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포식의 땅’.
나는 그곳에 발을 딛자마자 다른 것보다 곧 벌어질 전투 전까지 조금이라도 더 적응하기 위해 오로지 왼팔에 집중했다.
이식을 끝내고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전체적인 관절의 운동성이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할 수 있는 손톱의 특징에 대해서는 대부분 파악해 둔 상태다.
하지만 인간과 괴물이 비이상적으로 결합된 탓에 신체 불균형이 극심한 내가 미세한 것 하나로도 생사가 갈리는 전투에서 목숨을 지켜 내려면 겨우 이 정도로는 매우매우 부족했기에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후읍.”
촤아아아아악―!
숨을 확 들이켜며 뻗어 낸 왼팔이 시원한 파공성을 일으키며 전면을 갈라놓는다.
허나.
“으음.”
이미지로 그려 낸 괴물을 베어 낸 나는 되레 입술을 깨물며 눈을 찌푸렸다.
너무 어색해서.
사고로 오른팔을 잃고 나서 왼손잡이로 생활해 왔기에 웬만하면 무슨 일이든 크게 무리 없이 넘어가곤 했는데, 단순히 팔뿐 아니라 공격을 성사하는 데에 쓰인 디딤 발부터 이어지는 모든 행동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런 터라.
가급적이면 이 낯선 기분만이라도 없애 버리고자 다시금 섀도복싱을 이어 가려고 했으나.
후우우우우웅―
쿠우우웅!
“츠에에에에에엑!!”
“…벌써 나왔나.”
아무래도 시간 관계상 이곳에서만큼은 맨송맨송한 상태로 싸워야만 할 듯싶었다.
“츠에에엑!”
후우욱―
콰직!
홱 하고 옆을 지나간 손톱이 대지에 박혀 들어간다.
단단한 바위를 두부인 양 갈라 버리는 공격을 한층 가벼워진 몸놀림으로 회피한 나는 곧장 옆으로 돌며 주먹을 뻗었다.
‘흐읍!’
타닷―
후우우욱!
바람을 뭉개며 들어간 주먹에 플뤼가 팔을 들어 막아선다.
쿠웅!
부딪친 피부와 피부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충격파.
다만.
“츠에에엑!”
“쯧.”
이전처럼 기습의 이점도 없었고, 타격 지점도 허리 대신 팔이라 그런가.
제법 힘을 실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별다른 상처 없이 재차 돌격해 온 플뤼가 연달아 내지른 공격이 매섭게 사방을 헤집었다.
이에.
후욱―
탁―
‘흐읍!’
후욱―
탁―
‘흡!’
나 또한 재빨리 발을 놀려 뒤로 물러났다.
꽤나 아슬아슬한 상태였지만, 늘어난 감각과 순발력 덕분인지 상대의 공격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회피하는 게 가능했다.
그래서일까.
[남은 시간 : 278초]
[남은 시간 : 277초]
[남은 시간 : 276초]
‘4분 남짓, 해 보자.’
더더욱 이 힘을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먹게 된 나는 이를 악물고 플뤼의 손톱이 땅에 박히는 타이밍에 맞춰 순간적으로 승부를 걸었다.
목표는 머리나 몸통이 아닌 팔.
한 번에 골을 노리기보단 수비수부터 차근차근히 제쳐 갈 요량이었다.
“후아아아!”
크게 기합을 토해 내며 질러 낸 주먹.
온 힘을 다한 가격에 거친 폭음마저 들려왔다.
콰앙!
“츠에에엑!”
이번만큼은 플뤼도 담담하게 넘길 수 없었던 듯 비명을 쏟아 내며 처음으로 뒷걸음질 쳤다.
무려 세 걸음이나.
충격이 상당한 듯한 소리였기에 나는 기세를 잡고자 망설이지 않고 공격을 이어 가기 위해 상대적으로 무거운 오른팔을 확 잡아 빼는 반동으로 몸을 비틀며 손톱을 휘둘렀다.
슈욱―
좌측 하단에서 우측 상단로 올려 치는 역 대각선 베기.
여전히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위력은 강했다.
촤아아아악!!
“츠에에엑!!”
‘갈랐, 다!’
고양잇과 동물처럼.
원할 때마다 빼냈다 감추기가 가능한 손톱이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며 플뤼의 살가죽 위로 세 줄기의 상처를 만들어 냈다.
후두두둑―
후두둑―
“츠에엑! 츠에엑!!”
솟구치는 핏물 너머로 목청이 찢어지라고 소리 지르는 플뤼. 주먹을 친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확실히.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생명체에게는 타격기보다 이런 식의 공격이 훨씬 효과적인 것 같았다.
물론.
주먹질로 아예 골격을 부숴 버리거나 내장을 터트린다면야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여하튼 적잖은 대미지를 준 나는 오른팔로 땅을 짚었다가 밀어내는 식으로 자세를 바로잡으며 즉시 옆으로 몸을 날렸다.
감각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온다!’
슈우우우우욱!!
플뤼가 팔을 뻗는 행동이.
더 정확하게는.
“츠에엑!!”
고통에 정신이 나간 플뤼가 기술까지 발동해 나를 노리려 한다는 사실이 뇌리에 경보를 울리고 있었다.
알지 못했다면 모르지만.
이미 아는 정보요, 인지한 능력이었다. 여기에 대응력까지 있는데 멍청하게 당해 줄 리가 없었다.
나는 허무하게 흙더미에 묻힌 손톱을 응시하며 다리의 근육을 바짝 조였다.
그러고는.
한 걸음, 두 걸음.
“후아아아!!”
탁―
탁―
탁―
타다다다닷!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간격을 좁혀 양팔을 연속으로 휘둘렀다.
“하아!”
오르그의 주먹, 플뤼의 손톱.
두 괴물의 특성이 그대로 담긴 한 방 한 방이 마력 사용의 반동으로 움츠리던 상대의 품을 거칠게 파고들어 갔다.
퍼억―
서걱―
퍼억!
서걱!
순식간에 연달아 네 번의 타격음이 들리고 리듬에 맞춰 춤을 추듯 플뤼의 몸이 정신없이 밀린다.
“츠엑, 츠에에엑…….”
물러날 때마다 흘러나오는 늘어진 목소리.
본능이 꿈틀거렸다.
이제.
‘끝.’
마지막 한 방이면 된다고.
우우우웅―
나는 그 울림을 따라 오른팔에 행성 ‘웨이노르(Waynor)’에서는 에너지라 불리고, 지구에서는 ‘마력’이라 칭하는 기운을 담아냈다.
우우우웅!!
우웅!
어느새 새하얀 빛을 뿌려 대는 주먹.
“잘 먹어 주마.”
탁―
쿠우우우우우웅!!
“츠에에에엑……!”
나지막하게 읊조리며 쏘아 낸 대포가 위기를 직감하고 뒷걸음질 치던 플뤼의 몸뚱어리를 덮친다.
콰직!
콰직!
콰지직!
최후의 발버둥으로 들어 올린 플뤼의 팔을 수수깡처럼 으깨고 부수며 단숨에 가슴을 파고드는 주먹.
이를 마지막으로.
쾅!
털썩―
심장 부근이 사라진 시체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쓰러졌다.
[‘고유 능력 : 프레데터의 기억 포식’ 시뮬레이션이 종료되었습니다.]
[정해진 시간 내에 ‘기억 포식’을 성공하셨습니다.]
[육체가 온전한 진화를 이룩해 냅니다.]
[대상 「플뤼의 왼팔」에 담긴 ‘기억’을 포식합니다.]
[‘인간성’ 10%를 소모합니다.]
츄화아아악―
【 준비 돌입 】
쿵―
쿵―
쿵―
서서히 회복되어 가는 정신에 눈을 뜨며 약속했던 신호를 보냈다.
“아, 아윤 씨!”
그러자 어디선가 달려오는 한세정.
내 경고를 제법 주의 깊게 들었던 건지 그녀는 언제라도 빠져나갈 수 있도록 문 옆에 앉아 있었다.
아니.
막 앉으려던 중이었다.
“다 되신 건가요……?”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직접 경험하며 몇 분씩 시간을 보내는 나와 다르게 상대 입장에서 ‘기억 포식’은 촌각에 불과하다 보니 그냥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한세정에게 긍정의 의미로 주억거리며 몸을 일으킨 뒤 새롭게 각인된 플뤼의 기억과 함께 나타난 문장들을 하나둘 정리해 나갔다.
[축하합니다!]
[이식된 「플뤼의 왼팔」에 남아 있던 기억 속에서 ‘특별한 기술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종족 전용 기술 : 플뤼의 탄성 일격」을 습득합니다.]
[마력이 3 상승합니다.]
《기술 : 플뤼의 탄성 일격》
- 행성 ‘라티오(Latio)’의 지배종인 「플뤼」만이 개화 가능한 기술이다. 에너지를 담아 순간적으로 늘려 낸 팔로 상대를 격살한다. 소모된 에너지 양에 따라 최대 사거리 및 관통력과 절삭력이 달라진다.
‘후움, 이런 식이었네.’
뇌리를 타고 저장된 신기술의 사용법은 봐 왔던 대로 무척 간단했다.
조금 의외랄 게 있다면 거리와 공격력을 조절한다는 점?
특히.
거리가 늘어난다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몇 미터 정도 쏘아 내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니 얼마나 향상될지 당장 시험해 보고 싶었다.
가진 마력이라고 해 봐야 조금 전 상승한 것까지 더해 10밖에 없어 얼마 차이도 안 나겠지만.
“저는 10분은 걸릴 거라고 예상했는데…….”
“한 번 해 봐서 그런가 봅니다.”
“다행이네요, 솔직히 걱정도 조금 했거든요. 폭주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셔서 조금 무서웠어요. 헤헤. 그럼… 이제 다시 성풍 아파트로 가는 건가요?”
정리를 마칠 즈음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던 가방까지 가져온 한세정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진다.
슬그머니 묻는 물음에서 가능하다면 빨리 움직이고 싶다는 의도가 물씬 풍겨 왔다.
“예. 저도 세정 씨도 따로 휴식은 필요 없을 듯하니 바로 가시죠.”
“아, 네!”
대답이 마음에 든 걸까?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한 한세정이 혹시라도 내 마음이 바뀔까 걱정스럽기라도 한 듯 후다닥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런 그녀를 필두로 학원을 빠져나온 우리는 본 계획대로 성풍 아파트 단지로 출발했다.
한층 차가워진 밤공기로 가득한 도심은 상당히 한산했다.
아마.
플뤼가 죽으면서 뿜어낸 혈 향에 주변 시선이 쏠린 게 아닐까 싶었다.
덕분에 더욱 신난 한세정은 거의 질주하다시피 하며 거리를 내달렸고, 그렇게 열심히 이동한 끝에.
“저기!”
“도착했네요.”
사건·사고에 따라 최대 두세 시간까지 예상했던 성풍 아파트 단지까지 거의 10여 분 만에 다다를 수 있었다.
다만.
“잠시.”
“……?”
나는 바로 진입하지 않고 한세정과 함께 적당한 건물에 몸을 숨겼다.
장소 특성상 사람이 많으리라 추정되는 만큼 불곰파와 같은 무리가 존재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없더라도.
이젠 양쪽 팔이 괴물화된 나였다.
‘고유 능력’이니 뭐니 하며 이유를 대기도 전에 공격이 날아들지도 모르니 안전에 안전을 거듭하며 입성해야 했다.
“사람이든 괴물이든 누가 나타나면 바로 알려 주시고, 그들이 무기를 소유하고 있다면 신호를 보내는 즉시 뒤로 물러나 주세요.”
“네.”
“우선은 전투를 최대한 회피하며 집부터 찾겠습니다. 식량 탐사는 그 후에 시작할 테니 계단과 가까운 쪽부터 뒤져 보죠.”
“하시는 대로 따라갈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가 보죠.”
간략하게 단기 목표를 설정한 후.
감각을 최대한 곤두세우며 아파트 단지를 둘러싸고 있는 야트막한 담장으로 다가갔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훤히 드러나는 적막한 풍경.
즐비하게 들어선 건물 외에 딱히 보이는 건 없다.
시각 외에 청각이나 후각을 이용해서도 한 차례 스캔해 봤지만, 감각적인 부분에서도 무엇 하나 걸리질 않았다.
이에.
스윽―
손만 가볍게 까딱여 신호를 보낸 후 1m가 조금 안 되는 담장을 그대로 타고 넘었다.
탁―
탁―
두 그림자가 안으로 들어왔음에도 조용한 공간.
제성 초등학교에 터를 잡은 불곰파.
정문이나 후문 외에 담장 곳곳에도 망루와 초소를 세워 24시간 내내 사방을 주시하던 불곰파를 기준으로 삼았으나, 이쪽의 집단은 그 정도로 빡빡한 보안 체계를 유지하진 않는 것 같았다.
또는.
예측과 달리 집단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내게는 나쁠 게 없는 터라 무거웠던 발걸음이 약간이나마 가벼워졌다.
[102동]
‘여기부터 들르겠…….’
툭―
‘……?’
자그마한 무언가가 어깨에 떨어지기 전까지는.
나아가.
[「포타스」의 ‘복종 포자’와 접촉했습니다.]
[내부에 비축된 마력이 ‘복종 포자’의 진입을 방어합니다.]
[「포타스」가 자신의 ‘복종 포자’를 거부한 대상의 존재를 확인합니다.]
[당신을 제거하기 위해 감염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
그걸 기점으로 우후죽순 문장들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