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키메라의 기억법-8화 (8/232)

8화

인간이 외계 종족의 무차별적인 급습에서도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를 묻는다면 일반적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수천 년간 쌓아 올렸던 문명, 그 기나긴 역사를 통해 이룩한 무기학(武器學)이다.

돌조각을 떼어 내 칼과 도끼를 만들어 짐승을 사냥하던 태고를 지나 버튼 하나에 수백만 명의 목숨을 위협하는 핵탄두 제작에 이르기까지…….

쌓이고 쌓인 문명의 힘은 설령 괴이한 능력을 가진 외계 종족일지라도 함부로 무시하지 못했다.

전쟁을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었다면, 기습이 아닌 전면전의 형태로 이루어졌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많은 인류가 생존했으리라 보는 게 정설일 정도로 말이다.

두 번째는 외계 종족을 상대로 싸워 승리한 이라면 모두가 얻게 되는 ‘고유 능력’이다.

각자의 삶, 성향, 장단점 등에 따라 다르게 부여되는 ‘고유 능력’은 평범했던 인간도 괴물에 대항할 수 있는 초인으로 거듭나게 해 줬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추출’ 가능한 대상이 확인되었습니다.]

[대상 : 크루톤 1개체]

[‘추출’을 시도하시겠습니까?]

“추출.”

[추출을 시작합니다.]

바로 이것.

‘추출 작업’이다.

우득―

우드득―

죽어 나자빠진 괴물의 사체에 손을 올리고 ‘추출’이라고 말하면 영혼이 사라져 버린 육체를 이리저리 비틀고 우그러뜨려 하나의 ‘돌’을 만들어 낸다.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콰직―!

그래.

“압축기에 넣고 압축해 버리는 것 같네.”

딱 이런 느낌이었다.

물론.

전체적인 그림은 훨씬 그로테스크하다.

보통 압축기에 물건을 넣으면 압축이 완료된 후에나 결과를 확인하는 데 반해 지금은 눈앞에서 사체가 돌덩어리로 압축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지켜봐야 했으니까.

“예전이었으면 징그러워서 시도조차 못 했겠어.”

사체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던 나로서도 이런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기괴한 작업이었다. 비위 약한 사람은 중간에 토악질을 해 대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리라.

[대상 「크루톤」의 추출이 완료되었습니다.]

[‘1등급 근원석’을 습득합니다.]

툭―

데구루루―

썩 좋지 않은 감상평을 늘어놓는 사이 몇 줄의 문장이 떠오르고 추출 작업이 끝난 사체에서 검지 손가락만 한 뭔가가 굴러떨어졌다.

근원석.

명칭대로 괴물의 힘이 담겨 있는, 마치 인간의 심장을 닮은 듯한 돌멩이였다.

“이게…….”

무릎을 굽혀 근원석을 손에 쥐자 반사적으로 커다란 홀로그램 화면이 나타났다.

《1등급 근원석 : 크루톤》

- 대상 ‘크루톤’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근원석이다. 복용 시 ‘근력’ 또는 ‘순발력’이 상승하며 낮은 확률로 기술 ‘독액 분비’를 획득한다.

음.

고문당하는 과정에서 불곰파 놈들에게 전해 들었던 정보대로다.

“별것 없네.”

쭉 읽어 본 결과.

기억하고 있던 내용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고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근원석을 입으로 가져갔다.

곧장 복용할 생각이었다.

아마.

근원석에 대해 잘 아는 누군가가 나를 봤다면 일말의 재고도 없는 행위에 한 소리 해 댔을지도 모른다.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닌 근원석은 지금같이 먹어 치워 자신의 힘을 향상시킬 수도 있지만, 양도가 가능한 터라 새로운 화폐로써 쓰이기 때문이었다.

사람과 사람 간의, 나아가 세상 곳곳에 존재한다는 ‘차원 상점’에서.

여기서 특히 주목할 것은 당연하게도 ‘차원 상점’이란 단어다.

갖가지 식료품부터 각 차원의 주요 상품들이 즐비해 기본적인 의식주(衣食住)를 넘어 안전 확보를 위한 특수한 무기와 방어구를 구매할 수 있는 전 차원을 아우르는 우주적인 상점.

실제로 본 적은 없다.

듣기로는 차원 상점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진입하기 위해선 ‘근원석 소지’라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했으니까.

그 대신.

차원 상점의 물품은 봤다.

“조창기…….”

나와 누나를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찾아왔던 불곰파의 악마들, 그 개자식들을 지휘하던 남자.

일명 ‘간부’라고 불리던 조창기가 손에 쥐고 있던 거대한 도끼.

건물 외벽을 단숨에 갈라 버릴 만큼 날카로움을 자랑하던 그 도끼는 분명 차원 상점에서 구매한 무기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평범한 도끼로 석벽을 베어 낼 수는 없을 테니까.

억지로 부숴 버린다면 몰라도.

하여간.

그날의 위용을 떠올리면 근원석을 복용하지 말고 비축해 두고는 싶으나, 문제는 지금 내가 너무 약하다는 점이었다.

차원 상점을 찾아가는 것도 다 힘이 있어야 하는 법.

당장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행위조차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로서는 어디 있는지도 모를 차원 상점을 발견할 때까지 무작정 근원석을 아껴 두는 건 그다지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일회성이라고 했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도 미지수고.”

불규칙성.

시간도, 공간도, 심지어 입장 가능 인원까지도 매번 달라지는 변칙성으로 인해 원한다 해도 마음대로 출입하지 못하는 게 차원 상점이라고 했다.

그러니.

이번은 흡수한다.

설혹.

근원석 부족으로 차원 상점을 놓친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꿀꺽―

[‘1등급 근원석’을 복용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근원석을 삼키자, 신기하게도 입 안에 들어간 돌멩이가 젤리처럼 사르르 부서지며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이후.

[순발력이 1 상승합니다.]

꽈아아아아악―

한 줄의 문장과 함께 전신의 근육이 팽팽하게 조였다 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된… 건가?”

처음 행해 보는 근원석 복용에 나는 어색한 눈빛으로 몸을 돌아봤다.

딱히 뭔가 변한 것 같지는 않은 기분.

허나.

상승한 게 고작 1뿐이니 그럴 만도 했다. 따지고 보면 당장 ‘튜토리얼’ 보상으로 신체 능력이 향상되었지만 별다른 변화를 체감 못 하지 않았던가.

“늘다 보면 달라지겠지.”

떠오른 의문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계단으로 향했다. 아직 추출이 필요한 사체가 두 구나 남아 있었다.

모조리 먹어 치운다.

문득.

추출을 진행하는 동안 크루톤의 몸에서 이식할 만한 부위를 찾아 확보해 놓을까 싶기도 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식은 신중해야 한다.

도움이 될지 아닐지를 명확하게 판단하고 진행해야 하는 바. ‘인간성’의 소모를 감수하면서까지 이식할 만큼 매력적인 신체가 없다면 버릴 땐 과감하게 버려야 했다.

노인처럼 시체가 부패하지 않도록 방지할 방법이라도 있으면 또 모를까.

【 주거지 찾기 】

[순발력이 1 상승합니다.]

[근력이 1 상승합니다.]

연달아 이어진 복용.

허공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문장들을 끝으로 전투를 마무리한 나는 다소 아쉬운 결과에 입맛을 다셨다.

“쓰읍.”

많은 양은 아닐지라도 세 개나 먹었으니 ‘독액 분비’라는 크루톤의 능력을 획득하려나 기대했거늘.

아무래도 능력을 얻을 확률이 정말 낮은 것 같았다.

내 운이 별로 좋지 않거나.

“됐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

잡념을 털어 버리고는 주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조금씩 동이 트는지 검푸른색이긴 해도 여전히 어두운 세상.

나는 그 속에서 사방을 면밀히 살폈다.

“…없나?”

크루톤 세 마리와 싸우는 과정에서 꽤나 큰 소음이 발생했었다.

사람도 그렇지만 괴물들에게도 밤낮이 있고 수면이 필요하다.

비교적 적절한 시기를 골라 치른 전투였으나, 전파된 소음이 다른 괴물들을 자극했을 수도 있기에 주위를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더군다나.

11월의 칼바람을 타고 피 냄새가 퍼지는 중이다.

크루톤만의 특징인가.

사람과 달리 비릿한 내음은 없었지만, 괴물들의 후각을 자극하기엔 충분하다.

지구의 맹수들만 하더라도 몇 킬로미터 밖에서 혈 향을 맡고 먹잇감을 추적해 오는데, 괴물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최대한 세심하게 근방을 주시하던 나는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

‘벗어나자.’

내려놓았던 가방을 어깨에 메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제법 좋은 지형이라 버리기가 무척 아까웠지만, 피가 쏟아진 이상 최악의 장소가 되었으니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마음 같아선 오른팔도 깨끗하게 닦고 떠나고 싶은데…….

허나 마실 물도 부족한 상태라 대강 정리를 마치자마자 한달음에 옥상에서 내려온 나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어디로…….’

따로 목적지를 정해 놓고 나왔던 게 아닌지라 향후 행선지를 정해야 했다. 되도록이면 식량이나 식수를 구할 수 있을 만한 곳으로.

어디가 좋을까.

종말에 가까운 사태가 벌어진 이후로 벌써 한 달가량이나 흘렀기에 웬만한 지역은 전부 털렸을 확률이 높다.

그러면.

‘아파트, 아파트 단지로 가자.’

그나마 물건이 남아 있을 만한 장소.

멀지 않은 곳에 2천 세대가량 기거하던 아파트 단지가 있다. 거기라면 아직 수거할 만한 게 남아 있으리라.

뭐.

대부분은 썩어 버려 먹지 못할 테지만, 라면 같은 식품은 구해 볼 만하겠지.

여차하면 주거지로 쓸 수도 있고.

사실 목적지를 아파트로 정한 건 식량이나 식수도 그렇지만 주거지 문제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곧 있으면 12월.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지고 하얀 눈이 세상을 뒤덮으면 웬만한 곳은 죄다 얼어 버릴 터.

그 전에 적당한 주거지를 구해야 한다.

괴물들의 준동을 피해 도망치는 과정에서 침구류나 의류 같은 상대적으로 무겁고 부피가 큰 물건들은 놓고 갔을 공산이 높으니 이런 점을 모두 고려했을 때 아파트 단지로 가는 건 괜찮은 결정 같았다.

다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아파트 단지를 장악하고서 나를 거부할 경우와 다수의 먹잇감을 잡아먹기 위해 몰려들었을 괴물들로 인해 발생할 원치 않은 전투를 대비해 도착 이후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해야겠지만.

‘일단은… 가 보자.’

현재로서는 최적의 장소라고 결론을 내린 나는 아파트 단지가 있는 방향으로 발을 뻗었다.

차디찬 밤공기를 헤치며 나아가는 길.

크아아아아아아!!

쿠우웅―

“……!”

휙―

몇 걸음 내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뒤쪽에서 거친 포효와 함께 심상치 않은 폭음이 들려왔다.

슬쩍 돌아보니 방금 전까지 내가 자리했던 장소였다.

예상대로.

피 냄새를 맡은 괴물들이 급습해 온 듯했다.

‘후…….’

겨우 몇 분의 차이로 피한 사고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만약 저기에 그대로 있었다면…….

지금쯤 뭔지도 모를 괴물과 싸우고 있었겠지. 어쩌면 죽음을 각오해야 했거나 이미 괴물의 한 끼 식사거리로 전락했을 수도 있고.

그래서였을까.

스윽―

괜스레 장포로 가려 놓은 오른팔을 더욱 감싸게 된다.

혹여나.

허탕을 치고 분노한 괴물들이 몸을 돌려 날 쫓아오지는 않을까 불안해서.

탁탁탁―

그 감정의 동요를 증명하듯 발걸음도 점점 빨라졌다.

한 발, 한 발.

무너지고 부서진 도심지를 뛰어다니는 내내 머리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제발 아무런 문제가 없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허나.

모두가 알다시피 안 좋은 예감은 틀리질 않는 게 세상의 이치 아니던가.

타다다다다다다다닷!!

쾅!

“키에에에엑!”

내 바람을 무시하듯.

좌측에서 개의 형상을 한, 족히 2m는 가볍게 넘는 짙은 흑갈색의 괴물이 뱀처럼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며 뛰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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