한 가능하다면 세정 씨도 이 특수 퀘스트를 진행하셨으면 합니다.”
“제가요?”
“예. 서로의 목표를 위해 제가 중심이 돼야 하겠지만, 보다 수월하게 일을 마무리 지으려면 세정 씨 역시 강해져야 할 테니까요.”
끄덕―
나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로 향후 계획을 세워 나갔다.
그러고는.
열의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는 한세정에게 잘해 보자는 의미로 마주 주억거려 준 뒤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일정도 다 짜였겠다.
더 이상 가만히 앉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우선 식량 수급부터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세정 씨가 활용할 만한 적당한 무기를 찾아보죠.”
“네.”
철컥―
희망이 있기 때문일까.
찬바람에 얼어붙은 철문을 열고 아래로 내려가는 우리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 순간.
지이이이잉―
“……!”
내 머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