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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18화 (18/232)

18화

내 예상에 확신을 더하듯.

“츠에에에엑!!”

후우우우웅―

콰앙!

“너무 느려.”

한세정은 기가 막히게 플뤼를 컨트롤하며 뒤를 노릴 수 있도록 전장 자체를 움직였다.

그 속에서 내가 할 일은 그저 가벼운 심호흡으로 심신을 긴장시키며 타이밍을 기다리다.

‘스읍, 후우우우…….’

“츠에에에엑!”

쾅!

‘지금!’

도발에 넘어간 플뤼가 비어 버린 공간을 내려찍는 순간, 완전한 무방비 상태로 드러난 등짝을 강타하는 것뿐이었다.

후우우욱―!

“츠에에… 츠읏!”

대기를 찢으며 나아가는 주먹.

그 느닷없는 일격에 한세정을 노리려던 놈이 반사적으로 몸을 비튼다.

사회화되어 생존 본능이 퇴화한 인간과 달리.

매일같이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에서 살아남아 지배종이 된 괴물의 본능적인 위기 감지 능력이었다.

조금 더 빨랐다면.

후우우우욱―

쿠웅!

콰드드득!!

뭔가 달라졌을지 모를.

“…츠에엑!!”

연달아 터져 나오는 끔찍한 소음을 동반하며 손끝의 감각이 요동친다.

따로 확인하지 않아도 심대한 타격을 입혔음을 직감한 나는 공격 성공 직후 미련 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촤아아아악―!

무언가가 옆을 확 지나가며 지면을 강타했다.

마치 칼날에 베인 듯 갈라진 아스팔트.

한세정이 말했던 대로 고무줄처럼 늘어난 손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급하게 쏘아 내느라 정확도는 형편없었지만, 맞았다면 뼈 한두 개쯤 부러지는 걸로 끝났지 않았을 위력에 시선이 한세정에게로 옮겨 갔다.

그녀가 앞서서 도발을 해 주지 않았더라면, 더 이전에 이런저런 정보를 알려 주지 않았더라면.

‘저놈이 아니라 내가 바닥에 굴렀으려나.’

지금쯤 저 기형적인 공격에 당해 역으로 쓰러졌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래서.

정보를 수집하고 믿을 만한 동료를 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리라. 문장 한 줄, 사람 한 명으로 삶과 죽음이 갈리는 세상이었으니까.

“츠에에엑!!”

‘후읍.’

탁―

타닷―

나는 그런 상념을 하며 바닥에 드러누운 채 경련하고 있는 플뤼에게 잰걸음으로 다가갔다.

비장의 한 수까지 모두 사용한 탓인지 겨우 고개만 돌려 으르렁거리는 놈.

그 면상에 정확히 주먹을 박아 넣었다.

후우우욱―

쾅!

거친 폭발음을 내며 단숨에 땅바닥에 처박힌 성인 남자 상체의 반만 한 머리통.

“츠엑! 츳… 츠에에에엑!!”

콰직―

푸화하학―

위아래로 전해지는 압력이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지르며 나를 밀어내려 발버둥 치던 플뤼는 끝내 잘 익은 수박처럼 머리가 박살 나며 숨을 거뒀다.

매우 간단하고도 허무한 결말.

탁탁―

그 비루한 죽음을 앞에 두고 손에 묻은 피를 털고 있자 상황을 지켜보던 한세정이 곁으로 다가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엄청나게 강하시네요……. 저 혼자였으면 도망만 쳤을 텐데.”

공격보다는 회피 위주로 종말을 버텨 온 한세정에게 있어서 괴물을 단 두 방으로 죽여 없애는 나라는 존재는 무척 대단하게 보이는 듯했다.

이 성과를 거두는 데 그녀의 도움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에도 말이다.

“피 냄새나 소음 때문에 다른 놈들이 몰려올 수도 있으니 주변 경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나는 그런 한세정에게 사주 경계를 맡기고 죽은 플뤼의 팔을 들어 꼼꼼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눈대중으로 보았던 것만큼 괜찮은 육체인지.

‘두께는 오르그보다 2~3cm가량 작고, 길이도… 손톱까지 더해도 밀리네. 같은 팔을 이식하지 않는 이상 불균형은 어쩔 수 없는 건가? 여하튼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만하면 나쁘지 않아. 어차피 맞지 않는다 싶으면 다른 육체로 갈아타면 그만이니. 좋아.’

면밀히 검토해 본 결과.

딱히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나는 곧바로 이식 수술을 준비했다.

꾸물댈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하면 되나?’

습득한 이후로 처음 사용해 보는 터라 약간의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왼손으로 플뤼의 왼팔을 붙잡으며 기술의 명칭을 떠올렸다.

‘프레데터의 하위 진화론.’

그러자.

우우우우웅―

어둠 사이로 빛무리가 반짝이더니, 몇 줄의 문장과 함께 작은 홀로그램 화면이 나타났다.

[‘기술 : 프레데터의 하위 진화론’을 발동합니다.]

[진화에 사용될 제물이 존재합니다.]

[당신이 이룩할 진화 과정을 선택해 주십시오.]

[흡수 이식]

[변형 이식]

툭―

손가락을 들어 화면을 터치하자 그 아래로 다시 여러 개의 항목이 떠오른다.

[「흡수 이식」을 선택하셨습니다.]

[흡수할 신체 부위를 선택해 주십시오.]

[현재 이식 가능한 신체 부위 : 오른팔, 왼팔, 다리(4/4)]

선택의 연속.

허나 플뤼에게서는 왼팔 이외에 가져갈 마음이 없었기에 고르는 건 금방이었다.

단지.

[대상 「플뤼」의 ‘왼팔’을 선택하셨습니다.]

[진화를 시작합니다.]

[다가올 고통에 대비하십시오.]

부지불식간에 찾아온 고통에 전신을 뒤트는 것도 금방이었기에 문제였을 뿐.

‘……!! 끄으으으으읍!!’

털썩―

수백만 년, 수천만 년을 넘어 수억 년에 걸쳐 이룩되는 진화를 단 몇 시간, 몇 분, 몇 초 단위로 압축하기 위해선 가히 어마어마하다는 표현을 그대로 빼다 박은 통증을 견뎌 내야만 했다.

이미 한 번 겪어 봤지만, 여전히 신선하고 낯선 진통이 온몸을 뒤틀고 찢어발긴다.

실제로 변화되는 건 왼팔뿐이었으나.

이제껏 갖고 있었던, 영혼에 새겨진 상식을 깨부수려 일부가 아닌 전체를 헤집어 놓았다.

우드득―

우득―

콰직!

그 여파 속에서 내 왼팔과 플뤼의 왼팔은 서로 한데 뭉쳐졌다.

아니다.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흡수’라는 명칭에 맞게 맨 바깥쪽의 피부부터 가장 깊숙이 박혀 있는 골격까지 일시에 입을 벌리고서 플뤼의 육체를 잡아먹고 있었다.

기괴하다 못해 혐오스럽기까지 한 형상.

헌데.

더 놀라운 것은 감각이다.

우득―

우드득―

아픈 와중에도 잡아먹히는 세포 하나하나가 선명히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살점같이 큰 덩어리가 아니라.

도구의 도움 없이는 눈으로 볼 수도 없는 세포의 흡수 과정이 최초부터 최후까지 또렷하게 뇌리로 전달되는 중이었다.

그 마지막 식사에 이르렀을 때.

콰직!

“아.”

도대체 얼마나 흐른 건지 시간의 흐름조차 감지하지 못할 만큼 집요하게 괴롭히던 고통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흡수가.

이식이 완료되었다는 뜻이었다.

[축하합니다!]

[「플뤼」의 ‘왼팔’ 이식에 성공했습니다.]

[대상 「플뤼」가 보유 중이던 신체 능력 일부가 전이되었습니다.]

[‘인간성’ 10%를 소모합니다.]

기다렸던 깨달음이 찾아옴과 동시에 특별한 지표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변경 전

- 근력 : 19

- 체력 : 8

- 내구 : 14

- 순발력 : 13

- 마력 : 4

- 감각 : 7

*변경 후

- 근력 : 26

- 체력 : 11

- 내구 : 17

- 순발력 : 18

- 마력 : 7

- 감각 : 10

“미친…….”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올 정도로 폭증된 신체 능력을 보여 주며.

도합 ‘22’나 되는 신체 능력의 격변에 무심코 이렇게 무한정 신체를 갈아 끼운다면 2주는커녕 사나흘 안에 불곰파를 뒤집어엎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마저 들었다.

허나.

좋아하기엔 아직 일렀다.

[그러나…….]

‘…그러나?’

알지 못했던 제약과 마주한 탓이었다.

[그러나 ‘왼팔’에 남아 있는 「플뤼」의 기억마저 포식하지 않는 한 불완전한 성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온전한 진화를 위해 지금부터 ‘666초’ 이내에 「기억 포식」을 성공해 내야 합니다.]

[「기억 포식」에 실패하거나 혹 「기억 포식」 행위 자체를 시도하지 않을 경우 향상된 능력은 4분의 1로 하락합니다.]

[남은 시간 : 666초]

[남은 시간 : 665초]

[남은 시간 : 664초]

‘이런 게 있었나…….’

무조건적인 성공 특전이 적용되었던 오르그 때와는 판이한 전개.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고민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10분 남짓 안에 결정을 끝내야 했으니까.

‘…애써 이식해 놓고 저걸 포기할 수는 없어. 더군다나 기억 포식은 어차피 했어야 할 일.’

따라서.

가부를 정하는 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애당초.

이는 고심할 거리도 아니었다. 리스크를 짊어지기로 다짐하지 않았던가.

다만 안전하지 않은 장소에서 ‘기억 포식’을 진행할 수는 없었기에 우선 근원석을 추출하며 한세정을 불렀다.

“와…….”

제법 멀리까지 돌아다니며 경계를 서던 한세정은 돌아오자마자 플뤼의 것으로 교체된 왼팔을 보며 탄성을 내뱉었다.

물론.

한가로이 감상평을 늘어놓을 여유는 없었기에.

“이것부터 받으시죠.”

“네? 아, 안 주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그보다 일단 자리부터 옮겨야겠습니다.”

근원석을 넘겨주며 벌어진 입을 막고서 앞장서서 자리를 박찼다.

* * *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저기, 저기는 어떤가요?!”

빠르게 빌딩들을 지나치던 와중에 한세정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문이 활짝 열려 있는 학원이었다.

외침을 듣고서 눈으로 스캔을 하던 나는 그녀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열려 있다는 건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단 의미. 더군다나 2층이었기에 여차하면 창문을 넘어 뛰어내리기에도 충분할 터.

“가죠.”

“네!”

당분간 머무르기에 딱이라는 생각에 즉시 학원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안에는 난잡하게 나뒹구는 책상 따위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었다.

철컥―

나는 힐끔 남은 시간을 체크하며 문을 잠그고는 한세정에게 ‘기억 포식’에 들어갈 것을 알렸다.

당연히.

“지금부터 제일 중요한 ‘안정화 작업’을 할 겁니다.”

“안정화 작업, 그래서 여길…….”

“네. 5분 안에 처리해야 하는 탓에 이제야 말씀드린 점,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나 걸릴진 모르지만, 쉬고 계시면 금방 끝내겠습니다.”

“그럼 주변 경계하면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알겠습니다.”

진실에 거짓을 씌워서.

다만.

딱 한 가지만은 진실을 고했다.

“세정 씨.”

“네?”

“안정화 작업을 마치면 바닥을 손으로 세 번 두드리겠습니다. 혹시 미리 정한 사인 외에 다른 반응을 보인다면… 주저하지 말고 멀어지세요.”

“네? 멀어져요?”

“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안정화 작업에 실패할 시 이성을 잃고 폭주하기 때문입니다.”

이것만큼은 숨길 수가 없었다.

괜한 소리를 해 대는 걸지도 모르지만, 직접 구한 데다가 동행한 사이였다.

특히나.

누나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이상 적어도 나로 인해 사고가 생기는 건 막고 싶었다.

“명심하세요. 바닥을 세 번 두드릴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피하세요.”

“그럴…게요.”

머릿속에 각인시키듯.

진지한 눈빛으로 한 번 더 경고하고 나서 서서히 떨어지는 한세정을 지켜보다 눈을 감고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고유 능력 : 프레데터의 기억 포식.’

한 자, 한 자,

내뱉어진 음성이 공기 중에 흩어지고.

[‘고유 능력 : 프레데터의 기억 포식’이 발동됩니다.]

[당신의 영혼이 〈포식의 땅〉으로 이동합니다.]

붉은 하늘 아래 풀 한 포기 존재하지 않는 황무지가 나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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