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콰앙!!
완연한 아침이 빚어낸 햇살을 맞으며 문을 열기 무섭게 뒤쪽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니.
“키에에에엑!!”
“키에에엑!”
막아 두었던 통로 입구를 몸으로 부딪쳐 뚫어 낸 괴물들이 포효와 함께 바깥으로 튀어나오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런, 제기랄……!’
욕이 절로 나왔다.
퇴폐업소에서 철문으로 막아 두면서 거리를 꽤 벌렸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여기까지 쫓아왔을 줄이야.
아무래도.
통로를 넘어와 화장실에 도착한 이후로 새로운 위험 요인이 있는지 살피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된 탓에 거리가 다시 좁혀진 것 같았다.
적당히 지쳐서 나가떨어졌으면 좋으련만.
끼이이익!
쿵―
‘흐읍!’
나는 속으로 괴물들의 끈질김을 끊임없이 욕하며 반쯤 열려 가던 문을 확 밀어젖힌 후 바깥으로 몸을 던졌다.
아직 제대로 살피지 못한 탓에 바깥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 터라 불안과 걱정이 확 밀려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부디 안전하기만을 바라며 내디딘 발걸음 사이로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던 도심의 정경.
어쩐지.
아침이라고는 해도 빛이 너무 많이 들어온다 싶더니만. 퇴폐업소와 연결된 곳은 어느 건물 내부가 아니라 도심 거리에 위치한 공중화장실이었다.
물론.
솔직하게 말하자면 어디든 딱히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습관처럼 사방을 훑어 가는 시야 사이로 뭐가 보이냐 아니냐에 주목하고 있을 뿐.
다행히 당장 경계에 걸리는 장애물은 없었다.
즉.
따라잡히지만 않으면 된다는 뜻.
‘흐으읍!’
쿠웅―
쿵―
찰나일지언정 걱정거리가 사라지니 쭉 뻗은 다리에 더욱 힘이 실렸다.
그런 내 움직임에 맞춰 괴물들 역시 지체 없이 화장실 밖으로 뛰어나왔…….
치이이이익―!!
쿠당탕탕!
“키에엑! 케엑! 케에엑!”
“……?”
뭐지?
바닥을 부수며 쫓아오던 괴물 하나가 갑작스레 날개 꺾인 새처럼 뚝 떨어져서는 땅을 구르기 시작한다.
주둥아리에서도 살기등등하던 포효 대신 고통으로 범벅된 비명을 지르며.
그뿐만이 아니다.
땅바닥을 나뒹구는 괴물의 몸에서 흡사 뜨겁게 달궈진 철판 위에 고기를 올려놓은 듯한 소리가 연거푸 들리더니 이내 검은 연기마저 치솟았다.
대체 왜?
치이이이익―
치이익―
“켁! 케엑! 케에엑!”
“뭐, 뭐야.”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사태에 지켜보는 내가 다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의아해하는 사이 선두의 괴물을 뒤따라 나왔던 또 다른 놈들도 몇 걸음 떼지 못하고 똑같은 신세로 전락한다.
자그마치.
“키에에엑!”
“케엑! 켁.”
선두를 포함해 무려 괴물 세 마리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그저 바닥에 누워 꿈틀거리는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던 내 머릿속으로 불현듯 오래전에 봤던 영화가 떠올랐다.
전체적인 스토리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결말이 세 가지나 되는 특이성으로 더 유명해진 영화 속에 등장했던 ‘좀비’들의 ‘약점’이 오버랩되고 있었다.
으레 느리고 멍청하게 표현되던 여타 좀비와 달리, 매우 지능적이고 빠른 움직임으로 인간들을 말살시켜 가던 그 영화 좀비들이 가지고 있던 유일한 결점.
“설마, 햇빛 때문에……?”
오로지 그늘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었던 한계가 말이다.
지금 괴물들의 형세가 딱 그와 같았다.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당장 저 통로를 빠져나온 직후만 하더라도 지옥 끝까지 쫓아와 갈기갈기 찢어 버릴 듯 날뛰던 놈들이 밖에 나오자마자 맥을 못 춘다?
이건 아무리 봐도 햇빛 때문일 가능성이 90% 이상이었다.
치이이이익―
치이이익―
“키에에엑!”
“케엑! 케엑!”
“확실해.”
한 번, 두 번.
스스로 반박하고 되물으며 다른 원인을 찾아봤으나 떠오르는 게 없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확고하게 결론을 내렸다.
햇빛.
마치 뱀파이어들이 빛을 보지 못하듯, 저 괴물들 또한 태양을 직접적으로 마주하지 못한다고.
“야행성인 것도 그래서였나.”
하나를 깨닫자 자연스레 다음 의문이 해결된다.
정보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몰랐다면 무작정 도망만 치고 있었을 터인데, 의도치 않았으나 약점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 덕분에 생사의 갈림길에서 목숨을 건진 것으로도 모자라.
“이에엑…….”
“케엑! 케에엑…….”
“세 마리, 이번에는 기술이 나왔으면 좋겠네.”
셋이나 되는 괴물을 상대로 별다른 전투나 희생 없이 손쉽게 승리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게 되었다.
날카로운 이빨을 내보이며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은 괴물 다섯 마리가 코앞에서 지켜보고 있음에도 일말의 걱정 없이 여유롭게.
허나.
방심은 금물이다.
‘쓸데없는 여유 부리지 말고 최대한 간결하게 끝내자.’
상황이 좋든 나쁘든 간에 내가 취할 스텐스는 같아야 한다. 언제 어떤 변수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더군다나.
난.
여전히 포식자가 아니라 피식자였다.
그러니.
‘우선, 하나.’
후우우우욱―
괜히 여유 부린답시고 일 그르치지 말고 최대한 빠르고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나는 그 일념으로 이젠 연기에 휩싸이다시피 한 괴물 앞에 서서 장포 안에 감춰 놓았던 오른팔을 꺼내 정확하게 머리를 노렸다.
콰직!
울려 퍼지는 파육음.
매섭게 쏘아진 주먹이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금세 앙상해진 괴물의 머리통을 단숨에 으깨 버렸다.
생각한 대로 무척이나 깔끔한 일격이었다.
“좋아.”
나는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충격을 털어 내며 곧바로 추출 작업을 명령한 뒤 다른 괴물을 향해 이동했다.
“키에엑! 키엑!”
상대적으로 늦게 나온 터라 비교적 힘이 남아 있는지. 아니면 동족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본 탓인지 가까이 다가가자 모든 힘을 끌어내 발악하는 두 번째 개체.
하지만.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미 육체 곳곳이 불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날카로운 이빨이나 칼날처럼 예리한 발톱을 쓰지 못하는 맹수 따위.
‘둘.’
후우우욱―
콰드득!
‘셋.’
콰직!
결국 오르그의 주먹에 잡아먹혀 죽음을 맞이할 뿐이었다.
[대상 「페르니스」의 추출이 완료되었습니다.]
[‘1등급 근원석’을 습득합니다.]
단번에 세 마리를 내리 죽이고 추출까지 끝내자 ‘튜토리얼’에서처럼 손아귀로 세 개의 근원석이 떨어졌다.
헌데.
개수만 같을 뿐, 담고 있는 내용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1등급 근원석 : 페르니스》
- 대상 ‘페르니스’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근원석이다. 복용 시 ‘순발력’ 또는 ‘감각’이 상승하며 낮은 확률로 기술 ‘끈질긴 추적’을 획득한다.
“감각?”
이제껏 본 적 없었던 신체 능력이 붙어 있다. ‘개인 정보’상에 존재하지 않던 능력치가.
그렇다는 말은.
‘다섯 개가 전부가 아니라는 건가.’
좋은 데이터를 얻었다.
기존의 능력치 이외의 새로운 항목이라. 과연 얼마나 많은 항목이 존재할는지 의문이 샘솟는다.
당연히.
얻고자 하는 욕구 역시 피어올랐다. 많으면 많을수록 복수에 도움이 될 테니까.
꿀꺽―
나는 그런 욕망을 느끼며 세 개의 근원석을 모조리 먹어 치웠다. 새로운 신체 능력치까지 등장한 이상 이번에는 더더욱 흡수하고 싶었다.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근원석의 기운.
‘감각, 감각만 나와라.’
위장에 꽉 들어찼다가 사르르 녹아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근원석의 흐름을 따라가며 속으로 ‘감각’이 나오길 간절히 기도했다.
여기서 얻지 못하면 또 언제 얻을지 모를 능력.
가능하다면.
되도록 빨리 얻어 가고 싶었다.
[‘1등급 근원석’을 복용했습니다.]
[순발력이 1 상승합니다.]
“아.”
간절한 염원이 하늘에 닿았을까?
게 눈 감추듯 삼켜 버린 근원석이 완전히 소화되며 주르륵 올라오는 문장들을 읽어 내려가던 내 입에서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그저 ‘감각’이라는 새로운 능력치만 얻는다면 만족하리라 생각 중이었거늘.
[감각이 2 상승합니다.]
[새로운 신체 능력을 개방했습니다.]
[보상으로 해당 신체 능력(감각)이 3 상승합니다.]
[기술 ‘끈질긴 추적’을 습득합니다.]
[감각이 2 상승합니다.]
마음을 비운 덕분인지 ‘감각’ 능력이 추가된 데다가 심지어 기술까지 습득하다니.
현시점에서 낼 수 있는 최상의 성과.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감각》
-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에 이르는 다섯 가지 감각을 더욱 섬세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기술 : 끈질긴 추적》
- 행성 ‘칼라녹스(Callanox)’의 지배종 「페르니스」의 기술. 목표로 정한 대상의 ‘냄새’를 기억해 최대 1km까지 쫓아갈 수 있다. ‘감각’ 능력에 비례하여 추적 범위가 늘어난다.
새로운 능력치와 기술 습득을 축하하듯 시야를 가득 채우며 나타난 두 개의 홀로그램 화면.
그와 동시에.
지잉―
짤막한 진동이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일직선을 그리며 온몸을 뒤흔들어 놓자 몸에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일순간 시야가 탁 트였으며, 귀가 활짝 열렸고, 코를 타고 스며들어 오는 갖가지 향이 보다 명확하게 구분되는 등.
‘이게, 감각의 힘인가?’
환골탈태 같은 엄청난 수준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모든 감각이 전보다 훨씬 예민해졌음은 확실했다.
꼭.
오른팔을 처음 이식했을 때처럼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낯선 기분이랄까.
근력이나 순발력 등은 벌써 몇 차례나 올랐음에도 이러한 변화를 느껴 보지 못했는데, 한꺼번에 도합 7이나 올라서 그런 건가.
뭐가 어찌 되었든.
“기분은 좋네.”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정도였으니 좋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작금의 변화로 인해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한 발 나아갔음을 명백하게 직감할 수 있었으니까.
스윽―
그래서였을까.
자연스레 화장실 쪽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고작 세 마리만으로도 이러한 성장을 겪었으니 저기 남아 있는 다섯 마리까지 모두 사냥해 흡수한다면 과연 얼마나 더 성장할 것인가 경험해 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하지만.
때에 따라 욕망을 억누를 줄도 알아야 한다.
“다섯 마리……. 밖이 아니면 힘들겠지.”
마음 같아선 다 때려잡고 싶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차라리 순발력이 눈에 띄게 상승했다면 시도해 볼 만해도 했겠으나, 새로 얻은 기술도 철저히 추적용이고 하니 현재의 능력으로 페르니스 다섯은 상처 입기를 각오하지 않는 한 아직도 무리였다.
상처는 곧 죽음을 불러들일 테고.
더군다나.
아침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침이었기에 페르니스를 사냥할 수 있었건만, 이제는 아침이기에 페르니스를 사냥할 수 없었다.
잠에서 깨어난 다른 괴물들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몰랐으니까.
“거주지부터 찾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하지 않던가.
‘튜토리얼’에 이어 추가 사냥까지, 오늘은 이만하면 충분하다.
게다가.
결국에는 ‘감각’ 능력을 얻은 대가로 육체가 어색해지지 않았던가.
오른팔에 익숙해지기 위해 짧게나마 노력했던 것처럼 새로 변화된 몸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려면.
물러날 때에는 물러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