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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9화 (9/232)

9화

분명.

괴물들에게도 밤낮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밤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모두가 잠드는 시기, 야음을 틈타 움직이는 인간들만 조심한다면 낮보다는 편히 행동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그러하고, 동물이 그러하듯.

괴물들 중에도 낮보다 밤을 선호하는 개체들이 존재한다. 눈앞에 나타난 이놈, 아니, 이놈‘들’처럼 말이다.

“키에에에엑!!”

“키에에엑!”

“빌어먹을!”

단숨에 네댓 마리로 불어난 숫자를 보며 입 밖으로 거칠게 욕을 내뱉은 나는 곧장 뒤로 몸을 날려 근처에 있던 건물로 들어갔다.

내부에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면서도 무작정 몸부터 들이미는 건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크루톤 때와 같이 평지에서 다수와 겨룰 수는 없다는 판단하에 황급히 진입한 곳은 치킨집보다도 많다는 교회였다.

무척 작아서 한 번에 쉰 명도 채 모이기 어려울 만큼 협소한 건물이었는데, 다행히 내부는 조용했다.

괴물이 숨어 있을 가능성?

길게 늘어서 있는 의자와 끝자락에 설치된 강대상 말고는 뻥 뚫린 환경이라 뭔가가 은신하고 있을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뒤를 등지고 입구를 딱 막아섰다.

탁―

건물의 크기만큼이나 좁은 입구.

괴물 한 개체만 들어와도 꽉 막힐 듯하니 이곳에 버티고 서서 들어오는 대로 두들겨 팰 작정이었다.

그리 벼르기 무섭게 주둥아리를 쩍 벌리며 등장한 괴물들.

“하아!”

“키에에에엑!!”

후우우우우웅―

최대한 침착한 마음을 유지하며 우에서 좌로 꺾어 치듯 주먹을 내질러 선두로 쫓아오던 괴물의 면상을 그대로 후려쳤다.

한 번 싸워 봤고, 또 한 번 이겨 봤다고.

이 일련의 과정 동안 전과 다르게 두려움이란 감정은 나타나질 않았다.

콰직!

“키에, 에엑!”

쿠웅―

후두둑―

이윽고.

끔찍한 소리와 함께 주둥아리를 정확히 가격당한 괴물이 단말마의 비명을 토해 내며 바닥을 굴렀다.

손끝에 선명히 남은 감촉을 통해 상대의 머리 일부가 박살 났다는 정보가 전해졌다.

허나.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게 죽지는 않은 상태.

“끝장을… 젠장!”

“키에에엑!”

완전히 죽여 버리고 싶었으나 그럴 시간이 없었다. 한 마리를 쓰러뜨리기 무섭게 새로운 개체가 머리를 들이미는 중이었다.

탓―

재빨리 자세를 바로 하고서 뒤로 한 걸음 물러나 몸을 숙였다가 펴는 반동으로 괴물의 턱을 올려 쳤다.

소위 말하는 어퍼컷(Uppercut).

복싱이라고는 TV나 영화 등으로 몇 번 본 게 전부라 굉장히 불안정하고 어색한 동작이었으나 위력은 충분했다.

사람의 손이 아니라, 오르그의 팔로 펼쳐 낸 공격이었으니까.

퍼억!

부우웅―

쿵!

“케엑…….”

바닥을 스치듯 훑고 지나가며 솟구친 주먹에 턱을 처맞은 괴물이 북 터지는 소리를 내며 짧게나마 공중으로 떠올랐다 떨어졌다.

역시 일격에 죽지는 않았으나 꽤나 심각한 타격을 입은 듯 몸을 부들부들 떨어 댔다.

뇌진탕 비슷한 상태이리라.

‘좋아.’

속으로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인 나는 이런 식이라면 몇 마리든 더 상대할 수 있으리란 자신감에 옅은 미소를 그리며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

당황했다.

기껏 얻은 자신감을 짓이길 만큼 많은 수의 괴물들이 좁은 입구를 비집고 들어오기 위해 몸부림치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나, 둘, 셋, 넷… 일곱, 여덟.

시야에 들어오는 수만 해도 무려 여덟 마리였다. 시작부터 네 마리나 나타나더니… 무리 사냥하는 중(種)인 건가?

단박에 두 마리를 처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겁을 먹기는커녕 더욱 날뛰는 괴물들을 보며 본능적으로 계속 싸우다간 목숨이 위험하다는 걸 직감한 나는 슬쩍 후방을 바라봤다.

빠져나가야 했다.

쓰러진 두 마리를 완전히 끝장내고 추출 작업을 시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포기할 땐 포기해야 한다.

‘어디로……. 아, 창문!’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창문이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입구 외에 나갈 구멍이라고는 저기뿐이었다.

‘가자!’

도망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나는 생각을 마친 즉시 발을 굴렀다. 가는 와중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던 의자 하나를 주워 들고는 창문을 향해 던졌다.

오른팔의 힘을 받아 흡사 야구공처럼 날아가는 의자.

후우우우욱―

파앙!

순식간에 덮쳐 온 의자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창문.

비산하는 유리 조각이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민다.

촤아아악!

‘흐읍!’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걸치고 있던 장포를 머리 위로 들어 그대로 창문 너머로 날아올랐다.

쿵―

바람이 불어온다 싶더니 이내 딱딱한 아스팔트의 감촉이 느껴진다.

또 있다.

“이에에에엑!!”

“키에엑!”

느껴지는 건 평지의 촉감뿐만이 아니다.

내 뒤를 따라 창문으로 달려오는 괴물들의 움직임 역시 직접 보지 않더라도 귀를 타고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머뭇거리면 잡힌다.

이를 악문 나는 발이 땅에 닿음을 깨닫자마자 앞으로 달려 나갔다.

허나.

‘젠장!’

도주는 결코 쉽지 않았다.

본디.

신체 구조상 인간은 아무리 빨라도 네발짐승보다 느리다. 매일매일을 살기 위해 뛰고 달려야 하는 짐승들과 달리 사람은 목축과 농사로 한곳에 정착하게 되면서 속도와 관련된 기관이 퇴화됐기 때문이다.

그런 고로.

평범한 네발짐승조차 이겨 내지 못하는 내가 괴물들의 추격을 따돌리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저놈들은 단순히 시각으로만 쫓는 게 아니다. 오른팔에 묻어 있는 핏물, 저놈들과의 격전으로 배인 동족의 냄새를 나침반 삼고 있다.

크루톤처럼 독은 없지만, 추적 하나만큼은 여느 괴물보다 뛰어난 개체였다.

“개 같은!”

이러한 상황에 꼼짝없이 죽는 건가 싶은 불안해진 나는 거친 욕설로 잡념을 털어 내며 또다시 아무 건물이나 골라 몸을 들이밀었다.

이번에 고른 곳은 철문이 열려 있던 상가였다.

보통.

사람이 거주하는 집이 아닌 이상 대개 내부가 훤히 보이는 유리문을 설치하기 마련이지만, 간혹 상가에도 이처럼 철문을 두는 경우가 있다.

외부로부터 격리해야 하는 곳.

내가 들어간 장소는 어른들의 놀이터라고 불리는 ‘퇴폐업소’였다.

쿵―

철컥!

“하아, 하…….”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철문을 닫고 문고리를 잠그자 몇 초 차이로 나를 놓친 괴물들이 강제로라도 열어젖히려는 듯 몸을 부딪쳐 왔다.

연달아 전해지는 충격에 문이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크읍, 하……. 죽겠네.”

턱 끝까지 차오른 호흡을 가라앉히며 문에서 벗어난 나는 긴장을 풀 새도 없이 지속적으로 전투 자세를 취하곤 건물 내부를 응시했다.

퇴폐업소였던 만큼 서서히 태양이 떠오르고 있는 바깥과 달리 여전히 어두컴컴한 내부.

휘익―

휘익―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사방을 주시했다.

근원석 복용 당시에 사라졌던 행운이 돌아왔나, 교회와 같이 이곳 또한 조용했다.

쾅!

쾅!

만일.

주인이 있었더라면 내가 만들어 낸, 또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소음을 듣고도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겠지.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내부로 발을 디뎠다.

정확하게는.

다시 밖으로 빠져나갈 만한 공간을 찾기 위해 서둘렀다. 철문은 분명 단단하다. 허나 괴물들의 공세를 막기엔 턱없이 부족할 터. 그 전에 길을 모색해야 했다.

문제는.

‘창문이, 없다…….’

퇴폐업소라 그런가, 아니면 이 가게만의 특징인가 외부로 통하는 길이 철문 외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단 점이었다.

창문 정도는 당연히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어쩌면.

이런 곳이 처음이라 발견하지 못한 걸지도 몰랐다. 어릴 땐 연애다 뭐다 해서 이런 데에 올 필요가 없었고, 나이가 좀 찰 즈음엔 다쳐서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으니까.

다만.

“길은 있어. 분명히.”

포기하진 않았다.

이곳이 정말로 퇴폐업소라면, 필시 창문보다 훨씬 편하고 안전한 길이 있음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무슨 까닭으로?

외부와의 접촉을 단절한 채 살던 당시, 내가 제일 많이 하던 건 영상을 보는 일이었다.

직접 마주하고 부딪치는 건 혐오에 가깝게 싫어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사람과의 소통을 그리워하는 모순적인 외로움의 발현이었는지.

하루 24시간 종일 영상을 틀어 놓았고, 습관처럼 보게 된 영상 중에는 뉴스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이 순간.

내가 떠올린 건 개중 퇴폐업소와 관련한 이슈거리였다.

- 불법 영업을 하던 A씨가 단속을 피하고자 화장실 천장을 뚫어 탈출로를 만드는…….

- 사업주 B씨는 외국인 노동자로 속여 데려온 여성들을 숨기기 위해 주방 외벽에 문을 설치한 뒤…….

교활한 토끼가 세 개의 굴을 파 놓듯.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단속을 피해 도망갈 길을 만들어 두던 퇴폐업소 업주들의 생활 방식.

그러니.

여기도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언뜻 봐서는 찾지 못할 만큼 교묘한 방식으로 주방이든 화장실이든 혹은 손님을 받는 접대용 공간이든 간에 어딘가에 하나쯤은 기필코.

“있다!”

찾았다.

한계에 봉착한 듯 꿀렁거리는 철문을 뒤로하고 주방에 들어섰던 나는 어지러이 나뒹구는 물건들 너머로 쫙 열려 있는 출구를 볼 수 있었다.

사람 둘 셋쯤은 가볍게 통과할 정도로 커다란 동굴 형태의 길.

숨겨 놓았던 출구임이 확실했다.

더 볼 것도 없었다.

이 길 끝에 뭐가 있을지 몰라 조금 두렵기는 하지만.

콰앙!!

당장 1분도 걸리지 않아 강제로 열릴 것 같은 철문의 상태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다리를 뻗었다.

‘가 보자.’

뭐가 있든.

여기보단 나을 거라 믿으며.

* * *

‘허억, 헉…….’

입을 꼭 다물고 어떻게든 코로 호흡을 이어 가며 달려 나가는 길.

퇴폐업소에서 일직선으로 이어지던 길은 어느 순간부터 위로 꺾어지더니 곧 계단으로 변했다.

대체 어디로 연결된 걸까.

의문을 풀 새도 없이 계단을 타고 올라가던 내 앞으로 뭔가가 나타났다. 반쯤 밀려나 있는 동그란, 거리를 걷다 보면 흔히 마주하는 맨홀처럼 생긴 원형 문이었다.

드디어.

맞은편에 도달한 것이다.

‘후우, 후…….’

벌렁거리는 심장을 붙잡고 가까이 다가가서 고개만 살짝 밀어 넣고 바깥을 살폈다.

나가기 전에.

여기가 어디인지, 밖에 다른 위험은 없는지 알기 위해.

‘…화장실?’

그런 내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건 남성용 소변기.

퇴폐업소 통로와 이어진 곳은 남자 화장실. 그 안에서도 평소 청소 도구를 모아 두려는 목적으로 좌변기조차 들여놓지 않은 칸이었다.

대충 외부로 나오지 않을까 했거늘.

설마 화장실일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 속으로 기염을 토한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이곳을 누군가 쓰고 있나 살폈다.

사람들의 출입이 잦은 곳이라면 나가서도 안심할 수 없었으니까.

헌데.

당장 보기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듯했다.

‘냄새가, 안 난다?’

화장실 특유의 지린내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씻을 물은커녕 마실 물도 부족한 이 시국에 소변을 보고 지린내가 나지 않도록 청소하는 작자들은 없을 터이니 이를 고려해 볼 때 여긴 누구도 찾지 않는 공간일 확률이 높았다.

그게 아니라면.

오직 도주를 위한 장소라 오래전부터 누구도 쓰지 못하게 막아 뒀거나.

‘됐다.’

어느 쪽이든 일단은 나가도 괜찮다는 판단이 선 나는 통로에서 몸을 뺀 후.

그르릉―

주변과 어울리게끔 타일로 제작해 두었던 문을 밀어 닫아 버렸다. 아직 추격전은 끝나지 않았으니 날 쫓아오는 괴물들이 조금이라도 지체하도록.

그러고는.

재빨리 화장실 문으로 달려 문고리를 붙잡았다.

철컥―

끼이이익―

부드럽게 돌아가는 문고리.

살며시 잡아당긴 문 너머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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