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 임시 동행 】
“그렇게, 된 거였군요.”
한세정의 짧지만 강렬했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한 박자 쉬고 응답했다.
다른 일이었다면 몰라도.
불곰파와 관련된 상황에서 행운에 기대야 했다는 현실이 너무나도 비참했기 때문이었다. 내 실력이 부족했다는 걸 더 강조하는 것 같았으니까.
이런 내 마음이 겉으로 드러났는지.
“괜찮, 으시죠……?”
얘기를 마치고 어색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한세정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무의식적으로 이마를 찡그린 날 보며 혹여나 또 아픈 곳이 생긴 건 아닌가 노심초사하는 눈치였다.
내가 다치게 된 게 온전히 그녀 탓이었다 보니 자그마한 행동에도 신경이 쓰이는 듯했다.
“괜찮습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대강 대답한 뒤 조용히 눈을 감고 들끓던 감정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심호흡하며 분노가 조금 가라앉자 자연스레 지난 전투 과정이 떠올랐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부족했던 싸움.
복기를 이어 갈수록 모자란 부분들이 수면 위로 마구 솟구쳤다. 그중에서 단연 시선을 사로잡는 건 역시나 마지막 장면.
‘분노 조절 장애.’
이성이 아닌 본능에, 정확한 판단이 아닌 단순한 감정에 몸을 맡겼을 때 일어난 사건이었다.
오르그의 육체를 이식함으로써 소모되었던 10%의 ‘인간성’.
그 공백으로 인해 생겨난 정신병 ‘미약한 분노 조절 장애’가 어떠한 문제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간 꾸준히 염려해 왔다.
겪어 보진 않았지만.
무엇이 됐든 내게는 좋지 않으리란 걸 직감하고 있었으니까. 그랬기에 일부러 일정까지 틀며 헌혈 카페로 가려 하지 않았던가.
헌데.
직접 경험해 보니 완전히 상상 이상이었다.
‘그런 식으로 날뛸 거라고는…….’
당시의 나는.
그저 눈앞의 상대를 찢어 죽이기 위해 살아 있는 짐승,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정도 위치에 불과했다.
장담하건대.
만일 김성원이라는 남자를 죽이고서 기력이 다하지 않았다면… 아마 한세정에게까지 손을 댔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도심을 뛰어다니며 살아 있는 생물이라면 닥치는 대로 처 죽여 심장을 뜯어 먹었으리라.
‘…….’
입가에 피를 묻힌 채로 서 있던 그 모습을 회상하면 아직도 속이 울렁거린다. 왼쪽 가슴뿐 아니라 배 속에서도 심장이 박동하는 기분.
다만.
인제 와서 생각해 보면 더러워진 기분과 달리 이성을 잃었을 때가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인 것만은 또 아니었다.
그 지경에서 폭주하지 않았더라면 되레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테니까.
‘마력의 네 배만큼…이었나.’
근력, 순발력, 체력 등.
모든 신체 능력이 순간적으로 16씩이나 상승했던 순간적인 진화.
‘최초’라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결과였고, 앞으로는 절반의 효과밖에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가히 놀라운 힘이었다.
무엇보다.
이는 ‘마력’ 능력치에 따라 향상 폭이 달라지는 가변적인 힘이라는 걸 고려했을 때, 어느 정도 성장을 한 미래에는 마치 헐크가 된 배너 박사처럼 압도적인 파괴력을 앞세워 날뛰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터였다.
그래서였을까.
‘제어, 할 수 있을까?’
불현듯.
처음과 달리 점차 헐크가 된 상태에서도 이성을 유지하던 배너 박사처럼, 일종의 각성 상태인 ‘분노 조절 장애’로 육체를 강화하면서도 또렷하게 정신을 유지할 방법이 없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당연히 쉽진 않겠지만.
해낸다면 단기간에 폭발적인 성장을 거둬야만 하는 내게는 엄청난 무기가 될 게 분명했으니까.
‘차원 상점, 그곳이라면…….’
고민을 하다 보니 전 차원의 물건을 사고파는 차원 상점에는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믿기 힘든 신비한 아이템이 널려 있는 곳이니 확률은 충분했다.
‘차원 상점을 찾아가야 할 이유가 늘었네.’
꽤나 현실성 있는 생각이라고 확신이 들자 지금의 계획을 머릿속에 단단히 저장시켰다.
한 번쯤은 해 보기로.
실패한다 해서 딱히 손해 볼 건 없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만 기댈 작정은 아니었다. 확률이 존재할 뿐이지, 100% 성공을 보장하는 계획이 아닌 이상 내가 바라봐야 할 목표는 ‘현재의 나’였다.
‘실력을 늘려야 해.’
다시는 그리되고 싶지 않았다.
고작 간부.
그마저도 이제 갓 간부 명함을 단 신입을 상대로 동귀어진(同歸於盡)을 각오해야 하는 비루한 수준을 벗어나야 했다.
그러려면?
답은 하나밖에 없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더 많은 육체를 이식하고 기억을 포식해야 한다!’
비어 있는 왼팔, 두 다리에 이마.
부족한 ‘인간성’이 어떤 파급 효과를 불러오는지 똑똑히 경험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애당초 본신의 힘이 강했다면 ‘분노 조절 장애’로 날뛰는 사태도 일어나지 않았을 터였다.
하물며.
우연인지 운명인지.
[일정량 이상의 「인간의 피」를 섭취했습니다.]
[소실되었던 ‘인간성’이 5% 회복됩니다.]
[향후 24시간 동안은 ‘동일한 피’를 섭취하더라도 회복 효과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의도하진 않았으나 김성원의 심장을 뜯어 먹는 과정에서 ‘인간성’이 절반이나 회복된 상황.
그러니.
‘해 보자.’
나는 조금 과하다 싶더라도 칼날을 들이밀기로 결심했다.
종말 초기라면 모를까.
웬만한 이들은 대부분 자기만의 무기를 확고하게 갖춰 놓은 시기인 만큼 그것을 따라잡거나 혹은 그 이상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위험하더라도 리스크를 감수하는 게 옳은 선택으로 보였다.
* * *
꼬르르르르륵―
“…….”
“아!”
나름대로 고민에 관한 답을 찾아가던 즈음.
세상 익숙한 소리가 나를 일깨웠다. 슬쩍 눈을 떠 보니 한세정이 새빨개진 얼굴로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간호에만 집중하느라 밥도 제대로 먹지 않은 것 같았다.
가방이 근처에 있고, 물을 찾으면서 고구마나 감자가 있는 걸 봤으니 손을 댈 만도 했을 텐데.
“아무것도 안 드셨습니까.”
“그, 그게…….”
“…이거라도 드시죠.”
허둥지둥 대답하는 한세정을 바라보다가 가방을 끌어와 안에서 고구마 하나를 꺼내 건넸다.
“감사합니다…….”
한세정은 손에 쥐여 준 고구마 하나에도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겨우 주먹보다 약간 큰 크기에 불과했지만, 현 시국에선 이마저도 매우 귀한 식량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아삭―
아껴 먹으려는 듯 겉에 묻은 흙을 털어 내고 끄트머리부터 조금씩 베어 먹는 한세정.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나도 감자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입 안 가득 느껴지는 떫은맛을 이겨 내며 허공으로 시선을 옮겼다.
시야 한쪽에 도합 열 줄이 넘어가는 문장들이 둥둥 떠다녔다.
본인이 확실하게 인지할 때까지 남아 있어야 하는 건가 싶은 문장들 속에는 이성을 잃기 전부터 전투가 끝난 이후의 과정이 축약되어 있었다.
개중 나는 가장 마지막 단에 집중했다.
[「인간의 심장」을 섭취했습니다.]
[상처 회복 및 재생 능력이 200% 향상됩니다.]
‘이것 덕분이었나.’
한세정이 말하던, 갑작스럽게 상처가 회복되었다던 기적.
허나.
당연하게도 그런 기적이 그냥 일어날 리는 없었기에 이유가 꽤나 궁금했는데, 역시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하더니.
심장을 취한 효과가 여기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굳이 인간의 심장이라고 꼬집어서 표현한 이유가 있는 건가.’
가볍게 읽고 넘기려던 나는 유독 ‘인간의 심장’이라는 단어가 걸렸다.
괜한 의심일지도 모르나 아무리 봐도 꼭 ‘인간의 심장은 이러한 효력을 지녔다’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혹여 괴물의 심장이나 짐승의 심장엔 또 다른 효능이 존재한다는 뜻인 걸까?
그게 아니라면 구태여 저렇게 적어 놓을 까닭이 없어 보인다만…….
‘진짜 돌아 버리겠네.’
이걸 알아보기 위해 괴물과 짐승의 심장을 일일이 씹어 삼키고 있을 날 상상하니 정말이지 아찔했다.
더욱이.
가급적이면 상상으로 그치고 싶었으나 왠지 며칠 안에 이 악물고 실험하고 있을 것 같…….
촤르륵!
절로 치밀어오르는 한숨을 내쉬던 차에, 또다시 내 상념을 방해하는 소음이 들렸다.
“……?”
소음을 향해 시선을 돌리니 이번에도 역시 한세정이 그 중심에 있었고.
“그게… 죄송해요. 화, 화장실을 가고 싶어서…….”
또한 이번에도 어쩔 수 없는 이유였다.
그녀는.
벌써 두 번씩이나 원치 않게 속을 드러낸 탓에 상당히 난처한 얼굴로 말을 하며 이마를 꼭 누르는 중이었다.
다만.
덕분에 한세정의 발목에 족쇄가 채워져 있음이 생각난 나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잠깐 다리 좀 보여 주시겠습니까? 가능하다면 그 족쇄, 풀어드리겠습니다.”
오히려 잘됐다는 마음에, 민망할지도 모르지만 불곰파의 흔적이자 잔재라고 할 수 있는 족쇄를 부숴 버리고자 말을 꺼냈다.
“이, 이걸요?”
“다칠지도 모르니 무리해서 풀 생각은 없지만, 풀 수 있는데도 굳이 채워 놓을 필요는 없을 테니.”
“그럴 수만 있다면…….”
한세정은 족쇄를 풀 수만 있다면 민망함이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발목을 보였다.
쇳조각 부딪치는 듣기 싫은 소음 사이로 보이는 앙상한 다리.
도망치기 직전까지 제대로 먹지도 못했던 건지 거의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말라 있었다.
스윽―
철컥!
오른손으로 가볍게 족쇄를 잡아 봤다.
‘될 거 같은데?’
두꺼운 손가락으로 조금씩 만져 보니 예상외로 족쇄가 얇아 잘하면 무난하게 파괴할 수 있을 듯싶었다.
겨우 이런 사슬에 누나가 묶여 있었어야 했다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쓸데없는 잡념을 털어 내며 한세정에게 말하자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짧은 말과 동시에 어서 부숴 달라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한세정의 다리를 붙잡았다.
거침없는 행동에 그녀가 순간적으로 움찔 몸을 떨었으나, 막무가내로 족쇄를 끊어 냈다간 필시 사고가 날 터라 어쩔 수 없었다.
‘후우.’
우선 왼손으로 다리를 밀어 사슬과 몸 사이에 틈을 벌려 놓은 후.
꽈아아아아악―!
그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어 서서히 강도를 높여 가며 힘을 주자.
툭―
투둑―
열쇠 구멍 판이 천천히 구겨지며 오그라지는 소리를 내다가 한순간에 퍽 하고 부러지며 사슬이 풀렸다.
같은 방식으로 반대쪽 다리에 걸린 족쇄마저 해체하자 너무나도 간단하게 구속에서 풀려나는 한세정.
“아, 아아……!”
그녀는 족쇄의 속박에서 벗어나자 허망한 눈빛으로 박살 난 조각을 들어 만지작거리다 이내 왈칵 눈물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오열.
이 별거 아닌 족쇄 때문에 나락까지 떨어져야 했던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흐읍, 흡……. 감사, 감사해요…….”
거의 10여 분이 지나서야 차츰차츰 감정을 추스른 한세정이 엉망이 된 얼굴을 급히 닦으며 입을 열었다.
억지로 울먹거림을 참고 힘겹게 내놓은 한마디.
누군가 우리를 도와주었다면, 그로 인해 누나가 풀려날 수 있었다면 저런 모습이었을까?
“…서로 받은 게 있으니 인사는 됐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
뭣도 안 되는 후회는 지워 내며 이제껏 내 물수건으로 쓰던 옷 조각을 주어 간단하게나마 정리하도록 도왔다.
그러고는 잠시 기다리는데.
“저기…….”
“예?”
묵묵히 얼굴을 닦아 가던 한세정이 뜬금없이 나를 불렀다.
의아하게 바라보자 슬그머니 고개를 든 그녀가 내 눈동자를 정확하게 응시하며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저를.”
자신을.
아니.
“제 친구도, 구원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자신의 친구를 살려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